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9화 〉 너, 탈락. (179/289)

〈 179화 〉 너, 탈락.

* * *

‘넓어...!’

그것이 강하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마치 거대한 축구장과도 같은 넓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가득 들어차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앞에서 일렁거리는 사람들의 파도가 자꾸만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자, 이쪽으로./

“어! ㄴ...넵!”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강하의 앞을 스쳐 지나가며 리 차오가 그녀를 부르자, 강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리 차오를 따라, 대회장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자, 수많은 시선들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지?/

/저 여자애는 누구야?/

/이번 대회의 심사위원을 돕는 궁녀겠지 뭐./

‘휴....살겠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이내 그녀의 옆에서 걸어가는 리 차오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탁자와 각종 조리기구가 늘어진 조리대를 지나쳐, 뚜벅뚜벅 걸어가던 리 차오는, 그들의 중심에 있는 단상 위로 올라가, 비치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자네도 앉지./

“아...예에...”

그런 그를 잠시 멀뚱멀뚱 바라보던 강하에게 리 차오가 손짓하자, 강하는 살짝 움츠러들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어? 저 여자애는 궁녀가 아니야?/

/어째서 저곳에 앉은 거지? 저곳은 분명, 심사위원들이 앉는 곳일 텐데.../

/저리 어린 소녀가 심사위원이란 소린가?/

/에이 설마~/

금방까지만 해도, 강하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관중들은, 강하가 심사위원들이 앉는 자리에 앉아있자, 순식간에 시선이 쏠리게 되었다.

/오! 오셨군요! 리 차오 대사관 님./

/잘 지냈나? 리진./

총 세 자리가 있던 심사위원석에 먼저 앉아있던 상당히 통통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 옆에 앉은 리 차오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호오....당신이 그 아가씨군요? 반갑습니다, 이 궁궐의 숙수를 맡은 리진 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강하 라고 합니다.”

/황제 폐하를 감복 시킨 요리를 만드셨다니....정말이지 기대가 되는 아가씨군요? 한에서 상당히 유명한 주막을 하고 계신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부디, 기회가 된다면 한 수 배우고 싶군요./

“저야 불러주신다면 영광이죠!”

간단하게 리 차오에게 인사를 건네던 리진이 그 옆에 앉은 강하를 발견하자, 눈을 반짝이며 강하에게 악수를 건네었다.

그의 손은, 상당히 거칠고 딱딱한, 그야말로 요리사의 손이었다.

이 궁궐의 숙수를 맡을 정도라면, 상당한 경험이 있는 요리사일 테고, 잠시 인사 정도 건넨 사이지만, 강하는 그가 얼마나 요리에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반갑습니다. 여러분!!!/

“윽...!”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강하는 무심코 귀를 틀어막았다.

강하가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보다 조금 떨어진 앞에서, 어떤 사내가 있었다.

그는 한껏 반짝거리는 옷과 선명한 목소리를 크게 외치고 있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오늘 요리 대회를 조금 더 매끄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진행을 맡은, 류한 이라 합니다!/

그가 손에 들린 막대기에 무어라 말하자, 한층 크게 증폭되어 엄청나게 넓은 대회장임에도 그의 목소리가 가득 차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도술을 사용한 현대의 마이크 비슷한 것 같았다.

그는 이 대회의 사회를 맡는 사람이었다.

/오늘 대회에 참가하게 된 요리사들은, 전국 곳곳에서 이 요리만을 기다리며 실력을 길러온, 그야말로 화련의 요리사들 중, 최고의 요리사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열기에 감격하신 황제 폐하께서, 이번 대회를 직접! 보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던 류한이 대회장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를 향해 손을 뻗자,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는 거대한 좌석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황제가 모습을 비추었다.

/그럼, 황제 폐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황제는 류한이 가진 마이크 비슷한 물체를 건네받았다.

/흠...흠....이번 대회에 모여 준 요리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요리대회의 개막을 선포한다!/

///와아!!!!!!!!///

황제가 대회의 개막을 알리자, 수많은 백성들의 환호성이 가득 울려 퍼졌다.

/우선! 대회를 시작하기 앞서, 이번 대회의 심사를 맡으신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황제 폐하의 식사를 책임지는 궁궐의 대령숙수, 리진 님 이십니다!/

/아, 반갑습니다. 리진 이라 합니다. 이번 대회에 두각을 드러내는 요리사는, 적극적으로 궁궐 주방으로 채용할 것을 말씀드립니다!/

‘뭐...뭐야...? 이거, 자기소개도 해야 해...?’

황제의 말이 끝나자, 어느새 강하가 있는 단상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류진이 리진에게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다음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미식을 맛보시는 리 차오 대사관님 이십니다!/

/반갑소. 리 차오라고 하오. 이번 요리대회에 훌륭한 요리사들이 어떤 요리를 선보여줄지, 기대가 가득하오!/

‘으아....어느새 먼저 내 차례잖아...?’

리 차오의 간단 소개마저 끝나자, 강하는 연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계속 닦아 내었다.

대충 둘러만 봐도 수백, 수천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시선이 집중된다는 것은 상당히 긴장이 안 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다음은.....이야...이 분은 상당히 소개가 약간 길어질 듯합니다.

