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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7화 〉 김칫국 마시고 있네! (227/289)

〈 227화 〉 김칫국 마시고 있네!

* * *

“아~ 오늘도 참 맛있구먼!”

“식사는 괜찮으셨나요?”

“그럼, 참으로 맛있었네, 주모.”

르먼은 지긋해진 입가 주름에 묻은 양념을 테이블마다 비치된 냅킨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새하얗게 센 머리를 정성스레 땋은 르먼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스타 주막의 인기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기에, 꼬부랑 할머니인 르먼 또한 스타 주막을 찾는 것이 삶의 낙이 되었다.

“그나저나, 참 야무지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주모라니. 아직도 주모라고 부르기가 영 껄끄러워.”

“하...하하....괜찮아요~ 그냥 편하신 대로 부르셔도 돼요.”

일단, 이 스타 주막의 주인인 강하이기는 하나, 그녀의 겉모습 덕분에 조금 인칭이 맞지 않아서 이상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 참. 주모, 내일 혹시 우리 집으로 좀 와줄 수 있는감?”

“예? 집으로요?”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던 찰나, 르먼은 고개를 돌려 강하에게 자신의 집으로 와달라는 부탁을 건넸다.

“줄 것이 있어서 그려~ 상당히 귀한 것이니, 섭섭하지는 않을 것이야!”

“아 뭐....그럼 알겠어요.”

요즘에는 그렇게 크게 바쁜 일도 없으니, 강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려! 잘 먹고 간다~”

그렇게 르먼은 스타 주막을 나섰다.

“...뭘 주려는 거지?”

르먼이 떠난 스타 주막에서는, 그녀가 남긴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강하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상당히 귀한 거라고 했잖아. 귀금속 같은 거 아냐?”

르먼의 계산을 맡았던 혁수 역시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들었기에, 강하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야, 아무리 귀한 거라고 해도 갑자기 그런 현물을 주겠냐? 애초에 그다지 필요도 없어.”

강하는 이미 한에서 가장 잘나가는 주막을 운영 중인데다가, 한 뿐만이 아닌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공을 세워, 상당히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예전에야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것 같았지만, 터무니없는 돈의 액수를 보니, 기가 질려버린 강하는 그저 주막의 운영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물론 구하기 힘든 식재료들을 스타 주막에서 볼 수 있는 이유 또한 이것이었다.

“아니면, 구하기 힘든 물건 같은 것 아닐까요?

탁자를 정리하던 벼루 또한 말 한마디를 거들었다.

“으음.....모르겠다~ 내일 가보면 알겠지 뭐.”

곰곰이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던 강하는 속 시원하게 고민을 멈추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

그리고 다음 날.

강하는 르먼의 부름에 답하여,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자, 그녀를 반기는 것은 으쓱한 어깨를 숨기지 못하는 르먼과 그 옆에 놓인 것은 바로.

“이게....뭐에요...?”

거의 강하의 목 아래까지 올 만큼의 거대한 장독대였다.

“네가 주는 선물이라네. 잘 받아주길 바라.”

“아...아니...선물을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크기도 그렇고, 아니 애초에 이 안에 든 것이 뭐예요?”

강하는 이 집을 향해 걸어오면서 여러 가지의 후보들을 고민하긴 했지만, 그 후보들의 상상을 거침없이 부수어버리는 장독대의 포스에 기가 질린 듯 물었다.

“아, 내 정신 좀 보게, 내가 노망이 났는지 무엇인지 설명도 안 했구먼?”

강하의 물음에 그제야 떠올렸다는 듯이 손뼉을 치던 르먼이 말했다.

“그럼, 직접 한 번 열어보시게.”

“아...예...그럼....”

도대체 뭐가 들어 있길래....

르먼의 손짓에 강하는 내심 떨리는 손으로 장독대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내용물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이건!”

모양 좋게 잘 자른 무와 배, 고추, 등등 여러 가지 재료가 듬뿍 들어간 동치미였다.

게다가 윗부분에는 살짝 살얼음이 끼어있어, 마치 겨울철 빙판을 보는 듯했다.

“그려~ 내가 동치미 담그는 솜씨는 조금 자랑할 정도는 돼서 말이지~ 이번 겨울에도 만들다 보니 이렇게나 많이 만들었지 뭔가. 그러니 주모랑 주막에서 일하는 야들 먹여~”

“가...감사합니다. 정말 놀랬네요...그, 그런데...”

강하는 정말로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들고 가나요?”

강하는 조금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선물이라고 해야 적당한 걸로 주시려나 싶었던 강하는 혼자서 여기로 찾아왔고, 애초에 크기로만 봐서는 사람만 붙어서는 턱도 없고 마차라도 들고 와야 할 정도였다.

아무리 반룡인이라고 해도,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이렇게 큰 걸 들고 다녔다가는 사람들이 기겁할 것 같았던 강하가 쩔쩔대며 물었다.

“응? 들고 가면 되지 않는감? 주모 힘 장사잖어~”

그런 강하의 물음에 르먼은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시원하게 말했다.

“예...?”

“주모 장사하는 거 우리 마을 사람들이 한 두 번 보남? 저번엔 뭔 곰 같은 사내놈도 한 손으로 번쩍 들어서 던지더구먼~ 그래서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다 알지.”

“아...하하...”

강하의 걱정은 참 의미 없는 걱정이 되었다.

