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 (조금늦은)빼빼로데이 특별 외전편!
* * *
"이놈의 낙엽은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네…."
강하는 연신 굽혔던 허리를 펴며 중얼거렸다.
세월이 가고, 계절이 바뀌듯이.
한의 나뭇잎들도 형형색색 아름다운 옷들을 껴입는 계절이 끝나가고 있었다.
여름에 비하면 하늘도 맑고, 선선한 날씨도 좋았지만, 끝도 없는 낙엽 덕분에 오늘도 강하는 빗자루를 잡았다.
뭐, 굳이 강하가 마당 쓸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일손이야 자신 말고도 있고, 시키면 되는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당장 손님도 없고, 할 것도 없었기에 스스로 나서서 마당을 쓸고 있었다.
그런데 이 주막을 지을 당시, 이 주막을 내렸던 향종은 이왕 짓는 거 크게 지어주자 마음먹었고.
그 결과 2층짜리 거대한 저택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넓은 마당과 나무도 덤으로 심어주었다.
나무를 심어주는 것은 좋았다.
분위기를 잘 돋보여주고, 가끔 머리를 정리하러 마당에 나와 나무 아래에 앉아 쉬는 것도 좋았다.
근데, 은행나무 비율….너무 높지 않아?
가을이 되니까 본격적으로 열매를 맺고, 바닥으로 떨어뜨리니까 냄새가 장난 아니었다.
물론, 잘 익은 은행 씨를 불에 구워서 안주 삼아 먹는 재미도 좋긴 하다만….
무슨 똥내가 장난이 아니었다.
"에휴….그래도 가을이 다 지나가는 구나…."
현대에 있었을 땐, 이맘때쯤에 엄청 바빴던 날이 하나 있었는데….
"뭐였더라….? 일단 커플이 많았고….죄다 달달한 것들을 시켰는데…"
끝나가는 가을, 커플, 달달한 것.
무언가 생각날 듯 말 듯….
"......아! 그거다!"
강하는 빗자루질까지 멈추고 끙끙대며 기억의 단편들을 뒤져보자, 그 키워드가 무엇을 떠올리는지 금세 알게 되었다.
"빼빼로데이! 그거였다!"
*
빼빼로데이.
11월 11일을 의미하는 기념일로써, 빼빼로의 얇은 과자 모양이 11을 연상케 한다고 하여 유명해진 날이다.
물론 정부에서 지정한 기념일이 아니고, 한 제과 회사의 기막힌 마케팅으로 오늘날까지 유명해진 기념일이다.
빼빼로데이가 언제부터 유명해졌는지는 아직 자세한 것은 모르나, 일본에서는 한국보다 먼저 포키*(일본의 빼빼로 닮은과자) 데이 라는 것이 존재했고, 그것을 본 관련업종 제과 회사가 한국에서 마케팅했고, 그것이 히트를 쳐 유명해졌다는 가설이 유력했다.
11월 달만 되면 점점 편의점이든 마트든 죄다 빼빼로를 모아두기 시작했으며, 당일에는 빼빼로를 사서 소중한 사람한테 전하는, 밸런타인데이 비슷한 날로 취급하고 있다.
이런 날에는 역시 커플들이 빠질 수가 없었으며, 실제로 이 당시 때쯤 커플들이 강하의 가게에 몰리고는 했다.
그 덕에 평상시보다 바빴으며, 직원들 또한 서로 빼빼로를 직접 만들거나 사서 나눠주곤 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우리도 한번 만들어 보자! 이거지."
한가로운 주막의 홀에는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강하의 열변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빼빼로데이가….뭐에요…?"
"빼빼로…? 그거 맛있는 거냐?"
"긴 세월을 살아왔지만 그런 날은 처음 들어보는 구나…"
하지만, 정작 주막 직원들의 반응은 좀 애매했다.
빼빼로데이는 결국, 현대의 기념일.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인 한에는 애초에 빼빼로가 뭔지도 모르니 반응이 시큰둥할 수 밖에.
"형….아무리 그래도 우리밖에 모르는 걸 갑자기 들이밀어 봐도…"
"음...역시 이렇구나...."
강하와 마찬가지로 현대에서 온 혁수만이 유일하게 빼빼로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럴 줄 알고 미리 예시 품을 만들어 보았지!"
허나 강하는 이미 수를 써 두었다.
강하가 미리 준비한 베일에 싸인 은쟁반을 들어, 천을 들어내자, 형형색색으로 만들어진 수제 빼빼로가 모습을 보였다.
"우와….엄청 길쭉하고 예쁘네요….!"
"오오…! 이건 초콜릿이라는 것 아니냐! 참 달고 맛있지!"
"어머, 아까 화덕에 무엇을 굽는가 했더니, 이것이었구나? 참으로 얇은 과자네."
"우와! 이거 정말 신기하네요?"
