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6화 〉 소중한 사람(2). (206/289)

〈 206화 〉 소중한 사람(2).

* * *

무릎이 휘청거렸다.

나는 자꾸만 떨려오는 팔로 그의 소매를 잡아, 설명을 요구했다.

그가 말해주는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한 부잣집의 사내는, 고약한 취미가 있었다.

가난하지만, 상당히 예쁜 여자들을 찾아가, 그녀들의 가족에게 돈이나 현물을 건네고, 그녀들을 첩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그녀들한테도 아주 좋은 일이었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녀들은 첩이 되고 나선, 오로지 작은 방에 갇혀 살아야 했다.

그는 자신의 권력도, 돈도, 아무것도 쥐여주지 않고. 그저 삼시세끼 밥을 챙겨줄 뿐.

첩으로 들어간 그녀들은 그저, 새 창에 갇힌 파랑새처럼 작은 방에 갇혀 푸른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사내에게, 아버지는 여동생을 팔았다.

아.

나는 후들거리는 손가락으로 편지를 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쓰인 편지에서 본 아버지의 심상은 더욱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나를 생각했다.

그렇기에, 여동생을 팔아, 내가 새로이 장사를 할 수 있는 가게를 열기 위한 밑천을 마련했다고.

이렇게밖에 자신을 도와줄 수 없는 아버지라 미안하다고.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다 읽자마자 신발도 신지 않고 그의 집을 수소문하여 달렸다.

아버지는, 결국 끝까지 나만 바라보았다.

여동생을 팔아서, 나를 도왔다.

정작 나는 그런 것 따윈 바라지 않았는데.

아버지와 나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어긋나버리고 만 것일까.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나만 생각했다.

그런 사실이 자꾸만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

며칠이 걸려 도착한 사내의 집은, 웅장하고 거대했다.

현관에는 금으로 조각된 용마루가 보였고, 병사들이 입구를 지켰다.

며칠째 쉴 새 없이 움직였던 내 몰골은 마치 부랑자와 같았기에, 그 병사들은 나를 보자마자 창을 들이밀며 물러나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나는 물러설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들에게 사연을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은 마치 시궁쥐를 빗자루로 후려치듯이, 날 없는 창 자루로 나를 밀어내고, 후려쳤다.

자루에 맞은 얼굴이 욱신거리고, 입가에서는 피 맛이 났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울며불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피투성이가 되어도 달려드는 내 모습에 그들은 기겁하더니, 급하게 집으로 들어가 내 소식을 알렸다.

그제서야 그 사내를 만나는 것이 허락되었고, 나는 병사들의 부축을 받아,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조용히 중얼거리던 병사의 목소리가 기억이 났다.

또 이 난리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의 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병사들은 나를 마당에 무릎을 꿇어앉히고, 그가 나타났다.

화려한 비단과 고급스러운 담뱃대, 목에는 옥구슬이 주렁주렁 달려있었고, 그의 뒤를 따르는 자들은 십몇 명이나 있었다.

예전의 장사가 잘되던 아버지의 모습보다, 더욱 사치스러운 그는 나를 마치 벌레 보듯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사내를 마주한 나는, 품에 가져온 그가 건넨 금화와 패물을 건네며, 여동생을 돌려 달라 간청했다.

이런 건 다 필요 없다.

나는 그저 여동생만 있으면 된다.

부디, 그녀를 돌려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건넨 패물들의 네 배를 불렀으며, 바닥에 엎드린 나를 비웃었다.

“네놈의 여동생? 상당히 아름답구나, 가느다란 팔다리가 부러질 때마다 지르는 비명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노래와도 같았다! 하하!”

그렇게 말하며, 그는 웃었다.

그 소리에 나는 뚝, 하고 무언가가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마치 짐승과도 같은 포효를 외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죽인다.

오로지 그 생각으로 달려들었지만, 얼마 가지 못해 그의 병사들에게 사지를 결박당했다.

그런 내 모습에 그는 너무나도 즐겁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웃다가,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사용인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사용인은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어딘가로 빠르게 발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는 한 여성을 부축하며 다시금 돌아왔다.

얼굴에는 짙은 하얀 분을 칠해서,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팔다리는 아주 얇았고, 상당히 긴소매를 입었지만, 그사이에 보이는 피멍을 감출 수는 없었다.

