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4화 〉 내가, 너를, 이곳에. (174/289)

〈 174화 〉 내가, 너를, 이곳에.

* * *

“하앗!!!”

{키에엑!!!}

오러를 강하게 두른 드라고노바의 검날이, 오크의 상반신을 잘라내 버렸다.

두꺼운 가죽도, 단단한 근육도, 전부 그저 종이 쪼가리인 것처럼, 너무나도 쉽게 잘려져 나갔다.

[주인! 뒤에!]

진혁은 잠시 숨을 고르려다, 드라의 외침에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높게 뛰어, 그대로 적을 향해 크게 내리그었다.

{크...하....}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좌우가 나뉘어 쓰러진 오크는,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잘했다! 주인!]

“후....이걸로 대강 정리는 된 건가?”

이번에야말로 숨을 고른 진혁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한 군데 성한 곳 없는 오크들의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 시체들 중 대부분이 진혁의 작품이었다.

­소드마스터 진혁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던 중, 병사 한 명이 진혁에게 다가왔다.

­.....우리 인력의 손실은?­

­예! 진혁님의 압도적인 실력 덕분에, 사상자는 0! 부상자는 한 자릿수입니다!­

­....다행이네, 나는 괜찮으니까, 주변 정리를 부탁드릴게요.­

­넵!­

이번 전투는, 갑작스럽게 애슐란 영토로 침입해온 오크의 토벌이었다.

상당히 많은 수의 오크들이 영토를 침범했지만, 진혁에게는 상당히 상대하기 쉬운 존재들이었다.

‘류월님이랑 구른 걸 생각하면, 이건 별것도 아니군.’

본디, 소드마스터의 지위까지 올라온 진혁이었지만, 심심하다며 특훈을 시켜준 류월 덕분에, 그는 한 단계 더 높은 경지까지 다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왜 오크들이 침범해 온 거지?”

오크.

고블린의 진화종으로, 지능은 낮고, 전투에 호전적이지만, 애슐란의 영토에 무단으로 침범해 올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들에게는 그들의 영토가 있을 테고, 식량이 모자란 이유라고는, 그들의 지방은 번들번들하게 기름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주인!]

“음? 무슨 일이야?”

그렇게 잠시 고민에 빠진 진혁에게 말을 건 드라고노바가, 검의 형태에서 인간형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드라고노바의 변신 능력은, 이미 왕궁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그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드라는 이젠 인간형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전투 중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이번에 습격해 온 오크들....무언가....공포에 빠진 모습이었어...]

[...공포?]

진혁은 드라의 말에, 금방까지 있었던 전투를 다시금 떠올렸다.

수많은 오크가 무기를 들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무언가....이상한 위화감이....

마치, 진혁을 쓰러뜨린다기 보단, 방해가 되니 비키라는 듯의 공격.

혼란스러워 보였던 그들의 눈동자.

“하지만, 도망을 친다니? 오크들의 무리라면, 토벌등급 B+나 되는 상당한 위험인데?”

그렇다.

오크 한 마리라면, 평균적으로 C, 잘 쳐줘 봐야 C+정도의 토벌등급.

초보 모험가 6명이 합을 잘 맞춘다면,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마물이다.

그런 오크들이 무리를 짓는다면, 그 난이도는 수직으로 상승해, B+, A까지 올라가는 일도 있다.

그렇기에 소드마스터인 진혁이 급하게 달려온 것이고.

그만큼 상당히 강적인 오크들이, 누가 무서워서 도망을 친단 말인가.

“....요즘 이상하긴 해, 최근 들어서 마물들의 수가 급증하기는 했지.”

그레이트 엔트, 혼 불릿, 그리핀 같은 굵직굵직한 마물들이 요즘 따라 자주 출몰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존재들이 도망을 칠 정도라면.....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이상해.

진혁은 옷에 묻은 흙먼지를 탈탈 털어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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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

류월과 백설과 마찬가지로, 먹이사슬의 정점인 용.

푸른빛의 비늘과 날카로운 뿔을 달고, 하늘을 헤엄치던 그 광경을, 강하는 기억하고 있다.

“...청룡....”

“그래, 나 청룡이야. 반가워?”

“......어째서 나를....?”

강하는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연신 닦아내며, 그렇게 물었다.

공포.

강하는 솔직히, 자신이 있었다.

반룡인이 된 자신은, 상당히 강했기에, 뭘 해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심지어 세계관 최강자 급의 용이 두 마리나 자신의 곁에 있는데, 자신이 위험해질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다.

허나, 기억한다.

처음으로 청룡을 보았을 때 느낀 감각.

청룡은 진심으로, 나를 죽일 수 있다.

그것도 압도적인 힘으로.

