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7화 〉 최고였던 하루. (207/289)

〈 207화 〉 최고였던 하루.

* * *

라이룽은 오늘 기분이 좋다.

생각해보면 아침부터 그랬다.

자연스레 스며든 태양 빛에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가볍게 몸을 흔들자 삐걱거리는 곳 없이 매우 윤활하게 움직였다.

아침밥은 자신이 좋아하는 동파육이 나와서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차를 마시는데 찻잎은 서 있었고.

기나긴 시간 끝에 공들인 거래가 성공적으로 끝이나, 또다시 수많은 제보를 벌었다.

그야말로 라이룽 자신의 행운이 모두 모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일을 끝마치고 싱글벙글 집에 들어온 라이룽은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끝낸 후. 첩들이 지내는 별채로 발을 옮겼다.

별채에 도착한 그는 잠시 그대로 서서 고민했다.

첫 번째 방의 계집은 이미 나를 보기만 해도 기겁하며 실신할 정도였기에, 재미가 없었다.

두 번째 방의 계집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 뭘 해도 움찔 거릴뿐, 별 반응이 없어 마찬가지로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

세 번째 방에 있는 계집.

타이 랑.

그 계집은 아직 쓸만했다.

돈에 팔려 온 계집 주제 언제나 그를 쓰레기 보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도도한 척.

자신은 깔끔한 척하는 그 얼굴.

그렇기에 망가뜨리는 재미가 있었다.

체벌할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별것 아닌 척하지만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그 얼굴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새하얀 피부 결에 실금 같은 상처들이 생겨, 핏물이 방울방울 질 때쯤, 그가 손짓만 해도 흠칫거리며 바닥에 쓰러진 채 뒷걸음질 하는 게, 마치 짐승 같았다.

실로 유쾌하다.

가끔, 인간들은 태어나서 모두 같은 존재다. 라고 지껄이는 작자들이 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라이룽은 코웃음을 쳤다.

인간이 다 같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인간은 태어날 때마다 선택된다.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고귀한 존재였으며, 저 계집은 미천한 벌레다.

돈도, 명예도, 선택된 자신이기에 가진 것이고, 내 것이었다.

터벅터벅.

나무로 된 복도를 걷는다.

괜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걸을 수도 있지만, 라이룽은 이 복도를 걸을 때마다 일부러 발에 힘을 주어 쾅쾅 소리를 내며 걸었다.

그 발소리에 혹시나 오늘 밤,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까 벌벌 떠는 년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터벅터벅.

라이룽이 첫 번째 첩의 방문 앞까지 걸어가자, 호롱불에 비친 그림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버둥거렸다.

라이룽이 그 방을 지나쳐 두 번째 첩의 방문으로 걸어가자, 그 방에 비친 그림자를 보아하니, 두 번째 첩은 이미 방문을 보며, 이마를 땅에 짚고 있었다.

순종적인 척을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자가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라이룽은 그렇게 두 번째 첩의 방도 지나친다.

그리고 발걸음을 멈췄다.

세 번째 첩의 방.

타이 랑이 있는 방 앞에 섰다.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호롱불에 비치는 그녀의 그림자는, 앞선 두 계집과는 다르게 그저 묵묵히 앉은 모습만을 비추고 있었다.

그래, 이래야지.

라이룽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방문을 열었다.

/내 아기 새, 오늘 하루는 즐겁게 보냈나?/

/글쎄요, 당신의 낯짝만 보지 않았다면 즐겁지는 않아도 역겹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새하얀 얼굴.

아주 가늘어서 조금만 힘을 줘도 부러질 것 같은 팔뚝에는 붕대로 부목이 고정되어 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 라이룽에게 타이 랑은 혐오스럽다는 시선을 가리지 않으며 매우 날이 선 폭언으로 응수했다.

/하나밖에 없는 지아비 아니냐, 오랜만에 얼굴을 비췄건만, 우리 아기 새는 무엇이 불만일꼬?/

/글쎄요…? 당신이 길가에 널린 돌 자락에 발이 걸려 세상 추하게 넘어지며 뒤지는 걸 보고 싶어질 뿐인지라…./

/허! 당돌하기도 하지./

건방지다.

그렇기에 좋다.

/오늘은 기분이 아주 좋아, 생각해보면, 아침부터 행운이 따라주는 듯, 즐거운 일 투성이었지./

라이룽은 자신을 곁눈질하는 그녀를 가로질러, 방구석에 있는 장롱으로 다가갔다.

화려한 장식과 고급스러운 원목으로 만든 장롱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안에는, 말하기도 힘들 무시무시한 도구들이 숨죽이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하루는 아기 새의 비명을 들으며 잠드는 것이, 아주 좋을 것 같구나./

흠칫.

타이 랑은 내심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본능적으로 느끼는 소름이 끼치는 감각을 완벽하게 감출 수는 없었다.

/그래….내 아기 새의 손톱을 어여쁜 분홍빛으로 물들여볼까…./

라이룽은 갖가지 예리한 바늘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아니면 그 새하얀 등을 물들여볼까…./

길다란 밧줄에 수많은 칼날들이 부착된 채찍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래, 비명을 지른다면 이게 좋을 것 같아./

/힉…!/

마침내, 라이룽은 장롱 속 흉흉한 물건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인두.

본디 주름진 옷을 피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지만, 타이 랑의 눈에는 너무나도 끔찍한 고문 도구였다.