우리 화련의 동생인 한! 그 나라에서 유명한 주막인, 스타 주막을 운영하는, 강하 아가씨 입니다!/

/한? 한에서 온 거야?/

/저런 쪼끄만 꼬맹이가 주막을?/

/그뿐만이 아닙니다! 무려, 황제 폐하가 직접! 초대하신, 귀한 분이시죠! 강하 아가씨의 요리를 맛본 황제 폐하께서도, 매우 흡족해 하실 만큼, 엄청난 실력을 갖춘 분이십니다!/

/화...황제폐하가?/

/에이...설마.../

/하지만....황제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엄청난 여자애구먼!/

‘아니....! 그냥 대충 소개하라고...!’

앞서 소개한 리진과 리 차오와는 다르게, 자꾸만 사족을 붙여 가며 강하를 설명하는 류진 덕분에, 관객석에 있던 사람들이 점차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더욱 쏠리는 사람들의 기대가 가득 찬 시선이 부담스러운 강하였다.

/자, 받으시죠./

“예...예에...”

그런 강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류진은 그저 빙긋 웃으며, 강하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강하는 매우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받아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후딱 끝내자.’

“아...안녕하십니까? 한에서 스타 주막 이라는 주막을 운영하는 강하. 라고 합니다.....최...최선을 다해 아주 공평하게 심사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어휴......혀를 안 씹은 게 용하네...’

목소리를 상당히 떨면서 이야기하긴 했지만, 번역을 맡은 하진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통역을 해주어 다행이었다.

/자! 모든 심사위원의 소개도 끝이 났으니, 이제 대회의 구성을 설명하겠습니다!/

다시금 마이크를 강하에게 가져온 류진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누르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분명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무언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시면, 오늘 대회에 참가하신 요리사들은 전부 456명! 아주 많은 요리사분이 모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약 3일 동안 진행되는 대회라곤 해도, 이 모든 분의 요리를 하나하나 심사하는 것은 시간상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처음 예선을 돌파하셔야만 합니다./

/예선은 우선, 456명을 네 구역으로 나누어, 한 차례 한 차례 진행됩니다. 요리사분들은 대회에 참가하실 때, 자신의 가슴팍에 숫자를 받아, 一, 二, 三, 四로 나누어집니다!

자! 우선 첫 번째 조부터 대회장에 입장해 주시길!/

류진이 첫 번째 조의 입장을 외치자, 저 멀리서 수많은 인파들이 점차 대회장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팍에 一이라는 숫자를 달고, 지정된 자리에 한 명씩 서기 시작했다.

/예선의 시험은 간단합니다! 저희 측에서 만들라 하는 요리를 만드시고, 일정 이상의 실력을 선보이신 분들은 다음 예선으로 참가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만드실 요리는 바로.....새우 달걀 국 입니다!/

짜잔. 하고 홀로그램 화면에 떠오르는 것은, 마치 실사처럼 갓 만든 것처럼 보이는 따끈따끈한 달걀 국이었다.

‘그나저나...퀄리티 너무 높은 거 아니냐...?’

아무리 대회라고 해도, 현대가 아닌 이 세계의 대회라고 해봤자,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마치 현대에서 티비에 방영해도 될 정도의 간결하고 화려한 이번 대회에 강하는 자꾸만 마음이 졸여졌다.

역시 대국, 거대한 자본과 기술이 있으니 이 정도 퀄리티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자! 주어진 시간 동안, 대중적인 새우 달걀 국을 만들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럼....시작합니다!/

///우와아아아아!!!!///

그렇게 류진의 외침에 관중석에서는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수많은 요리사들이 신속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이제 저희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강하는 몸을 안절부절못한 체로, 눈을 반짝거리며 대회장을 바라보는 리 차오에게 물었다.

/음...여기서 요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도 되고, 직접 내려가서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 봐도 괜찮아, 아, 심사위원은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대회에 참가한 인원을 즉시 탈락 시킬 수 있는 권한도 있으니, 잘 알아두도록./

“흐음....그렇군요.....”

드르륵.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강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뭘 하려는 거지?/

/자리에서 일어났네?/

또다시 갑작스러운 강하의 행동에,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과 한창 밑 준비를 시작하는 대회 참가인원들도 강하를 흘깃 살펴보았다.

하지만 강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가, 한 요리사의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신지...?/

한창 도마에서 채소를 손질하던 그의 가슴팍에 적힌 번호는 이십 구 번.(二?九)

그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강하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너, 탈락.”

/탈.../“예? 강하님?”

“그대로 전해줘, 탈락이라고.”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는 더욱 갑작스러운 말이 나왔다.

언제나 그녀의 말을 동시적으로 번역하는 하진 조차, 깜짝 놀라며 다시금 물었지만, 강하의 말은 바뀌지 않았다.

그곳에는 수많은 시선에 긴장감을 느끼는 한 아가씨는 이제 없었다.

이젠, 냉철한 눈으로 요리사들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만이 있을 뿐.

대회가 시작된 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한 명의 탈락자가 나오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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