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 강하. 그녀가 미슐랭 셰프인 이유.(3)
* * *
"자, 먼저 생선 요리입니다."
덜그럭 소리가 나며 파렌이 그들의 앞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응…? 생선….요리? 이게?"
"뭐냐? 생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 않으냐!"
"이건….?"
직원들은 자신의 앞에 놓인 요리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파렌은, 이번 요리는 바로 `생선 요리`라고 말했다.
허나, 그들의 접시에 올라온 이것은.
"생선이 아니라 황금색의 덩어리?"
"으음….뭘까?"
생선이라면, 그 형태가 남아있거나, 아니면 생선 살이 보여야 했다.
그런데 이 요리는, 마치 거대한 금괴가 떡하니 올라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차, 이 요리의 이름을 말해드리지 않았군요?"
그런 상황에 황당해하는 직원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파렌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감자로 싸서 구운 적도미요리와 바질 페스토 드레싱.(Pan Seared Red Snapper Wrapped in Potato and Basil Pesto Dressing)이랍니다?"
"감자…?"
"잠깐! 이걸 자세히 봐주시죠. 감자의 향이 나는군요."
파렌의 말에 앞에 놓인 요리를 자세히 살피던 창은 흠칫 놀라며 말했다.
그저 황금색 덩어리라고 생각했던 그 요리의 겉면은, 마치 실처럼 늘어진 감자들이 얽히고설킨 형태였던 것이다.
그렇다.
이 요리는 바로, 감자를 실처럼 뽑아내어 적 도미살을 감싸낸 요리다.
이 손질법을 갱친다*(갱치다:감자나 양파, 오이 등을 회전채칼을 이용해, 실처럼 뽑아낸다는 조리용어) 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뽑아낸 감자로 적도미를 감싸, 기름을 두른 팬에 한 번 구워내고, 마무리로 화덕에 넣어 바삭하게 익혀낸 요리입니다."
"오호라~과연. 이제야 이해가 가는구나."
"아하! 이건 저번에 애슐란으로 갈 때, 강하 아씨가 만든 그...피쉬앤 칩스? 처럼 생선 겉 부분에 무언가를 감싸놓은 거구나! 신기하다~"
"흥미롭군요, 저희 화련에서의 생선 요리는 찌거나 굽거나, 튀겨내는 요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형태를 남겨놓아 생선처럼 보이게 만들죠. 간혹 어탕*(생선 살을 발라내어 경단 모양으로 빚어낸, 어묵과 비슷한 것.)처럼 첫눈에 알아보기 힘든 생선 요리도 있지만, 역시 나라가 다르면 식문화가 달라지는 모양입니다."
"이건….대다내요! 감자를 이런 방쉭으로도 쓸 쑤 있따니...배울게 점점 많아져오!"
그런 특이한 요리방식에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은, 화련의 요리사 2인방이었다.
"그나저나, 이 초록빛 소스는 뭐야?"
"뭔가….우리 숲 근처에 있는 늪지대 같네…."
"이 향은….뭔가 익숙한데?"
그리고, 그 요리의 접시를 장식한 소스.
짙은 초록빛을 내는 소스가 그들의 눈길을 끌었다.
"아, 그건 바질* 페스토*입니다. 여러분들이 자주 먹는 음식에도 들어가는 허브라서, 입맛에는 맞으실 거예요."
(바질:허브류의 일종으로 피자 및 수많은 양식 요리에 사용되는 향신료.)
*(페스토,pesto:이탈리아어로 찧는다는 페스타레:pestare 에서 파생된 언어로, 주로 바질을 찧거나 갈아서 각종 견과류와 향신료를 넣어서 만든 소스이다.)
"바질이라면….그 나뭇잎 같은 거구나~ 그걸 갈아내니 더욱 향이 짙어지는 것 같네~"
"난 저번의 고기가 많이 들어간 빨간 소스가 좋다!"
"미트소스 말씀이신가요?"
"그래! 그...미투...뭐시기!"
"하하. 그래도 이번 요리도 마음에 드실 겁니다! 저와 향이가 셰프님께 며칠을 갈구...아니 교육받으며 만든 소스니까요!"
파렌은 며칠간의 기억을 떠올린다.
