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 두 명의 반룡인.
* * *
/허억....허억.....!]
뭐였지?
금방까지 무슨 일이 있었지...?
나는.....대회에서 지고 말았지....그래....그래서.....
[으...큭....!]
머...머리가.....깨질 것만 같아...!
/흐음....과연..! 이런 식으로 변하는구나?/
[.......?]
울렁거리는 머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본다.
푸른 머리칼, 찢어진 동공, 우뚝 솟아오른 뿔.
그래.
저 여자.
분명.....나에게 무언가를 했던 것 같은데...
/어때? 너에게 준 힘은? 마음에 들어?/
[....힘?]
무슨 힘을 말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으헉!]
당장 이해가 가질 않는 말만 늘어놓는 눈앞의 여성에게 현 상황을 묻기 위해 바로 옆에 있던 의자를 손으로 짚었을 뿐인데, 의자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 덕에 나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다.
[뭐....뭣?]
당황스러운 전개에 나는 급히 몸을 일으켜, 의자의 파편을 손으로 쥐었다.
그러자, 파편은 너무나도 덧없이 바스러지고 말았다.
이상하다.
믿을 수 없는 현 상황에, 나는 방 안에 존재하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집고, 때리고, 부쉈다.
그러자, 마치 모래로 만든 것처럼, 너무나도 손쉽게 물건들이 박살 나고 말았다.
[이...이게 무슨...?]
도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잠시만.
[아...아아.....뭐....뭐야 이건...!]
목소리.
목소리가 이상했다.
평소의 걸걸한 목소리가 아닌, 너무나도 가냘프고, 높은 목소리.
가는 팔다리.
눈가를 찌르는 길게 자란 푸른 머리칼.
나는 갈색 머리였는데?
그...그리고....
[어....없어...! 뭐...뭐야 이게...!]
하반신의, 그것이 없어졌다.
/흠....억지로 내 힘을 박아 넣어서 그런가....신체마저 나와 비슷해 질 줄이야....신기한데?/
[자...잠깐...! 내 몸에 무슨 짓을....흐힉...!]
힘만이 아닌, 남자에서 여자로 완벽하게 변해버린 내 몸을 보고 웃음을 짓던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내 가슴팍에 붙은 살집을 이리저리 만져대기 시작했다.
[소....손 치워! 나...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녀의 돌발행동에 놀란 나는, 급박하게 그녀의 손을 쳐냈다.
/왜애? 네가 바라는 대로, 그 강하라는 계집을 무찌를 만한 힘을 줬잖아?/
[강...하?]
그러자 그녀는, 생뚱맞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강하.
그래, 강하.
내 요리를 탈락시키고, 마오를 우승시킨 그 계집.
[그래...하지만, 어째서 내 몸을 이렇게 바꾸어버린 거지? 그리고 이 힘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한들, 이렇게나 위험한 힘으로 뭘 하라고 나에게 이런 힘을 준 거지?
/응? 당연히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는 못 이기니까? 그 계집은 몸 절반이 용이거든./
[....용?]
/응./
[....용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었나?]
용.
전설 속 이야기에서나 나오는 생명체.
어릴 적, 부모님한테나 듣던 옛날 옛적 이야기 같은 곳에서나 나오는, 환상의 생명체.
그런 생명체가, 강하였다고?
/뭘 그렇게 놀라? 네 눈앞에도 있잖아~]
[........너는.....정체가 뭐야...?]
두려움.
미지에 대한 두려움.
전신에 퍼지는 떨림이, 말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위험하다. 라고.
[별 거 없잖아? 자~.....그 강하라는 계집을 죽여. 그 마오 슌이라는 계집도 죽여. 네가 거슬리는 존재는 저언부~ 죽여.]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너무나도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미...미쳤어....! 아무리 그래도, 사....사람을 죽이라니..!]
미쳤다.
저 인간, 아니....저 생명체는 미친 것이 분명했다.
도망....도망쳐야 해...!
[으음....시시하네.....그렇다면....에잇!]
[...!]
천천히 뒷걸음질하던 나를, 팔짱을 낀 채 바라보던 그 존재는, 순식간에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눈이 따라가지도 못할 정도로 빨랐던 그녀의 손가락이, 내 머리를 지그시 누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죽여야지....? 안 그래...?]
[아....아아...!]
무언가가, 내 몸속으로 침투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감각이, 전신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 거지?
