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 프리즌 브레이크.
* * *
“으윽......끄으으윽....”
화련에 도착한 지 3일째.
식사 시간에는 화련의 산해진미가 산을 이루고.
침대는 푹신하고.
공기도 상쾌하고, 뒹굴뒹굴하기 최적화인 상황.
그만큼 아주 극진히 대접받는 강하.
하지만, 강하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오늘도 씻어야하나....”
그것은 바로 목욕.
목욕이란, 몸을 청결히 하고, 뽀송한 몸 상태를 만들어주는, 아주 좋은 행위였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온수를 맞으며 목욕을 할 때면, 살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만큼, 아주 좋은 행위이다.
그런데, 강하는 그것이 매우 끔찍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혼자 좀....제발....놔둬....”
바로, 목욕 한 번 할 때마다, 수많은 궁녀들이 강하를 둘러쌓아, 온몸 구석구석을 씻겨 준다는 것이다.
강하가 남자였을 때도, 상당한 거부감이 드는 일이지만, 여자의 몸인 지금 상황에서는 매우 끔찍했다.
매일매일, 여성이 된 자기 몸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여성들이 그 몸을 곳곳을 어루만진다.
팔 다리, 얼굴, 겨드랑이, 시...심지어 말로 언급하기 부끄러운 ‘그 곳’ 까지.....
그것도 하루에 4~5번!
상당히 부유한 귀족의 아가씨거나, 황녀라면 당연하지만, 강하는 그렇지 않았다.
궁녀들 또한, 다른 나라에서 온 손님인데다가, 황제 폐하가 무려 ‘직접’ 황족과 비슷할 만큼 극진한 대접을 하라고 명했다.
그런 강하를 혼자 씻기게 하다니, 자기 목이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그것이 강하가 아무리 부탁한다고 한들, 절대로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는 이유였다.
뭐, 애초에 강하가 화련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 부탁이 들리지 않았던 것 또한 이유겠지만 말이다.
“아우....지겨워....무슨 목욕을 하루에 그만큼이나 하는 거야.....손이 아직도 쭈글쭈글하네...”
강하는, 물을 머금어 쪼글쪼글해진 자기 손가락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다 좋은데....진짜 그것만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지내는 것 자체는 참 좋았다.
밥도 맛있고, 얼마든지 뒹굴거려도 그 누가 뭐라 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차리리 나갈까?”
나가서 온종일 시간을 보낸다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밖에 나가서 화련의 거리도 좀 보고, 길거리 음식도 한 번 먹어보고, 구경도 다녀보자.
“엥....하지만 귀찮은데....”
그치만, 이렇게 뒹굴거리는 것도 상당히 즐겁고, 궁궐의 주방에 들어가 그들의 요리광경도 지켜보고 하는 것도 상당히 즐거웠다.
굳이 나가야 할까.....
/강하님, 목욕 시간이십니다./
“히엑...!”
그때, 강하를 벌벌 떨게 만드는 시간이 다가온 것을 알리는 노크 소리와 화련어가 들려왔다.
중국어는 쥐뿔도 모르는 강하였지만, 매일매일 질리도록 듣는 말이었기에, 목욕을 하러 간다는 말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하진....!!!!!!”
그 소리를 들은 강하는, 금방까지 망설이던 생각 따위는 곱게 접어버리고, 통역가인 하진을 크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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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하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하진에게 부탁하여, 궁 밖으로 나온 것은 좋았다.
좋기는 한데....
“이번에 구경하실 것은, 약 200년 전, 가르친 옹 장군이 외적을 막아낼 때 사용된 철포입니다.
철포의 크기는 다양했지만 옹 장군은 이 철포를 애용했으며, 이 철포로 물리쳐낸 적군만 하여도 무려 5만의 적군이....“
“하하....그렇군요?”
자신이 생각한 것은, 이 거리의 구색에 맞는 옷을 입고,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문화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바깥에 나간다고 하자마자, 수많은 궁녀들이 달라붙어 얼굴에는 분칠에, 옷은 최고급 비단옷에, 치렁치렁한 보석과 장신구를 입혀주었다.
그리고 웬 떡대 4명이 가볍게 들고 있는 인력차에 앉아, 보고 싶은 거리는 안 보여주고 화련의 역사가 담긴 골동품들이 있는 바깥에서 뺑뺑이만 돌고 있었다.
“저...강하님?”
“아..아뇨! 흥미 있게 듣고 있어요! 계속하시죠!”
“.....이렇게까지 저희 화련에 관심을 가져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하아....미치겠네...’
지금 자신을 향해 아주 밝은 미소를 지으며 민위어를 하는 이 사람은 바센.
하진이 한의 통역사라면, 바센은 화련의 통역사였다.
자신의 이름을 바센이라고 능숙하게 민위어로 소개한 이 사람은 정말, 정말로 극한의 역사 빠돌이였다.
바깥으로 나온 지 어언 2시간째.
그의 입은 잠시도 쉴 생각 없이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골동품들을 열렬히 소개하며, 일일이 하나씩 소개하고 있었다.
처음에야 박물관에 온 것처럼 흥미 있게 듣기 시작했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지.
무슨 하나하나 사족이란 사족을 붙여 가며 이렇게까지 지루하게 설명하니, 졸음까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저...바센?”
“네, 강하님?”
“바깥의 거리도 한번 구경해보고 싶은데....괜찮을까요?”
“무슨! 안 됩니다! 강하님 같은 귀중하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천하디 천한 인간들의 눈에 띄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큰일 납니다! 황제 폐하의 명도 있으니, 참아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아 예.....예...”
혹시나 싶어, 바센에게 부탁했더니, 과도하게 호들갑을 떨면서 단호하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이대로 가다간 진짜로 해가 질 때 까지 여기만 뺑뻉이 돌고 말거야......이씨...!’
그것만큼은 싫었던 강하는, 결국. 강수를 두기로 결정했다.
“그....화련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시는 중에 죄송하지만, 그.....그게....”
“네?”
“화장실 좀.....”
“화장....아아..!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강하는 조심히 손을 들어, 용변이 급하다고 말하자, 바센은 병사 한 명을 강하에게 안내시켰다.
/여기에서 기다리겠습니다./
“..? 아 뭐...기다린다는 뜻이겠죠? 네네~”
그의 안내에 따라, 화장실로 들어서자, 역시 왕궁은 왕궁. 화장실마저 삐까번쩍했다.
“자....여기까지는 왔으니....이제 다음단계로...!”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한 강하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구체를 꺼내, 무언가를 구체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팬던트와 붓과 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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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오래 걸리나?/
강하가 변소로 들어간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
묵묵히 그 앞을 기다리던 병사는, 묘한 위화감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강하는 나올 생각이 없었다.
/실례합니다?.....강하님....?/
결국, 기다리다 못해 변소의 문을 두들겼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아예 인기척이 느껴지지않는...
/.....실례하겠습니다!/
병사는 이 위화감을 믿고, 변소의 문을 벌컥 열어, 변소 안을 살폈다.
/..........!/
그러나, 변소 안에는, 분명 있어야 할 강하가, 보이지 않았다.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돌아가기 전까지 돌아올게요.]
능숙한 화련어로 적힌 쪽지만이, 팔랑거리며 바닥에 놓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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