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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화 〉 그래서 제 점수는요..... (189/289)

〈 189화 〉 그래서 제 점수는요.....

* * *

/안녕하십니까 여러부운!!!/

/우와아아아!!!/

언제나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류진의 호탕한 목소리에, 관객들은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참으로 길었습니다! 이번 대회, 심상치가 않습니다! 수많은 참가자들의 경쟁을 뚫고 당당하게 예선에 돌파한 48명의 요리사들을...소개합니다!!!/

류진의 목소리와 함께, 이어진 손짓의 끝자락에는, 깔끔하고 정숙한 조리복을 입은 48명의 요리사가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차렷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우.....장난이 아니구먼....이대로라면 재료 손질하다가 손가락마저 손질하게 생겼네.../

/으윽...속이 쓰려..../

압도감.

수많은 시선들 하나하나가 납덩이처럼 참가자들의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만큼 사람들의 기대감은 하늘을 뚫을 듯 치솟아 올랐고, 대회의 열기는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대결은, 참가자들의 가슴에 달린 숫자와 같은 것이 새겨진 이 공을, 이 상자에 넣어, 무작위로 뽑아 이어진 참가자들의 대결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류진은 미리 준비해둔 숫자가 적힌 나무 공을 하늘로 들어 보이며 외쳤다.

참가자들의 수에 맞게 준비된 나무 공들이 상자에 들어가고, 류진이 그 상자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럼...첫번째 대결의 참가자는.....이십 사(二?四)번 과, 삼십 육(三?)번의 대결입니다!

다음으로 이어질 승부는....칠(七)번과 사십 일(四?一)번, 그리고 다음은..../

류진의 손길에 의해, 순서대로 대결을 펼칠 참가자들이 호명되기 시작했다.

/대결의 주제는 마찬가지로 주제가 적힌 이 공이 뽑힌 것을 주제로 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공은 이 대결의 심사를 맡으신 리 차오 대사님과 리진 대령숙수님, 그리고 강하 아가씨께서 직접 공을 뽑으실 예정입니다!/

그리고 류진은 다시금 손짓을 펼쳐, 강하와 두 사람이 앉은 심사위원석을 가리켰다.

“하...하하..! 안녕하세요...!”

갑작스럽게 몰린 시선에 딱딱하게 굳은 미소로 어색하게 손을 들어 보이는 강하.

그럼에도 관람객들은 그 누구 하나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미 지금까지의 대회를 본 그들은, 강하의 실력을 감히 의심할 수 없었기 때문.

그렇기에 그들은 강하를 마치 공연하러 온 연예인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다.

‘끄응....그냥 공도 류진이 뽑지...왜 이런 걸 시키는 건지...’

정작 그 인기의 장본인은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어질 지경이지만, 그 감정은 그녀 혼자만이 안고 있었다.

/자! 그럼 첫 번째 대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그렇게 첫 번째 대결을 펼칠 자들이 앞으로 나오니, 이제야말로 예선전의 시작이었다.

*

첫 번째 주제는 쌀.

쌀이 들어간 요리가 주제였다.

24번과 36번은 주제가 주어지고, 약 20분 정도 조리법을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본격적인 조리가 시작되었다.

탁탁탁 하는 소리가 도마 위에서 울려 퍼졌다.

24번은 파와 마늘을 비롯한 채소들을 가지런히 썰어내고 있었고, 36번은 찹쌀가루를 준비했다.

“흠....무엇을 하려는 걸지...”

대충 어떤 요리를 만들지 예상은 가지만, 나는 좀 더 꼼꼼하게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때.

/오...! 본격적으로 24번과 36번의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심사위원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엑...?!”

갑자기 강하의 앞까지 다가온 류진이 강하에게 마이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강하 아가씨는 두 참가자의 요리가 예상이 되시는지?/

“어...그...그러니까....”

‘아니 갑자기 뭔데...! 이런 거 한다고 미리 말이라도 좀 해주던가!!!’

갑작스러운 류진의 질문에, 강하는 어버버 거리며 말을 더듬거리고 말았다.

“어...음....그러니까....24번은 돼지기름과 야채, 그리고 달걀을 챙기는 것을 보아하니, 볶음밥을 만들 생각인 것 같습니다. 36번은....전분과 찹쌀가루, 이 둘을 생각해 보면 튀김 요리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고요, 쌀을 이용한 요리가 주제니까, 찹쌀가루 또한, 괜찮은 메뉴 선정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곧 냉정을 되찾은 강하는, 조목조목 자신이 관찰해온 결과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4번은 채소를 손질함과 동시에, 밥을 안치고 있고, 36번은 돼지고기, 그것도 등심 부위를 썰어내는 것을 보니, 돼지고기 튀김을 만들 모양이다.

/그렇군요! 과연....역시 강하 아가씨! 눈썰미가 아주 좋으십니다!/

“하...하하...”

/호오...과연, 역시 자네로군, 훌륭한 관찰력이야./

/찹쌀가루로 만든 튀김은 찹쌀 특유의 쫄깃한 맛이 관건이죠! 기대가 됩니다~/

그런 강하의 말이 끝나자, 류진과 다른 심사위원 둘은 강하에게 칭찬을 건네며 과연...! 이라는 눈빛으로 참가자들을 바라보았다.

