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5화 〉 창의 하루. (215/289)

〈 215화 〉 창의 하루.

* * *

타이 창.

그, 아니 그녀는 원래 남자였다.

평범하디 평범하던 그의 인생은,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아마, 제일 거세게 꼬인 것은 바로, 그녀를 만난 일. 일 것이다.

청룡.

청룡은 타이 창을 이용해 꼭두각시로 만들었고, 그 부작용으로 반룡인의 신체와 성별이 바뀌게 되었다.

그 뒤로도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녀는 현재, 본디 자신이 살던 화련을 떠나, 한의 스타 주막에서 일하고 있다.

이것은, 그런 그녀가 스타 주막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는가.

그런 이야기다.

*

/......! 벌써 아침인가./

눈부신 아침햇살에 눈을 찌푸린 창이 벌써 그렇게 됐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원래 같았다면 지금쯤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겠지만, 창은 이미 깨어나 있었다.

반룡인의 신체는 잠을 자지 않아도 전혀 문제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언제나 밤을 새우며 강하가 직접 만든 레시피 북을 보며 요리 공부에 푹 빠져있었다.

/슬슬 씻고 준비를 해야 할 터....그 전에.../

주막의 아침은 상당히 빠르기에, 곧 나가서 개점 준비해야 했다.

창은 읽고 있던 책을 덮고, 뒤를 돌아보았다.

/쿠울.....음냠냠...../

/.....너무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 거 아닌가.../

그곳에는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차고, 배를 까며 쿨쿨 잠들어 있는 한 소녀, 마오 슌이 있었다.

화련의 요리 대회 우승자이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소녀.

그녀 역시 창을 따라 스타 주막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라면 창과 마오는 따로 다른 방을 써야 했지만. 방이 모자라기도 했고, 마오가 혼자 잠들기 무섭다고 칭얼거리는 바람에 창과 마오는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뭐, 창도 어릴 적엔 여동생과 같이 잠들기도 했고, 마오는 어릴 적 여동생과 조금 닮은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무방비했다.

상당히 나이를 먹은 소녀가, 이렇게나 정돈되지 않은 옷차림으로 잠들어 있으니....

비록, 창이 현재 여자가 되었다고 한들, 본디 남자였다.

이렇게 마오가 칠칠치 않은 모습을 보일 때마다, 창은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봐./

/으음.../

/이봐. 일어나라. 개점 준비를 도와야지./

/으으.....아빠...조금만 더 잘래애.../

/.....!/

깊이 잠들어 있는 마오를 흔들어 깨우자, 마오는 흔들던 창의 손을 꼬옥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일어나라./

/아얏!/

갑작스러운 상황에 굳어버린 창은, 다른 손가락을 꺼내 마오의 이마에 딱밤(당연히 힘 조절 해서)을 놓았다.

/아, 좋은 아침이에요 창님..../

/그래. 하지만 그 전에, 옷부터 제대로 입어라./

/어라....? 헤헤, 죄송해요./

딱밤을 맞은 충격에 벌떡 일어난 마오는 헤헤 웃으며 창을 바라보았다.

/자, 어서 씻고 와라. 개점 준비를 해야 할 터./

/아, 네에!/

창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마오는 서둘러 몸을 씻으러 방을 나섰다.

*

“좋은 아침입니다.”

“아...안뇽하세오!”

“오. 두 사람. 잘 잤어?”

깨끗이 몸을 정돈한 두 사람이 주방으로 내려가자, 두 사람을 반기는 한 소녀가 있었다.

밝은 갈색의 땋은 머리와 작은 키.

치켜진 눈매와 활기찬 말투.

이 주막의 주인, 강하는 식재료가 담긴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제가 들겠습니다.”

“어? 아냐아냐, 이미 다 왔어.”

그 상자의 크기가 상당해서, 그녀의 얼굴이 거의 가려질 정도였기에, 강하를 도우려고 했던 창이었지만, 강하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녀 역시 창과 같은 반룡인.

