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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화 〉 백설의 하루. (222/289)

〈 222화 〉 백설의 하루.

* * *

“으아.....지친다....”

벼루는 피로로 가득한 몸을 탁자에 기대고는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고생 많으셨어요오오오.....”

“마오 너도...고생 많았어...”

그런 벼루를 격려해주는 마오 또한, 바로 그녀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쓰러져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따라 손님이 특히 몰리기는 했지? 겨울이라 그런지 저녁에 사람이 많이 몰리더라고.”

강하는 두 사람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해주었다.

“그래도 내일은 휴일 아니냐, 너희들도 푹 쉬어.”

“와...! 휴릴...!”

“그래도 이 상태로는 내일 온종일 이불 안에만 있을 것 같아요....어휴...”

그런 두 사람에게 휴일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이대로라면 체력 회복을 위해 온종일 방에서 잠들 것 같았다.

“그러니? 그럼 잠시만...”

“으힉!”

“흐앗!”

그렇게 축 늘어져 있던 두 사람의 등 뒤로 나타난 백설이 따사롭게 그녀들의 등을 슬쩍 쓰다듬었다.

그러자.

“...오아...! 모...모미...! 모미 멀쩡해져서오!”

“어깨가 가뿐해!”

지친 그녀들의 활력을 불어넣어, 순식간에 멀쩡해졌다.

“내일은 쉬는 날인데, 방에서만 시간을 보내면 아깝잖니.”

“고맙습니다! 백설 님!”

“고마쯥니다!”

“응~”

자신의 마력으로 그녀들을 고쳐준 백설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정말로 백설 님은 대단하네...”

“료...룡님은 데다내요!”

그녀들은 자신들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백설.

겉모습은 백발의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그녀의 정체는 노룡, 화이트 드래곤이다.

강하의 요리 실력에 반해, 그녀를 도와 스타 주막에서 열심히 일손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백설 님은 쉬는 날에 뭘 하는 걸까?”

언제나 인자하고 상냥한 백설.

그녀는 과연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하며 보낼까?

그것이 궁금해진 벼루는 그녀가 있던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나 말이야. 엘프 마을에 있었을 때는 언제나 꽃밭에서 주무셨다고 들었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려나?”

그런 벼루의 중얼거림을 긴 귀로 들었던 힐라 또한 벼루에게 다가와 말했다.

“류월 님이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런가?”

백설과 제일 가까운 류월이라면,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류월을 찾고 있었다.

이 시간대라면 분명….

“넌 이 시간에 또 먹냐?”

“오호…! 오늘은 만두로구나! 참 좋다!”

그리고 찾은 곳에서는, 강하의 투덜거림을 듣는지 흘리는지 눈앞의 만두에만 신경 쓰고 있는 모습의 류월이 보였다.

“음! 역시 쪄서 먹는 만두도 맛있지만, 구워서 먹는 만두가 맛있구나! 바삭바삭한 이 식감이 참 좋군!”

그녀는 언제나 하루의 장사가 끝이 나면, 강하에게 부탁해 야식을 먹고는 하였다.

“류월 님!”

“으...응?! 무, 뭣이냐! 이 만두는 이 몸의 것이다!”

그런 류월의 앞에 다가간 벼루가 말을 걸자, 류월은 화들짝 놀라더니 자신의 앞에 담긴 만두를 감췄다.

“그건 아니고....류월 님은 쉬는 날에 백설 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아시나요?”

“....백설?”

“류월 님이 가장 백설 님과 가깝잖아요.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그렇지! 이 몸이 백설과 가장 가깝느니라!”

류월은 백설의 이름이 나오자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백설과 자신이 제일 가깝다는 말에 미소를 지으며 엣헴! 하듯 팔을 허리에 올렸다.

“그래서, 백설 님은 휴일 때 뭘 하시나요?”

“그거야…...그……”

허나, 그 당당한 표정은 벼루의 질문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 모….모르겠구나...이...이 몸은 언제나 휴일이 되면 주막에 있었기 때문에….”

