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 그녀의 마음을 알고싶어.(2)
* * *
여기는 서라벌의 중심지의 골목.
그리고 길을 알려주는 길목의 푯말 앞에 선 파렌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자꾸만 다리가 휘청거린다.
‘왜 이래...? 긴장하지 말자. 뭐, 같이 마을을 돌아다니는 건 평소에도 가끔 했었던 거잖아...!’
마음이 떨린다.
잘 할 수 있을까?
파렌은 슬쩍, 주머니에 들어있던 종잇조각을 들어 다시금 천천히 살펴본다.
이 종이에는 힐라가 파렌을 위한 데이트 코스와 해야 할 행동이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이대로만 하면, 반드시 고백을 성공 시킬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던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래! 집중! 정신 차려!”
종이가 뚫어지게 쳐다보던 파렌은 이내 자신의 뺨을 연거푸 찰싹 때렸다.
“파렌 오빠 저 왔....어머! 뺨이 왜 이래요!”
“어...?”
그러던 찰나, 약속 시간에 도착한 벼루는 벌겋게 부어오른 파렌의 뺨을 보며 기겁했다.
파렌의 고백 작전은 시작부터 불안해지고 말았다.
*
“자기 뺨을 왜 때려요! 다음부턴 그러지 마세요.”
“아 응....미안...”
두 사람은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으음....시작부터 조금 이상하게 됐지만, 괜찮아! 자...처음에는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파렌은 다시금 힐라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본다.
“자, 처음에 만나서는 자연스럽게 왜 너를 불러서 만나는 이유를 말하고, 천천히 시간을 보내. 알겠지?”
‘좋아....자연스럽게....!’
“그래서, 오늘 우리 어디에 가나요?”
계속해서 무어라 중얼거리던 파렌을 바라보던 벼루가 물었다.
“아, 그게 말이지...! 실은, 그...여기 거리에는 우리 주막 말고도 여러 가게가 있잖아? 무, 물론 스타 주막이 최고이긴 하지만....다른 음식점 또한 한번 살펴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그래서 내가 봐온 곳을 한번 가보고 싶은 데....괜찮...아?”
“아~ 그렇구나? 저는 좋아요!”
‘좋았어!’
파렌의 횡설수설하는 말에도 벼루는 밝게 웃으며 수락했다.
“그, 그럼 저녁 시간대까지 시간을 조금 때울까? 거...거리라도 조금 둘러보면서!”
“그럴까요?”
‘그래, 이대로 천천히, 계획대로 하자. 할 수 있어...!’
파렌은 주머니에 들은 종이를 꽉 움켜잡았다.
*
[첫 번째. 자연스럽지만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어라.]
그 말을 기억하던 파렌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두근거릴 수 있는지 여러 방면으로 고민했고, 그 답이 나오게 되었다.
“아주머니, 그 꽃 파는 건가요?”
“으응? 아 고러엄! 총각, 우리 말 잘 허네?”
파렌은 벼루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몰래 꽃을 파는 곳으로 다가가 물었다.
“아 그건 괜찮으니까....그...여러가지 알록달록한 예쁜 꽃으로 좀 주세요!”
“그려~ 잠시만 기다리게.”
빨리. 빨리.
벼루 몰래 슬쩍 온 것이기에, 그녀에게 들키기 전에 어서 돌아가고 싶었던 파렌은 자꾸 발만 동동거렸다.
“자! 여기 있네.”
“잔돈은 괜찮습니다!”
파렌은 잘 정돈된 꽃이 나오자마자 주인에게 돈을 쥐여주고는 낚아채어 달렸다.
‘좋아...이제 그렇게만 하면 돼...!’
파렌의 계획은 이러했다.
자연스럽게 벼루에게 꽃을 건네준다.
그러면 벼루는 갑자기 꽃을 보고는 자신에게 물을 테지.
그때.
“마치, 너와 닮은 꽃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사 버렸어.”
이렇게!
자연스럽지만 그녀의 마음을 울리는 말.
힐라의 가르침에 충실한 파렌은 그렇게 그녀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달렸다.
“어라? 어디 다녀오셨어요?”
“하아...그....그게...”
서둘러 달려온 파렌을 돌아본 벼루가 물었지만, 너무 빠르게 달려서 그런지 숨이 가빠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이거...”
“어머....꽃이 참 예쁘네요!”
그래도 그는 팔을 뻗어 금방 자신이 사 온 꽃을 내밀었다.
“이....이걸 산 이유, 흐아....는...네...네가.”
이젠 그 말만 하면 성공인데...!
“마침 그림에 넣을 꽃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정말 고마워요!”
“그치....응?”
‘어라? 이게 아닌데?’
멘트를 쳐야 하는데.
“아, 근데 이 꽃잎 색은 마침 물감이 다 떨어졌는데...사러 갈까요?”
“아, 응...”
‘어라? 어라?’
이게 아닌데.
결국 파렌은 기껏 생각한 자연스러운 어필 멘트는 말하지도 못한 채, 벼루를 따라 물감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
“후아! 오늘 좋은 물감을 사서 참 좋아요!”
“그...래?”
양손에 한 아름 물감과 여러 가지 도구가 들린 바구니를 든 벼루가 방긋 웃었다.
그 모습에 또 설레는 파렌은 자신의 첫 번째 계획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래....두 번째가 있잖아!’
계획 두 번째.
‘두 번째! 너무 들이대기만 하는 남자는 매력이 없어! 살짝살짝 튕기기도 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야 해!’
