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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8화 〉 한 남매. (208/289)

〈 208화 〉 한 남매.

* * *

하늘을 날았다.

그 무엇도 전부 담을 수 없을 것 만 같은 밤하늘이, 바로 손에 잡힐 것만 같은 감각.

생애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을 받는 창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차갑게 진정시켰다.

/여기로 가는 거 맞아?/

/ㅇ, 예...이 마을이 맞습니다./

잠깐의 논의 끝에, 결국 다 같이 하늘을 날아 타이 창의 여동생이 있다는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반룡인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 스스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었던 창은 본모습으로 변한 백설의 등에 마오와 같이 올라탔다.

날개를 펼쳐 바로 옆을 날던 강하가 묻자, 창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어찌 잊을 수가 있겠어.

그 집에서 내쳐질 때부터, 수십번을 되새긴 곳인걸.

구불구불한 길을 타고 올라가, 마을의 입구가 보였다.

거대한 용이 하늘에서 나타났지만,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미리 백설이 그들을 인지하지 못하게 도술을 걸어 두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을 입구에 도착한 강하 일행은 다시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하하.../

타이 랑.

그 일로부터 약 1년.

창은 드디어 다시금 이 마을에 발을 내딛었다.

휙.

/어? 야! 잠깐만!/

창은 내달렸다.

그 모습에 당황한 강하가 손을 휘저으며 불렀지만, 그녀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경치가 순식간에 휙휙 바뀌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다보니, 어느새 이 마을에서 가장 거대한 저택, 라이룽의 저택의 문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그 저택을 지키는 병사들이 창을 들고 서 있었지만, 백설의 도술 덕분에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창의 모습을 인지하지 못한 채, 시시껄렁한 잡담을 하고 있었다.

/휴...갑자기 달려가서 놀랐네. 여기야?/

/예...맞습니다. 여기에요./

어느덧 뒤쳐졌던 강하 일행들이 서둘러 달려와 물었다.

창의 발에 힘이 실렸다.

당장이라도 이 문을 뚫고 달려가, 랑을 만나고 싶었다.

/그럼, 다녀와./

/…..네?/

그 마음을 알았는지, 강하는 창의 등을 살짝 떠밀며 말하자, 창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왜. 여동생을 구하고 싶다며? 가서 죄다 때려부수고 데려와./

/하...하지만, 그렇게 멋대로 행동해도 되는 겁니까…?/

강하가 무심하게 던진 말은, 창에게 아주 필요한 말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창은 망설였다.

이미 그녀는 자의는 아니었다고 한들, 자신의 무모한 행동으로 왕궁에 큰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 전적이 있는 창이, 자기 멋대로 일을 벌여도 괜찮을까?

그렇게 강하의 떠밈에도 차마 발을 떼지 못한 창에게, 강하가 말했다.

/아직 이해를 못했구나?/

/예? 무엇을….?/

/너, 지금 인간 아니야./

/….!/

그랬다.

인간.

인간의 사회는 아주 철저하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야 하며, 그것을 어기면 아주 큰 불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이 아니다.

반쪽짜리 용이지만, 용이다.

용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의 최상위 포식자.

그런 포식자가 인간의 규칙에 얽메일 필요는 없었다.

본디 용인 백설과 류월, 그리고 창과 마찬가지로 반룡인 강하는. 그런 인간들의 세상에 녹아들어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대치를 피하고, 조용히 살아갈 뿐.

그녀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나라 하나쯤은 순식간에 지도상에서 지워버릴 존재들이었다.

/백설님이 이 집과 바깥의 인지를 차단시킨 결계도 쳐 뒀어. 뭘 망설여? 달려.

아, 그렇긴 하지만 무고한 사람들은 조절하면서 다녀./

다시금, 강하는 그녀의 등을 살짝 밀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는 없지.

창은 천천히 걸어, 백설이 쳐둔 결계의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래서….음? 뭐야??/

/왜? 무슨 일인….저 여자는 뭐지?/

더 이상 그녀에게 걸린 도술이 필요없었기에, 라이룽의 집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창을 보며 놀랐다.

/넌 누구냐! 이 곳은 이 마을에서 가장 거대한 지위를 가진 라이룽의 저택이다! 정체를 밝혀라!/

/뭐야? 또 주인어르신이 첩을 들이는 건가?/

/흥, 주인어르신의 취미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군….아무튼 정체를 밝혀라!/

후우.

심호흡을 한다.

천천히, 천천히 힘을 끌어모은다.

두근 거리며 뛰는 심장박동을 타고, 가슴에서 팔, 다리, 이윽고 전신으로 힘을 퍼트린다.

/아가씨, 이거 안보여? 찔리고 싶은거야?/

/야, 저거 완전히 굳었잖아./

/쯧...귀찮게….어이! 못들었어? 어서 꺼지라니까?/

후우.

다리에 체중을 싦는다.

/나원….야, 니가 가봐./

/에혀...이런 일만 시키지? 아주 그.../

몸이 가볍다.

텅.

무언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

라이룽을 지키던 문지기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금방까지만 해도 자신의 옆에 동료가 있었는데, 눈 깜빡 하는 사이 괴상한 소리와 함께 그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분명 저 발치에 있던 여성이 있었다.

/자...잠ㄲ.../

텅.

