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5화 〉 한 방, 먹이고 만다. (175/289)

〈 175화 〉 한 방, 먹이고 만다.

* * *

“.....어째서...”

“응?”

“어째서....저..아니 우리를....소환하신 건가요?”

한참이나 이어지던 침묵을 깬 것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강하의 말이었다.

어째서인가.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정말 간단히 추려보면 70억 분의 1.

수많은 사람 중, 하필 왜 우리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소환되었던 곳이 한이었던 것도.

전부 그녀가 우리를 이 세계에 초대하기 위해?

무엇을 위해서?

나에게 무엇을 바래서 소한을 한 거지?

과연, 청룡은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소환을 한 것인가.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청룡의 대답은....

“음? 아까 말했잖아, 심심삼아서, 라고.”

“....예?”

너무나도 맥없이 대답한 그녀의 말에, 강하는 순간적으로 앞으로 엎어질 뻔했다.

“예전에...아니다, 한 3년 전? 어떤 인간 마법사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다른 세계의 인간을 소환하는 술식을 짜다가, 마력 고갈로 죽었거든? 그걸 우연히 발견했는데, 상당히 흥미롭더라고.”

“예에...”

“인간이라는 하찮은 놈이 짠 술식이잖아? 당연히 좌표도 엉망진창에다가 대상도 완전 어거지, 그렇기에 내가 좀 더 완벽한 술식을 짜냈지!”

“그래서 약 1년 전에, 내가 직접 개량한 술식을 발동시켰어, 그런데....원래라면 내 앞에 나타나야 했을 네가, 이상한 좌표로 떨어지게 된 거야. 까암빡 하고 인간의 마력과 용의 마력은 성분 자체가 다르다는 걸 잊었지 뭐야? 아하하하!!”

“....그러니까....정리하면..? 그쪽....청룡님은, 우연히 다른 세계의 인간을 소환하는 마법을 발견했고, 심심하기도 해서, 그걸 직접 개량해서 소환했더니, 제가 나왔다. 이건가요?”

청룡의 말을 듣던 강하는, 착잡한 마음에 다시금 그녀가 말한 내용을 정리해서 물어보았다.

“그렇지~”

‘이런 씨발!’

“이런 씨발!”

그리고, 단 한 번의 거짓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해맑은 미소에 자기 자신도 모르게 거친 욕설이 입 밖에서 튀어나왔다.

‘진짜...진짜로 그냥 ‘우연히’ 이쪽으로 소환된거라니....! 어이가 없어서...‘

내가 이렇게 개고생을 하고, 이렇게 맘고생 한 이유가 그냥....우연히?

당장이라도 저 앞에서 가증스럽게 미소 짓고있는 썅ㄴ...의 볼그스름한 뺨다구를 한 대 후려치고 싶었던 강하였지만, 가까스로 침착을 유지했다.

“그....그보다도....딱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뭔데?”

“왜 저는 여자입니까?”

그래.

그게 가장 중요했다.

혁수나 진혁은 본모습 그대로 소환됐는데, 어째서 나만 여자가 되었는가.

그렇게 치마를 입고, 거지 같은 생리도 겪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강하는 너무나도 궁금했다.

“음....글세?”

“예?”

이젠 몇 번째일지도 모를 만큼의 어이없는 마음과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황당한 마음이 얽히고, 얽히고설킨 탄성이 강하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소환 마법 같은 건 처음이었는걸...? 이 위대한 나조차도 전부 알지 못하는 마법이야. 이 세계로 오게 되면서 뭐....부작용이라도 있었나 봐?”

‘그럼 하지를 말던가!’

이어지는 청룡의 무책임한 대답에, 강하는 이번에도 마음속으로 참을 인 자를 새기며 얼굴을 굳혔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자, 너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당연히!.....그러니까....! 에...! 뭐....!”

그리고, 청룡의 입에서 강하가 그토록 바라던 질문이 들려왔지만, 이상하게도 강하는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원래의 세계.

미슐랭 레스토랑의 셰프.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세계 여행도 다니고, 새로운 요리탐구도 하고, 조금 지치기는 하지만, 즐거운 인생.

막 이 세계로 떨어졌을 때는, 반드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씩 확고하던 그때의 그 마음이, 옅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향이, 류월, 벼루, 힐라, 파렌, 백설, 매화.

약 1년 동안 직원이자 가족처럼 지낸 그들을 버리고, 나는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그것뿐만이 아니다.

한에서의 생활도 즐겁고, 아직 이 세계는 미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나는 다시 돌아간다고 대답하기에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결정을 내리기 버거웠다.

