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광릉제.
* * *
“이....이렇게나 입는 거야..?”
강하는 자신이 걸친 옷을 확인하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연한 분홍빛의 고운 비단에, 금수를 하나하나 새겨, 아름다운 꽃이 그려져 있었고, 그녀의 머리에는 테는 순금, 끝부분은 옥구슬이 주렁주렁 매달린 비녀가 꽂혀 있었다.
얼굴에는 새하얀 분을 칠했고, 입술은 새빨간 연지를 찍어, 평소의 털털한 강하의 모습이 아닌, 고귀한 양반집 아가씨 같은 고혹적인 매력을 뽐내게 되었다.
“아니...아무리 그래도 너무....우왁...! 너무 파렴치하잖아....!”
그리고, 그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강하는 자꾸만 입고 있는 옷들을 들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앗....네네~ 갈테니까 제발 끌지...좀...!”
그런 추태를 부리던 것을 잠자코 지켜볼 수 없었는지, 어느새 궁녀들이 몰려와 강하를 이끌고 또다시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앗! 도령니임!!!”
“앗! 향....아?”
그렇게 드넓은 궁을 걷기 시작한 지 약 2분째,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바로 향이었다.
향이는 자신과는 다르게, 연한 녹빛의 비단옷을 입고 있었지만, 발육이 좋아 강하보다 더욱 아름다운 풍채를 자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보는 향이의 화장한 모습에, 강하는 순간적으로 말하는 것도 잊은 체, 그녀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말았다.
“와아!!! 도령님 너무 귀여워요!!!”
“그....그래, 너도 참 예뻐.”
“읏...!....도령님 바보.....”
“?”
상당히 색다른 강하의 모습에, 그대로 달려들어 품에 안으려는 향이는, 순간적으로 눈이 풀려 자기 모습을 아름답다고 말한 강하의 말에, 갑자기 부끄러워졌기에, 조용히 강하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꼬옥 잡을 뿐이었다.
“오호, 이제야 오는 게냐?”
“오....”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바로 류월이었다.
그녀의 흑빛 같은 머리와 마찬가지로 어둡지만, 마치 밤하늘처럼 빛을 빨아드릴 것만 같은 검은 옷과 분은 답답했는지 칠하지 않고, 연지만 발라, 앵두 같은 입술이 빨갛게 물들었다.
“어? 그나저나 비녀는 그대로잖아?”
그러나, 그녀의 머리에 꽂힌 비녀는, 언제나 류월이 끼고 다니는, 각시붓꽃이 조각된 비녀였다.
상당히 아름답고 비싼 비녀들이 많아서, 다른 것을 껴봐도 괜찮을 텐데.
“필요 없다. 나에게는 이 비녀가 아니면 싫다!”
“뭐, 네가 그러면 상관없나?”
류월은, 저 비녀가 아니면 싫은 모양이니, 더는 물어보지 말자.
“욧!”
“오~ 새끼, 어디 드라마에 나와도 괜찮겠는데?”
“훗, 역시 이 몸....! 대단하다니까?”
세 번째는 혁수였다.
혁수는 그의 덩치에 맞게, 상당히 커다란 옷을 입었는데, 마치 사극에 나오는 장군이 입는 옷 같았다.
“그나저나, 안 터져...?”
“그...글세...? 일단 궁녀분들이 입혀주는 대로 입긴 입었는데, 세 번 정도 갈아입었어.”
“세 번이나?”
하지만, 역시 이 시대에서도, 저만한 덩치는 보기 힘들었는지, 그는 옷만 세 번을 갈아입었고, 결과적으로 입은 저 옷도 자세히 보니, 힘겹게 혁수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다들 여기 있었네!”
“우와.....다들 굉장해요...!”
“화련의 옷은 멋지네요~”
다음은 바로, 쫑긋거리는 귀를 들썩이며 달려오는 힐라와, 그런 그녀를 따라 힘겹게 달려오는 벼루와 옆에 붙어 같이 있어 주는 파렌이었다.
힐라는 답답함을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처럼, 상당히 얇은 비단을 써서, 마치 바람처럼 비단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벼루는, 아직 어린 그녀의 외견에 맞게, 화려한 치장 대신, 귀여운 리본이 달린 핑크빛 비단을 사용해서 그녀의 매력을 더욱 끌어당긴 것 같았다.
파렌은, 마치 젊은 나이에 시험에 입관한 대신같이, 여성처럼 화려한 옷 대신, 기품이 넘치는 자수가 잔뜩 들어가 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
“어라, 우리가 마지막?”
“어머머~ 다들 너무 귀엽다~”
마지막은 바로, 매화와 백설이었다.
매화는 그녀의 이름처럼 새빨간 비단과 화려한 장신구가 가득해, 정말로 어딘가의 공주님처럼 아름다웠고, 백설은 차분하지만, 기품이 넘치는 새하얀 비단에, 간단한 장식만을 달았지만, 어딘가 느껴지는 그녀의 매력이 풀풀 넘쳐 흘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크윽...!”