“휴....잘 넘겼다....”

“과연 강하 아가씨...! 대단하시군요! 저는 요리에 관해 일가견이 없는 터라, 전혀 몰랐지 뭡니까! 역시 서라벌의 중심, 스타 주막을 운영하는 강하 아가씨의 실력은 정말이지...”

“그만, 거기까지 해줘, 날 부끄럽게 만들어서 말려 죽일 셈이야?”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던 그때, 옆에서 진심으로 감탄한다는 듯이 눈을 반짝거리며 칭찬하는 하진의 시선이 다시금 부끄러워진 강하였다.

그렇게 참가자들은 빠르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자....그만!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참가자분들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접시에 담아, 앞으로 나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준비된 시간이 끝나자, 류진은 그들을 멈춰 세우며 말했다.

/다진 고기를 섞은 달걀 볶음밥입니다./

먼저 요리를 가져온 사람은 24번이었다.

/호오.....냄새가 좋군./

오목한 그릇에 국자를 사용해 동그랗게 담긴 볶음밥이 모락모락 좋은 향을 내뿜고 있었다.

/그럼, 심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시작된 심사.

강하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각자 준비한 앞 접시에 볶음밥을 담아, 맛보기 시작했다.

/흠....밥알도 꼬들꼬들하고, 잘 씹히는군, 식감이 좋아./

/고소한 돼지기름의 맛도 좋군요! 간은 하오유*(??:굴 소스)로 한 건가? 하오유 특유의 향이 잘 나는군./

/가...감사합니다!/

24번은 두 사람의 좋은 평가에 감격하며,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이 정도의 평가라면, 내가 이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24번의 희망이 부서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파기름을 사용했나?”

그러던 사이, 침묵을 지키던 강하가 입을 열어, 24번에게 물었다.

/ㅇ....예! 그렇습니다! 파기름을 내어 볶음밥을 만들면, 훨씬 풍미가 좋아지고, 맛 또한 훌륭해져서.../

“불 세기를 잘못한 모양이야, 기름을 내기 전에 파가 먼저 타버렸군.”

/.....네?/

“볶음밥은 불 맛이라는 말도 있지만, 탄 맛을 내는 요리는 아니야, 간 또한 전체적으로는 적당히 맞을지는 몰라도, 자세히 보면 양념이 뭉쳐서 잘 섞이지 않은 부분이 보여.”

강하는, 두 사람과는 다르게, 24번의 실수를 조목조목 읊어주기 시작했다.

“또한 돼지기름이 과해, 돼지기름을 이용해 볶는 것은 좋았지만, 너무 양이 많아서 느끼해, 거기에다가 기름진 삼겹살을 잘라 넣어서 더욱 심하게 두드러지고 있어./

/아...그....그건....!/

강하의 쏟아지는 비판에, 24번의 정신은 이미 흔들릴 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뭐, 아무튼 다시 돌아가도록, 다음 음식도 심사해야 하니. 아, 물 한잔 가져다줘, 입을 헹궈야 하거든.”

/예...예! 알겠습니다!/

강하의 말에 류진은 후다닥 달려 물을 떠, 강하에게 건넸다.

/........./

금방까지만 해도 호평이던 볶음밥에 열광하던 관객들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강하의 비판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분위기가 식었기에 그런 것이 아니다.

감탄.

두 심사위원은 크게 눈치채지 못한 부분을, 그것도 상당수를 고작 한 입 맛보았을 뿐인데, 순식간에 대답해내었다.

강하가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관객들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금 그녀의 모습에 감탄하고 말았다.

그것은 관객뿐만이 아니었다.

‘이 나 또한, 수많은 미식을 맛보며, 음식의 맛을 느끼는 것에 정통했다고 생각했는데....역시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 있다지....나도 아직 멀었구나...’

‘이 어찌 훌륭한 미각이란 말인가...! 그녀의 미각이라면, 흠잡을 곳 없다고 자부하던 내 요리조차도 자랑스럽게 대접하기에 겁이 나는군....!’

두 심사위원도, 자신보다 뛰어난 강하의 미각에 감탄하며, 조용하게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다음 요리는 준비가 끝났나?”

/예?....아 예....! 지금 들고 가겠습니다..!/

물 한잔을 입에 머금던 강하가 물을 삼키고, 고개를 돌려 36번을 바라보며 말했다.

36번은 24번이 칭찬을 받는 것을 보고, 질세라 싶어 급히 요리를 담아왔지만, 강하의 비평을 듣던 36번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주어진 시간 안에 요리를 완성하던 36번은 마치 주마등이라도 겪듯이 떠올린다.

내가 실수한 부분은 어디에 있지?

소스가 너무 졸아들지는 않았을까?

튀김은? 완벽하게 튀겼나?

그릇을 옮기는 손이 떨린다.

36번의 눈앞에 있는 소녀는 고작 자신의 허리춤에 올 정도로 작은 소녀였지만.

어째서인지 36번은 거대한 호랑이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몸이 굳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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