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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9화 〉 인과응보. (209/289)

〈 209화 〉 인과응보.

* * *

“어우....화려하게도 해놨네.”

강하는 수많은 병사들이 널브러진 라이룽의 마당을 슬쩍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장성하기 그지없는 병사들이 하나같이 가을철 낙엽처럼 이곳저곳 쓰러져 있었다.

그래도 전부 골골대며 신음을 내거나 기절만 했을 뿐, 목숨에 지장은 없었다.

자신의 여동생 일을 생각하면 조금 심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힘 조절을 잘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주범.

/하그으으윽....! 어....어째서 이런일이...!/

라이룽은 부러진 두 다리를 끌어안으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앓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분명, 오늘 아침만 해도 그는 행운의 사나이였다.

뭐 하는 족족 잘 풀리고, 뭐든 원만하게 흘러갔다.

특히, 오늘 잡은 건은 아주 거대했기에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인가.

정체불명의 계집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온 집안의 사병들을 전부 쓰러뜨리고, 자신의 두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의 머리로는 전혀 현 상황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흠. 이 새끼인가..../

그러던 중, 한 소녀의 목소리가 그의 귀를 간질거렸다.

/누...누구야! 네년은 또 뭐야!/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린 라이룽이 목소리의 근원을 찾으니, 한 소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밝은 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소녀는 가볍게 콧김을 내고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아아....괜찮아...? 내가 늦어서 미안해.../

/아냐....나...난 괜찮아..! 오빠가 와 줬잖아...!/

상처투성이 얼굴로 밝게 웃어 보이는 소녀.

저 아이가 바로 창의 여동생 랑이었다.

팔다리는 피에 젖은 붕대투성이에 머리는 산발 머리, 특히 그녀의 허벅지에서 나는 끔찍한 냄새.

말 그대로 만신창이었다.

저런 몸 상태라면 당장 쓰러져도 모를 판국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보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오라버니를 위로하고 있었다.

자신이 알던 오빠가 아닌, 여성의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이 여성이 창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던 오라버니의 눈과 똑 닮았으니까 말이다.

“이런 짐승만도 못한 개새끼가.....”

/뭐...뭐라? 뭐라 하는 것이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본 강하는 자신의 아래에서 버둥거리는 라이룽에게 험악한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한의 언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라이룽은 뜬금없는 민위어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했냐고? 이걸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끄아아아아악!!!!!!!/

그런 라이룽의 얼빠진 얼굴에 더욱 화가 난 강하는 이미 창이 부러뜨려 이상하게 뒤틀린 그의 다리를 다시금 힘껏(다리가 잘리지 않도록 조절해서) 짓밟았다.

/부그르르르르..../

금방과는 전혀 비교하지 못할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그는 입에는 개거품 물고, 바지에 오줌을 질질 새며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어머....상태가 많이 심각해 보이는구나...”

강하와 마찬가지로 랑의 상태를 본 백설이 그들의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누...누구...?/

/걱정하지 마, 내 은인 중 한 분이란다./

창의 품에 안겨있던 랑은 자신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는 백설을 보며 묻자, 창은 그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심시켰다.

“많이 아팠겠구나, 이젠 괜찮아.”

/흣...!/

그녀의 앞으로 다가간 백설은 무릎을 꿇어, 그녀의 전신을 어루만졌다.

백설의 손에서 백색의 빛이 발하더니, 이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 뭐...뭐야? 하나도 안 아파!/

순간 그 광채에 흠칫 놀라 눈을 감았던 랑이 다시금 눈을 뜨자, 그녀를 괴롭히던 수많은 상처들과 흉터들이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아....제 목숨을 살려주신 것도 모자라, 제 여동생까지....정말 감사합니다....!/

/고, 고맙습니다...!/

“음...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괜찮아~”

와.

랑은 자신의 상처를 고쳐준 백설이 마치 신처럼 느껴졌다.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백옥같은 새하얀 피부에, 자애로운 미소, 순식간에 자신을 고친 신비한 도술까지.

그야말로 여신 같은 분위기였다.

/고...괜찮으세요...?/

그러던 사이, 강하의 뒤편에서 우물쭈물 눈치만 보던 마오가 창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 너로군. 다행히 이분께서 도와주셔서 괜찮아. 너는 이 일과 전혀 상관이 없는데, 신경 써줘서 고맙군./

/아, 아니에요! 비록 저를 납치하시기는 했지만, 창씨는 정말 좋은 사람인걸요!./

/....뭐?/

금방, 내 앞의 아이가 뭐라고 한 거지?

/오...오빠? 나...납치를 했다고?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우..우붑...!/

랑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해실해실 미소를 짓고 있던 마오에게 다가와 그녀를 힘껏 끌어안으며 창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자...잠깐! 뭐...뭔가 오해가 있다!/

그 분위기에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고 느낀 창이 서둘러 일어나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납치를 했어? 안 했어?/

/.........그렇기는 하다만.../

하지만, 그녀의 질문이 너무나도 정론인데다가, 창은 여동생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순순히 대답했다.

/헉...! 오...오빠가 이렇게 조그마하고 귀여운 여자아이를 납치하다니....! 난 그런 오빠 둔 적 없는데!/

/아니다! 그러니까....별 수 없이...! 내...내 말 좀 들어다오!/

창의 대답에 질린 기색을 보이며 마오를 끌어안은 채로 살짝 뒤로 물러나는 랑.

