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 그녀의 밑받침.
* * *
포트 파이.
팟 파이라고도 불리는 이 파이는, 말 그대로 냄비(포트, 팟)라는 이름에 걸맞은 요리이다.
포트 파이는 얇은 페이스트리(파이 반죽)가 상단 파이 크러스트가 있는 파이를 말한다.
포트 파이는 가금류, 육류, 해산물, 채소 등.
다양한 재료들을 넣을 수 있으며.
미국에서는 고기를 주로 사용하기에 포트 파이라고 하면 대부분 미트파이를 떠올린다.
그리고 저번에 강하가 엘프 마을에서 만든 미트파이 또한, 포트 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번에 먹었던 그 파이를 만들 생각인 거니?"
"으음….! 그건 아주 좋았다! 고기가 듬뿍 들어가 엄청 맛있었느니라!"
강하의 설명에 엘프들의 마을, 이샤렌에서 먹은 파이를 떠올린 백설과 류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맛을 떠올렸다.
하지만.
"파이라는 것은 같지만, 아니. 다른 요리를 만들 거야."
"응? 그게 무슨 소리냐?"
"파이기는 하는데, 다른 요리라….그것 참 기대가 되는구나~"
강하는 그때 만든 파이를 만들 생각이 없다.
파이인 만큼, 한 끼 식사로 적절하지만, 부드럽고 맛있는 파이.
"그럼, 일단 반죽부터 만들어 볼까…!"
도마 위에 밀가루를 쌓아 올리고, 녹이지 않은 고체 버터를 섞어준다.
이런 식으로 버터가 녹기 전에 반죽을 뭉쳐야 크게 부풀어 오르지 않고 바삭한 파이 반죽이 완성된다.
반죽이 어느 정도 뭉쳐줬다면, 파이 반죽의 층을 만들어준다.
누네X네를 먹을 때, 바삭하면서도 맛있는 파이가 층층이 생긴 것을 볼 수 있는데.
반죽을 넓게 한번 펴 주고, 그것을 접은 뒤, 다시금 펴주는 방법으로 층을 만들어준다.
이때, 이 작업을 느긋이 하지 말고 빠르게 빠르게 해야만 한다.
상온에서 반죽을 계속 만지다 보면, 반죽에 섞여 있는 버터가 액체로 녹아들게 되고, 그러면 반죽이 질어지기 때문에, 빠르게 반죽을 만들어준다.
/오….이건 어떤 나라의 요리인가요? 처음 보는 요리에요!/
그러던 중, 어느새 강하가 반죽하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마오가 물었다.
그녀는 여태껏 화련에서 살았고, 그 화련에서도 시골에서 거의 평생을 보내왔기에, 제빵이라는 것을 거의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건 저 멀리 애슐란이라는 나라에서 먹는 방식이야. 하지만 이 요리는 나밖에 모르지./
/대...대단하네요…! 역시 강하 아가씨…!/
어느 정도 만들어진 반죽은 냉장고에 한 시간 정도 휴지*(반죽을 휴식시켜주는 것, 반죽 안에 들어간 버터가 녹지 않게 해준다.)시켜준다.
그 사이, 파이의 속을 채울 요리를 만들어주자.
본디 소고기로 만들고 싶었지만, 요리대회 결승, 강하가 마오의 요리 지적 점 중 하나인 것.
화련의 소고기는 그렇게 맛이 뛰어나질 않아, 소고기 대신 해산물을 이용하기로 했다.
먼저, 마른 다시마를 물에 담가, 다시마 우린 물을 만들어 둔다.
새우는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 오징어는 껍질을 벗겨 칼집을 내어 적당한 크기로 썰어내고, 관자 또한 손질을 해준다.
이제 깊은 냄비에 버터를 넣고, 다진 마늘, 채를 썬 양파, 그리고 약간의 포인트로 페퍼론치노를 조금 부숴 같이 볶아준다.
어느 정도 마늘과 양파의 향이 매콤하게 코끝으로 올라온다면, 손질해둔 해산물을 넣어, 빠르게 잠깐만 볶아준다.