“그러시구나…”

“그러고 보니 궁금해지는군. 과연 백설은 휴일 때 뭘 하는 것일까….”

류월은 백설의 휴일에는 지금까지 관심이 없었지만, 그녀들의 이야기에 류월 또한 흥미가 생기고 말았다.

“백설 님? 그거야 백설 님도 휴일에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너희들도 별생각 말고 그냥 쉬어.”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강하는 어느새 비어버린 접시에 만두를 더 얹어주며 말했다.

“....그런가…”

하긴. 휴일에는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중요했다.

벼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

“하지만 궁금한걸…!”

아침 식사가 끝난 한가로운 휴일의 아침.

벼루는 이 시간대라면 벌떡 일어나 그림을 그렸겠지만, 오늘은 붓 한번 들지 않았다.

그 대신, 마당의 구석에 숨어서. 주변을 살폈다.

“그건 그렇군. 이 몸과 가장 가까운 백설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할 테니 말이다.”

“우리 마을의 수호신이던 백설 님이니까, 궁금해!”

그리고 그 옆에는 어젯밤,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류월과 힐라 또한 자리를 지켰다.

강하의 말이 있었지만, 그녀들의 궁금증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이었다.

“에츄!”

“킁….날씨가 좀 춥기는 하네..”

겨울의 이른 아침에 콧잔등이 빨개진 벼루와 힐라가 추위에 몸을 덜덜 떨었다.

“이런, 잠시 기다려 보거라.”

“..우와….! 몸이 따끈따끈해…!”

“감사합니다!”

“이 몸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니라.”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류월은 자신의 도술로 몸을 데워 주었다.

그때.

“어! 저기 백설 님 아닌가요?”

벼루는 자신의 앞에 손가락을 가리키며 물었다.

새하얀 머리칼과 큰 키.

백설이 마당을 거쳐 주막의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이른 시간인데, 어딜 가시는 거지?”

“설마….이 몸 몰래 맛있는 것이라도 먹으러 가는 것일까?”

“이...일단 따라가 보죠!”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삼인조는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

“여기는….마을?”

백설의 발걸음보다 한참 뒤에서 그녀를 쫓아가자, 서라벌의 마을이 나타났다.

“백설 님이 마을로 오시는 건 본 적이 없었는데…”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지….궁금하군!”

백설은 그렇게 계속해서 마을을 돌아다녔다.

“어! 주막에서 일하는 낭자 아니오? 오랜만이군.”

“오! 오랜만이군! 오늘은 무슨 일로?”

“앗! 그 예쁜 아줌…”

“누.나.”

“....누나다! 안녕!”

“그래, 반갑구나~”

그런 그녀를 발견한 사람들은 익숙한 얼굴을 보는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백설님에게 나이 이야기는 절대로 꺼내지 말아야 겠다.”

“...그러게요.”

“음? 나이가 뭐 어때서 그러냐? 그것보다도 이 찹쌀떡 아주 맛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등 뒤에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 지, 류월은 미행이라는 것을 잊은 것처럼 길가의 음식들을 죄다 집어 먹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길을 따라 걸어가던 백설.

“어라? 저 집으로 들어가시는데요?”

“저긴….어디지?”

마을의 한 초가집에 들어가는 백설.

미행은 좋지만, 이래서는 저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훗. 이 몸이 나설 차례구나!”

“어라? 그건 아씨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요?”

“그 녀석의 힘은 원래 이 몸의 힘. 그렇다면 내가 그 녀석의 힘을 쓰지 못할 이유가 없지!”

류월은 자기 손가락 크기만 한 작은 구체를 꺼내며 웃었다.

본디 구체는 강하가 직접 만든 도술이지만, 그녀의 힘은 본디 류월의 것.

그렇기에 류월도 그 구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굳이 그것을 쓸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말이 달랐다.

그렇게 구체를 날려 보내고, 류월이 펼친 막에 화면을 비추기 시작했다.

