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 일일야식록 강하.(삼겹살 비빔면 편.)
* * *
“흠....이걸 이렇게 하면...좀 더 맛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부엉이가 감았던 눈을 뜨는 늦은 밤.
스타 주막의 주방에서는 오늘도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소녀가 날밤을 새우고 있었다.
“으으....끄아아아!! 머리 아파!”
하지만 무언가 잘되지 않는지 머리를 쥐어짜며 괴로운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요리라는 것은, 배우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웬만한 요리는 이미 다른 자들이 만든 지 오래고, 그렇기에 좀 더 독창성 있고, 특별하고, 맛있는 요리를 새로 만든다는 것은 힘들다.
“앗차....! 다른 애들은 다 잠들었지....?”
한참 날뛰다가 문득, 오늘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고된 몸을 뉘어 잠든 직원들 생각이 난 강하는 금새 입을 막았다.
자신은 반룡인, 그렇기에 잠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직원들 대부분은 그저 평범한 인간.
그렇기에 휴식이 필요했고, 자신의 괴성 때문에 날밤을 끙끙거리며 잠을 헤매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잠시 머리 좀 식혀야겠다.”
그렇게 중얼거린 강하는 주방의 뒷문으로 걸어 나왔다.
*
“후....그나저나 역시 이게 잘 맞네.”
곰방대에서 입을 뗀 강하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강하는 최근, 애슐란에서 인기라는 궐련형 담배를 받았다.
상당히 질 좋은 종이로 담뱃잎을 만 형태였기에 한 번 펴 봤지만, 맞지를 않았다.
지금까지 펴온 곰방대는 뜨거운 연기를 긴 통로로 한번 식혀서 입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 시대의 궐련은 필터도 없이 그대로 생담배를 피는 형태였기에, 뜨겁고 매운 연기가 직통으로 들어왔다.
그렇기에 강하는 기껏 담배를 받았지만, 피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 중이었다.
“역시 하던 게 제일 좋은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던 강하가 다시금 입에 곰방대를 물었다.
“그나저나....뭔가 땡기네...”
강하는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를 먹을 필요가 없다.
그녀의 몸에 순환하는 용의 마력은, 언제나 그녀의 상태를 최적으로 맞추어주었다.
그런 것은 창과 류월, 백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강하를 포함 이 네 명은 언제나 삼시세끼 식사를 했다.
강하와 창은 원래 요리사였으니 그렇다고 쳐도, 저 두 용은 정말 순수하게 여흥으로 식사하는 것일 테지.
그 중 류월이 특히, 그 여흥에 심취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일단 무언가를 먹고 나면, 머리가 팽팽 돌아가지.”
그렇게 생각한 강하는 곰방대에 남은 담뱃재를 털어내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흠....뭘 먹지...?”
대충 라면?
아니, 국물이 들어간 건 좀 안 땡기네....
아니면, 역시 파전?
전만 먹기에는 좀 출출하지 않나...?
족발은 어때?
야, 이거 만드는 거 나거든? 언제 족발을 삶아? 삶다가 아침 되겠다!
그렇게 자신과의 메뉴 선정에 정신없을 찰나.
“응? 이게 뭐지?”
주방의 입구에 놓인 보자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게...뭐더라? 뭐, 열어보면 알겠지.”
그렇게 강하는 그 보자기를 서슴없이 풀어 해쳤다.
그 안에 든 것은 바로...
“.....라면?”
산처럼 쌓인 라면 면이었다.
“이게 뭐지...? 왠 라면 면이....잠깐. 분명 아침에.....”
갑작스러운 라면에 의문이 생긴 강하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본다.
*
“셰프님! 잠시만 와주실래요?”
“응? 어, 그래.”
개점 준비로 분주한 스타 주막.
당시의 강하는 바쁘게 주방을 돌아다니다가, 향이의 목소리에 주방을 나왔다.
“어라? 당신은?”
“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거기서 나온 것은, 상당히 움츠러든 30대의 남성이었다.
그의 정체는 바로, 라면 공장의 관리직이었다.
강하가 만든 라면.
그것의 파급력은 굉장했다.
이미 한의 사람들은 라면의 맛에 빠져들었고, 그 여파로 다른 나라에서도 조금씩, 퍼져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주 많은 라면을 만들어야 했고, 그 방법을 강구하던 청라 어르신이 각지에 라면 공장을 차린 것이다.
그리고 이 자는, 서라벌 외곽에 지어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아, 사실은....오늘 만든 라면에 조금 결함이 생겨서...”
“결함?”
“면을 반죽하는 과정에 제조법에는 없는 재료가 들어가서, 팔 수 없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일단 만들어진 결함품은 전부 챙겨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한 보자기를 강하에게 내밀었다.
“그렇군요....그래도 결함품은 이 정도밖에 안 돼서 다행이네요. 대량으로 만들어졌다면 상당히 큰 손해를 보셨을 테니.”
“하아...천만다행입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아 잠시, 그래서 들어간 재료가 뭡니까?”
그렇게 결함품을 건넨 그가 돌아서자, 강하는 그를 불러 새워 물었다.
“아 그것이.....라면에 뭐가 들어 갔냐면.........”
*
“아....뭐였더라....? 그.....분명.....”
마지막으로 들었던 재료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강하는 끙끙대며 기억을 떠올려 봤지만, 이상하게 떠오르질 않았다.
“흠....그럼 일단 한번 끓여 볼까?”