새우의 색이 빨갛게 변하고, 오징어의 칼집이 열리기 시작했다면, 화이트 와인을 넣어 비린내를 날려줌과 동시에 풍미를 올려준다.
치이익하며 퍼져나가는 화이트와인이 마치 김처럼 올라갔다.
/와…저건 뭘까? 냄새를 보아하니 술인 것 같은데…./
/이건 화이트 와인….그러니까 백포도로 만든 술이란다./
/포도주! 저 들어본 적 있어요! 아버지께서 말해준 기억이 나요!/
저게 그 포도로 만든 술이구나…
알콜이 다 날아갈 때쯤에 다시마로 우린 물을 넣고, 끓여준다.
냄비의 내용물이 한소끔 끓어오르면, 우유 4 생크림 1 비율로 섞어 적당량 넣어주고 계속 끓여준다.
이때 소금과 백후추, 그리고 딜을 조금 넣어준다.
딜은 허브의 일종인데, 서양에서는 생선 같은 어패류, 해산물 요리에는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허브 중 하나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연어를 제외한 서양식 생선구이의 인식이 별로 없기에,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떨어지는 허브 중 하나이다.
풀향 같은 상쾌한 향이 어패류의 비린 향을 잡아주어 잘 어울리는 허브이다.
어느 정도 끓기 시작했으면, 치즈를 갈아 넣어준다.
이때 치즈는 모차렐라 같은 치즈보단, 파르미지아노 레기아노, 일명 파마산 치즈가 추천된다.
1년 이상 진하게 숙성된 치즈의 풍미가, 스튜의 맛을 더욱 끌어올려 줄 것이다.
강하 또한 아주 운 좋게 치즈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치즈의 별칭이 파마산 치즈이기는 하나, 일반 사람들이 잘 아는 피자집 같은 곳에서 뿌려 먹는 가루, 파마산 하고는 다른 치즈이다.
현대에서는 이 치즈가 1kg 에 4~5만원 정도 할 정도로 아주 비싸기 때문에, 합성 치즈에 비슷한 향을 입혀놓은 것이, 사람들이 아는 파마산 치즈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자주 먹는 파마산 치즈는 가짜인 것이다.
물론, 진짜인 파마산 치즈는 그런 치즈와는 차원이 다른 맛을 낸다.
보통 치즈를 넣으면 농도가 잡히기는 하나, 조금 더 꾸덕꾸덕하게 먹고 싶다면 치즈를 더 넣거나, 버터를 더 넣는다.
그게 싫다면 전분을 물에 풀어, 물 전분을 만들어 농도를 잡아주면 좋다.
이때, 전분은 반드시 물에 풀어서 사용해야 한다.
전분 가루를 그대로 요리에 넣어버린다면, 순식간에 익어버려서 뭉치고 엉겨 붙기 때문이다.
그렇게 농도를 잡아주고 나서, 파슬리를 좀 넣어주면 해산물 크림 스튜 끝!
"음…..맛있는 냄새…"
"응? 하지만, 강하 네가 만든다고 한 건 파이 아니니? 왜 크림 스튜를….?"
맛있는 스튜를 본 백설은 입맛을 다셨지만, 어째서 파이를 만들기로 한 강하가 스튜를 끓였는지 궁금한 백설이 물었다.
"뭐, 보시면 압니다."
그런 백설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하던 강하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파이 반죽을 꺼내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만들어 볼까!"
먼저 도자기 그릇을 찾아준다.
고온에 버티는 도자기 그릇이라면 파이를 구워도 깨지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릇에 1인분 정도의 스튜를 담고, 파이의 반죽을 성형*(목적에 맞게 반죽을 잘라내거나, 가공하는 것.)해서 마치 뚜껑처럼 스튜가 담긴 그릇을 덮어준다.
그리고 구웠을 때 더욱 노릇노릇한 색감을 위해, 노른자를 풀어서 발라준다.
이제 이것을 오븐에 구으면….되겠지만, 아쉽게도 이 주방에는 오븐이 없었다.
제빵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화련이었기에 당연했지만, 강하는 이런 일이 저번에도 있었다.