마치 드론과도 같았다.

작은 구체가 백설이 들어갔던 초가집에 쏙 하고 들어가서는, 그 안의 풍경을 비추기 시작했다.

­나 왔어~­

­어이고, 우리 아씨 왔는감?­

­아씨라니, 너무 부끄럽네­

­암암. 내 소싯적에도 한 미모 했지만, 저 머리칼은 참 곱구먼­

“할머니...들?”

그 곳에는 마치 백설처럼 새하얗게 머리가 샌 할머니들이 여럿 있었다.

­그래, 아씨. 어서 좀 도와주련? 저 노망난 늙은이는 가르치는 솜씨가 영 아니여~­

­예끼 이 여편내야! 네가 못하는 거라고는 생각 못하나?­

­괜찮아~ 다시 천천히 하면 되지~­

그러던 찰나. 한 할머니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 실에 꿰인, 나무로 만든 대바늘이었다.

“뜨개질?”

“힐라 언니는 저게 뭔지 아시나요?”

“저게 무엇인고…?”

“아아~ 그러고 보니 한에는 저 방식으로 옷을 안 만드는구나?”

애슐란 지역에 살던 힐라는 한눈에 저것이 뜨개질이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한에서 자고 나란 두 사람은 고개만 갸우뚱할 뿐, 알지를 못했다.

“저건 저렇게 긴 바늘로 두꺼운 실을 이리저리 해서….옷을 만드는 거야.”

“어머! 정말 신기하네요!”

“헤헤...예전에 마을에 살 때, 어르신들이 하는 걸 자주 봤지.”

“호오….그런 가?”

­참 고맙네 그려, 이렇게 새로운 옷을 짓는 방법도 알려주고.­

­그러게나 말이여. 우리 같은 늙은이를 이렇게 챙겨주다니….­

­늙다니, 아직 한참 젊은데 말이야.­

­오호호호! 그게 맞지 암! 아직 안 죽었다니께!­

­넌 좀 죽어도 될 것 같구먼.­

­이놈의 여편내가 또!­

그렇게 백설은 할머니들에게 뜨개질을 알려주거나 잡담하며 시간을 보냈다.

*

“결국 특별한 일은 없었네요.”

“그러게. 약간 아쉽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하늘이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 광경을 본 이후로는 세 사람도 느긋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고는, 주막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오늘 나를 따라다니던 건 역시 너희들이구나?”

“엣? 백설 님!”

“오오, 백설 아니냐. 그 집에서 나온 모양이…”

“쉿! 류월 님 쉿!”

“으븝…! 으브븝!”

지나치는 골목에서 백설이 갑작스럽게 모습을 보였다.

“아 그….그게…..위대한 드래곤님은 휴일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해서…..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으브븝!!”

“.....그래?”

백설은 천천히 그녀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몰래 그녀의 생활을 훔쳐본 것에 대해 혼이 날까 싶었던 두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콧잔등이 빨개졌구나. 요새 춥잖니~ 두껍게 입어야지.”

“아...이건…!”

벼루의 앞에 다가온 백설은 그녀의 목에 무언가를 둘러 주었다.

“오랜만에 만들어 본 거라, 마음에 들지 모르겠구나.”

그것은 아까 그 집에서 만들던 새하얀 목도리였다.

“아, 아뇨! 정말 마음에 들어요! 포근하고...따뜻하네요…”

“우와! 엄청 멋있다!”

“음! 이 몸은 역시 검은색으로 만들었구나! 참 좋다!”

“후훗, 그러니? 너희들 것 말고도 주막의 아이들 것도 만들었단다.”

어느덧 백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자, 그럼 돌아갈까?”

“네~”

“빨리 가서 저녁 먹자꾸나!”

벼루는 그런 백설의 뒤를 따르며 웃었다.

추운 겨울 날씨였지만, 그녀의 목에 두른 목도리 탓일까? 전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노룡 백설.

그녀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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