/호오….이제야 그 눈이 움츠러드는구나….실로 호쾌해!/

/아...아아….서...서방님! 제...제가 잘못했어요…! 제...제발 그것만은…!/

금방까지만 해도 부동자세였던 타이 랑의 허리가 굽혀지고,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오들오들.

그녀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라이룽의 가학적 본능 꿈틀거리게 했다.

라이룽은 그런 타이 랑의 간절한 부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의 중앙에 있는 화로에 인두를 푹 집어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룽이 인두를 꺼내자, 인두의 끝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자, 준비는 끝났고.../

/시….싫어….! 저...저리가!/

벌겋게 달궈진 인두를 들고 미소를 짓는 라이룽을 피해 뒷걸음질을 쳐보는 타이 랑이지만, 비좁은 방에서 그녀가 도망갈 곳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가만히 있어!/

/꺄악!!!/

라이룽은 한 손에는 달궈진 인두를 들고, 남은 한 손으로 쓰러진 타이 랑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이...이거 놔아!/

/이것이...!/

/하욱….!/

머리채가 잡힌 타이 랑이 발버둥을 처대자, 그것이 거슬렸던 라이룽은 그녀의 아랫배를 세게 걷어찼다.

/크...하…!/

/후, 이제야 멈췄군./

갑작스러운 고통에 타이 랑은 그대로 엎어져,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고 헐떡거렸다.

/자….이제 우리 아기새가 어떻게 지저귀는지 볼까….?/

치이익.

/꺄아아아아아아악!!!!!!!!!!!/

매섭도록 뜨거운 인두가, 그녀의 여린 허벅지를 거침없이 지졌다.

마치 핏물이 새어 나올 것 만 같은 비명이 집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아무도 소리 내는 자가 없었다.

타이룽 집안의 인간들은 그저 눈길을 돌리고 귀를 막았으며, 두 첩은 자신이 아니길 다행으로 여기며 이불속에 들어가 그들이 겪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도망칠 뿐이었다.

타이룽이 그녀의 살을 지지던 인두를 떼 내자, 인두에는 그녀의 살갗이 약간 달라붙어 있었다.

/아파!아파아파!!!아악!!!!/

절규가 울려 퍼진다.

금방까지만 해도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라이룽을 깔보던 시선을 짓던 그녀의 눈에는 쉴 새 없이 눈물이 새어 나왔다.

아아.

이거야.

자신이 뭐라도 된 것처럼 구는 계집을, 이렇게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짓게 하는 거.

그것이 라이룽의 취미이자, 삶의 원동력이었다.

/흐으으….오...빠….오빠….도와줘….오빠.../

아무도 의지할 수 없는 소녀는,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자신을 지켜주던 사람을 불렀다.

/오빠? 아아~그 한심한 놈팡이 놈?/

타이 랑의 신음이 섞인 중얼거림에, 라이룽은 기억을 더듬는다.

그래, 기억이 났다.

자신이 건넨 돈과 패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이 계집을 다시 데려가겠다던 그 사내.

/그래, 그 한심해 빠진 얼굴은 정말 최고였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천민이란.

모든 것을 잃은 표정을 지으며 발광하던 그 얼굴은 아아….극상의 즐거움이었다.

/백날 울부짖어 봐라! 그 한심한 놈이 널 구해주러 올 것 같으냐? 동화 속 이야기처럼?/

/으힉…!/

라이룽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인두를 대충 집어던지고 고통에 신음하며 얼이 빠져 널브러진 타이 랑의 머리채를 쥐어 잡았다.

/봐라! 네가 이렇게 괴로워해도, 아무도 없다! 그 누가 너를 찾을까? 그 한심한 놈? 이미 네년을 팔아먹고 생긴 돈으로 네가 없는 곳에서 필히 즐겁게 지내고 있을 터!/

그랬다.

지금까지 못쓰게 돼서 버려버린 첩들을 팔아버린 가족이라는 작자들은 다 그랬다.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금화 주머니를 쥐여주니 금세 등을 돌렸다.

이왕 판 거 돈을 더 달라고 하던 놈들도 있었다.

세상이라는 것이 그랬다.

돈이 없고, 가진 것 없는 것들이란, 조그만한 돈에 가족을 팔아댔다.

그리고, 타이 랑이 그렇게 울부짖으며 찾는 그 오빠라는 놈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분명, 그랬어야 했다.

우당탕 쾅!

/음? 무슨 소리야? 한참 재미를 보고 있거늘.../

갑작스럽게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라이룽은 쓴소리를 중얼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크...큰일입니다! 가, 갑자기 나타난 계집이 온 집안을 들쑤시고 있….쿠학!/

/무….뭣?/

그런 라이룽의 호통에, 허겁지겁 달려온 사용인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 사용인은, 금방까지만 해도 그의 눈앞에 있던 사용인은 어느새 마당의 한구석에 굴러다니며 쓰려졌다.

그리고, 그 사용인을 날려버린 사람이 나타났다.

/오랜만이군./

새파란 머리칼을 흩날리며, 갈라진 동공을 들이대는 한 소녀가 말했다.

오늘 하루는 분명 라이룽에게는 행운의 날이었다.

그리고, 하루가 끝이 나 새로운 하루가 찾아왔다.

그날은 라이룽에게 최악의 날이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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