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 만남이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 * *
/왜 이렇게 늦으시는지야 원...../
바센은 팔짱을 낀 체, 발로 바닥을 두들기며 중얼거렸다.
이번에 한에서 온 손님인 강하.
황제 폐하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시고, 화련에 대해 아주 큰 관심(바센의 생각)이 있어 보이는 소녀였다.
그렇기에 우리 위대한 화련의 일대기를 설명하기에 오늘로는 시간이 부족한데, 변소를 갔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 참.../
그렇게 한참 구시렁거리던 바센.
/바...바센님!!!/
/...음? 무슨 일이지?/
그러던 바센에게, 한 병사가 그를 향해 후다닥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분명, 강하를 변소까지 안내한 병사였다.
/크...큰일났습니다! 가...강하님이...!/
/강하님이? 침착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
바센이 있는 곳까지 달려온 병사는, 눈은 마구 흔들리고, 숨을 불규칙적으로 쉬며, 누가 봐도 매우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후....변소에 너무 오래 계시는 것 같아, 문을 두드렸지만, 그래도 인기척이 없기에 문을 열었더니.....이런 종이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종이? 이리 줘보게!/
바센은 병사가 품에서 꺼낸 종이를 채가, 읽기 시작했다.
/잠깐....나갔다 오겠습니다....돌아가기 전 까지 돌아올게요......?!
이...이게 무슨....!/
정갈하고 깔끔한 화련어가 적힌 편지.
/나....납치다!! 강하님이 납치당했다..!!!/
화련어를 못해, 자신을 붙이고 돌아다니는 강하가, 이렇게 정갈한 화련어로 편지를 남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상황을 예상한다고 해봐도, 궁으로 몰래 침입한 괴한이, 강하 아씨를 왕족의 귀족으로 착각하여, 납치한 후, 화련어로 편지를 남긴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황제 폐하에게 알려, 강하 소녀를 찾아야만 했다.
/당장 황제 폐하에게.....알려야 한다! 어서 황제 폐하에게 가자!/
///예!!///
결단을 내린 바센은, 황제 폐하에게 달려가기 위해, 골동품이 가득 들어차 있던 공터를 박차고 달렸다.
허나.
/바...바센님! 큰일입니다! 나갈 수가 없습니다!/
/뭐...뭣? 이...이게 뭣이냐!!/
어느새, 공터를 둥글게 감싼 투명한 막이, 그들이 공터를 나올 수 없게 막아두고 있었다.
/아...안되겠는가?/
/ㅇ....예에....! 아무리 혼신을 다해 밀어봐도...! 전혀 밀리지가 않습니다...!/
/이런....!/
병사 두 명과 인력차를 들던 이들도 다 함께 투명한 막을 밀어보아도, 꿈쩍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은, 간단한 외출이었기에, 도술사들도 없어, 어떻게든 해보지도 못하는 상황.
절망에 빠진 그들의 발아래, 자그마한 구체가 검은빛을 내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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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이면....알아 챘으려나?”
강하는 문득, 궁 쪽으로 눈을 돌려 중얼거렸다.
궁을 나온 뒤로 시간이 상당히 지났으니, 아마 지금쯤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리고, 장막으로 막아뒀으니, 외부와 연결할 수단도 없을 테고.
말 그대로, 외부의 누군가가 오기 전까지 돌아가서 상황설명만 하면, 별문제 없을 것이다.
“...바센 씨한테 미안하네....”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란해 할 바센에게 미안해진 강하.
하지만, 강하가 이렇게 나오지 않았다면,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재미도 없는 역사 이야기만 주구장창 할 것이 뻔했다.
/손님? 옷은 괜찮으신가요?/
“어”/아아....네네 크기도 대충 맞고, 나쁘지 않네요./
강하는 자신이 걸친 옷을 대층 들어 보이며 대답해 주었다.
궁에서 나온 강하는 우선, 옷부터 갈아입어야 했다.
고급진 천과 화려한 지수, 그리고 온 곳에 달린 아름다운 장신구들은, 거리를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부잣집 아가씨가 몰래 도망쳐 나온 꼴이라서, 강하는 빠르게 몸을 숨기고, 옷가게를 찾아 들어왔다.
지금 그녀는, 서민들이 입을 법한 무늬 하나 없는 단색 천 옷과 비슷한 치마를 입었다.
이렇게 입으면 눈에 띄지는 않겠지.
/그리고, 부탁하신 잔돈입니다./
/아, 고마워요, 웃기게도 현금이 아예 없어서.../
옷가게의 주인에게는, 이 옷과 더불어서, 화련의 현금을 부탁했다.
거리를 돌아다니려면,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강하가 가지고 있는 돈이라고 해야, 한과 애슐란의 돈뿐.
그렇기에 옷가게의 주인에게 현금을 부탁했다.
/여기, 옷과 잔돈 값이에요, 거스름은 가져요./
/히...히익....! 하...하지만...! 이렇게까지 비싸 보이는 보석을 받기에는....!/
주인이 건넨 작은 자루에 들어있는 돈을 확인한 강하는, 손톱만 한 보석을 주인에게 던져주었다.