금방 들었던것과 마찬가지의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문지기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무슨 일이냐!/

/어….그러니까….엄청나게 예쁜 여자가 갑자기 난동을 부리며 병사들을 날리고 있는뎁...쇼..?/

/….뭐?/

라이룽에게 고용되어 그의 저택을 지키던 사병들은 지금 혼란에 빠졌다.

저택의 입구에서 무언가 기괴한 소리가 들리더니, 한 자리에 모인 자신의 동료들이 눈을 깜빡일 때 마다 담벼락이든 마당의 호수든 어딘가에 박혀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를 한 여성이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분명, 직접 그것을 목격한 병사들 조차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일단 내가 주인어르신에게 가보마! 어떻게든 저 미친계집을 잡아!/

/아니, 말이 쉽지 그게 가능할 리…./

일단, 사병의 대장 위치에 있는 한 병사가 이 말같지도 않은 상황을 라이룽에게 알리기 위해 뒤돌아 달렸다.

분명, 라이룽이라면 그의 첩이 있는 별관에 있을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달릴때 마다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그를 더욱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그 소리가 잠잠해질 무렵, 그는 라이룽이 있는 별관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냐?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바깥이 소란스러운것을 눈치챘는지, 라이룽은 방문을 거칠게 열며 호통을 쳤다.

역시.

방문 사이로 널브러져 흐느끼는 세번째 첩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의 괴상한 취미를 즐기는 도중에 방해를 받아 상당히 화가 난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급한 것이 아니었다.

이 야밤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사태를 그에게 알려야 했다.

/크...큰일입니다! 가, 갑자기 나타난 계집이 온 집안을 들쑤시고 있….쿠학!/

그리고, 병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허공을 가르는 감각을 마지막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

/네...네년은 누구냐! 이...이 몸이 누구인 줄 알고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냐!/

갑작스러운 사태였지만, 라이룽은 정체불명의 침입자에게도 고압적인 태도를 고치지 않았다.

/랑.../

/무...뭐? 네년, 내 첩과 아는 사이더냐?/

하지만 그의 안식처를 침입한 그녀는 그저 멍하니 금방까지 자신이 있었던 방을 바라볼 뿐이었다.

라이룽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히.

감히 네까짓 년이 뭐길래 한밤중에 소란을 일으키는것도 모자라, 자신을 무시까지 하자 그는 화가나 소리쳤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네년이 누구냐고 물었.../

/닥쳐./

풀석.

/….아?/

뭐지?

라이룽은 갑작스럽게 내려간 시선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금방까지만 해도 자신은 그 침입자를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자신의 시야가 그녀의 무릎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다리. 다리가?/

라이룽은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 보았다.

그 다리는 아주 깔끔하게 부러져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금방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고통이, 순식간에 라이룽을 덮쳤다.

그는 자신보다 약한이의 신체를 부숴버리는 것을 즐겼지만, 정작 자신은 단 한번도 다른 상대에게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그의 뇌는 처음느껴보는 고통에 인지감각마저 마비되어 그저 비명만을 지르게 만들었다.

/하아악!!!!끄으으아아악!!!!아파!!!이게 뭐야아악!!!!!!/

/닥치라니까? 안들려?/

/허극…!/

라이룽의 비명을 담아내던 입이, 그녀의 단순한 말 한 마디에 순식간에 닫혔다.

'뭐냐..! 도대체 뭐란 말이냐…!'

보이지 않았다.

분명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계집은 계속 부동자세로 가만히 있었을 터인데, 어째서 자신의 다리가 부러졌는가.

그리고 어째서, 이 계집의 말 한마디에 입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것인가.

의문 투성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했다.

초식동물은, 순간적으로 나타난 육식동물의 흘러나오는 기백만으로도 전신이 멈춰버린다고 한다.

반룡이긴 하나 그녀는 어엿한 용의 힘을 가졌다.

한낮 인간인 라이룽에게는, 그녀의 기백을 떨쳐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렇게 라이룽의 입이 조용해지자, 타이 창은 천천히, 발을 옮겼다.

여동생.

그토록 찾던 여동생이, 고통에 찬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부짓고 있었다.

/아아…..어째서….네가 무슨 죄가 있다고…./

점점 그녀가 여동생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 광경은 더욱 처참했다.

뺨은 벌겋게 부어있었고, 팔다리는 성한 곳이 없었다.

인두로 지진 허벅지는 물집이 잡혀 진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누...누구…?/

랑은, 금방까지만 해도 자신을 보며 즐겁게 미소를 짓던 라이룽이 아닌, 낮선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힘겹게 고개를 올려, 창을 바라보았다.

/아….아아…./

그곳에는.

그저 눈물만을 흘리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한 여성이 있었다.

/….오빠?/

어째서일까?

분명, 처음보는 여자인데.

오빠인 타이 창과는 완전히 다른 여성인데.

어째서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오빠가 떠오르는 걸까.

/어흐윽…! 그래...나야 랑아...오빠야….미안해….많이 늦었지…? 정말...정말 미안해…./

랑의 말에, 창은 후다닥 달려가 랑을 감싸안으며 울부짖었다.

대회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다.

1년 전, 그때 어떤 수를 써서라도 이 집에서 랑을 빼왔어야 했다.

어째서.

네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것일까.

/…..정말로, 날 구하러 와 줬구나….오빠.../

한 남매가 있었다.

남매는 서로를 무척이나 아꼈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오늘 다시금 만나게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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