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그녀의 마음을 알고싶어.(1)
* * *
오늘도 평화로운 스타 주막.
웬일로 오늘은 손님도 뜸해서 일찍 문을 닫아, 직원들은 때아닌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서로의 방에 들어가서 쉬거나, 홀로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실력을 기르기 위해 맹연습하거나.
그리고, 우리 스타 주막의 주인이자 주방장인 강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푸웁…!!!!"
그녀가 머금은 커피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며 테이블과 정면을 가득 적셨다.
"우왁! 셰프님….!"
"커...커흑…! 어우 미안...순간 당황하는 바람에 뿜어버렸네."
그리고 그 정면에 있던 파렌은 그의 밝은 금발의 머리칼에서 뚝뚝 떨어지는 커피를 대충 털어대며 중얼거렸다.
"그..그래서, 금방 했던 말. 진짜...야?"
마찬가지로 입가에 묻은 커피를 쓱쓱 닦아낸 강하는 파렌을 바라보며 금방 들었던 말이 사실인지 물었다.
그 질문을 들은 파렌은 이내 몸을 배배 꼬며 자꾸만 입을 달싹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예…! 저, 벼루에게 고백할 겁니다!"
당당한 고백 선언이었지만, 이내 그의 얼굴은 마치 홍당무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크...크흠…! 그, 그래...둘 사이가 그렇고 그런 건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가 있어?"
확실히, 애슐란에 갔을 때부터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가끔 주막이 쉬는 날이면 둘이서만 어딘가 놀러 가던 일도 잦아졌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열정 넘치는 사랑 고백은 이 나이 먹고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사랑의 설렘을 모르는 강하에게는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불안합니다…."
강하의 물음에 고개를 푹 숙인 파렌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힘없게 대답했다.
그렇다.
벼루는 언제나 싹싹하고, 친절하고, 예쁜.
그야말로 어디 부족함 없는 여자아이.
그렇기에 파렌 뿐 만이 아니라 그녀를 노리는 남정네들의 수도 상당했다.
그럴 때마다 벼루는 웃는 미소로 칼같이 거절하기는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자꾸만 커져갔다.
만약, 자신보다 훨 잘난 남자가 그녀에게 고백해서, 벼루가 그 고백을 승낙하기라도 한다면….!
"....아마 저는 혀 깨물고 죽을지도 몰라요…."
"그...그러냐…? 근데 벼루는?"
"아, 새로운 붓을 산다고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당분간은 여기 없어요."
그렇기에 파렌은 조금이라도 빨리, 벼루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결정하고 싶었다.
"그럼 고백하면 되는 거 아냐? 왜 이렇게 죽을상이야?"
"그게 문제라서요…..고백 했다가, 거절당하면 어쩌죠…?"
파렌의 고백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그의 심장을 옥죄어 오는 것이다.
"...그러면 저는 혀 깨물고 주막의 지붕에서 떨어질지도 몰라요…하하."
".....우리 주막에 흉흉한 소문이 돌게 하지는 마라…그래서, 나한테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건데?"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웃는 파렌에게 질색한 강하는 조금 남은 커피를 들이켜며 말했다.
"그….셰프님은 좋은 고백법을 아시나 해서요!"
"고백...법?"
"예! 조금이라도 고백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그런 고백 방법이요! 셰프님은 대단하시잖아요! 그래서 혹시 그런 방법이 있으신가 해서…"
"....하하…..네 말에 조금의 거짓과 능멸이 없다는 것이 너무 아프네…"
32...아니 이제 33살인가..?
이 나이 먹고 연애 한 번 못해본 나한테 그리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물으니까 더욱 강하의 마음이 아팠다.
"얌마! 나 같은 녀석이 뭘 알겠냐? 번지수 잘못 찾았어 임마!"
"그….그런…!"
그렇게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는 사이.
"금방, `고백` 이라는 소리가 들렸는데에…?"
"무슨 일이야?"
그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고 다가오는 이가 있었으니.
"그런 이야기에 한 최고의 기생집 화의정의 으뜸 기생이었던 나, 매화가 빠지면 섭섭하지!"
바로 구미호인 매화와 혁수였다.
"자자,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게...그러니까…."
흥미가 가득 들어가 반짝거리는 눈을 들이대는 매화의 압박에 못 이긴 파렌은 결국 자기 일을 털어놓고 말았다.
"그래….잘 알았어. 그러니까 파렌 너는 벼루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거절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흐응~ 그래! 내가 너의 고민에 해답을 주마!"
"야, 믿지 마. 쟤 예전에 여기서 술 퍼마시면서 혁수가 고자라니 뭐라니 중얼거리면서 엉엉 울었어."
"아 주모! 그 이야기는 하지 마!"
혁수와의 관계가 아직 이어지지 않았을 때, 쩔쩔매던 매화의 모습이 떠오르던 강하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매화는 버럭 화를 내며 다그쳤다.
"그래….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 이거지?"
"예….예!"
"그거라면 내가 아주 정확한 방법이 있지."
매화는 싱긋 웃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 봐봐. 네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앞으로 딱! 다가가!"
"예!"