그래.
강하.
전부 그년 탓이야.
그년이 내 요리를 무시하지만 않았어도.
그 환단만 없었어도.
마오 슌, 그년을 우승자로 올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밉다.
당장이라도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어져.
그래.
모든 잘못은 그년 탓이야.
[자, 지금은 어때...?]
[흐...하...흐억....!]
퐁.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내 머리에 가져다 댔던 손가락을 빼내었다.
그러자, 계속해서 느껴졌던 끔찍한 감각이, 마치 순식간에 맑아진 것처럼 상쾌해졌다.
무언가의 망설임도, 나를 방해하던 감정도, 깔끔하게 사라진 것 같았다.
[....죽인다......강하!]
이제, 나를 막을 것은 없다.
*
“이건 또 뭔....?”
급박하게 자신을 찾아온 하진의 이끌림에, 강하는 마오 슌이 지내던 방까지 오게 되었다.
/흔적은 찾았나?/
/분명, 이 방을 나가기는 했을 터인데....그 뒤로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샅샅이 뒤져! 대회 우승자가 납치 되다니...! 이건 화련의 위상에 먹칠하는 중대 사건이다!/
의자는 가루가 되었고, 침대는 두 동강.
다른 가구들 또한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완전 풍비박산이었다.
“어...어떻게 된 겁니까?”
/아....강하 아가씨...! 그...그것이...!/
마오 슌이 있던 방을 목격한 강하가 바삐 움직이던 사병 한 사람을 붙잡아,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그게....저녁 시간이 되어, 마오 슌 님을 부르러 왔더니....이런 상황이 일어나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병 옆에 있던 궁녀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는 자신이 보았던 것을 알려주었다.
납치, 라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그렇게 강하가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머리를 벅벅 긁고 있을 때.
/차...찾았습니다! 여기, 범인이 남긴 쪽지가 있습니다!/
한 병사가 손을 번쩍 들더니, 그의 손에는 꼬깃꼬깃하게 접힌 종이가 있었다.
우승자는 내가 데리고 간다. 그녀를 찾고 싶으면, 찾으러 와라. 반룡인.
두근.
/반룡인...? 이게 무슨 뜻이지?/
/무언가의 암호가 아닐까 싶습니다./
/반룡인....반룡인...?/
그 쪽지를 발견한 병사들을 비롯한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강하는 알 수 있었다.
반룡인.
그것은 바로,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을.
하지만, 누가?
강하가 반룡이라는 것을 아는 존재는 주막 직원들과 진혁, 그리고 한의 왕인 향종뿐일 텐....
아.
아니다.
강하는 알아차렸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이런 썅....!”
청룡.
그녀가 이 사태의 주범이라는 것을 깨달은 강하는, 몸을 돌려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
“아하하하하! 이거 즐겁네~”
청조하지만 가벼운 소녀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늦은 밤이었지만, 궁궐에는 수많은 밝은 빛들이 일렁이며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 궁궐의 가장 높은 청마루에서 그 아래를 바라보던 청룡은,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나저나 상당히 똑똑하네? 힘을 받자마자 곧바로 난리를 칠 줄 알았는데~”
타이 창.
요리대회를 몰래 지켜보던 청룡은, 그에게 느껴지는 분노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류월과 강하.
그 두 사람이 해낸 일을, 자신이 해내지 못할 리는 없었다.
비록, 급조하여 힘을 부여했기에, 얼마 가질 않아 그릇은 부서지고, 타이 창은 죽어버리겠지만....
뭐, 그녀가 알 바는 아니었다.
“그나저나....힘을 줬더니 나와 비슷하게 변하다니....신기하네?”
청룡은 반룡인이 된 타이 창의 모습을 떠올린다.
현세의 얼굴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머리는 자신과 같은 푸른 머리칼이 되었고, 동공도 똑같이 변했다.
인간 따위가 자신과 비슷하게 변했다는 것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어차피 꼭두각시 인형일 뿐이고, 곧 죽어버릴 존재일 뿐.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정말로 강하를 죽여 버린다면 정말로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진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나 큰 혼란을 일으켜줬으니, 그건 쓸만하다고 생각했다.
“자~ 이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한참을 뒹굴거리며 웃음을 짓던 청룡이 자리에서 일어나 탁탁하며 먼지를 털어내었다.
밤은 길었고. 할 일은 남아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