`불이 세! 이러면 소스가 탄다!`
`누구야! 이렇게 익히면 육질이 굳잖아!`
`자, 넌 누구지?`
`바...바보 샌드위치입니다…`
`그렇지, 바보니까. 내가 하나하나 다.시. 자세하게 알려주마.`
보통 때와는 전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하고 세세하게 하나하나 집어내어 문제가 있을 때마다 미친 듯이 갈굼 당했다.
소스 하나, 장식 하나,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완벽을 추구하며 만든 강하의 요리는, 그렇게 두 사람에게 스며들었지만, 심신은 이미 피폐한 상태였다.
"큭….! 이날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소스를 만들고, 검사받고, 혼났는지…"
파렌은 그렇게 혼잣말하며 몰래 찔끔 새어 나오는 눈물을 숨겼다.
"그럼, 먹어볼까?"
"기다리느라 지쳤구나!"
"맛있겠다!"
그렇게 그들은 나이프를 들어 올렸다.
"우와…! 잘 익은 생선의 향기…!"
나이프를 이용해 생선 요리를 가르자, 새하얗게 잘 익은 생선 살 사이로 향긋한 향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음..! 으음…! 감자가 고소하고 바삭해…! 짭조름한 맛도 좋아!"
"어머나~ 생선 살이 엄청 부드럽네~! 입에 넣자마자 녹아버려….!"
"오! 바질 페스토는 이런 맛이구나! 진한 허브향에 달콤하고, 부드럽게 입에 착착 감겨!"
그렇게 맛본 생선의 맛에 감탄한 직원들.
그리고.
`세...세상에…! 생선엔 비린 향이 전혀 나지 않으면서도 촉촉하게 익혀냈어…! 이 얼마나 섬세한 불 조절이지?`
`이 앙념, 정말로 환상적이네요…! 분명 화련의 사람들에게는 이국적이고 특색있는 양념이지만, 어째서인지 입에 착착 감겨요…! 들어간 건 아마...꿀! 꿀이 들어가니 은은하게 달콤하면서 감칠맛이 올라가는 거군요! 그 밖에도 다양한 견과류가 고소하고 진한 맛을 내어 훌륭한 맛이 나네요…! 역시 강하 아가씨는 괜히 심사위원이 된 게 아니었어…`
차마 감탄사조차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창과 마오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감탄했다.
그야말로 자신들이 먹어본 요리 중에서는 완벽한 생선 요리였다.
"자자, 다들 드셨으면 물로 입을 한 번 헹구어 주세요, 드디어. 고기 요리가 나옵니다!"
어느덧 비운 접시를 치우던 파렌의 뒤에서, 마지막 메인 요리를 들고 오는 향이의 모습이 보였다.
"구운 오리가슴살과 오렌지향의 비가라드 소스.(PanRoast breast of Duck with Bigarade Orange Sauce) 입니다."
"오리고기! 오리고기 인가오..?!"
"음, 이번에는 저희에겐 친숙한 요리군요."
이번에 나온 요리에 가장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역시 창과 마오였다.
"오리고기? 닭과 비슷한 것인가?"
"예, 저희 나라에서 오리고기는 상당히 유명한 요리입니다. 천황 폐하도 드시는 요리 중 하나죠."
화련에서의 오리고기는, 특히 우리가 아는 베이징 덕이 유명했다.
먼저 잘 손질한 오리의 배에 물을 채워, 훈연 방에서 익혀준다.
겉 부분은 뜨거운 훈연 방의 열기에 껍질이 바삭해지고, 안쪽은 미리 넣어둔 물이 끓으면서 쫄깃하게 익혀준다.
다 익힌 오리고기는 대롱을 이용하여 살과 껍질 사이에 공기를 넣어, 층을 만들어 준다.
이렇게 만든 베이징 덕을 손수 조리사가 해체해서 여러 가지 야채들과 싸 먹는 요리이다.
특히 껍질의 맛이 환상적이라, 베이징 덕은 껍질을 먹는 요리. 라는 말도 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히 오리고기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가슴살 인가오...가슴살은 퍽퍼캐서 얼마나 잘 익히는 것이 문재인데…"
"흠...껍질보단 살에 집중된 요리군….과연…?"
그렇게 모두들 기대를 하며 한 입. 요리를 맛보았다.
