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 ???:탕수육으로 알아보는 붕당정치.(2)
* * *
“으음.....”
한은 여전히 평화롭다.
허나, 이 평화로운 나라의 뒷면에서는, 언제나 나라를 지탱하는 자들이 있기에, 오늘도 한의 사람들은 배를 곯지 않음에 감사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자들을 이끄는 자.
한의 주인이자 왕인 향종.
그는 요즘 들어 껄끄러운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반란의 기색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라에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일어날 것도 아니다.
대신들은 오늘도 열심히 일하며, 나라를 지탱한다.
그런데, 대신들의 기류가 조금, 아니 많이 수상했다.
“자자, 오늘도 고생이 많구려. 내 그대들의 노고를 잘 알기에 오늘 식사는 그대들도 잘 아는 주막의 음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네만, 그대들도 괜찮소?”
대신들의 안건을 받아 적은 서류를 내려놓은 향종이 앞에 앉은 대신들에게 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출출하기도 하고, 그 곳의 음식 또한 향종이 좋아하는 음식이기에, 요즘 들어 스타 주막의 음식을 배달시키는 일이 많아졌다.
대신들도 스타 주막의 음식을 좋아하고, 그들의 어색한 기류를 식사로 풀어보고자 그들에게 제안했던 것이다.
허나.
“전하, 송구하오나 어떤 음식을 시킬 예정이신지....?”
향종의 말에 이 대감이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흐음....그렇군, 그렇다면 오늘은 짜장면과 탕수육 어떻소? 상당히 맛이 좋아 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네.”
“그렇습니까......전하, 전하는 혹여, 탕수육을 ‘찍어’ 드시는 것은 아니신지요...?”
“.....뭐라? 그게 무슨....?”
계속해서 미소를 보이던 향종은 이 대감의 질문을 잠시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금 되물었다.
탕수육의 소스야 부어서 먹든, 찍어서 먹든.
그냥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걸 왜 물어보는 것이지?
“소스를 ‘찍어’ 드시지는 않으신 것인지 물었사옵니다. 전하.”
“허허....그런 질문은 당황스럽군. 탕수육을 먹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고, 먹을 때마다 다른 법. 찍어 먹을 수도 있고 부어서 먹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 대감은 어찌 그런 질문을....”
“저언하아! 저 미친 작자의 말을 듣지 말아 주시옵소서!”
하지만 어떻게든 평정을 유지하며 최대한 중립적으로 대답을 하던 찰나, 이 대감의 맞은편에 앉은 강 대감이 책상을 쾅! 소리가 나도록 치며 말했다.
“이 대감, 자네의 기괴하고 역겨운 취미를 감히 하늘과도 같은 전하께 강요하는 것인가!? 이 얼마나 한탄스러운가! 전하! 저 자의 말을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사옵니다! 탕수육은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 당연한 이치. 그런 이치를 깨부수고 파탄적 인 것을 들이미는 이 대감을 부디 극형에!”
“어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전하께서 자네와 같은 미천한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소스는 당연히 부어서 먹어야 하는 법! 감히 소스를 찍어 먹는 작자가 더 이상 입을 열 필요가 없다!”
결국, 두 대감은 서로 언성을 높여 가며 싸움을 시작했다.
“이...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자네들, 설마 고작 소스를 찍어 먹는 것과 부어서 먹는 것 정도 가지고 이렇게 싸운단 말인가...?”
그리고, 이 광경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향종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간악하기 짝에 없는 ‘찍’인들 같으니! 감히 전하가 있는 곳에서 탕수육을 능멸하다니!”
“‘부’인들은 그 입을 다물어라! 탕수육은 찍어서 먹는 것이 당연하거늘.....그대들의 혀가 맛이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 같은 인간으로서 너무나도 수치스럽다!”
“크흠....그러니 자네들도 나와 같이 간장에 찍어서 먹으면...”
“사파는 입을 다물라!”
“그...저...자네는 좀....빠져있게....”
“간장도 맛있단 말일세!”
허나 향종의 한탄에도 점차 격해지는 싸움.
“전하, 저는 도저히 저 찍인 들과 겸상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만 퇴청*(??:근무를 마치고 관청에서 물러 나오는 것)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내가 해야 할 소리일세! 크흠!”
결국, 그들은 향종이 꺼낸 식사 제안을 거절하고는 빠르게 퇴청하고 말았다.
“........허어......”
그렇게 텅 비어버린 방에서 향종은 쓸쓸하게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
태양이 지고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늦은 밤.
여기는 스타 주막.
늦은 밤이지만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이 주막을 찾았으니.....
“그러니까.....이 나라를 이끄는 대신들이, 탕수육 소스를 찍어야 한다는 것과 부어서 먹어야 한다는 파로 갈려져서, 지금 개판이라는 소리....라는건가요?”
“참, 과인이 말한 말이지만, 어처구니가 없구나.”
향종은 술잔에 술을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현재, 궁궐은 소리 없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탕수육 소스는 부어야 한다는 ‘부’인들의 대표, 이 대감.
탕수육 소스는 찍어야 한다는 ‘찍’인들의 대표, 강 대감.
수많은 대신들이 두 파로 나뉘어, 매일같이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인인 향종이기는 했지만, 결국 대인들도 저마다의 파급력이 높은 자들이 많았기에, 향종의 입장으로서는 누구 말이 옳다. 누구 말이 틀렸다. 라고 함부로 지적하기도 힘들었다.