“........그래, 아직 결정은 하지 못했다 이거지?”

“되돌아갈 수는 있는 겁니까?”

“그럼~너를 소환했던 마법식은 이미 내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어, 지금 당장이라도, 보낼 수 있는걸?”

“......그런데, 지금 와서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죠?”

“글쎄에....?”

“....저한테 바라는 것이 있는 거군요?”

“.......난 눈치가 빠른 인간이 좋더라~”

그렇다.

아무리 봐도 성격이 뒤틀려 보이는 청룡이, 그냥 공짜로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이렇게 나를 따로 불러서 이야기할 정도라면, 분명 무언가 꿍꿍이가 있었다.

“아아아아주 간단해, 일단, 이것부터 받아.”

“이...이건?”

강하의 질문에 씨익, 소름 돋는 미소를 지은 청룡은 그녀에게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그것의 정체는 바로, 자그마한 유리병이었다.

“이걸 들고 가서, 류월과 그 아줌마 근처로 가서, 유리병의 입구 쪽으로 갖다 대고, 흡수된 힘을 나에게 가져오면 되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이지.”

“....어째서 그런 짓을?”

류월과 백설의 힘? 그걸 왜 바라는 거지?

“......굳이 질문을 할 이유가 있나? 어쨌든, 나는 그게 필요하고, 너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고, 서로 좋잖아? 안 그래?”

“..........”

“들킬 염려는 안 해도 좋아, 내가 고심하면서 특별하게 만든 거라서, 눈치조차 채지 못할 거야.”

확실히, 그 일을 끝내고 나면, 나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준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솔깃했다.

그런데, 솔직히 불안하단 말이지...

“아무튼 이야기는 끝이야. 삼일 뒤,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만나자~ 그럼.”

“앗! 잠시!...만....”

그렇게 청룡은 강하에게 작은 유리병을 남기고, 훌쩍 사라져버렸다.

“.......하....”

강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급작스럽게 너무나도 많은 일이 후다닥 지나가 버렸다.

“......일단, 돌아가자.”

아직도 머리가 복잡하지만, 여기 있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강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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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 내가 이겼다!!/

/이런...../

/이것들아! 어! 내가 오목을 얼마나 잘하는데!/

공터에 갇힌 지 얼마나 되었을까.

바센은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그린 동그라미로 승부를 내며, 호탕하게 웃음을 지었다.

결국,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자꾸만 병사들이 오목을 하는 것을 힐끔힐끔 바라보더니, 어느새 같이 끼어서 환호를 내지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 오목 잘하시네요?”

“아 그럼요! 제 실력으로는 그 누구도 쉽게 이기지 못할.....아가씨?”

그리고,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거리던 바센은 이내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좀 늦었죠?”

그곳에는, 마치 잠시 마실 다녀온 것처럼 헤실헤실 웃고 있는 강하가 뻔뻔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나타났다.

“아가씨...!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아니 그게....솔직히 너무 갑갑해서....”

“그게 아니죠! 저희가 얼마나 걱정을 하신 지 아십니까?”

“그러니까...진정 좀 하시고....”

“강하 아가씨가 납치를 당하신 줄 알고, 심지어 공터는 이상한 장막으로 감싸졌고, 이번 일은 따끔하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한 현자가 이렇게 말하기를....”

‘하....그러니까 이게 싫었다고...’

그렇게, 강하의 일탈은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만 같은 바센의 잔소리로 끝이 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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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아직도 귀가 멍멍한 것 같아...”

강하는 자기 귀를 손가락으로 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심지어, 평소보다도 훨씬 힘들었어....”

그렇게 몰래 외출하고 난 뒤, 바센의 명으로 궁녀들이 평소보다도 훨씬 이곳저곳을 만져대며 빡빡 씻어대는 통에, 강하는 진이 다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정신 차려야 했다.

앞으로 할 일이 아직 많았다.

“그렇게 힘들어?”

“야, 너 같으면 니가 이 몸이 돼서, 수많은 여자들이 네 몸을 더듬거린다고 생각해 봐, 안 힘드냐...?”

“.......좋은데?”

“이잇...! 혁수 씨? 아리따운 매화가 있는데, 한눈팔면 써요?”

“앗....미안....”

“흥....”

“되었다. 이제 다 모인 것 같으니, 어서 할 이야기나 하거라.”

어느새 시끌벅적한 강하의 방에는, 강하가 미리 불러온 스타 주막의 직원들이 전원 모여있었다.

‘청룡, 이건 몰랐을 거다.’

“이건 아까 외출했을 때 생긴 일인데....”

강하는 자신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을 청룡을 내심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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