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 숨겨둔 계획.
* * *
이틀 후.
강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시켜놓은 녹차를 홀짝거렸다.
맛있네.
저번에는 청룡이 눈앞에 있어서, 편히 즐기지는 못했지만, 역시 제대로 끓인 녹차는, 티백과 비교가 되질 않았다.
분명 향이도 차를 잘 타지만, 재료의 차이라고 할까, 향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역시 다도가 발전한 화련의 차가 훨 맛있었다.
월병도 하나 주문할까 싶었던 강하는, 이곳에 차나 마시러 온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자각하며, 다시금 차를 홀짝거렸다.
“왔어?”
“큽...!....콜록 콜록....!”
그 순간, 어느새 바로 자신의 정면으로 순식간에 나타난 청룡을 보고 깜짝 놀란 강하는 마시던 녹차를 뿜으며 강하게 기침했다.
그냥 평범하게 오면 될 것을, 이 용은 어느새 싶으면 바로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지금 보니, 그냥 깜짝 놀라는 내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괜찮아?”
“네..크흡....괜찮...습니다.”
청룡은 계속해서 잔기침을 내뱉는 강하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는 척 하기는....’
그리고 물론, 청룡의 태도가 전부 거짓부렁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는 강하였다.
“그래서....들고 왔어?”
헤실헤실 웃으면서 물어보는 청룡이지만, 그 기백은 강하를 찍어 누르는 것처럼 강하게 느껴졌다.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강하는, 품속에 숨겨둔 유리병을 꺼내, 청룡에게 보였다.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칠흑의 검은 마력과 티 없이 깨끗한 순백의 마력.
청룡이 시킨 대로, 그 마력은 분명 류월과 백설의 마력이 확실해 보였다.
“좋아, 어서 줄래?”
그 마력이 담긴 유리병을 바라보던 청룡은, 방긋 웃으며, 강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잠시만요.”
“.....응?”
그런 청룡의 손짓에, 강하는 자신이 들고 있던 유리병을 뒤로 당겼다.
“뭐 하는....걸까?”
강하의 행동에, 청룡은 싱긋 웃으면서 물었지만, 눈은 조금씩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거슬리는데...그냥 죽여버려?’
어차피 저 유리병만 받아내면, 이젠 필요도 없는 인간 따위가,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았던 청룡의 마음이 꿈틀거렸다.
‘아니야,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하지만, 섣불리 힘을 사용했다가는, 이 인간을 아끼는 두 용이 자신을 죽어라 쫓아올지도 몰랐다.
아직 대처가 안 된 시점에서 두 용을 상대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청룡님은, 이 유리병에 담긴 것으로 무엇을 하려는 건가요?”
“...그건 왜 물어봐?”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힘을 류월과 화해하는데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떠보기.
강하는 최대한 여유로운 표정으로, 탁자에 올려둔 유리병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청룡에게 물었다.
‘.......이 원숭이 새끼가...!’
그러자, 연기로 가려둔 청룡의 눈웃음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청룡의 위압감이 조금씩, 새어 나오며, 강한 압박감을 주었다.
하지만, 강하는 눈 깜짝하지 않았다.
‘어우씨....쫄려라...’
적어도, 겉모습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뭐지? 어째서 아직까지 당당한 행세야?’
그러자 청룡은 내심 당황했다.
하찮은 잡종 따윈, 이렇게 조금의 힘을 보여주기만 해도, 덜덜 떨면서 오줌을 지릴 텐데.
‘......숨겨둔 무언가가 있군.’
그렇다.
청룡은 강하가 자신 몰래, 무언가를 숨긴 상태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저 빌어먹을 년이 감히....!]
[지금은, 가만히 있으렴.]
강하와 청룡이 앉아있는 탁자가 보이는 곳에서, 류월과 백설이 기척을 죽이고 숨어있었다.
류월은 당장이라도 건방지게 강하의 앞에서 이빨을 드러내는 청룡을 잡아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강하가 한 말을 다시금 기억해냈다.
‘잘 들어, 아무리 화가 나도, 청룡이 무언가를 해도, 나한테 직접적인 위협이 올 때까지는, 그냥 기다려.’