이 정도는 솔직히 한 손으로도 가뿐하게 들 정도였으니.

“그보다도 주방 쪽부터 도와줘.”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강하는 창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과 마오는 강하의 말대로 주방으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아, 일어나셨네요? 마오도 안녕?”

“향이 안뇽!”

주방으로 들어선 두 사람을 반기는 사람은 앞치마를 입고 식칼을 든 채로 식재료를 전처리하는 향이었다.

향이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면서도 손을 전혀 쉬지 않았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저희는 뭘 도우면 되겠습니까?”

“음....채소들 밑 준비는 거의 끝났으니까...마오는 육수를 만들어 주시고....창 씨는 힐라 언니를 도와주시겠어요?”

이미 산처럼 쌓인 채소들의 껍질을 전부 벗기고, 용도에 맞게 손질을 끝낸 향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두 사람에게 말했다.

향이는 강하와 창처럼 반룡인도 아니었지만, 그녀의 손은 인간의 한계를 돌파할 정도의 실력이었다.

“응! 육수는 내가 할레!”

“알겠습니다.”

마오는 특히 국물을 내는 것이 특기였기에, 가슴을 펴며 대답했다.

창은 그런 마오를 놔두고, 주방을 떠나 제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례합니다.”

그렇게 두터운 제빵실의 문을 연 창.

“파렌! 2번 화덕 불 세기는 어때?”

“완벽합니다!”

“좋아, 그럼 바로 빵 반죽 넣는다?”

뜨거운 열기와 웅웅거리는 소리.

그리고 두 사람의 고함이 제빵실을 가득 채웠다.

“응? 창? 여긴 무슨 일이야?”

“주방은 밑 준비가 거의 끝났기에, 도우러 왔습니다.”

그러던 와중, 입구에서 시원한 공기가 들어와서 고개를 돌아본 힐라가 창을 발견하고 물었다.

“벌써 끝났어?”

“뭐, 향이가 있으니까 벌써 끝났겠죠. 저도 여기서 일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향이의 손놀림은 아직 따라가기 벅차다니까요?”

힐라의 중얼거림에 끼어든 파렌이 푸념하듯 늘어놓았다.

파렌은 가끔, 향이가 인간이 맞는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였다.

“뭐, 마침 잘 됐다! 그럼 이 완성된 빵들 좀 트레이에 담아서 주방으로 가져다줄래?”

“예. 알겠습니다.”

힐라의 부탁에 창은 트레이에 빵들을 가득 싣고 주방으로 향했다.

“으음....맛있는 냄새가 나는구나...”

“일어나셨습니까?”

그때, 누군가가 코를 벌름거리며 창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먹물 같은 칠흑의 머리칼을 휘날리는 한 소녀.

류월이었다.

아직 여성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모자란 발육의 류월이었지만, 그녀의 정체는 위대한 흑룡이었다.

“음! 그것 갓 구운 빵이구나! 그것참 맛있어 보이는구나....”

“....하나 드시겠습니까?”

“좋지! 너는 눈치가 빠르구나! 하하!”

그런 위대한 흑룡이, 고작 갓 구운 빵 하나에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마구잡이로 빵을 먹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런, 류월아. 손님들께 나갈 빵을 먹으면 어쩌니?”

“으...고...괜찮다! 이렇게나 많이 있지 않으냐! 하나쯤은, 괜찮아!”

그런 류월을 가볍게 타박하는 한 여성의 등장에, 순간 목이 막힌 류월이 캑캑거리며 대답했다.

새하얀 눈 같은 아름다운 머리칼을 가진 여성.

백룡, 백설이었다.

“그래, 그거 하나만 먹고, 어서 개점 준비하러 갈까?”

“....그...하나만 더 먹으면...”

“안 돼.”

“으아앙...! 배고프단 말이다....!”

그렇게 백설은 류월을 끌고 사라졌다.