/설마....내가 없는 사이 오빠가 여자가 된데다가, 이상한 성벽까지 생겨버리다니....이를 어쩌면 좋아....흐흑...!/

/오...오해라니까?! 제발 이 오라비 말 좀 들어다오!/

급기야 랑이 눈물까지 보이자, 창은 어찌해야 할 줄 몰라 쩔쩔매고 말았다.

“.......나는 저 아이들의 말을 들을 수 없는데, 저건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

그리고 그 상황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류월은 저 두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강하에게 슬며시 물었다.

“뭐, 재미있어 보이니까 잠시 놔두자고.”

원래 남매는 서로 장난도 치고 하면서 노는 법이지.

그렇게 창은 어언 1시간이나 굽실대며 변명을 늘어놓아야만 했다.

그런 창의 변명을 듣는 내내, 랑은 그녀 몰래 웃음을 지었다.

*

/자, 그럼 이 새끼를 어떻게 할까?/

/읍...! 으읍...!/

대충 상황 정리가 끝이 나고, 강하는 자신의 앞에 꽁꽁 묶인 라이룽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당에 널브러진 병사들은 한데 모아 백설의 도술로 기절시켜두었으니, 당분간 일어나지는 못할 터였다.

/....흥, 꼴 좋네. 그렇게 무시하던 계집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니 기분이 어때? 응?/

/푸하...! 이...이 빌어먹을 년이...! 감히 이 몸을 건들이고도 곱게 넘어갈 것 같으냐!? 네년은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그런 라이룽을 싸늘하게 바라보던 타이 랑이 그에게 다가와 재갈을 풀어주며 모멸적인 심정을 담아 비꼬자, 그는 눈가에 핏줄이 잡힐 만 큼 크게 발악했다.

/입. 입. 입./

/으학! 읍!/

/그 빌어먹을 입 좀 다물지 그래? 열 때마다 썩어빠진 악취가 진동하잖아./

전신이 묶이고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그 치졸한 입을 놀렸기에, 랑은 그의 입을 연신 두들기며 입을 막았다.

/창, 너는 어쩔 생각이냐?/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하는 옆에 서 있는 창에게 물었다.

/저는, 당장이라도 이 놈의 사지를 찢어, 짐승의 먹이로 던지고 싶습니다만....저는 여동생의 판단에 따를 생각입니다./

그렇게 담담하게 말하는 창이었지만, 그녀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여동생을 그렇게 만들었으니, 그럴 만했다.

랑이 1년 동안 살던 방을 둘러보며 발견한 장롱에 든 물건을 발견한 창은 당장이라도 죽일 것처럼 그를 두들겨 팼으니, 말 다했다.

그래도 그렇게 쉽게 죽일 수는 없었기에, 백설에게 부탁해 딱, 목숨이 간당간당할 정도로만 치료해 주었다.

/저....이게 무슨 일인지.../

/랑...? 랑 너니? 이게 다 뭐야...?/

랑이 계속해서 라이룽을 두들겨 패는 사이, 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라이룽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해온 첫 번째, 두 번째 첩들이었다.

그녀들 역시 랑 만큼 상처투성이였기에, 백설이 미리 치료를 끝내어 주었다.

/언니들....!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죠...? 이젠 괜찮아요! 이분들과 제 오빠가 도와줬어요!/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랑이 창의 팔뚝을 잡으며 말했다.

같은 처지였던 그녀들은 라이룽이 없어도 언제나 그녀들을 감시하는 눈이 있어, 방 안에만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눈들을 피해 몰래몰래 만나며, 서로의 처지를 격려하고, 버텨왔다.

/오빠...?/

/저 여자가...네가 언제나 말하던 그 오....빠?/

그들은 랑이 언제나 말하던 오빠를 바라보며 경악했다.

분명, 눈매 부분이 닮기는 했지만, 창의 모습은 여성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도 언니들,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아요? 오빠, 부탁해./

/알았어./

창의 모습에 당황하던 그녀들에게 달려간 랑이 그녀들의 손목을 잡아끌고, 라이룽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거면 되겠니?/

/응, 딱 좋아./

/저...저건...!/

/힉..!/

랑의 부탁에 잠시 자리를 비운 창은 자신의 몸보다 두세 배는 더 큰 거대한 장롱을 이고 나타났다.

그렇다.

지금까지도 그녀들을 괴롭힌 도구들이 잠들어 있는 장롱이었다.

/언니들은 어떤 걸 쓸래?/

/.....꿀꺽.....!/

/하...하하...당연한 걸 왜 물어보니...? 당연히, 다 써야지./

그녀들은 떠올린다.

날카로운 채찍이 가녀린 그녀들의 등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것을.

그녀들은 기억한다.

뾰족한 바늘이 고통스럽게 그녀들의 손톱을 갈라놓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움직인다.

긴 세월 동안 뼈저리게 느낀, 그 고통을 전해주기 위해.

사용법?

그녀들의 트라우마와 기억이 바로 사용설명서였다.

그렇게, 라이룽은 짧지만, 영겁의 시간 동안 고통받았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다.

백설이 바로 옆에서 고통은 크게 느끼는 도술을 걸고, 목숨을 부지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재보를 쌓아 올리던 대상인 라이룽.

그는 현생에서 지옥을 맛보고, 그렇게 지옥으로 떨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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