"맛있겠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무리 말로 설명해 봐야 한 번 보여주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강하였기에, 미리 예시 품을 만들어온 것이다.
일반적인 오리지날 빼빼로만이 아니라 수많은 바리에이션이 있기는 했지만, 저마다의 빼빼로를 만드는 것을 보고 싶었기에, 강하는 일부러 바탕인 오리지널만 선보였다.
"이제 이걸 직접 만들어서, 평소 좋아하던 사람이나 소중히 여기던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거야. 어때? 재미있겠지?"
"좋아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인가…"
"혁수씨! 혁수씨는 어떤 빼빼로가 좋으신가요?"
"....이젠 숨길 마음은 전혀 없구나…."
"어머나~ 아주 좋은 날이구나? 재미있겠어~!"
강하가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는 날이라고 하자, 어느새 직원 중에는 저마다 달아오르는 뺨을 감추며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베이스로 사용할 초콜릿과 토핑, 과자는 미리 준비 끝냈으니까, 바로 만들어 보자!"
"""예에!!""
그렇게 스타 주막에는 빼빼로 열풍이 돌기 시작했다.
*
"보자….이쯤되면 다 했으려나…?"
은은한 커피 향이 남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강하는 중얼거렸다.
주막 직원들이 어떤 식으로 만드는지 옆에서 일일이 보고 싶긴 했지만, 괜히 끼어들었다가 눈치를 주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강하는 커피 한 잔과 미리 만들어 놓은 빼빼로를 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이미 빼빼로는 다 먹었고, 커피잔도 비었다.
그럼 한번, 보러 갈까?
"욥, 다 만들었어?"
주방으로 들어가 대충 주변을 살펴보자, 직원들 전원 모두 자신의 앞에 놓인 빼빼로를 꾸미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자….혁수! 잘 만들었냐?"
강하는 제일 가까이 있던 혁수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망했어.."
"어우...참….뭐…"
혁수는 울상을 지으며 자신이 만든 빼빼로가 담긴 접시를 강하에게 내밀어 보였다.
과자에 초코가 정돈되지 않고 덕지덕지 붙어서, 완전 만신창이었다.
"하긴….넌 뭘 해도 잘했지만, 요리는 젬병이었지…?"
"분명 조심스럽게 했는데….이것 참…"
잡다한 가구들은 요령 좋게 만들던 혁수였지만, 이상하게 요리에는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
"괜찮아요! 아무리 모양새가 이상하다고 한들, 저한테는 아주 맛있게 느껴질 테니까요!"
"매...매화씨…!"
그렇게 망친 빼빼로를 보며 침울한 상태에 있는 혁수에게 다가온 매화가 밝게 웃으며 위로해주었다.
"아, 주모! 이거 어때? 잘 만들었지?"
"오~ 괜찮은데?"
매화는 강하를 보더니 자신이 만든 빼빼로를 선보이며 자신 있게 웃었다.
그녀의 빼빼로는 아주 매끈하게 만들어 아주 맛있어 보였다.
"잠만, 그나저나 이 하얀 가루는 뭐야?"
"아아~ 내가 엿을 좋아하잖아? 그래서 엿을 잘게 부숴서 토….그...뭐더라….?"
"토핑?"
"아 응! 맞아! 토핑! 토핑으로 만들었지! 어때?"
매화가 만든 빼빼로의 토핑은 잘게 부순 새하얀 엿이 올라가 있어서 더욱 맛있어 보였다.
"그럼 다음은 누구일까….향이?"
"앗…! 아...안돼요! 지금 보면 안 돼…!"
다음 타자로 향이에게 다가간 강하였지만, 향이는 어느새 자신이 만든 빼빼로를 숨기며 허둥지둥 당황했다.
"저...저는 나중에 따로 보여드릴게요…"
"뭐...그래! 아쉽지만 그렇게 말한다면야 뭐…."
향이의 거센 거절에 강하는 입맛만 다신 채로 다음 타자에게 다가갔다.
"힐라? 어때? 잘 만들어 가?"
"음? 아씨? 그럼요! 어때요? 제 걸작이에요!"
"오…..오?"
강하의 물음에 힐라는 허세 가득 들어간 어깨를 보이며 강하에게 자기 빼빼로를 선보였다.
그래.
굉장하긴 했다.
그런데...이게 과연 빼빼로가 맞을까…?
힐라가 만든 빼빼로는, 얇은 빼빼로를 마치 젠가처럼 쌓아서 통나무집을 만든 모양이었다.
대단하긴 대단한데….이건 완전 예술…?
가끔 일류 파티시에들이 과자로 집을 만들던 기억이 난 강하였다.
다음은…..
"벼루! 어때? 재미있어?"
"네! 만드는 것도 간단해서 즐거워요!"
벼루의 빼빼로는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가 만든 빼빼로 같았다.
여러 가지 다양한 토핑이 가득 올라간 빼빼로는, 누가 봐도 정성이 가득 들어간 빼빼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분발해야겠는데? 응?"