“........”

신화에서나 나오던 용들이 저런 모습이라는 것에 조금 김이 새기는 하지만, 인간들 사이에서 친숙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

“배달 다녀왔습니다.”

청룡은 자신이 빌렸던 강하의 구체를 꺼내며 말했다.

“아, 다녀왔어? 뭐래? 이젠 안 싸워?”

“예, 이젠 안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런 창의 등장에 강하는 헐레벌떡 다가와 물었다.

창이 배달하는 궁궐.

그 궁궐은 최근 탕수육을 부어서 먹느냐, 찍어서 먹느냐로 인해 대신들의 싸움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창의 입장에서는 고작 소스 가지고 나라를 이끄는 대신들이 편을 가르는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그만큼 강하의 요리가 맛이 있다고 생각하니 의외로 납득이 가고 말았다.

뭐, 오늘은 서로 사이좋게 받아가는 것을 보니 이제 그러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그래? 이제 배달에도 새로운 메뉴를 넣어볼까 하거든, 치킨이 어떨까?”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치킨.

바삭한 튀김옷에 쫄깃한 닭고기가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만약 치킨도 배달한다면, 아마 한 번 배달할 때마다 음식의 양이 폭등할 것 같았다.

“그래, 고생했어. 오늘 장사도 거의 끝나가니까. 좀 쉬어.”

“괜찮습니다. 저도 돕도록 하겠습니다.”

*

어느덧 해가 지고 달이 뉘엿뉘엿 올라오는 시간.

오늘 하루의 일과를 끝낸 창은 방으로 돌아와, 아침에 읽던 레시피 북을 마저 읽고 있었다.

/으하....오늘도 바빴다..../

/고생했다./

/창 님 도요.../

그러던 중, 방문이 열리더니 녹초가 된 마오가 몸을 추욱 늘어뜨린 채로 방에 들어왔다.

“어서 씻고, 쉬고 싶네요....그래도 여긴 좋아요! 엄청 큰 욕탕도 있고!”

마오는 떠올린다.

상당히 거대한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워 전신을 담그는 것은, 언제나 좋았다.

마오가 살던 집은, 욕조가 없었기에, 마오는 내심 목욕 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창 씨는 안 씻나요?/

/......나중에 씻을 것이다./

/.....씻는 것 맞나요?/

/......!/

마오의 날카로운 물음에 창은 몸을 움찔거렸다.

그렇다.

창은 아직, 자신의 알몸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부담스럽다.

한평생을 남자로 살았는데, 갑작스럽게 여성이 되었다.

여성의 알몸을 본 적도 없는 건전한 삶을 살다가, 처음으로 마주한 것이 자신의 알몸이라니, 너무나도 수치스러웠다.

왜 가슴은 이렇게 큰 건지.

엉덩이는 왜 이렇게 씰룩대는지.

목욕할 때마다 점점 정신에 흠집이 가는 것 같아, 창은 의도적으로 씻는 것을 조금씩 피하고 있었다.

물에 적신 수건을 옷 안으로 집어넣어 닦아가면서, 청결은 어떻게든 유지는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같이 들어갈까요?/

/무....뭐뭐뭣? 갑자기 무슨 소리..!/

그런 창에게 같이 씻자고 하자, 창은 화들짝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목욕은 좋다고요? 그리고 설마, 몸도 씻지 않고 손님들이 먹는 재료를 드시는 건 아니겠지요...?/

/아...아니...그러니까.../

마오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던 창은 어버버 거리며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찾았다.

하지만.

/그러니까, 가죠?/

/자...잠ㄲ..../

그런 틈을, 마오가 허락하지 않았다.

마오는 어느새 붙잡은 창의 손을 이끌고, 욕탕으로 향했다.

*

목욕을 끝내고 나온 마오의 밝고, 생기가 넘치는 얼굴과는 다르게, 창의 얼굴은 죽상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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