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 저마다의 대비.
* * *
/뭐....뭐?/
/단체...전?/
/관객에게 대접...?/
류진이 다음 주제를 크게 전파했음에도, 참가자들은 얼이 빠져 멀뚱멀뚱 옆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대회는 언제나 철저한 개인전.
그렇기에 자신의 실력만을 믿고, 그 실력만을 갈고닦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단체전? 그것도 오늘 오전만 해도 서로 경쟁하던 다른 참가자들과 이루는 단체전?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혼란 다음에는, 격분이 찾아왔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맞아! 갑자기 단체전이라니? 그렇다면 내가 잘해도 다른 녀석이 못하면 같이 떨어지는 거잖아!/
/그래! 그딴 건 필요 없어! 내 실력이 가장 최고라고!/
그렇기에 참가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이의를 제기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급작스럽게 상승한 난이도에 가뜩이나 신경이 쓰이는데, 자꾸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니, 그들도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다...다들 진정 좀 하고!/
/진정하게 생겼어? 어?!/
/맞아! 그냥 원래대로 시험을 치게 해줘!/
그런 그들의 항의에 당황한 류진이 어떻게든 분위기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의 분노는 마치 불타는 장작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조용.”
소란스러운 강당에 느지막하게 가볍고 높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앗...!/
/나왔다....그 심사위원 소녀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인 강하는, 어느새 류진의 손에 들린 소리 증폭기, 마이크를 손에 쥐며 높은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일정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
/끄..../
그저 평범하게 생긴 소녀가 말할 뿐인데, 강당은 순식간에 침묵을 되찾았다.
별것 아니다.
그냥 어린 꼬마일 뿐.
그럼에도 참가자들은 짓눌려오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전에 보았던 그녀의 놀라운 동체시력과 뛰어난 언변.
그리고 냉철한 판단력까지.
그녀가 심사위원이라 괜히 거슬리게 했다가 탈락할 수도 있다는 마음도 있지만, 이미 그들은 강하의 위엄에 압도되어 있었다.
그러나.
/불...불만 있습니다!/
한 참가자가 불쑥 나타나, 강하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이 가령제의 요리대회는, 수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전통에 맞추어, 수없는 연습을 하며 자신을 갈고닦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이렇게 일정이 바뀐다면, 우리의 노력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ㅁ....맞아! 나는 이 대회를 위해서 매일같이 조리법을 보며 실력을 갈고닦았어! 그런데 이런 횡포라니! 말이 안 되잖아!/
/오..옳소!/
참가번호 칠십 사 번. 그의 한 마디로 시작되어, 점차 용기를 가지게 된 다른 참가자들 또한, 용기를 얻어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금 항의로 가득 찬 목소리가 강당에 빗발치기 시작할 때쯤.
“전통....? 수없는 연습? 웃기는군.”
/뭐...뭣이?/
“이건 단순한 시험이 아니다, 그저, 너희들 같은 새싹들의 재능을, 실력을 보기 위한 대회.
뛰어난 조리실력, 조리법을 기억하는 암기력 또한 중요하다.”
/그....그런데 어째서?/
강하가 말하는 것은, 전부 그들이 말했던 것처럼, 조리실력과 암기력이 중요하다는 말.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일정을 바꾸는 것인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부족...?/
강하는 가늘게 뜨던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요리라는 것은, 아니 요리뿐만이 아니야, 단순히 조리와 암기만 할 줄 안다면 그것을 진정 요리사라고 부를 수 있나? 아니, 요리사에게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침착함과 적응력, 그리고 톡톡 튀는 창의성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이 시험이 이 세 가지를 확실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너희들이 그렇게 외치는 전통?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전통 또한 중요하지, 하지만, 계속 그 전통에만 매달린다면 발전은 없다, 나는, 황제 폐하는 그런 전통에 매달리는 요리사가 아닌, 새롭고, 뛰어난 요리사를 원하신다, 그것이 황제 폐하가 나에게 이번 시험 주제를 맡긴 이유다.”
/화...황제 폐하가 직접 저 소녀에게?/
/황제 폐하..../
일정에 의문을 가지던 참가자들은 강하의 말과 황제 폐하가 직접 맡겼다는 말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 이제 다시 일정을 말해 줘.”
/아 넵....크흠...!/
어느덧 진정되기 시작한 강당 내부를 돌아본 강하는 마이크를 다시금 류진에게 돌려주고 팔짱을 낀 체, 뒤로 약간 물러났다.