매일같이 싸우는 두 파 덕분에 업무에도 차질이 생기고 수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게 참....내가 살던 곳에서도 말이 많았던 일이기는 하지만......이 논쟁이 이렇게까지 커지는 건 처음이네...’
강하가 살던 현대에서도 부먹과 찍먹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과업이었다.
본디, 탕수육은 튀겨낸 탕수육을 뜨거운 웍에 소스와 같이 ‘볶아’내는 요리다.
갓 볶아낸 탕수육의 튀김은 볶아내었다 해도 바삭하고 맛있는 맛이 매력이었다.
허나, 한국은 배달 문화가 발달 되면서 탕수육을 볶아내어 배달하게 되면 이내 식어버렸기 때문에 소스를 따로 배달하게 되었고.
그렇게 부먹과 찍먹이 나누어지게 된 것이다.
“그대는, 무언가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있는가?”
“으음....글쎄요...? 저도 이건 좀....”
향종의 물음에도, 강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논쟁은, 강하가 막 한으로 오기 전, 현대에서도 해결이 되지 않았던, 리만 가설, 다이어 추측, 양 밀즈 가설과 맞먹을 정도의 미증명인 논쟁이었기에, 강하 또한 둘 중, 무엇이 맞는지 결론을 낼 수 없었다.
“너희들은 어때?”
“난 역시 찍먹이지!”
“전...부어서 먹는 편이 좋아요. 눅눅해진 튀김에 배어든 소스가 취향이라...”
“찍어서 먹습니다.”
“저는 소스 없이 먹어요.”
“이 몸은 뭐든지 다 좋다!”
“흐음....글쎄에...크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난 부어서? 바삭한 것도 좋지만 부드러운 식감도 좋더구나.”
“....이렇듯 저희 주막에서 일하는 이들의 취향도 각기 달라서....뚜렷하게 말할 수가 없군요....”
“허어...이것 참...”
향종은 자신의 눈 앞에 놓인 탕수육을 한 점 집어 들면서 중얼거렸다.
어떻게 먹든, 맛있기만 한 이 음식이, 이렇게나 궁궐을 소란스럽게 만들다니....
“....정했다. 이대로 이 일을 방치시킬 수는 없다.”
그래, 가뜩이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이런 일로 균열이 일어난다면, 선대 왕님들을 볼 면목이 없다.
향종은 마음속으로 큰 결심을 하며 탕수육을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
다음 날.
“향종 전하가 무슨 일이실고....”
향종은 전 대신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이 자리에 모여 준 대신들에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과인이 그대들을 불러 모은 이유를 말하도록 하겠다.”
“그래...요즘 대신들 사이, 탕수육을 부어서 먹느냐, 찍어서 먹느냐. 이 주제로 논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오오...전하께서 드디어, 전하의 취향을 밝히실 예정인게로군!”
“전하께서는 당연히 ‘찍’인들의 편에 서시겠지!”
“전하는 역시 ‘부’인 들의 손을 들어줄 것임이 틀림없다!”
향종의 말에, 대신들은 저마다의 기대를 부풀리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과인은 고민했다. 과연 탕수육은 어떻게 먹는 것이 맞는 것일까? 부어서? 찍어서?”
“역시 부어서 먹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되옵니다!”
“아닙니다! 탕수육은 찍어야 합니다!”
향종의 중얼거림에 결국 또다시 소리를 높이는 부먹파와 찍먹파.
“그리고, 답을 찾아내었다.”
“.......꿀꺽!”
“과연...!”
향종은 잠시 침묵을 지키자, 수많은 이들이 침을 삼키며 이어질 대답을 기다렸다.
“음식이란, 만드는 이에게 감사를 표하고,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예?”
그리고, 그 대답은 두 파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대답이었다.
“보게! 탕수육을 주문하면, 어째서 따로 그릇에 소스를 담아 주는가. 만약, 만드는 이가 부먹을 좋아한다면 미리 부어서 건네줄 것이고, 찍어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면, 이렇게 큰 그릇에 소스를 담아주지 않을 터.”
“그...그건...?!”
“그렇기는 하옵니다만....”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배달이 되는가, 그것은 바로. 그대들의 취향에 맞추어 먹으라는 배려가 있기 때문일세!”
“““?!?”””
“그렇지 않은가. 탕수육을 만든 자(강하)는, 그대들의 취향을 배려하여 소스를 담아주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먹는 이인 우리는, 그 배려를 감사히 여기며 자신의 취향에 맞게 먹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파를 나누어 싸우면, 예를 중요시하는 우리의 입장이 어떻게 되는가!”
“그...그런 뜻이...!”
“허어....내 그런 깊은 뜻을 모르고 언성을 높였던 것이 부끄럽소...”
향종의 말에, 대신들은 편을 나누어 싸웠던 기억에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대립은 그만두고, 서로의 취향에 맞추어 먹자는, [탕]평책을 이 자리에서 선언하겠노라!”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의 대립은 멈추고, 평화를 이어가도록!”
그렇게 향종의 입에서 나온 탕(수육)평책에, 대신들은 박수갈채를 그에게 보내었다.
*
탕평책이 선언된 이후, 대신들은 더 이상 대립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궁궐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배달 음식에 치킨이 추가되고, 그들은 프라이드 vs 양념으로 또 다른 논쟁이 시작되리라고는, 그때의 대신들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