‘그래....이번에는 조금 차갑게 굴어야지...!’
그렇게 다짐한 파렌이 벼루를 바라보았다.
“?”
“쿠헙!”
그러자 파렌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이렇게 천진무구하게 웃는 벼루에게 차갑게 굴라니, 파렌에게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무...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아, 아니야아....별 일 아니야...그..그냥 사례가 들려서...응..”
“정말이죠...?”
“으...응!”
자신의 쓸데없는 행동에도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벼루.
두 번째 계획은 자연스럽게 끝나고 말았다.
*
어느덧 해가 지고,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빛들이 마치 수놓은 듯 펼쳐져 있었다.
“후아! 그럭저럭 먹었네요!”
“응...”
저녁에 들렀던 주막에서도, 파렌은 그녀와 조금 더 가까워지기 위해 여러 대화를 하려던 참이었지만, 벼루는 진지하게 주막의 음식과 분위기를 스타 주막과 비교하며 고민했기에, 파렌도 그에 덩달아 진지해져 버리고 말았다.
‘안 돼...! 이러다가는 고백도 못 하고 끝나버리고 말 거야...!’
결국 오늘도 평소처럼 똑같은 날이 되고 말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세 번째! 고백은 박력 있게!’
‘고백할 때마저 우물쭈물 그저 그렇게 고백하면, 흥이 다 깨져버리고 말 거야!
분위기 좋은 곳에서, 박력 있게 고백해!‘
그래.
반드시 성공시켜 보이고 말겠어!
“그럼, 이제 돌아갈까요?”
슬슬 늦은 시간이 되기도 했고, 벼루가 먼저 말했다.
“아 그...있잖아? 조금만 더 걷지 않을래?”
그리고 파렌은, 마지막 계획을 준비했다.
*
“여기는....”
마을 변두리에 있는 작은 언덕.
“여기 어때? 달빛이 엄청나게 밝아.”
힐라에게 추천받은 장소에 도착한 파렌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와....달이 참, 아름답네요.”
“그렇지...?”
거리에서 보는 것 보다 더욱 넓은 하늘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졌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있지..?”
그리고 그 침묵을 깬 파렌이 입을 열었다.
“나, 사실....너....너를...!”
자꾸만 입이 달싹거린다.
심장은 이미 미칠 듯이 뛰고,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파렌은 이제, 물러설 수 없었다.
“ㅈ...좋아...!”
“우와! 너무 예뻐요! 이 광경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요!”
“아....응?”
간신히 짜낸 한마디를 자른 벼루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이 풍경을 어떻게 담아야 하지...? 언덕을 이렇게 그려 넣어야 하나...?”
“...하아...”
그런 벼루의 모습에 파렌은 김이 새고 말았다.
이런 모습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주춤거리는 성격이 자꾸만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러시나요?”
“아니....너한테 고백하려고 했는데 말이 잘렸어.”
“......네?”
“.....나 금방 뭐라고 말했어?”
그렇게 힘없이 풀죽은 파렌을 본 벼루가 묻자, 그 대답은 상상 이상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그...!”
‘미친! 이건 아니야! 고백은 적어도 박력 있게 해야 하는데!! 이렇게 실없이 마음의 말이 새어 나오다니...!’
벼루가 실망하면 어쩌지?
이렇게 실없는 소리나 하는 내가, 싫어지면 어쩌지?
그런 마음이 들던 파렌이 자꾸만 팔을 휘적거리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계속 어버버 거릴 뿐이었다.
그때.
“그래서, 오늘따라 조금 달랐군요?”
“응?”
잠시 조용했던 벼루가 입을 열었다.
“그건 뭐예요?”
“이...이건!”
그러자, 파렌이 얼떨결에 주머니에서 꺼낸 계획이 적힌 종이를 가로챈 벼루가 그 종이를 보았다.
그리고는.
“아하하하!!! 이게 뭐야 하하!”
“어...어어?”
그러더니 박장대소하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계획대로 된 것이 있었나요?”
“.....비웃지 마...하나도 못 했어..”
“그럼요. 사람은 사람마다 다른 데,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다 통하지도 않겠죠.”
“으윽...”
그렇게 큭큭 대며 웃는 벼루가, 마치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이 느껴진 파렌의 얼굴을 자꾸만 어두워졌다.
“....저는 사실, 어리광을 잘 피워요.”
“...뭐?”
벼루는 자신이 들었던 종이를 천천히 찢으며 말했다.
“평소에는 안 그런 척하지만, 눈물도 많은 울보에, 귀여운 고양이를 멍하니 바라보는 걸 좋아해요. 음식은 양파가 들어간 게 좋아요.”
다 찢은 종이를 짓밟은 벼루가 그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눈매가 날카로워서 무섭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여자애가 웬 그림이냐며 무시당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그림은 절대로 포기 못하지만요.”
“그...그런! 네 눈이 뭐가 무섭다는 거야!”
“있죠. 사랑이란 뭘까요?"
그녀의 뺨이 마치 도화지에 물든 붉은 물감처럼 붉게 물들어간다.
“다시금 말해 줄래요? 오빠에게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녀의 눈이 빛난다.
그녀의 빙긋 웃는 미소가, 너무나도 빛난다.
“...글세....나는 솔직히 말 재주가 없어서, 무어라 말은 못하겠지만...”
파렌은 그런 벼루가,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전해주고 싶어.”
파렌은 어느새 그녀의 허리를 붙잡아, 입과 입을 맞닿게 했다.
그날 밤은, 달이 참 아름다운 밤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