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9화 〉 드디어, 마주치다. (199/289)

〈 199화 〉 드디어, 마주치다.

* * *

"흠….이쪽이다."

강하 일행들은 밝게 빛나는 왕궁을 등진 체, 바깥의 거리로 나왔다.

그렇다고 강하를 비롯해 전원이 궁궐에서 사라져버린다면, 또다시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기에, 혹시나 궁녀들이 강하를 찾을 경우, 누군가가 변명을 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궁궐을 나온 것은, 강하와 류월, 그리고 백설.

총 세 명만이 특공대처럼 궁궐을 몰래 빠져나와 마오를 납치한 범인을 찾기 시작했다.

"괜찮겠지…? 우리가 사라진 것을 눈치채는 건 아닐까?"

"걱정 말거라. 매화, 그 아이라면, 인간들의 눈을 속이는 것쯤은 아주 간단할 터이니."

잊고 있었을지는 몰랐겠지만, 매화는 구미호였다.

인간들을 홀리고, 정기를 훔치는 특성이 있는 영물이니, 강하가 사라졌다고 해도, 눈을 돌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할 터였다.

"그러면 안심이긴 하지만…..그래서, 범인은 어디로 간 거야?"

"흠….일단 이 거리를 완전히 벗어난 모양이구나. 하지만 이렇게나 기력을 흘리고 다녀서야, 잡아달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류월의 말대로, 창은 반룡인이 된 지 얼마 되질 않아, 그 힘을 전부 감당하지 못하며 줄줄 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힘을 추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함정일 가능성은 없어? 일부러 이렇게 힘을 뿌려두었다거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나 쉽게 들통날 정도로 힘을 감당하지 못한다니…..혹시나 자신들을 꿰어내기 위한 함정이 아닐까 싶었던 강하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글세? 내가 보기에는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이는구나."

"그런가…."

허나 백설이 보기에는, 마치 아직 자신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 갓 태어난 새끼용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강하의 말을 부정했다.

그리고, 백설의 예상은 반쯤 맞아들어갔다.

타이 창은 아직 자신의 힘을 그렇게나 정교하게 조절 하지 못했기에, 강하가 말한 것처럼 일부러 자신의 힘을 이리저리 흩뿌렸다기보단, 자신도 모르게 힘이 새어나간다는 말이 맞았다.

하지만, 타이 창은 그럼에도 그 흔적을 숨기려거나 하지 않았다.

그, 아니 그녀의 목적은 인적이 없는 곳에서 강하를 만나는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그들을 끌어드린 것이 맞다고 볼 수도 있었다.

"좋아, 대강 위치를 파악했다. 곧바로 날아갈 터이니, 너도 준비하거라.]

주변의 파악을 마친 류월이 기력을 내뿜어, 본 모습의 날개보다 훨씬 작은, 기력으로 만든 검은 날개를 만들어내었다.

"하….변신해야 하는 거야? 귀찮은데…."

그런 류월의 모습을 본 강하는 여간 머리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평상시에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막대한 힘을 사용하거나, 어딘가로 날아가려면, 힘을 개방하여 변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변신한다고 해서, 엄청나게 멋있어지는 것도 아니고, 고작 머리에 뿔 하나 돋는 게 전부인데다가, 변신하고 나면 피로를 모르는 몸이라도 왠지 극심한 피로가 느껴졌기에, 그냥 류월이나 백설이 데려다 주면 안되려나….싶은 강하였다.

"너무 그러지 말렴, 너도 네 힘에 적응할 필요성이 있단다? 웬만한 일이라면 류월과 내가 도와줄 테지만, 여차할 때는 네 스스로 네 몸을 지켜야 하지 않겠니?]

"....끙...그러죠 뭐."

하지만, 그런 강하의 변명을 정론으로 부숴버리는 백설의 말에, 결국 강하는 순순히 힘을 개방하였다.

하나하나가 전부 맞는 말이라서, 더 다른 변명조차 준비하지 못했다.

"보자….분명...이렇…..게….!]

처음으로 변신했던 애슐란으로 가기 전인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천천히 내면의 기를 끌어올린다.

마력이 용솟음치고, 거대한 기가 응축되어, 머리에 불쑥 솟아났다.

[으윽….! 뭔가 감각이 이상해진단 말이지….이거…]

변신을 마친 강하는, 살짝 비틀거리며 머리를 짚었다.

변신하고 나면,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아주 예민하게 느껴졌다.

저 멀리 떨어진 담장에 붙은 이슬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까지 느껴질 정도여서, 머리가 피곤했다.

[자, 일단 어서 서두르도록 하지.]

[알았어….흐읍…!]

류월의 재촉에, 강하는 자신의 등에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았다.

*

[후아! 그래도 이건 진짜 죽인다…!]

강하는 크게 숨을 들이켜고는, 신난다는 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녀의 폐를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

변신하는 게 좀 귀찮긴 하더라도, 하늘을 자기 멋대로 훨훨 날아다닌다는 것은 신나기 그지없었다.

[집중하거라, 곧 있으면 그 녀석이 있는 곳에 도달할 터이니.]

[아...그렇지. 알았어.]

그런 강하의 모습이 못마땅했던 류월이 눈치를 주자, 강하는 머쓱거리며 다시금 정상 궤도로 돌아와 날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디 있는데?]

