〈 156화 〉 악당들은 그렇게 되었다.
* * *
가을의 나날은, 시원스러운 바람이 불어오지만, 맑은 하늘에서 내리는 햇빛에 고된 노동까지 합해진다면, 여름철 못지않게 땀에 흠뻑 젖어버린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서라벌의 외각 벽을 수리하는 일을 맡은 대장의 손뼉에, 한참 땀을 뻘뻘 흘리던 노동자들이 겨우 팔뚝으로 땀을 훔치며, 우렁차게 외친다.
“음....그래, 자네들은 신입인가? 처음치고 참으로 일을 열심히 하더군, 여기, 조금 더 넣어두었으니, 내일도 나오도록 하게.”
오늘의 작업이 끝나고, 일당을 배부하는 팀장이, 오늘 막 새로 일을 시작한 사내 두 명의 어깨를 두들기며 돈이 담긴 작은 꾸러미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작은 꾸러미를 받으며 매우 기쁜 듯이 미소를 짓는 두 사내, 아니, 악귀.
카람과 기루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후, 좋아, 오늘도 인간들의 돈을 벌었군, 오늘은 스타 주막으로 갈까? 당분간 돈을 절약하기 위해 가질 않았으니 말이야.”
일터를 나와, 천천히 거리를 걷던 카람이 싱글벙글거리며 기루에게 말했다.
“그거 좋군! 그렇담 세실과 꼬맹이들도 부르.....”
카람과 비슷하게 기분이 좋아진 기루가 대답하던 순간.
“......이게 아니잖아!!!!!!”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르는 기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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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기루는 자신의 앞에 있는 탁자를 쾅, 하고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쉿..!쉿!!! 지금 뭐 하는 거야?!”
“시끄러워! 그러다가 쫓겨나면 어떻게 할 거야? 그치 케린?”
“맞아 맞아! 털복숭이 아저씨야! 그치 카린?”
“소리를 죽여라, 이곳에서 눈에 띄어봤자 좋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으큭....!”
스타 주막의 한 구석.
그곳에는 악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니 어째서, 우리가 인간 놈들 따위의 나라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엉?”
그렇다.
그들은 지금, 인간들의 나라, 한의 수도 서라벌에 숨어들어, 하루하루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몰라서 묻나? 분명 2주 전에 말해 두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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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어느 깊은 산속.
“돈이 다 떨어졌다.”
카람은 매우 얄팍해진 주머니를 짤랑거리며 악귀들에게 말했다.
“돈...?”
“그렇다, 요즘 따라 스타 주막에 방문하는 횟수가 늘다 보니, 결국엔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그들은 악귀.
사람들을 잡아먹고 괴롭히던 악당.
하지만 딱히 돈 따위는 딱히 필요치 않았다.
그렇기에 인간들 사이에 숨어들 카람만이 가끔 사냥하던 인간들의 주머니를 털어, 챙겨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스타 주막을 알고 나서부터, 사람들 사냥을 거의 하지 않다 보니, 들어올 돈은 없는데 자꾸만 돈이 나가고 말아, 이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괜히 인간 사냥을 나섰다가, 인간들 눈에 띄면, 더는 이곳에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간들을 사냥하던 그들에게는 딱히 개의치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스타 주막이 있는 이상, 이 곳에 있을 수 없게 된다면, 매우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원래 목적인 강하의 힘을 흡수하겠다는 목표도 있지만, 그건 둘째치고 더는 스타 주막의 음식을 먹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자칫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가, 흑룡이나, 강하에게 들킨다면, 더욱더 큰일이었다.
그나저나 스타 주막에 새로이 오게 된 흰 머리의 여자 또한, 범상치 않았다.
결론은, 그들은 이곳을 떠날 수 없었고,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지만, 인간 사냥은 하지 못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담, 어쩌면 좋지? 카람, 네 생각은 어떤가?”
모두들 골머리를 썩히고 있을 무렵, 세실은 의외로 차분한 카람의 분위기를 눈치채고, 그에게 물었다.
“내 생각에는.....[일]을 해야할 것 같다.”
“““....일?”””
그리고, 카람의 입에서 나온 정말이지 뜬금없는 소리는, 악귀들 모두 벙찌게 만들고 말았다.
“그렇다, 인간들의 마을에 숨어들어, 그들이 하는 것처럼 일이라는 것을 해서, 돈을 버는 거다.”
“자..잠깐잠깐잠깐.....지금 나만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가?”
“아니, 나도 상당히 어지럽군.”
“인간들의 마을...?”
“이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카람! 우리는 악귀, 인간들 따위보다 더욱 우수한, 그런 존재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고작 음식을 위해, 인간들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부들거리던 팔을 높게 치든 세실이, 고함을 지르며 카람에게 되물었다.
그들은 지금, 스타 주막의 음식 맛에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지만, 아직 그들의 마음속엔 인간이란 열등한 존재라는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 포기해라, 나는 이미 준비를 마쳤다.”