당장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지 않을 때까지는, 잠자코 지켜보라는 강하의 말에, 류월은 침음을 삼키며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하는 믿었다.
저 뒤에 숨어있는 두 용은, 반드시 자신을 구할 것이라고.
그렇기에 소름이 돋고, 당장이라도 후들거릴 것만 같은 다리를 숨긴 체, 이렇게 당당하게 그녀의 앞에서 너스레를 떨 수 있었다.
“.....별 건 아냐, 그냥, 이 둘의 힘에 적응을 해 놔야, 다음번에 만날 때, 잠시 대화라도 할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그런 강하의 태도에, 청룡은 짓누르던 기압을 빼고, 다시금 명랑한 미소로 돌아왔다.
강하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한, 섣부른 행동은 금물이었다.
“그리고, 너도 원래 세계로 돌아갈 필요가 있잖아?”
“.......”
“그걸 넘겨, 그러면 조만간,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언제나 판을 이끌어가는 것은 청룡이었다.
저 하찮은 인간은, 원래 세계의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아무리 강한 척 해봐야, 결국 자신의 발아래에서 구르게 될 팔자.
성급하게 굴지 말자.
그래야, 저 기고만장한 얼굴이 구겨지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여기요.”
“고마워~”
한참 팔짱을 낀 강하는, 손을 내밀어 두 마력이 담긴 유리병을 청룡에게 내밀었다.
“그럼 약속대로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해줄게, 하지만 지금은 힘들어, 곧, 다시 만나자고?”
“읏!”
유리병을 건네받은 청룡은 활짝 웃더니, 이내 나타날 때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가져갔다.”
저 청룡이, 유리병에 담긴 것이 뭔지도 모르고, 들고 갔다.
걸리지 말아야 할 텐데.
강하는 기묘한 미소를 삐뚜름하게 지으며, 그렇게 속으로 되내었다.
“돌아가자!”
한층 후련해진 기분으로, 강하는 숨어있는 두 용이 들을 수 있도록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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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강하는 긴장되는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키기 위해, 담뱃대에 불을 올렸다.
그 뒤로 청룡이 나타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살짝 마음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강하는 앞으로의 일에 집중하려고 마음먹었다.
가령제.
그 날이 다가왔다.
거리의 사람들은 왁자지껄하고, 요리 대회장이 열리는 궁은 이미 수많은 폭죽이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자신의 요리 실력을 뽐내기 위해, 드넓은 화련의 땅 곳곳에 있던 요리사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그리고, 강하는 그 요리들을 평가해야 했다.
“저...강하님, 정말로 괜찮으십니까?”
여유로히 담배를 빼물은 강하를 바라보던 하진은 염려하는 표정으로 강하에게 물었다.
가령제는 상당히 거대한 축제로써, 수많은 인물들이 참여한다.
그런 축제의 중심인 요리대회에 보이는 인물들은, 자신의 외견에도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기에 아침 댓바람부터 온갖 궁녀들이 수많은 비녀와 고급스러운 비단으로 만든 옷들, 아름다운 보석들과 화장품을 챙겨 들어, 강하에게 달려오는 것 또한 당연지사.
하지만 강하는, 이번만큼은 아주 단호하게 그 모든 것들을 거절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그녀가 한에 있을 때부터 편하게 입고 있는 빨간 치마의 한복.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렇기에 하진은, 혹여 강하의 겉모습만을 보고 다른 인물들이 그녀를 흠잡고, 깎아 내리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강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깎아 내리라면 깎아 내리라지.
자신은 요리인이고, 곧 수많은 요리인들의 음식을 맛보고, 검토해야 했다.
그런데 그런 화려한 옷들이나 치장품들을 입고 볼 수는 없는 법.
그렇기에 강하는 언제나 자신이 일터에서 입는 옷을 빼 들었다.
/곧, 시간입니다./
“강하님, 이제 슬슬 가실 시간입니다.”
“알았어.”
그리고 문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번역해준 하진의 말에, 강하는 벌떡 일어났다.
드디어, 가령제 요리대회의 막이 올라가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