".....쫄깃...해? 어떻게 가슴살이 이렇게나 쫄깃한 맛이 나지?"
조류의 가슴살은 대부분 단백질이 많아, 조금만 많이 익혀도 금세 퍽퍽해지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이 고기는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혀, 훌륭한 식감을 내었다.
"와...고기에서 운은하게 채소향이 나요!"
이번 오리고기는 한번 팬에 익힌 다음, 셀러리, 양파, 당근 등. 각종 채소를 고기 밑에 깔고 화덕에 은은하게 구어, 고기 전체에 채소의 향이 깊게 스며들어있었다.
"이 소스...달짝지근하면서도 뭐라...말하기 힘든 씁쓸한 맛? 이 나서 너무 맛있다!"
진홍빛 소스를 맛본 힐라가 긴 귀를 파닥거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소리쳤다.
비가라드 소스.(Bigarade)
프랑스의 전통적인 브라운 소스로서, 보통 오리고기와 함께 나올 만큼 오리고기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소스이다.
소뼈로 우려낸 브라운 스톡과 오렌지 제스트, 캬라맬 설탕. 그리고 브랜디로 만들어낸 소스는 새콤달콤하면서 브라운 스톡의 농후하고 진한 맛, 캬라맬의 쌉싸름한 맛이 합쳐진 훌륭한 소스이다.
그렇게 그들은 환상적인 코스 요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즐길 수 있었다.
*
"후…."
스타 주막의 마당 구석.
강하는 담뱃대를 들어 끽연을 피우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쌀쌀한 바람이 그녀의 콧등을 빨갛게 달궜다.
"여기 계셨습니까."
"아, 창인가? 여긴 무슨 일이야?"
그런 그녀를 찾아 헤매던 창이 강하를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이번 요리, 정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완벽한 요리였습니다."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힘 좀 쓴 보람이 있는걸?"
창의 꾸밈없는 밝은 미소에, 강하는 힘없이 웃어주었다.
"그나저나, 참 궁금합니다."
"뭐가?"
"과연, 셰프님은 어디서 그런 실력을 쌓으신 겁니까?"
"어디...서?"
"예, 궁금합니다. 그런 요리 실력을 기른 곳이라면, 분명 훌륭한 곳이겠지요."
"어디서...라…"
강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펼쳐진 광경.
고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모두들 숨 돌릴 틈 없이 움직였다.
뜨거운 불길에 손을 델 뻔하기도 하고.
실수한 신입이 부주방장에게 욕을 먹기도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힘든 생활이었다.
요리가 좋아서, 내가 만든 것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좋아서 선택한 길.
그 길은 무척이나 험했다.
처음 1년은 팬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전처리만 주구장창.
간신히 노력하여 얻어낸 첫 자리는 소스 담당.
농도가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고막이 터질 것 같이 욕을 들었다.
갈굼도 많았다.
힘들어서 담배도 배웠다.
참, 힘들고 지치고, 고생만 가득했던 곳.
그곳이, 오늘따라 상당히 그리워졌다.
그리고 강하는 천천히 눈을 뜬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창의 모습 너머의 우뚝 서 있는 스타 주막의 건물.
"......비밀이야."
그렇게 말하며 강하는 웃었다.
*
감자로 싸서 구운 적도미요리와 바질 페스토 드레싱.(고놈 이름 참 길다.)입니다.
직접 먹어본 평가로는. 일단 감자가 정말 맛있습니다!
길고 얇은 감자는 금새 바삭해져서 짭짤한 게 완전...어우...
그리고, 이번 요리를 만들면서 처음 맛본 바질 페스토였는데, 완전 제 취향!
강렬한 바질 향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구운 오리가슴살과 오렌지향의 비가라드 소스. 입니다.
이 요리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요리인데요.
프랑스에서 오리고기가 나온다면, 이 비가라드 소스가 당연히 따라와야 할 정도로 이 둘의 궁합은 찰떡궁합이라고 합니다.
고놈 참 맛있겠다....
아무튼, 독자님들 댓글로 추천 받은 것 중 하나인 코스 요리를 이번 편으로 사용했습니다.
강하가 뛰어난 요리인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본 직업은 전문 양식 요리사. 라는 것을 다시금 알려드리기 위한 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다음 편에는 또, 어떤 요리가 나올지.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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