“으큭...! 너는 악귀라는 사명을 잊은 것이냐?”
그럼에도 카람은, 그따위 우월감 정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무심하게 말했다.
그렇게 잠시의 침묵이 이어지던 그 순간.
“그...그럼, 일..이라는 걸 하면, 계속 그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거야?”
“케린?”
그 침묵을 깬 것은 바로 케린이었다.
“난 갈래, 저번에 먹었던 푸딩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걸? 카린은?”
“....케린이 간다면, 나도 갈래!”
“좋아! 우린 언제나 둘이서 하나니까!”
“응!”
“알겠다.”
“...젠장...젠장...젠장...!!! 알았다, 나도 가도록 하지...크윽...!”
그런 두 명의 모습에 흔들리던 세실 역시, 고개를 떨구며 자신도 가겠다는 의견을 내보였다.
“그렇군, 그럼 기린, 네놈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아..? 그....그러니까....으음....! 머리가 복잡하군, 간단하게 말하면, 그 일이라는 것을 하면, 스타 주막의 음식을 계속 먹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
“알았다고 젠장! 나도 간다.”
그렇게, 악귀들은 모두, 스타 주막이 있는 서라벌로 섞여 들어가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럼, 어서 가도록 하지.”
“잠깐, 네놈들, 그 상태 그대로 갈 생각이냐?”
“음? 무슨 문제라도?”
그렇게 정해진 이상, 서라벌로 향하려던 악귀 무리를 카람이 막아 세웠다.
카람이야 인간들 마을에 섞여들기 위해, 옷을 입었지만, 그들은 전부 알몸인 상태였다.
그대로 마을에 들어갔다가는, 모조리 잡혀 들어갈 것이 뻔했다, 잘해봐야 머리가 아픈 병신 취급받을 테지.
“이걸 입어라, 인간들 마을로 갈 때는, 옷이라는 것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될 것임을 짐작했던 카람은, 자루를 하나 꺼내, 그들의 앞에 던졌다.
“음...이건 어떻게 입는 거지?”
“윽....뭔가 답답한 기분이군.”
“아하하하! 카린! 얼굴이 안 보여!”
“어...? 케린! 어디야? 아무것도 안 보여!”
‘하....이런 녀석들을 데리고 참....막막하군.’
그렇게 악귀들의 서라벌 적응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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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우리가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것 아니냐.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그...!렇긴 하지만,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이냐? 우리 같은 악귀들이 평범한 인간 놈들처럼 변해가고 있지 않은가.”
“아, 카람, 주막으로 오는 길에, 채소가 싸더군, 조금 사 두었다.”
“좋군, 잘했다.”
“오늘 밥은 누가 만들지?”
“순번상으로는, 나로군.”
“에엥...? 카람이 만드는 음식은 맛없어! 그치?”
“맞아! 그냥 매일 여기로 오면 안 돼?”
“네놈들이 일확천금을 벌어온다면 몰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이게 뭐란 말인가....세실! 넌 분명 인간들 따위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어쩌다 보니....말이야...”
“맞다, 세실. 오늘 일 하다가 옷이 찢어졌는데, 좀 고쳐 다오.”
“알았다, 집에 가서 보도록 하지.”
서라벌의 제일 구석에 있는 허름한 집을,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산 악귀 일행들은 현재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기린과 카람은 매일 일용직 일터를 전진하고, 카린과 케린은 세실을 도와, 마을의 잡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언제나 거드름을 피우는 세실은, 어느새 순식간에 찢어진 치맛자락을 수선하고, 장을 볼 때면 언제나 싸고 좋은 재료들을 고르는, 완벽한 주부가 되고 말았다.
“으으....모르겠군, 정말...”
그렇게 기린이 머리를 감싸며 끙끙거리고 있을 때.
“음식 나왔습니다!”
어느새 그들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온 벼루가 그들의 앞에 하나씩 접시들을 올려두었다.
“와! 맛있겠다! 햄버그 맛있어!”
“케린은 햄버그만 먹네, 난 카레가 좋은데!”
“오옷! 왔군! 역시 일하고 나서 먹는 고기덮밥이 최고로군!”
“오늘은 갈치구이인가, 맛있겠어.”
“비프스튜야 말로 최고거늘, 너희는 아직 멀었다.
그렇게 그들이 금방까지 나누던 고민 따위는, 자신들의 눈앞에 놓인 음식들을 보자 순식간에 날아가고 말았다.
오늘도,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맛있는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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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늘긴 늘었군, 네 녀석 말대로 자기 동료들마저 당당하게 들어와 음식을 먹다니.”
“그러게...진짜 이렇게 될 줄은....그리고 저 덩치는 분명, 저번에 외각 벽 수리하는 일에 껴 있던 걸 봤는데.....저 여자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일감들을 얻으러 다니고....완전 이 마을에 익숙해 진 것 같은데?”
“흥! 저 녀석들 따위...괜한 짓이라도 했다가는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
“일단은, 지켜보자고.”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강하와 류월이 조용히 소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