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퓨우우우...전! 합!
* * *
/.....여기가 주방입니다./
어느새 화려한 옷들이 아닌, 자신이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한복으로 갈아입은 강하와 다른 직원들이 병사가 안내한 방의 앞에 섰다.
칼을 찬 병사가 문을 열자, 화련의 궁궐 주방 광경이 강하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과연 대국의 주방은 격이 달랐다.
하물며, 황제의 입으로 들어가는 요리를 만드는 곳인데, 사치를 부리면 부렸지, 안 부렸을 리가 없지.
“오....저건 화덕이잖아? 심지어 마석? 저거 꽤나 돈 들 텐데...”
“셰프님! 여기 없는 것이 없네요?”
주방 벽에 걸려있는 도구들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파렌의 말마따나, 없는 것이 없었다.
바닥은 돌을 깎아 깔은 것처럼 보였지만, 매끈하게 깎아낸 것이 아닌, 홈이 파여 울퉁불퉁한 바닥이었다.
아마 매끈하게 깎아서 채웠다가는, 물이 많이 사용되는 주방 특성상, 미끄러지는 사고가 잦을 것이기에, 그것을 막는 겸, 물청소를 하고 나서 물들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이렇게 처치해둔 모양이었다.
칼들은 용도에 맞게 다양한 크기의 식칼들이 걸려있었으며, 주방의 식자재 창고에도 다양한 식료품들이 있으면서도, 역시나 냉방의 도술이 걸려있는 냉장, 냉동 창고 또한 존재했다.
“그나저나, 사람이 너무 없는데?”
그렇지만, 황궁의 주방인 만큼, 그만한 요리인들이 바글바글해야만 할 터인데, 이상하게도 금방 주방을 방문한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이곳을 안내한 병사와, 그 옆에 있는 청년 한 사람뿐이었다.
/황제 폐하의 명이십니다. 이번 식사 때 올라올 요리는, 그 누구의 도움 없이, 강하님 일행이서만 만들라는 명이 있기에, 모든 이들은 잠시 주방을 비우고, 아무리 그래도 금방 막, 이곳의 주방에 오셨기 때문에, 식재료의 위치나 도구들의 위치를 잘 모르실 것 같았기에, 저 혼자 강하님에게 주방의 안내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만의 하나에 대비해, 감시를 맡으셨고요./
“그렇다고 하네요.”
“흐음....정말 화끈하신 분이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병사의 옆에 서 있던 청년이 강하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대단하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금방 처음으로 본 인간에게 자신의 식사를 만들라 명하고, 감시라고는 고작 이 한 명뿐이라니.
그럴 일은 절대로 없지만, 만일 강하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었으면, 간단하게 병사를 제압하고 일을 꾸밀 수도 있었는데, 황제는 어디 한번 해보면 해봐라. 같은 태도를 보이며 강하를 자유롭게 요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흠....그런 그렇다고 치고, 뭘 하면 좋을까?”
강하는 미리 준비한 앞치마의 줄을 허리에 매듭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황제님은 중국....그러니까 화련에 살고 계시니까, 화련의 요리를 만드는 건 어때?”
“흠...”
그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혁수가 강하에게 다가와 의견을 내었다.
확실히, 언제나 먹는 요리가 더욱 입맛에 맞기는 할 터였다.
“기각.”
“우째서?”
하지만 강하는 그 의견을 기각했다.
“일단, 나는 전문적으로 중식을 많이 배우지 못했어.”
강하는 어디까지나 양식 전문.
다양한 나라의 요리를 좋아하고, 즐겨 만들기는 했지만, 그녀가 최상급의 실력을 낼 수 있는 것은 양식의 요리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중식을 만들자니, 그녀가 가진 능력으로 수많은 미식을 즐긴 황제의 혀를 이길지는 모르는 일.
그렇다면 상당히 색다른, 한에서 리 차오 에게 만든 삼불점 같은 걸 만들어보자니, 그건 그것대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화련의 음식에 맞추어진 황제의 입에, 양식이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도 없어.”
그리고 양식과 중식은 상반되는 맛이 컸고, 화련에서 오래 지낸 황제가 양식의 맛을 좋아할 수도 있으나, 거부감을 느낄 확률도 존재했다.
강하는 이왕 황제에게 바칠 음식이니, 그가 깜짝 놀랄 만큼 놀랄 만큼 대단한 요리를 만들고 싶었다.
“음....그렇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끄응....만일, 황제가 강하님의 요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저희 목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런 걸 걱정하고 있었느냐?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한들, 우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고, 이 몸은 강하를 믿고 있느니라.”
“그러엄! 너희들의 안전은, 걱정하지 마렴~”
끙끙대는 강하를 보던 힐라가 자신의 목을 더듬거리자, 콧방귀를 뀌는 류월과, 자신의 손을 들어 보이는 백설이 든든하게 그들을 지키겠느니라 라고 장담했다.
“하하....그 수는 정말로 최후의, 최후의 수 니까....”
그걸 보고 쉽게 웃을 수 없는 강하였지만 말이다.
“음.....차리리 강하 셰프님의 요리와, 화련의 요리를 섞어버린다면 어때요?”