이미 주막을 경영하면서 알게 모르게 반룡인의 힘을 쓰던 강하를, 이미 마을에서는 그녀를 장사라고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여기 판타지 세계였지?

도술도 있고, 요괴랑 귀신도 있는데, 힘 센 여자가 뭐 대수겠어...?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려~ 다음에 또 들름세~”

무언가 무안해지고 부끄러워진 강하는 조용히 장독대를 번쩍 들어, 르먼의 집에서 나왔다.

“어이쿠, 주모 아니우? 그건 또 뭐드레?”

“이번엔 또 뭘 하려는 감?”

“우와! 엄청 크다!”

르먼의 말을 듣고 다시금 거리를 돌아보니, 마을 사람들은 강하의 모습에도 전혀 기겁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괜찮나...?”

응.

생각하면 지는 거라고 했어.

그렇게 결론 낸 강하는 그저 묵묵히 장독대를 옮겼다.

*

“와....죽인다....!”

“정말 맛있겠네요! 르먼 할머님의 동치미는 정말 맛있어요! 저도 어릴 때 맛본 적이 있었는데....!”

“살얼음! 살얼음!”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장독대를 들고 온 강하의 등장에, 스타 주막은 술렁술렁했다.

마침 딱 좋은 겨울철. 이때의 동치미는 군침이 절로 흐를 만큼 훌륭한 맛을 낸다.

“동치미가 무엇인가요?”

“돈...치미?”

“그게 뭘까? 궁금하네~”

물론, 한에서 살았던 적이 없었던 직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동치미는, 쉽게 말해서 물김치의 일종이야.”

김치.

김치는 우리 한국의 전통적이자 대표적인 음식이다.

하지만, 우리가 김치. 하면 떠오르는 새빨간 김치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야 만들어지게 되었다.

당시 고추가 없었던 조선이었기에, 왜의 전쟁에 고추가 섞여 들어와 지금의 고추장과 김치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 전의 김치는 고추가 없는 백김치가 기본이었다.

그 중에서 동치미는 무를 주재료로 만든 물김치로써, 김치 중에서도 제일 오래된 김치다.

빨간 배추김치보다 몇 배는 역사가 더 길 정도니 말 다했다.

실제로, 동치미는 고려시대의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그 역사가 아주 길었다.

뭐, 조선과 달리 한은 타 국가와의 문호를 개방도 미리 해두었고, 애초에 평범한 세계가 아니라 판타지 세계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강하에게는 아주 좋았다. 원래 시대였다면 구하지 못할 식자재도 충분히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에서는 한의 요리가 있는 법.

그 증거가 바로 동치미였다.

“그래서, 이 동치미는 아아주 예전부터 내려오던 한의 전통음식이다~ 라고 이해하면 편해.”

“과연.”

“그렇구나~”

“대다내요!”

“아무튼, 이 동치미를 선물로 받았는데....이걸 어떻게 하지?”

동치미의 간략한 설명을 마친 강하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왜? 팔려고 받은 거 아냐?”

“아니, 이건 팔기에는 좀 그렇지...”

강하의 말에 당연히 이 동치미도 주막의 메뉴로 쓰이리라 생각했던 혁수가 묻자, 강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양이 선물로 받기에는 양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건 이것이 선물로 친다면 그렇다는 소리지, 식당에 재료를 공급하는 상황이라면, 고작 며칠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먹은 사람과 먹지 못한 사람이 생길 것이고, 불만의 목소리도 나올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선물 받은 음식을 되파는 행위는 매우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건 팔지 말고 우리가 먹자!”

슬슬 겨울이기도 하고, 이 정도 장독대 사이즈라면 우리끼리서 먹는다고 쳤을 때는 겨우내 충분히 먹을 것이다.

“전 좋아요!”

“맛있겠다!”

“바로 버터 올린 군고구마랑 같이 한 입 해주면...어흐...!”

“그냥 목마를 때 한 국자씩, 밥반찬으로 한 접시씩 먹어도 맛있어~!”

그런 강하의 말에 한국에 살던 혁수와 한에서 살던 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래서 나는, 이 동치미를 바탕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국수 좋죠! 잘 만든 칼국수 면도 좋고, 아니면 셰프님이 저번에 만든 얇은 면을 만드는 도구를 써도 좋을 것 같아요!”

“그거 좋네! 형! 면은 뭘로 먹어? 밀면? 소면? 칼국수 면?”

시원한 동치미 육수에 잘 삶은 면을 그대로 퐁당! 국물이 면에 잘 배도록 휘휘 섞어주다가, 그대로 한 입.

그야말로 최고였다.

“아니, 다 아니야.”

“엉? 그럼 뭔데?”

하지만 강하는 금방 나온 모든 후보들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메밀면을 만든다.”

메밀. 강하가 냉면이 언급되자마자 떠올린 재료였다.

*

동치미 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손수 동치미를 만드시는데요.

보관 방식이 조금 특이하셨습니다.

한 겨울철, 배란다에 잘 만든 동치미가 담긴 통을 두고, 바깥 창을 완전히 여는 것이 아니라 절반 정도 열어 바로 배란다를 차갑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게 밤새 놔두면, 아침에는 살얼음 동동 뜨는 동치미가 완성!

냉동고에는 완전히 얼어버리고, 냉장고에는 살얼음이 안 나오니 그렇게 할아버지가 직접 떠올리신 방법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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