"그리고 그 여자의 손을 맞잡는 거야!"
"오오…!"
"그리고, 그다음에 그 여자의 귀에 이렇게 소곤거리면, 끝나지!"
"뭐...뭐라고 소곤거리면 되는 겁니까?"
"뭔데? 나도 좀 알아보자."
"매화 씨…."
꿀꺽.
세 남자(남자였던 한 사람.)는 침을 삼키며 그녀의 이어질 말에 집중했다.
그렇게 숨죽이던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 `야. 나랑 짝짓기 함 하자.` 이거면 끝나지! 크으….!"
"....ㅇ..예? 아니..그..무슨…! 아...으어….!"
"얌마! 그게 뭐야!"
"허허…."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지며 어처구니없어져 버렸다.
"아니 뭐가! 원래 남자는 빠꾸 없이 가는 거야! 남자 아니야?"
"아니 빠꾸라는 말은 또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허나 매화는 진심으로 자신이 하는 말이 옳다는 듯이 당당하게 소리쳤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이렇게나 아리따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남자들의 정기를 흡수하는 구미호였던 매화였기에, 그녀의 구애 가치관은 평범한 사람과 상당히 어긋나고 있었다.
"아니...그….너무 갑작스러운 게 아닌가…."
"하 참….야! 그냥 자X 떼버려 그냥! 남자라면 직진!"
"저….매화 씨? 그...말씀이 좀…"
"앗! 혁수 씨는 절대로 떼면 안 돼요! 그리 훌륭한 물건을 떼어 버리다니…..츄릅."
"으아낭ㅇ럼ㅇ로ㅓ모ㅓ 무...뭔 말을 하는 거야 남사스럽게!"
"......오늘 밤은 자기는 글렀구나."
그렇게 매화의 섹드립 분위기는 곱창나버리고 말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무...뭐선 일…?"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무엇이냐? 감히 이 몸을 빼고 맛있는 것이라도 몰래 먹는 것은 아니겠지?"
"어머나~ 오늘따라 소란스럽네?"
그 소란 덕에 벼루를 뺀 모든 주막 직원들이 한곳에 모이게 되었다.
*
"그러니까, 저 꼬맹이가 벼루한테 고백하고 싶다. 이거지?"
"네에…"
결국, 다 같은 탁자에 앉은 직원들은 파렌의 사정을 전부 듣게 되었다.
"음….너희들은 어때? 어떤 고백이 좋을 것 같아?"
모두 모인 김에, 마침 혁수와 파렌을 제외하면 전원 여성(남성이었던 자.)인 직원들이었기에, 그들의 의견들 들어보기 위해 강하가 전원에게 물었다.
"저는 딱히 남성분들께 관심이 없어서요….도령님이라면 몰라도…"
"아, 으응...향이는 그렇구나…"
포식자의 눈.
끈덕지고 사무치는 그녀의 시선을 강하는 가까스로 피했다.
"저는 관심 없습니다."
"...그러냐?"
다음으로 창에게 시선을 옮기자, 그녀는 단칼에 말을 끊어내었다.
원래 그 였던 그녀였기에 갑작스래 남자에게 고백을 받아도 좋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저….져는 그….멋진 사람이 조아오…!"
"멋진 사람?"
호빵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던 마오가 말했다.
"네….! 그….창 님 처럼 멋진….분…."
`틀렸어, 얘도 `그쪽`이야…`
향이와 마찬가지의 시선으로 창을 바라보는 마오였기에, 강하는 빠르게 다음 사람으로 시선을 돌렸다.
"음….고백이라….하하...이 몸도 그것을 바라왔거늘…."
그리고 파렌의 말이 끝나자마자 평소의 탠션은 어디 가고 추욱 늘어진 류월은 자기 머리에 꽂힌 보랏빛 각시붓꽃이 장식된 비녀를 만지작거렸다.
그 눈이 너무나도 처량했기에, 강하는 굳이 다른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음…..나는 나보다 연상이 좋은걸?"
"백설 님 보다 연상이요?"
그 옆에 앉은 백설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연상이라니.
이 자리에서 가장 연상이자 나이가 가늠도 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세월을 보낸 노룡보다….연상?
"그러네~ 나보다 연하였던 남자들은 이미 다 죽었거든~"
"아….하하. 그러시구나아…"
무거워!
뭐 이리 무거운 대사를 저렇게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거야?
"역시 크고 묵직한 자…"
"넌 좀 조용히 해!"
마지막으로 끼어드는 매화의 입을 저지한 강하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애초에 멀쩡한 사람이 없었다.
이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연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녕, 파렌에게 한 줄기 광명은 내려지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무거워진 분위기와 싸늘한 침묵이 감돌던 그때.
"그게 아니지! 여자는 섬세하고 부드럽다고! 특히 벼루는 예술을 사랑하는 가녀린 아이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너는...힐라!"
그래. 있었다.
우리의 마지막 희망.
매화의 사랑을 이어준 연애 박사.
"나! 힐라만 믿어! 네 고백, 반드시 성공시켜 주마!"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 힐라는 길다란 귀를 쫑긋거리며 장담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