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탕수육으로 알아보는 붕당정치.(1)
* * *
한.
500년 전, 세 나라의 큰 전쟁에서 승리한 초대 왕, 청란이 세 나라를 규합하고 새로 세운 나라.
500년이라는 세월 동안 크고 작은 일이 있어도, 현재는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평화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나랏일에 제 한 몸 불태우는 자들이 있다.
"오늘 안건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하루에도 수많은 안건들이 올라오고, 그 일들을 해결하는 나랏님들은 오늘도 수많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어떻게 해야 이 나라가 더욱더 좋은 나라로 성장할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며 고민한다.
벼슬을 받아 높은 지위에 있다면, 응당 그 지위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할 터.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그들 또한 인간.
기계처럼 일만 할 수는 없다.
쉬기도 하고, 밥도 먹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마침 큰 안건도 끝난 상태.
아직 해도 중천에 떠 있고, 저마다 출출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겠는가.
"다들 허기가 질 텐데, 오늘도 `그것`은 어떻습니까?"
주위를 살피던 이 대감은 허기진 배를 부여잡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좋소. 최근 들어 그 맛에 빠져버린 터라, 집에서 먹는 밥보다 이 시간을 더욱 기다리고 있다네."
"나도 마찬가지일세."
"좋지!"
그런 이 대감의 제안에 그들 또한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의견에 찬성한다는 뜻을 내보였다.
"알겠소, 그럼 곧바로…."
모든 의견이 찬성을 뜻하자, 이 대감은 곧바로 종이 한 장을 꺼내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럼, 부탁하마."
순식간에 붓을 휘갈기던 이 대감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써 내려 간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어, 창가로 향했다.
그곳에는 작은 새장과 다리에 작은 통을 매단 새가 한 마리 있었다.
이 대감은 새의 다리에 달린 통에 들어갈 만큼 종이를 접어, 그대로 통 속으로 종이를 집어넣더니, 이내 새장 속에 있던 새를 꺼내 창밖으로 날려 보냈다.
갑갑한 새장에서 나온 새는 자신의 날개를 길게 펼치며 상공을 활공하며 그대로 자유로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가 새장을 떠난 지 얼마나 지났을까.
기다림.
곧 도착할 그것에 기대감을 부풀기도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할 이 순간이 지겹기도 한 그런 시간.
이 대감을 비롯한 다른 대감들 또한, 좌석에 앉아 그저 기다리기만 할 뿐.
그 순간.
"실례하겠습니다."
"""오오오!"""
그들의 한 줄기 광명과도 같은 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크, 크흠…! 그래! 어서 들어오시게!"
순간의 흥분을 가라앉힌 이 대감이 근엄하게 들어오라 말하자, 문이 열리며 목소리의 주인공이 모습을 보였다.
"주문하신 짜장면과 탕수육.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푸른 머리칼을 휘날리는 여성, 타이 창 이었다.
그렇다.
그들이 기다리고 기다린 그것은 바로, 요즘 스타 주막에서 대인기인 요리, 짜장면이었다.
본디 스타 주막은 가게에서만 손님을 받고, 배달 시스템을 차용하지 않았다.
허나, 나랏일을 하는 그들이 점심시간에 궁을 자주 비우자니, 그것도 문제였다.
그렇기에 강하는, 한을 위해 고생하는 그들을 위해, 궁궐에만 배달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일손도 늘었기에 배달도 할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확실히, 배달인 만큼 스타 주막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보단 그 메뉴의 가짓수가 적기는 했지만, 그들에게는 충분했다.
그리고 배달원인 창.
배달이야 궁에서 하인을 보내도 되지만, 창 스스로가 자신이 배달을 맡겠다고 자처하고 나섰다.
그녀의 신체는 반룡인으로써, 스타 주막과 거리가 상당히 있는 궁궐이지만, 아주 짧은 시간 만에 다녀올 수 있었다.
그리고 창 그녀 스스로가 도움이 되고 싶었기에 나선 것이다.
확실히, 배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창 정도면 얼마 걸리지도 않았기에 강하는 창의 부탁을 수락한 것이다.
창은 조심스레 품에서 작은 구체를 하나 꺼냈다.
검게 물든 구체에 창이 손을 대자, 그 자그마한 구체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이 담긴 그릇이 속속 빠져나와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배달을 한다고 해도, 그 많은 요리는 어떻게 옮길 것인가.
그 해결법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강하의 구체를 빌리는 것.
강하가 생성한 구체는 수많은 사용법이 존재했는데.
그중 바로, 다양한 물건들을 수납, 보관, 그리고 배출이 자유자재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강하 또한 자신이 개인적으로 챙겨 둔 향신료나 조리기구들을 구체 속에 넣어놓고 다녔다.
창 또한 강하와 마찬가지로 반룡이기는 하나, 아직 반룡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구체 자체가 강하의 특기와 마찬가지였기에, 창은 구체를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강하가 구체를 빌려주어, 이렇게 수월하게 배달일을 해낼 수 있었다.