[저기 보이는 동굴, 저 안에 있는 모양이군.]

강하가 그 납치범의 위치를 묻자, 류월은 손을 쭉 뻗어 보였다.

그 손가락 끝에는, 숲속에 위치한 동굴이 보였다.

[....마오는...괜찮겠지.....?]

[음....아직 거기까지 확인하기는 힘들구나, 일단 어서 가보도록 하지.]

[.....그래!]

원래 납치라는 건, 목적을 끌어내게 위한 수단이니까....손을 대지는 않았겠지?

아니...설마....목적을 달성하면 필요 없어질 존재니까.....!

[...그럼, 미리 말해둔 내용대로, 나 먼저 간다.]

[그래, 우린 몸을 숨기고 있으마.]

위치를 파악한 강하는 두 사람을 슬쩍 바라보고는, 속도를 올려, 그들을 지나쳤다.

편지에는 강하, 자신만을 불렀기에, 대놓고 류월과 백설을 보였다가는, 인질로 잡힌 마오에게 괜한 짓을 할 수도 있다는 백설의 의견 덕분이었다.

먼저 강하가 모습을 보이고, 숨어있던 두 용은 기회를 봐서 강하를 돕거나, 먼저 마오 슌을 구조한다는 계획이었다.

강하는 빠른 속도로 착륙해, 동굴의 앞에 섰다.

다시금 슬쩍 뒤돌아보니, 어느새 모습을 숨겼는지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좋아...그럼.....야 임마! 네가 말한 대로 왔다! 어서 나와 임마!]

한 차례 숨을 들이킨 강하는, 아주 큰 소리로 동굴이 울릴 만큼 쩌렁쩌렁하게 고함을 외쳤다.

*

/다 됐다! 어때요? 괜찮죠?/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던 마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칼에서 손을 떼었다.

비록, 비녀도 없고 끈도 없어서, 가장자리 치맛자락을 찢어서 묶은 거였지만, 산발 머리였던 때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화...확실히 편하긴 하군....고맙다./

길다란 머리가 자꾸만 눈과 볼을 찔러 불편했던 창은, 한결 편안함을 느끼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 보았다.

그럼에도 불편함 없이 머리카락이 잘 정돈되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귀엽다.’

머리카락이 흔들리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흔드는 창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진 마오였다.

/.....그....암시라는 거는....풀지 못하나요?/

잠시 이어지던 침묵을 깬 마오는, 조심스럽게 창에게 물었다.

암시.

창은 지금 청룡이 건 암시에 걸려, 강하를 죽이고 싶어지는 쇠뇌에 걸려있었다.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당장이라도 이 동굴을 뛰쳐나가고 싶은 것을 참는 것만으로도 한계니..../

/하...하지만....창 님이 말씀한 대로라면, 강하 아가씨도 창 님처럼....강하시다는 소리잖아요..../

/....그렇겠지./

/그...그러다가 둘 중 아무나 심하게 다치면 어떡해요...!/

마오는 걱정이 되었다.

자신의 요리를 즐겁게 평가해주는 강하.

강압적이지만, 은근히 성실하고, 왠지 귀엽게 느껴지는 창.

그 두 사람이 맞붙는다면, 둘 중 하나는 크게 다칠 것이 뻔했다.

암시를 풀면 좋겠지만, 그것도 힘들어 보이니 더더욱 애가 탔다.

/.....모르겠다. 애초에 난 일을 너무 크게 벌이고 말았어,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되돌릴 방법은 생각이 나질 않아./

/그게....무슨 소리인가요?/

그런 마오의 질문에, 무언가 체념한 듯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창.

그런 창에게 마오가 되물으려던 찰나.

/.......왔다./

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작게 속삭였다.

/네.....? 무엇이 왔다는 건가요?/

/강하....드디어 도착했군..../

갑작스러운 창의 말에, 어리둥절하는 마오였지만, 창은 알 수 있었다.

이 신체가 된 이후로 민감해진 감각이 용솟음치며 외치고 있었다.

자신이 당장이라도 찢어 죽여 버리고 싶은 존재, 강하가 여기에 가까이 다가온다고.

그렇게 잠시 둘 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숨을 죽이고 있을 때였다.

[야 임마! 네가 말한 대로 왔다! 어서 나와 임마!]

/꺄...악...!/

바깥에서 들려오는 쩌렁쩌렁한 고함에, 마오는 귀를 막았다.

/드디어....도착했나....!]

그리고, 창은 그 소리가 들리자,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동굴의 바깥으로 몸을 움직였다.

/차...창 님!/

/여기에, 가만히 있어. 괜히 말려들지 말고./

그러자 마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에게 손을 뻗었지만, 창은 그런 마오를 억지로 앉혔다.

/나중에, 볼 수 있으면 보도록 하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창은 순식간에 마오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

[....온다.]

강하는 순간 포착한 기척을 느끼자마자, 손가락을 들어, 검은 구체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쿵. 쿵.

처음에는 아주 작은 메아리 같던 소리가, 점차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듯 커지기 시작했다.

쿠쿵. 쿠궁.

이윽고, 동굴 저 멀리서 어떤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하!!!!!]

[헹, 이제야 모습을 내보이는구나. 납치범!]

그리고, 두 반룡인은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