랑.

내 여동생.

아아.

그 사내는 랑을 거칠게 끌어당겨, 내 앞까지 끌고 왔다.

그러더니, 젖은 천으로 아주 천천히, 두꺼운 분으로 칠해진 그녀의 얼굴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분에 칠해 가려진 랑의 민낯은, 처참했다.

뺨을 새빨갛게 부어있었고, 여기저기 피멍이 가득했다.

아.

아아.

고통스러웠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랑은, 언제나 보이던 미소 대신, 싸늘한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폭언을 내뱉었다.

이제 와본다고 늦었다고.

자신은 더 이상 내가 필요 없다고.

날 팔아치운 돈으로 호의호식이나 하고 살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런 랑을 바라보던 사내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손뼉을 치며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그렇게 욕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는 사내의 집에서 내쫓겨졌다.

아.

나는 보았다.

우리가 같이 살아온 일생이 몇 년인데, 그 정도는 아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랑은 일부로 나에게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다시는,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그리고 그 사실이 나의 폐부를 고통스럽게 내찔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그저, 나는 그저 사랑스러운 여동생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없었다.

아니.

한 가지. 있다.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 대회에서 우승한다면.

그 상으로 막대한 상금을 받아, 다시금 랑을 사 오면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패해서는 안 된다.

랑이 그 집에 팔려 간 것이 며칠인데, 벌써 피폐해진 모습이 보였다.

만약, 다음 대회에 우승하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야위었던 랑이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안 돼.

그것만은 안된다.

반드시 우승해서, 랑을 구해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우승을 위해, 남은 돈을 전부 사용했다.

매일같이 칼을 휘두르고, 냄비를 들었다.

지치고 힘들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괜찮아.

저번 대회에서도 결승까지 갔어.

나라면 해낼 수 있어.

그렇게 매일 밤, 나에게 스스로 속삭였다.

언제나 아른거리는 여동생의 얼굴이, 나를 계속해서 일으켜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는 다시금 대회에 참가하였고, 결승까지 도달했으며, 또다시 결승에서 떨어졌다.

*

/…..제가 비겁한 행위를 한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고, 꼴사납게 실패했죠.

결국 제 실력이 모자란 것일 뿐인데, 저는 염치도 없이 강하, 당신을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도 아닌, 이런 존재가 되어버렸군요…../

"........."

담담하게 모든 이야기를 마친 창은, 자세를 고쳐잡아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럼에도 이런 부탁을 드린다는 것이 매우 염치없고, 실례인 행동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탁입니다. 제 여동생을, 랑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쾅.

딱딱한 바닥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창은 자신의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강하에게 조아렸다.

간절했다.

자꾸만 여동생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작은 꽃송이 하나 가지고 그렇게 세상 환하게 웃던 미소가, 구겨지고, 거칠게 욕설을 내뱉은 얼굴이 되었다.

/그...그런…!/

창의 끔찍하고 안타까운 사연에, 마음이 여리던 마오는 입가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떠올린다.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던 아버지의 모습.

마오에게는 아주 소중한 가족이거늘, 어째서 창의 아버지는, 창의 여동생은 저렇게 갈라지고 만 것인가.

/저...저도 부탁드릴게요! 차...창님이 너무 불쌍해요….!/

결국 마오는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던 창에게 달려가 그녀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네요."

그리고, 강하는 창의 모든 이야기를 번역해서 두 용에게 알렸다.

"참으로 괘씸한 것들이로군….예전부터 쓰레기들은 언제나 존재했거늘….쯧쯧…"

류월은 떠올린다.

백설과 인간 마을에 숨어 지낼 때도, 청란과 이곳저곳을 떠돌 때도.

언제나 사람들을 착취하고, 쓰레기처럼 세상을 좀먹는 자들이 존재했다.

"....강하, 너는 어쩌고 싶니?"

"저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백설은, 강하에게 물었다.

"음…..참 귀찮고, 성가신 일이네요…."

강하는, 영웅이 될 생각이 없다.

그녀는 자신이 피해만 받지 않으면 언제나 유연하게 넘기고, 굳이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해결하려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점찍어둔 새싹을 괴롭히는 해충은, 박멸해야겠죠?"

그래.

이것은 단순한 해충구제.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바로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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