"그럼, 즐거운 식사 되십시오."
모든 음식을 내놓은 창은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스타 주막은 언제나 바쁘고, 그렇기에 서둘러 돌아가 도움을 줘야 했다.
허나, 대금은 어찌하는가.
궁에서 배달 및 음식비는 곧바로 계산하지 않고 장부에 적어놓는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그동안 기록된 장부 금액을 한꺼번에 계산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자, 그럼 기다리는 것도 지쳤으니, 어서 들도록 하시지요."
"크흐…! 이 향기, 참으로 훌륭하군! 요즘 이 짜장면을 먹는 낙에 살고 있소."
"김 대감도 그렇습니까? 저 또한 이 짜장면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고, 그에 비해 훌륭한 맛과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니, 참으로 좋은 요리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앞에 놓인 짜장면을 바라보며 저마다 말을 주고받으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이렇게만 보면, 아주 훈훈하고 좋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비극은 이제 시작된다.
"자, 그럼 탕수육도 먹을 준비를 해야겠지요?"
"탕수육도 좋지!"
"바삭한 튀김옷에 쫄깃한 고기, 그리고 새콤달콤한 소스가 참으로 맛있지요."
짜장면과 함께 온 탕수육.
이왕 짜장면도 만들었는데, 탕수육이 빠지면 섭섭하다고 생각한 강하가 후다닥 만든 신메뉴였다.
그렇게 만들어 낸 탕수육은 짜장면과 아주 훌륭한 궁합이었기에, 짜장면을 배달할 때면 언제나 탕수육도 시키는 것이 그들만의 약속이었다.
"자, 그럼 소스를 붓겠습니다."
그리고, 탕수육에서 빠지면 안 되는 새콤달콤 소스가 담긴 그릇을 든 이 대감이 탕수육이 담긴 그릇으로 가져가기 시작할 무렵.
"잠깐. 설마 이 대감….소스를 `부으시려는` 겁니까?"
그런 이 대감을 멈춰 세우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강 대감이었다.
"그렇습니다만….문제라도 있습니까?"
갑작스럽게 자신의 행동을 멈춰 세운 강 대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 대감이 물었다.
"당연한 말 아니오!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버리다니! 그렇게 되면 탕수육의 장점 중 하나인 바삭한 튀김옷이 눅눅해지지 않습니까!"
허나, 강 대감은 그게 말이냐고 따지듯이 이 대감에게 자신의 발언을 밑받침할 근거를 대며 그를 말렸다.
"허허. 강 대감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모양입니다.
자고로 탕수육은 소스가 핵심.
새콤달콤한 소스가 튀김옷에 배어들어, 그 맛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이 바로 탕수육입니다. 그렇다면 강 대감은 설마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드시는 겁니까?
이런 세상에….그렇게 되면 소스가 충분히 배어들지 못해, 맛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할 텐데…."
허나 이 대감 또한 강 대감의 말을 반박하며 소스를 부어야 하는 근거를 대었다.
"이것 참, 이 대감. 이 대감은 탕수육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도 부족한 모양입니다."
"허허, 강 대감. 강 대감의 급진적인 생각은 잘 알겠으나.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에 반발하실 정도로 마음이 급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뭐, 뭣이라? 금방 말 다했소?"
"다 했습니다만?"
"이, 이러언!"
처음에야 사근사근 이어가던 그들의 대화는 점점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긴….탕수육은 바삭해야 제맛이거늘, 소스를 부어버리면 그 매력이 반감되는 것은 당연지사…..그리 당연한 것을 어찌 이리 싸운단 말이오?"
"잠깐, 최 대감. 그게 무슨 소리요? 자고로 탕수육은 소스를 부어야 제맛이거늘….으잉 쯧쯧…"
이 대감과 강 대감의 싸움이 점점 격해지자, 두 사람의 의견에 서로 동의하는 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 멈추시게. 소스를 부으면 어떻고 찍어 먹으면 어떻소? 맛있게 먹으면 제맛 아닙니까? 이런 것으로 언성을 높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만…"
점차 발언이 격해지자 그것을 지켜보던 한 대감이 싸움의 중재를 맡으며 그들을 말리기 시작했으나.
"그게 무슨 말이오! 소스는 당연지사 부어야 하는 것.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한 저들이야말로 언성을 낮추고 배움의 모자람을 부끄러워해야만 하오!"
"뭐라? 이런 통탄할지고...이렇게 생각이 부족한 자들이 나라를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니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구려."
이미 불이 붙어버린 그들을 말리기에는 부족했다.
"소스는 부어야 한다!"
"아니 찍어야 한다!"
"소인은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 좋습니다만…."
"금방 간장에 찍어 먹는다고 한 미친 작자는 누구냐!"
"사파다! 이건 용서할 수가 없다!"
그렇게 궁궐의 대감들 사이에서는 부먹과 찍먹으로 붕당이 일어나게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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