“져...졌다....”
두 사람의 흉부엔, 흉악하기 그지없는 풍만한 육체미가 잔뜩 차 있었기에,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자기 가슴을 만지작거리던 힐라와 벼루가 신음을 앓았다.
“아...아직 덜 자란 거야...! 엘프는....아주 느리게 성장하니까...!”
“나...나도 아직 어리...니까...!”
“두 사람 모두 저마다의 매력이 있는걸요...!”
절망에 빠진 두 사람을 격려하려고 했던 향이지만, 그녀들이 보기에는, 이미 자신들에게는 없는 것을 가진 자가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향이 너도 할 말 없거든...!”
“맞아요! 언니는 이미.....히잉..!”
“앗...! 아...알았어요!! 제...제가 잘못했으니까..! 앗! 잡아당기지 마셔요!!”
그게 상당히 불쾌했는지, 두 사람은 힘을 합쳐,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힘껏 잡아당기자, 향이는 앳된 비명을 질렀다.
“...크흠....자 자, 이제 그쯤하고, 일단 가자.”
“그...그치! 응! 어서 가야지!”
“아...아무렴요! 어서 서두르죠!”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본 강하를 비롯한 남정네들은, 시선을 자연스럽게 돌리며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멈추어라, 무슨 일이지?/
/황제 폐하의 손님들을 데려왔사옵니다./
/....잠시 기다려라./
‘역시 황제는 다르네....경계가 엄청나잖아?’
삼엄한 얼굴을 지은 병사가 앞장서서 무어라 말하는 궁녀의 말을 듣고, 겨누던 창을 다시금 거두어들었다.
그런 병사를 뒤로도, 상당히 많은 병사들이 일자로 줄지어, 강하 일행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인원을 황제 전하께 보낼 수는 없으니, 한 명만 들어올 수 있도록 하라./
“황제 전하를 뵙는 분은 한 명만 가능하다고 하시네요.”
“흐음...”
하긴, 아무리 한의 손님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나 많은 인원을 한 번에 만나는 것은 힘들겠지.
그렇기에, 강하와 번역을 도와줄 하진을 제외한 인원은, 잠시 밖에서 대기하기로 정했다.
“그럼, 잠시 기다리고 있어? 사고 치면 안 된다? 특히 류월 너, 너 말이야.”
강하는 황제를 뵙기 전에, 류월을 바라보며 사고 치지 마라고 일러두었다.
“무...무어냐! 이 몸을 사고뭉치로 보는 것이냐?”
“어.”
그러자, 얼굴을 찌푸리며 항변하는 류월에게, 강하는 아주 칼같이 대답했다.
한에서는 왕제에게 욕설하기, 애슐란에서는 용의 기를 내뿜어서 귀족들을 실신시키기 등.
하나하나가 극형에 처해져도 반론조차 못 할 정도 수준의 사고를 친 류월이었기에, 강하의 머리는 더더욱 아파져 왔다.
“걱정하지 마렴? 내가 류월이의 옆에 꼭 붙어 있으마~”
“....백설님이 계신다면 안심이 되는군요.”
“이보게??”
그러자, 류월의 뒤로 돌아가 그녀를 껴안은 백설이 말하자, 강하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적어도 백설은, 믿을 수 있으니까.
“자, 그럼 가시죠.”
“예, 알겠습니다.” /이분과, 통역을 돕는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음. 알았다. 따라오도록./
그렇게 결정이 나고, 강하와 하진이 앞쪽으로 발을 내딛자, 갑옷을 착용한 무인 한 사람이 그들의 앞에 서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우....더럽게 크긴 크구나....’
거대한 문을 지나,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병사들이 줄지어 서 있는 복도를 걷자, 그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이 느껴지는 강하.
모두가 하나같이 조금의 나태도 없이, 번뜩거리는 시선으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창 자루를 꽉 쥐고 있었다.
그런 병사들 사이사이, 무장이 없는 사람도 존재했는데, 아마 그들은 화련의 도술사처럼 보였다.
도술사라는 것은, 류월에게 듣기를 상당히 엄격한 기준에 따라 재능이 발현된다고 하던데, 지금 여기 보이는 도술사만 해도 몇십 명이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다시금 한과 화련의 격차를 두 눈으로 목격하는 강하였다.
병사들이 줄지어 있는 복도가 끝이 나자, 탁 트인 넓은 장소가 보였다.
빨간 비단이 레드카펫처럼 늘어져 있어, 그곳을 걷자, 이번에는 병사들이 아닌, 아주 고급스러운 비단을 입고 근엄하게 자신들을 바라보는 대신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끝에는.
/.....그대가 바로....‘강하’...인가?/
황금빛의 의자에, 그보다도 더욱 반짝거리는 용포를 입고, 강인한 눈매와 깔끔하게 정돈된 수염을 쓰다듬는 남자.
이 대륙의 주인, 화련의 황제.
광릉제.
그가 높디높은 왕자에서, 강하를 내려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