그것이 용.

그것이 먹이사슬의 정점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한복판이지만, 강하는 여차하면 청룡의 손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음, 일단 자리를 옮길까?”

“하? 아....뭐....네...그러죠...”

청룡이 어떤 태도를 보일까 싶어 잔뜩이나 긴장했던 강하는, 청룡의 말에 당황했으나, 일단 아직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잘 아는 가게가 있거든~”

“네...”

그렇게 강하의 살벌하고 살 떨리는 청룡과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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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녹차 두 잔과 월병 줘!/

/예입!/

상당히 조용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찻집의 주인은, 손을 들어 주문하는 청룡의 주문에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여기라면,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

“뭐....네...”

“....긴장 풀어~ 내가 널 죽이기라도 해?”

“......하하.”

거의 반강제로 끌려 나온 강하는, 청룡 딴에는 재치 있는 농담을 던진 것이겠지만, 강하에게는 그냥 살 떨리는 장난일 뿐이었다.

“흑룡...아니 류월과 그 아줌마가 있을 때는, 자꾸 말도 못 하고 날 죽이려고 드니까, 너라면 대충 대화가 통할 것 같거든.”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그때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잘 몰랐지만, 청룡은 류월의 공격과 백설의 방해에도, 전혀 반격하지 않고, 그저 도망만 치기 바빴다.

2대1이라고는 해도, 반격 정도는 할 법했지만, 그녀는 전혀 공격하지 않았다.

정말로, 단순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 찾아온 거였을지도 몰랐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아, 나왔네?”

그렇게 강하가 점차 청룡에 대한 위기감이 조금씩 사그라질 때쯤, 따뜻한 녹차와 월병이 각자의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일단 먹어봐, 여긴 그럭저럭, 괜찮으니까.”

“네에....그럼...”

청룡도 그렇게 말하니까, 괜찮겠지.

강하는 우선, 녹차가 담긴 잔을 들어,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녹차 특유의 향과, 씁쓸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을 통해 온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감각은, 상당히 나쁘지 않았다.

“맛있다....”

중국의 다도 문화가 상당히 발전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맛있었다.

티백으로 타서 마시는 녹차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 이 잔 안에 들어있었다.

다음으로는 월병.

동그란 월병에는 이리저리 신기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 바스락거려..!’

살짝, 월병을 쥐어 들자, 바스락거리면서도 묵직하게 들리는 무게감.

“하암.......으음...!”

그대로 한 입 베어 물자, 바삭하고 쫀득한 반죽의 고소한 맛과, 달콤한 맛이...

“팥 앙금이네? 달콤한 게 맛있다....!”

설탕에 조려, 부드럽게 갈아낸 팥 앙금이 숨어있다가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기 시작했다.

달콤한 월병 한 입, 그러다가 녹차 한 모금.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이었다.

“후아~ 맛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잔이든 접시는 깔끔하게 비워버린 강하.

“후훗, 내 앞에서 이렇게까지 늘어지는 인간도, 처음인걸?”

“...!”

그러자, 조용히 들려오는 청룡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강하는 손등으로 입가를 쓱쓱 닦아내었다.

청룡은 강하가 맛있게 음식을 먹는 것을 지금까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요리를 상당히 좋아하나 봐?”

“....뭐...그렇죠?”

“그나저나 네 요리는 꽤 먹을 만했어, 오랜만에 혀가 반응하더라고.”

“...과찬입니다.”

그렇게나 무섭던 청룡이, 자신의 음식을 칭찬하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강하였다.

“역시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

“그런 그렇긴 하....네?!....아아...네...”

그리고, 이어지는 청룡의 발언에 강하는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진정을 찾았다.

용들은 하나같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지 않던가.

류월도, 백설도 첫눈에 자신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청룡이라고, 다를 것이 없지.

“참 놀라워, 분명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인데, 어느새 두 나라, 아니, 이젠 세 나라의 주인에게 신임받고 있다니 말이야.

심지어 반은 인간, 반은 용? 이거 참....정말로 흥미가 깊어....”

“하...하하....”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청룡의 얼굴이, 점차 강하에게 다가오자, 강하는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심심 삼아 소환했던 인간이, 이렇게나 이야기를 틀어놓다니....참으로 흥미로워.”

“그렇군요, 심심 삼아 소환했던.....네?”

이번에는.

이번에는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넘어갈 수 없는 말이, 금방 들려왔다.

“어머나~ 말 안 했나? 맞아, 내가, 너를, 이곳에 소환했어.”

청룡은 손가락을 들어, 강하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켰다.

“집에 돌아가고 싶어?”

“.......”

강하의 폐를 난도질하는 것만 같은 청룡의 질문에, 강하는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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