/이번 일정은 이틀 뒤, 야외 대회장에서 시작합니다! 각 참가자는 총 3명씩, 총 67단체가 되어 서로 만들 요리를 결정합니다!/
/이틀 뒤인 대회장에는 단체 하나하나 정해진 숫자가 적혀있는 노점이 생길 예정이고, 관객들 또한, 관객석이 아닌 직접 대회장으로 들어와, 여러분들이 만든 음식을 먹을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일정 이상의 그릇을 내보낸 단체만이, 다음 일정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변경사항이기에, 내일 하루는 여러분들이 어떤 요리를 할지, 어떤 식으로 요리를 손님들에게 내놓을 것인지를 대비하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3명씩, 짝을 지어주십시오!/
그렇게 류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당 내부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이봐! 나...나와 같이 하는 건 어때?/
/미안하군...이미 같이하기로 한 쪽이 있어서 말이야!/
/나랑 하자! 나 잘 할 수 있어!/
/저...저리 떨어져!/
단체전인 만큼, 나 자신이 잘한다고 한들 다른 팀원이 해내지 못한다면 다 같이 떨어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실력에 상당한 자신이 있는 참가자는, 최대한 자신과 비슷한 동 실력을 가진 참가자를 찾을 것이고.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없는 참가자는, 어떻게든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참가자를 노릴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돌아다니는 참가자들 또한, 알아채고 말았다.
단체를 짜는 것조차 시험의 일종이라는 것을.
*
“후....”
강하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네는 왜 여기 있냐?”
“오! 왔는가?”
분명 각자의 방이 배정되어 있는데, 어느새 스타 주막의 직원들이 자신의 방에 전부 모여 있었다.
인상을 쓰며 들어오는 강하에게 해맑은 미소를 짓는 류월이 그녀를 반겼다.
“요즘 아씨가 바빠서 우리 얼굴을 못 봤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보러왔죠!”
“맞아요~ 궁녀님들이 좋은 대우를 해 주시지만, 역시 혼자 있기에는 쓸쓸한걸요...”
‘하긴, 요즘 대회 때문에 생각할 게 많아서, 밥도 여기로 와서 먹고는 했지.’
직원들에게 괜히 걱정을 준 것 같아 살짝 미안해진 강하였다.
“도령님, 피곤하실 텐데 일단 앉으셔요!”
“....고맙다 향아, 역시 너밖에 없어.”
“히잇....!...네...네헤에...”
그리고 언제나 자신을 살펴주는 향이에게 다가가 자리에 앉아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쳐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쯤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냐?”
“....넌 어차피 매일같이 궁궐을 거덜 낼 만큼 먹지 않냐...?”
강하는 알고 있다.
류월은 자신이 손님이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한 끼 식사 때마다 접시를 옮기는 하녀들의 팔이 후들거릴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금 음식을 받아서 배를 채운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렇게 먹었음에도 어쩜 이렇게 식탐을 부릴까.
역시 본체가 그렇게 크면, 먹는 것도 많이 먹는 건가...?
근데 백설은 안 그런데...
“......뭐...뭣이냐! 그렇게 보지 말거라!”
“내가 어떻게 봤는데?”
“마치 나를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는 듯이 보고 있지 않느냐! 이 몸이 얼마나 위대한 몸인데!”
‘눈치는 빨라요.’
그렇게 지그시 바라보던 강하의 시선을 느낀 류월이 손을 흔들며 제 발 저리는 듯이 말했다.
“...아무튼, 곧 머지않아 수많은 화련의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야.”
“호오...그게 과연 사실이더냐?”
이틀 뒤면 시작될 일정에는 67이나 되는 팀이 서로 각기 다른 요리를 내놓을 것이다.
메뉴가 겹친다고 한들, 그 맛조차 똑같지는 않을 테니.
“그러니까 그 대회에 나오는 수많은 음식을 먹으면 돼.”
“정말요? 그것참 멋지네요!”
“오! 그건 좋은데?”
“어머나~ 기대되는 구나~”
강하가 이틀 뒤의 일정을 직원들에게 말해 주자, 그들 역시 다양한 화련의 음식을 먹을 생각에 모두 눈을 반짝이며 기대감에 부푸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특히나 날뛰는 이가 있었으니.
“저...정말이냐...?! 그것참 멋지구나! 어디...이 몸의 혀를 만족시킬 녀석은 누구일까...?”
식탐의 제왕인 류월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먹어 치울 것만 같은 눈빛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 일단 한 팀당 딱 한 그릇씩만 받아야 한다?”
“뭣이? 그...그런....!”
그런 류월이 한번 마음먹으면, 심사고 나발이고 모든 팀원들의 음식을 먹어 치워, 탈락자를 0으로 만들 것 같았기에, 확실하게 쐬기를 박아넣자, 류월은 순식간에 울상이 되고 말았다.
“야, 거기 메뉴 개수가 몇 갠데,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마.”
“저...정말이느냐?”
“그래그래!”
“그렇군....좋다 좋아!”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참 쉽네.’
강하의 말에 환호했다가, 울상이 됐다가 하는 류월을 보던 강하는 이 도마뱀을 어쩔까...싶어졌다.
“아 맞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응?”
“뭔데요?”
“무엇이냐?”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틀 뒤의 대회를 대비하기 시작하는 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