그래서 결국, 직접 알아보기 위해 불 위에 냄비를 올려, 라면의 면만 넣어서 끓이기 시작했다.
“흠....특별히 이상한 건 없어 보이는데...”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라면.
하지만 평범한 라면과의 차이점을 찾기 힘들었다.
어느덧 다 익은 라면을 냄비에서 꺼낸 강하는 한 가닥 집어, 먹어보았다.
뭐, 위험한 건 들어가지 않았겠지.
위험한 게 들어갔다고 해도, 죽을 리도 없고.
그렇게 자신의 신체에 자신이 있었던 강하.
그리고.
“....이건?”
평소의 라면의 면발과는, 아주 달랐다.
그런데....그 다름이....뭐랄까....?
“...이거 쫄면이잖아?”
그랬다.
간단히 잘리지 않고 탱글탱글함을 유지하는 쫄깃한 면발.
이 면은 완전히 쫄면의 식감이었다.
“그렇다면....그 재료가 바로 ‘전분’ 이였구나!”
이제야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쫄면은 그냥 밀면에 비해 전분이 들어가, 특유의 쫄깃함을 내는 면이다.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로 전분이 들어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 이제 이걸 어쩐다...?”
일단은 결함품이니 팔 수도 없고.
우선은 이 면을 검사해볼까?
그렇게 면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는 강하.
그때, 그녀의 머리를 스쳐 간 생각이 있으니.
비빔면.
“비빔면....먹고 싶네...”
매콤 새콤하고 쫄깃한 비빔면.
그녀의 입가에 그녀도 모르게 침이 고였다.
“......일단 이걸로 먹을까?”
당장은 뭘 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이미 만들어졌으니, 한번 먹어봐야겠지.
그래, 이것도 연구의 한 방법이야. 음.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 강하는 다시금 냄비를 불에 올렸다.
그 즉시 도마를 꺼내, 상추와 깻잎, 그리고 오이를 들고 와, 먹게 좋게 잘라주었다.
그리고 양념장.
이것이 중요했다.
매콤한 고추장을 넣고, 달콤한 설탕도 물론, 색을 내주는 고춧가루와 짜고 풍미를 주는 간장 약간, 그리고 다진 마늘을 넣고 잘 섞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실액을 넣어준다.
설탕만 넣는 것보다 매실액이나 물엿을 넣어주면, 나중에 요리에서 광택이 난다.
그렇게 양념장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강하는 다시금 냉장창고로 향해, 무언가를 들고나왔다.
그것은 바로, 통삼겹살.
“비빔면에 이게 빠지면 섭하지...!”
간은 크게 필요 없었다.
소금은 이미 비빔면의 간이 상당히 세기 때문에, 너무 짜질 수 있어서 후추로만 간단히 간해준다.
그리고 호쾌하게 구워준다!
덩어리 채로!
겉면을 먼저 바삭하게 구워내, 맛 좋은 색을 내어준다.
그렇게 황금색이 나도록 색을 내어준 다음엔, 화덕에 넣어 안까지 잘 익혀준다.
그 사이, 다 끓은 면을 꺼내, 차가운 물에 잘 씻어준다.
이러면 면에 붙은 전분이 씻겨져 나가, 더욱 탱글탱글한 면발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애초에 비빔면은 차갑게 먹는 음식이다.
물기를 털어낸 면을 만든 양념장과 잘 섞어서, 그릇에 담아준다.
그 위에 미리 손질해둔 채소들을 가지런히 올려주고.
이제 하이라이트, 고기의 등장.
막 화덕에서 꺼낸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잠시 식혀주고,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도톰하게 썰어준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마치 꽃이 피어나듯, 접시 위에 올려주면....!
“끝! 이야...이거지...! 이게 그리웠어!”
새빨간 면발 위로 수많은 고명들, 그리고 아름답게 피어난 고기 꽃.
마지막으로 참기름 몇 방을 뿌려주고, 잘 섞이도록 비벼준다.
반짝거리는 면발을 젓가락으로 집어, 한 입.
“....으음...! 음! 으음....!”
새콤매콤, 그리고 달콤한 양념장이 입을 자극적으로 공격한다.
그리고 씹을수록 탱글탱글한 면발이 입을 가득 채워준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상추와 시원한 오이, 그리고 쌉싸름한 향을 내는 깻잎.
그리고, 고기.
어금니로 베어내자, 완벽하게 익은 육질이 육즙을 토해낸다.
부드러운 살과 고소한 지방.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거부할 수 없는 맛.
마지막으로 꿀꺽 삼키면, 참기름의 향이 입 안을 맴돈다.
아아.
이건, 야식으로 너무 위험한 음식이다.
강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이어트가 필요 없는 이 몸이.
이렇게 맛있게 먹고, 다음 날 열나게 운동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신체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감사하게 여겨졌다.
고급진 맛과는 다른, 자극적인 이 맛이, 오늘따라 너무나도 맛있게 느껴졌다.
“후아...! 잘 먹었다!”
강하는 텅 비어버린 그릇을 보며, 미리 따라놓은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참으로 즐거운 식사였다.
이제 그릇을 치우고, 정리를 해야 한다.
“...........”
하지만 강하는, 텅 빈 그릇을 자꾸만 쳐다봤다.
“....한 그릇만....딱 한 그릇만 더 먹을까?”
말은 고민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의 몸은 또다시 냄비를 불에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세 그릇이나 비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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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비빔면!
야식킬러!
솔직히, 이거 참을 수 있습니까?
저는 못참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