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승자와 패자.
* * *
[.....청룡…?...아니야, 비슷하게 생겼지만, 달라.]
푸른 머리칼 덕분에 순간적으로 착각할 뻔한 강하였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머리카락에 푸른빛이 감돌기는 했지만, 뿔도 외뿔에다가, 애초에 얼굴 생김새 자체가 달랐다.
[후욱….후욱…! 죽인다…!]
침착하게 자신의 앞에 나타난 적을 살펴보는 강하와는 달리, 창의 머릿속은 이미,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강하를 찢어 죽일 생각만 가득했다.
여태까지는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견뎠지만, 그녀를 눈앞에서 직접 보니, 정신력 문제가 아니었다.
꿈틀거리는 전신은 당장에라도 그녀에게 달려들 것 같았고.
[크아아아아!!!!]
그래서 달려들었다.
아직 기를 다루는 법 따위는 모르는 창이었지만, 본능적으로 날카로운 손톱에 푸르스름한 기를 휘감은 창은 그 손톱을 강하에게 내밀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이내 강하의 바로 앞까지 창의 손길이 다가가던 그 순간.
[어우, 깜짝이야.]
[크….크윽…?!]
정체불명의 투명한 막에, 창은 그대로 튕겨져 나가버리고 말았다.
[이거, 너무 신사답지...아니 숙녀답지 못한 거 아니냐? 응?]
바로 눈앞까지 창의 손톱이 다가왔지만, 강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있는 검은 구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땅바닥에 철푸덕 쓰러져있는 창에게 빈정거렸다.
강하는 이미 창 몰래, 수많은 구체를 생성시켜놓은 상태였고, 그 구체들이 어느새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강하에게 홈그라운드나 마찬가지인 상황.
[일단, 제정신이 아닌 것 같으니, 한숨 자고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그렇게 말한 강하가 창에게 손짓하자, 구체들은 새까만 마력을 생성해, 그대로 창에게 퍼부어 버렸다.
쿠궁! 쿠구궁!
그녀가 있던 곳에 엄청난 충격파가 퍼졌고, 이내 시야를 가릴 만큼 자욱한 흙먼지가 땅을 뒤덮었다.
[......조금 심했나? 서...설마….이대로 죽은 건...아니겠지?]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나버린 싸움에, 강하는 당황하며 구체를 이용해 흙먼지를 지워내기 시작했다.
뿌연 흙먼지가 사라지자, 그곳에는 강하의 구체가 내뿜은 충격에 땅바닥이 파여 있었고, 그대로 쓰러진 창이 있….어야 하는데?
[뭐….뭐야? 어디 갔어?]
분명, 자신이 쏘아낸 파동에 직격으로 맞았을 텐데, 그 대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강하는 눈에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때.
[여기다.]
[우왁!]
캉! 하는 소리와 함께, 강하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오는 창의 손톱을, 구체가 전개한 보호막이 막아내었다.
자욱한 흙먼지를 통해, 모습을 숨긴 창이 벌인 기습이었다.
[깜짝 놀랐네….야, 어짜피 닿지도 않을 공격을 해봐야 뭔 소용이냐?]
강하는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내 빠르게 감정을 수습했다.
분명 구체의 충격에도 멀쩡했고, 그 틈을 타서 기습을 한 것은 매우 놀랐지만, 그뿐.
결국, 창의 공격은 강하에게 위협이 되질 않았다.
[닿지도 않는다고…?]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처음에는, 보호막을 공격하자마자 튕겨냈는데, 지금은 아직도 튕겨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손톱을 들이밀고 있었다.
[누가, 그렇게 정했는데?]
[?!?]
빠직.
불길한 소리가 강하의 귀를 찔렀다.
빠직. 빠지지직.
그 불길한 소리는 이윽고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창의 손톱을 중심으로 보호막에는 쩌적 거리며 금이 가고 있었다.
[이...이런!]
[죽어!]
그리고, 결국 방어막이 깨지고 말았다.
방어막이 사라지자, 창의 손톱을 방해할 것들이 사라졌고, 그녀의 손톱은 그대로 강하를 향해 날아들어 왔다.
[윽…!]
강하는 간신히 몸을 비틀어, 손톱을 피해냈지만, 이어지는 창의 발차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반룡의 힘으로 더욱 강력해진 창의 발차기에, 강하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후….저릿저릿하네….]
피하지는 못했지만, 정통으로 맞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챈 강하는 간신히 팔로 가드를 올려, 충격을 완화 시켰다.
[....생각이 짧았어.]
강하는 지금까지, 전력으로 힘을 쓴 적이 거의 없었다.
딱 한 번.
막 반룡이 되었을 때, 마을을 습격한 악귀에게 정통으로 주먹을 날릴 때를 빼면, 강하는 언제나 힘을 아끼면서 싸웠다.
어째서냐고?
전력을 다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반룡이라곤 해도 용의 힘.