"무….무슨 소리인지…?!"
강하는 뒤로 돌아 파렌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하자, 파렌은 화들짝 놀라며 중얼거렸다.
파렌의 빼빼로는 마치 공장에서 만든 것처럼 간격을 재고 만든 것처럼 세련되 보였다.
"저쪽은 정성가득이던데….응?"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파렌은 씁쓸하게 웃었지만, 그 눈에 열정이 가득 깃들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보자….류월은 어떻게….으힉?!"
"오! 왔느냐!"
류월의 밝은 미소와는 다르게, 강하의 표정은 경악으로 가득 찼다.
그래.
막대에 초콜릿을 바른 음식.
그게 빼빼로지.
빼빼로이기는 한데…
그것은, 빼빼로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류월은 거대한 바게트에 초콜릿을 가득 바르고는, 그 위에다가 수많은 토핑을 얹은 빼빼로를 만들고 있었다.
"그….그건?"
"하하! 보거라! 저런 조그마한 막대와는 완전 다른 것 아니더냐! 나 혼자 다 먹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먹보 도마뱀은 환하게 웃었다.
어찌 보면 류월에게는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빼빼로임은 맞았다.
참 못 말린다니까…..
"마지막은….오...잘 만드셨는데요?"
“우후후~ 그렇게 말해주니 참 기쁘네~”
마지막으로 살펴본 빼빼로는 바로, 백설이 만든 빼빼로였다.
주막의 디저트 담당인 그녀의 실력이 여한 없이 드러난 빼빼로는 다크, 화이트, 그리고….
“분홍색이네요?”
“응~ 이왕이면 예쁜 색도 좋을 것 같아서, 분홍빛 꽃잎들을 모아서 색을 내 봤는데, 괜찮니?”
그녀는 그녀 방식대로 초콜릿을 어레인지해서 만든 핑크빛 빼빼로는 마치 봄날의 과자 같았다.
역시 용은 용.
긴 세월 동안 얻어온 지식 덕분에 새로운 지식도 빠르게 습득하고 자신이 스스로 개조도 할 정도가 되었다.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다.
“자! 이제 다 만들었으면 예쁘게 마무리하고 전해주고 싶은 상대에게 전해주도록 합시다~!”
그렇게 주막의 빼빼로데이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
“후….그래도 낮 동안 쓸었다 보니까 얼추 정리가 됐구나.”
늦은 밤.
강하는 홀로 마당을 돌아다니며 낮 동안 깔끔하게 치워진 바닥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다.
“빼빼로….인가.”
가끔, 현대의 시절이 그리워지고는 한다.
오늘도, 굳이 할 필요도 없었던 빼빼로데이를 언급한 건, 그 그리움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슬슬 돌아가서 자야지.”
그렇게 씁쓸하게 웃으며 잠자리에 들던 찰나.
“여기 계셨네요?”
“응? 향이? 아직 안 자고 뭐해?”
살짝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하가 뒤를 돌아보니, 찬 바람에 상기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낮에 있었던 일 말이에요….”
“낮이라면….빼빼로?”
향이의 말에 강하는 오늘 낮을 떠올린다.
그래, 분명 향이는 완성된 빼빼로를 나중에 보여준다고 했는데…
“저….잘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받아주시겠어요?”
“나?”
“...네!”
향이는 그렇게 말하며 작은 나무접시를 내밀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빼빼로가 예쁘게 올라간 나무 접시.
“이건….”
“그….사실 백설님께 몰래 부탁해서 어떻게 만드셨는지 물어봤거든요…”
그렇게 말한 향이의 빼빼로는 낮에 백설이 보여준 것처럼 화이트 초콜릿이 각가지 색에 물들어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을 내고 있었다.
“강하 도령님이 말씀하셨죠…? 빼빼로데이는….소중하거나 사랑하는 사람한테 마음을 전하는 날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향이는 접시를 내밀며 수줍게 웃었다.
“받아주세요…..”
“아...응….”
그런 향이의 압박에 무의식적으로 그릇을 잡아 든 강하.
“.........”
“.........”
그리고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침묵이 둘을 감싸 휘감기 시작했다.
“저…! 저는 내일도 일해야 하니까….먼저 들어가 볼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어? 어어….잘자…”
그 공기를 결국 버티지 못한 향이는 몸을 돌려 후다닥 달려 나갔다.
“...빼빼로...인가.”
그러고 보니, 빼빼로데이라고 해 봤자 언제나 다 같이 돌려서 받는 빼빼로만 받았구나.
나를 위해 만든 첫 빼빼로.
강하는 천천히 접시 속 빼빼로를 하나 집어,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오독. 하는 소리와 함께 달콤한 초콜릿과 바삭한 과자가 씹혀졌다.
“....달달하네…!”
빼빼로는, 그런 강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우 달콤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