바로 힐라의 언니, 엘드라를 위해 애플파이를 구웠을 때 또한, 오븐이 없었다.
그리고 강하는 그 해결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미리 따끈하게 피워둔 아궁이에 파이 반죽을 덮은 그릇을 넣고, 아궁이 입구를 막아주어 마치 화덕처럼 만들어준다.
그렇게 알맞게 아궁이에서 구워내면, 드디어 해산물 크림 스튜가 들어간 포트 파이 완성이다!
*
/자, 먹어라./
그렇게 만든 포트 파이를, 막 제정신을 차린 창에게 내민 강하.
/….째서./
/응?/
/어째서, 너는 나에게 이렇게 상냥한 것이지?/
그렇다.
창은 청룡에게 암시가 걸린 것을 별개로 쳐도, 강하에게는 자기 요리를 떨어뜨렸다는 악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제정신이었든 아니었든, 창은 강하를 향해 죽을 수도 있는 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어째서, 강하는 그런 창에게 요리를 만들어 주는 것 인가.
/음….뭐….글쎄? 강자의 여유? 같은 걸지도 모르지./
/흥….역시 그런 가식이었나?/
/가식이든 뭐든 간에, 배고픈 사람이 있는데, 요리사라면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 이지./
/….../
/네가 뭘 생각하든 상관없다. 그런데 일단 먹어. 식겠다./
/마...맞아요! 창님! 강하 아가씨의 요리는 엄청났어요!/
/마...마오?/
그렇게 강하의 요리를 들고 주저하던 창의 앞에, 입가를 하얗게 칠한 마오가 다가와 말했다.
/정말 맛있었어요….그리고 저는, 그 맛을 창 님도 맛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 알았다./
나를 위해서, 저렇게 말해주는 건가.
정말, 닮았군.
창은 마오가 건넨 숟가락을 들어, 포트 파이의 중앙을 파 보았다.
/무...무슨…!/
그러자, 그 안에 꼭꼭 갇혀있던 수많은 향이 마치 폭탄처럼 튀어나와, 창이 코를 자극했다.
`이 얼마나 풍부한 향이란 말인가….! 그렇기에 이 정체를 알기 힘든 것으로 뚜껑을 씌워놓은 것인가?`
한참 냄새를 맡던 창은, 이내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크림 스튜를 떠, 한 입 맛 보았다.
/……..세...세상에.../
한 입 맛본 스튜라는 것은, 너무나도 부드러우면서도 풍미 있고, 고소했다.
우유로 만든 크림을 먹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입에 달라붙었고.
해산물 또한 바다의 향이 잘 올라오는 데다가 탱글탱글하고 씹기 좋을 정도로 적절하게 익어, 아주 맛있었다.
이 뚜껑처럼 만든 것 또한 먹을 수 있었는데, 따뜻하면서도 바삭하고, 맛이 좋았다.
하지만, 약간 부족한 맛이 없잖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순식간에 더욱 좋아지고 말았다.
뚜껑처럼 감싼 것을 조금 떼어, 스튜에 찍어 먹어보자, 스튜가 깊게 스며든 파이는 더더욱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변해,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말았다.
망설이듯 떠낸 첫 숟갈이, 다급해진 두 숟갈, 다음엔 셀 수도 없이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숟갈로 변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완벽하게 포트 파이를 비워 낸 창.
/…...하아…./
한숨.
아주 짧은 한숨이었지만, 그 한숨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었다.
맛있게 먹은 음식의 후기, 열등감, 감탄, 등등.
그리고, 강하에 대한 인식까지.
그녀는 그랬다.
대단하긴 했지만, 요리사의 고충을 모르는, 그런 짜증 나는 소녀.
그렇구나.
강하가 심사위원으로 올 수 있었던 이유.
그동안 그녀가 행해온 모든 행동의 밑받침이, 이 그릇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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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물 포트 파이입니다.
부드러운 크림스튜에 수많은 향신료와 신선한 해산물이 잔뜩 들어갔죠!
이 파이는 영국에서부터 유래했다고 하는데요.
영국은 파이를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왜 정어리 파이 같은 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