제아무리 뛰어난 실력자라곤 해도, 강하의 앞에서는 부서지기 쉬운 순두부였다.
그렇기에 강하는 언제나 구체를 사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식으로만 싸웠다.
애초에 자신의 힘을 아늑히 뛰어넘는 존재가 두 명이나 있는데, 자기가 나서봤자 이미 정리되고 말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막 반룡으로 각성을 한 상대라고 방심했지만, 그녀는 강력했다.
대충 손보기로 제압을 할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강하는 결심했다.
전력으로 한번 싸워보겠다고.
[후우….읍…!]
강하는 자신이 소환했던 수많은 구체들을, 다시금 제 몸으로 빨아들이고, 그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마에 돋은 뿔이 점점 검은 마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녀 주위의 공기가, 신기루처럼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쉽게 안 당할거다!]
모든 힘을 끌어모은 강하는, 그 첫걸음을 내딛었다.
*
[이런….이대로는 위험하다! 내가 나서야겠다!]
한편.
강하와 나눴던 이야기처럼, 근처의 수풀에서 기력을 숨기고 현 상황을 관찰하던 류월은 수풀에서 나오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저 청룡의 힘을 부여받은 계집은 위험했다.
자칫하다가는, 강하가 크게 다칠지도 모를 일.
그렇게 둘 수는 없었던 류월이었기에, 자신의 기를 숨기기 위해 펼쳤던 술식을 해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팔을 잡아끈 이가 있었으니.
[뭐...뭣? 왜 방해하는 건가? 백설!]
그건 바로 류월의 곁에서 같은 것을 바라보던 백설이었다.
[지금은, 이대로 놔두자꾸나.]
[그게 무슨 말인가! 저대로 뒀다가 자칫하면 강하, 저 아이가 크게 다친단 말이다!]
그런 백설의 이해 못할 행동에 류월은 버럭 화를 내며 잡혔던 팔을 뿌리쳤다.
[알고 있잖니, 저 아이는 이제, 평범한 인간이 아니란다.]
허나, 백설은 기어코 류월을 그대로 품에 끌어안으며 그녀를 막았다.
[반룡이기는 하나, 저 아이도 용의 힘을 가진 존재. 이대로 우리가 돕기만 한다면, 저 아이는 영영 성장하지 못할 거란다.]
[하...하지만…!]
[우리는 그저, 지켜보도록 하자. 마지막까지.]
[...이 몸도 이젠 모른다! 흥!]
[옳지, 착한 아이구나.]
계속되는 백설의 설득에, 류월은 결국 뺨을 부풀리며 그대로 백설의 품에서 강하를 지켜보았다.
[...지지 말거라.]
나지막한 목소리를 중얼거리면서.
*
쾅! 쾅!
이번이 몇 합째인지도 모르겠다.
공격을 막아내면, 쉴 틈도 없이 다음 공격이 날아들어 온다.
마치 광견.
미쳐 날뛰는 광견을 상대하는 것 같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지만, 저 손톱에 정통으로 맞는다면, 강하 역시 멀쩡하지 않을 것이다.
두근. 두근
심장이 요동친다.
죽음.
한 수만 잘못 둬도 목 뒤에 서려진 한기가 곧장 자신을 앗아갈 것 같은 감각을, 강하는 느꼈다.
그런데.
어째서.
[후...후후…!]
이렇게 신이 나는 걸까?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이 싸움이, 강하는 즐거워서 미칠 것 같았다.
[그래, 좀 더. 좀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전신의 힘을 끌어 올려라.
바로 앞의 상대보다, 몇 초, 일 초, 몇 분의 몇 초보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크...헉…!]
계속 방어만 하던 강하가 내지른 주먹이, 창의 턱에 정통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머리가 핑 돌아버린 창이 휘청거리는 그 틈을, 강하는 놓치지 않았다.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창의 복부가 한껏 푹, 하고 들어갔다.
[커….헉…!]
[아직 멀었어!]
복부의 고통에 다리가 풀려버린 창을 내려다본 강하는 두 손을 모아, 그대로 창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창의 이마가 대지와 격돌하며,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후우….후우….]
[크...가...강하….! 죽인...다….!]
강하가 먹인 혼신의 공격에 동공까지 풀려버린 창이었지만, 암시의 효과인지 의식이 없을 터인데도 자꾸만 버둥거렸다.
하지만, 처음 때보다 한없이 느리고 약해진 그녀의 공격은, 강하에게 닿아도 그저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내릴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 강하는 쪼그려 앉아 손가락을 구부렸다.
[....일단 한숨 자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카….!학…]
빡! 하는 소리와 함께, 강하가 마지막 일격의 딱밤을 먹이자, 마치 불사신 같았던 창의 의식이 완전히 끊겨버렸다.
두 반룡인의 결투의 승패자가 나누어지는 순간이었다.
*
다....다음화가 벌써 200화...?
세상에...
이 모든 건 제 연재작을 읽어주신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200화 때는 뭘 써볼까...? 즐거운 고민이네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