이 보석은 애슐란에 갔을 때, 국왕이 선물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보석 같은 경우는 어떤 나라에서든 상당히 비싼 값을 치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그마한 것들로만 여러 개 챙겨둔 강하였다.
분명 손톱만 한 보석이었지만, 주인은 그것만으로도 기겁하고 말았다.
/괜찮으니까 받아요. 그럼./
그런 주인의 말에도, 강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와....! [거스름은 가져요.]라니...! 이걸 실제로 써보는 날이 오는구나...!’
그렇게 가게를 나온 강하는, 언젠가 한 번 쯤, 해보고 싶었던 대사를 외친 것에 감격하고 있었다.
“자.....그럼 본격적으로 구경해볼까?”
그렇게, 강하의 거리 탐방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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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렇게 하면, 내가 이겼다!/
/아니....쌍삼을 쓰다니....이런 비겁한...!/
/하지만, 처음부터 쌍삼을 쓰지 말라는 말은 없지 않았냐? 억울하면 미리 말했어야지!/
/크윽....! 한 번 더! 한 번 더 해!/
골동품이 가득한 공터.
그곳에는 어디로 가지도 못하고, 공터에 갇힌 바센 일원들이 있었다.
/시끄럽다! 조용히 있지 못해!/
//죄....죄송합니다!!//
가뜩이나 심란한데, 병사라는 놈들이 바닥에 선이나 직직 그어서 오목이나 하는 꼴을 보던 바센은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이런 얼빠진 녀석들 같으니....네놈들은 강하 아가씨가 걱정되지도 않느냐? 강하 아가씨만이 아니야! 만약, 강하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우리 목 또한 무슨 일이 생기고 만단 말이다!/
/히익....!/
그렇다.
강하는 황제 폐하가 극진히 모시라고 한 손님.
그런 손님의 관리를 소홀히 해, 사라져버렸으니, 목이 잘리는 것은 물론, 삼대가 벌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어쩔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소리를 질러도, 돌을 들어 내리쳐봐도, 저 장막은 금 하나 가지 않습니다.../
/끄응..../
하지만, 병사가 웅얼거리는 듯이 말한 것도 사실.
장막을 깨기 위해 별수단이란 수단은 다 사용했지만, 장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하 아씨.....무사하셔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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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이거 얼마에요?/
/오? 맹랑한 꼬마로구나? 3동이란다./
/여기요!/
꼬치구이를 팔던 상인은, 돈을 건네받자, 곧바로 숯불에 달궈져, 뜨거운 석쇠에 꼬치를 올렸다.
이미 간을 다 해놓은 꼬치구이였기에, 타는 것에 유의하며 이리저리 돌려가며 구워주자, 고기가 익어가며 좋은 향기를 내뿜었다.
/자! 막 구운 닭꼬치다! 먹어 보렴!/
/감사합니다!/
어느새 노릇노릇 맛나게 익은 닭꼬치를 건네자, 소녀는 해맑게 웃으며 받아들었다.
/우물우물..../
/어떠니? 우리 닭꼬치는 이 거리에서도 상당히 유명하단다? 다른 가게들이 비슷하게 해보려고 했지만, 역시 우리 가게에...../
/....약해./
/....음?/
꼬치를 우물거리며 먹는 소녀의 앞에서, 자신의 꼬치에 대해 무언가 설파하던 주인은, 중얼거리는 소녀의 말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맛이 너무 약해....정말로 소금간만 한 꼬치야....신선한 고기와 숯불의 향으로 감춰놨지만, 여전히 약해.....차리리 청주로 밑간하고 노추*(노추: 중국의 묵은 간장, 한국의 간장보다 짠맛은 덜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를 발라 구웠으면 훨씬 나았을 텐데.../
/......응?/
그러자, 자신은 상상하지도 못한 꼬치의 문제점을 하나씩 읊어주는 소녀의 말에, 꼬치구이 주인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래도 불 조절이랑 신선한 고기는 마음에 들었어 아저씨, 그럼 안녕~/
/.....그래, 안....녕.../
어느새 깔끔하게 꼬치를 먹어 치운 소녀는, 손을 흔들어주더니, 어느새 상인의 눈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자....이젠 어딜 가볼까?”
강하는 손에 묻은 기름을 핥아내며 중얼거렸다.
화련의 거리는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넘쳤다.
상당히 색다른 먹을거리도 많았고, 처음 보는 옷들과 장신구들이 곳곳에 널려있었다.
“아직 시간도 조금 남았고.....아까 전에 얼핏 봤던 곳으로 가볼까...?”
그렇게 결정한 강하가 몸을 틀어, 아까 봤었던 가게로 가려던 찰나.
덥석.
“뭐...뭐야?”
무언가가, 강하의 팔목을 움켜쥐자, 강하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안녕?”
“.........당신이 어떻게....?”
“오랜만이다, 그치?”
푸른 머리칼을 휘날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청룡이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