그리고, 이때까지 잠자코 있던 향이가, 입을 열었다.
“섞는다...고?”
그때, 향이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떠올리는 강하.
퓨전.
“그거야!!! 향아!! 잘했어!”
“아....아으......네헤에....”
번뜩. 자신의 머릿속을 스쳐 가려는 아이디어를 필사적으로 잡아낸 강하가 향이에게 달려가 품에 파고들자, 향이는 당황스러우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강하를 껴안았다.
‘그래! 양식과 중식을 섞은 퓨전요리! 왜 그걸 떠올리지 못했지?’
양식과 중식을 섞은 퓨전요리라면, 친숙하면서도 색다른 이국적인 맛을 보여줄 수 있었다.
정작 향종에게도 처음으로 요리를 대접할 때, 빠네에 가래떡을 넣었던 자신이, 이걸 눈치채지 못했다니. 아직 자신도 멀었다고 생각하는 강하였다.
“그렇다면......그거지.....! 향아! 곧바로 내가 부르는 재료들을 챙겨줘! 파렌은 팬에 기름 좀 채워주고! 그리고 매화와 혁수는 향이를, 벼루와 힐라는 파렌을, 류월과 백설은 나를 도와줘!”
“““네엡!”””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강하의 지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직원들.
“자....시작해보자고!”
황제에게 한 방 먹여줄, 요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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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황제, 킨 료우는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손깍지를 끼고는 숨을 내쉬었다.
/나오시지요./
그러고는, 분명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의 앞에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
/에에....너무 무례한 거 아니야?/
분명. 분명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파지직 하며 파란 스파크가 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청룡./
이윽고, 형체들이 모이고 모여, 푸르디 푸른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성이 나타났다.
이국적인 머리칼과 물빛 홍채가 아름답게 어울리는 여성은, 외관과는 다르게, 어마무시한 힘을 감추고 있는 용, 청룡이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은 무슨~ 아하하~/
/....실없는 소리를 하신다면, 저는 바쁘니 다음번에 부탁드리겠습니다./
킨 료우는 썰렁하기 그지없는 청룡의 농담에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청룡.
약 1년 전.
이 괴물은 아주 느닷없이, 자신을 찾아왔다.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철통같은 보안을 가볍게 무시하고, 은밀하게 자신의 방으로 숨어든 청룡이 자신을 반기고 있을 때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청룡이라 밝혔으며, 종종 놀러 오겠다는 말을 했다.
당연히 어이없는 소리를 믿어줄 만큼 킨 료우는 얼빠진 사내가 아니었다.
만일,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언제나 자신의 곁에 둔 마석을 부숴, 신호를 알려 병사들을 불러내었다.
그러자, 몇 초가 지나자, 수많은 병사가 킨 료우를 둘러싸고, 그녀에게 검을 들이밀었다.
/.......감히....인간 주제, 나에게 그깟 장난감을 겨눠?]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곳에서 두 발로 서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한순간.
정말 단 한 순간이었다.
수많은 훈련을 이겨낸 병사들이 눈을 까뒤집었다.
재능이 뛰어난 자 중, 최고들만 뽑은 도술사들이 오줌을 질질 흘리며 실신했다.
그러나, 황제 그 자신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흥, 쥐새끼만도 못한 것들이 감히......아이코~ 나도 모르게 힘을 조금 써버렸네~/
그런데, 그의 눈 앞에 있는 여성은, 실수로 저질렀다는 듯이 유쾌하게 웃을 뿐이었다.
/다...당신은 도대체....누....누구인 것인가...!/
/말 안 했나? 용, 청룡이야~ 오늘 일은 미안해~ 내가 성격이 조금 나쁘거든? 다음에 찾아올 때는, 내 속을 긁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웃던 그녀의 미소는, 너무나도 천진난만한 미소였기에,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창문으로 휙, 하고 뛰어내린 그녀를 쫓은 킨 료우가 창밖을 바라보자, 하늘에는 푸른 비늘을 두른 거대한 용이 하늘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쓰러졌던 인물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고, 킨 료우는 대충 둘러대어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그 일을 뒤로, 청룡은 가끔씩, 황제를 찾아오게 되었다.
두 번째 만남에는 극도로 긴장한 그였지만, 말 그대로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나 줄창 떠들고, 자신이 먹을 다과를 한껏 집어 먹고 가곤 했기에, 어느새 킨 료우는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위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튼, 오늘 손님이 온 모양이야?/
/.....그렇습니다만?/
/그래....왔구나? 후후......아, 참고로 독살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 아이의 요리는, 정말로 맛있거든./
/그...그걸 어찌 알고 계신 겁니.../
/그럼~ 다음에 보자~/
/까.....하아..../
이미 강하의 존재를 알고 있는 청룡의 말에, 화들짝 놀란 킨 료우가 물었으나, 그녀는 이미 사라진 이후였다.
/.......정말로 맛있다. 라./
청룡이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신경 쓰이기는 했으나, 그거 하나는 확실했다.
/정말로 기대가 되는군./
그녀의 요리가, 그 위대한 용조차 칭찬할 수준이라는 것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