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0화 〉 종족 전체가 비건인 종족. (230/289)

〈 230화 〉 종족 전체가 비건인 종족.

* * *

"야채가 먹고 싶어."

오늘도 바쁜 하루가 끝나고, 하루 간의 허기를 풀어내는 저녁 시간.

힐라는 작은 목소리를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야채! 야채가 먹고 싶어!!"

그런 중얼거림을 못 듣고 다시금 묻는 강하의 질문에, 힐라는 급기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소리쳤다.

"까...깜짝이야…!"

"스...스승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힐라 언니?"

"? 왜 저러는 것이냐?"

갑작스러운 힐라의 돌발행동에 식사를 직원들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같은 황당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일이 힘드니까, 밥은 맛있고, 든든하게 먹는 게 좋지.

그런 걸 생각하면 고기가 많이 올라오는 것도 맞고, 나도 고기는 그럭저럭 좋아해.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매일 고기만 먹기 싫어! 이거 봐. 어제도 세끼 고기 먹었고, 그저께도 고기. 그리고 오늘도 고기반찬이잖아!"

그러더니 그녀의 앞에 차려진 식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엘프들이 고기를 안 먹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산에서 자란 야채들을 먹고 자라. 숲의 은총이 담긴 과실은 그야말로 최고지! 아아….아채가 먹고 싶어...아삭하고 신선한 야채….."

"그러고 보니 엘프였지?"

"아, 그러게. 스승님`도` 엘프였구나…"

"엘프`였다` 니! 그거 엄청나게 실례거든?!"

그런 힐다의 처절한 외침에, 강하와 혁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현대의 창작물 속 엘프는 육식하지 않고, 생야채만 먹는 이미지가 강했다.

저번 엘프 마을에서도 그들이 먹는 식사는 대부분 채식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힐다가 가리는 것 없이 대부분 잘 먹어서 그런 인식이 옅어지고 있었던 상태였다.

"근데 여기에도 야채, 채소들이 들어간 반찬도 있잖아?"

확실히, 고기 요리가 메인이기는 하지만, 분명 밑반찬은 채소들도 있었다.

"그건 그렇지만….매일 먹는 밑반찬 말고 좀 신선하고 맛있는 야채들이 먹고 싶어요 아씨…"

"뭐...하긴, 밑반찬이라고 해봐야 김치 아니면 나물무침만 내기는 했지."

"그….그럼….! 새로운 야채 요리를….!"

힐라의 모습에 측은해진 강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대답하려는 찰나.

"안 된다."

그런 그녀의 말을 가로막는 목소리가 들렸으니.

"야채따위, 생명체는 약육강식이다. 남의 생명을 가져가 자신의 몸으로 채우는 육식이야 말로 세상의 이치거늘! 고기를 먹지 않는다니, 언어도단이로다!"

검은 머리칼을 살랑거리며 힐라와 마찬가지로 벌떡 일어난 류월이 소리쳤다.

"....넌 그냥 고기가 좋아서 그런 거 아니야?"

지긋.

"...!....그...그럴리가 있느냐….이 몸은 어디까지나 세상의 이치를 지키기 위해…"

지그읏.

"그만! 그렇게 보지 말거라!"

"내 눈을 피하는 게 그 증거 같은데…?"

“아….아무튼 고기가 없으면 안 된다!"

"류월님! 야채도 먹어야 몸이 건강해져요! 땅의 과실은 몸과 마음에 건강한 힘을 준다고요!"

"이 몸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나에게는 그딴 것 필요 없다!"

"....이거야 원…"

강하는 두 사람의 언쟁에 골머리를 썩였다.

힐라의 말대로 한번쯤 채소로만 만든 저녁을 해보고 싶기는 한데, 저렇게 극심히 반대하니…

둘 다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

떠올랐다.

"좋아. 내일 저녁은 힐라의 말대로 채소를 듬뿍 사용한 요리를 만들도록 할게."

"야호!"

"뭣이?"

강하의 선언에 힐라의 얼굴은 마치 꽃이 핀 것처럼 활짝 미소가 만개했지만, 그 반대로 류월의 얼굴은 경악에 가득 찼다.

"하지만, 류월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로 할 거야."

"...응?"

"뭐라?"

그리고, 이어지는 강하의 말에 두 사람 모두 당혹한 얼굴을 지었다.

"기대 하고 있으라고."

강하는 그저 씨익 웃어 보일 뿐이었다.

*

강하의 선언이 있었던 다음 날 저녁.

오늘도 힘든 일을 끝낸 직원들은 모두 식탁에 모여 앉았다.

“과연 뭘 만들 생각이지?”

“셰프님이니까 분명 맛있을 거예요!”

“하지만, 궁금하긴 하네.”

그들이 현재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강하가 말한 “채소가 메인인 맛있는 저녁.” 에 과연 무엇이 나올지에 대한 것이었다.

“스프와 빵은 아닐까? 일단 채소로도 만들 수 있는 요리잖아.”

“글쎄요…..그렇다고 하기에는 셰프님의 미소가 걸리는데…”

“아니면….음식 투정하는 우리들을 혼내기 위해 생식을….!”

“에이 설마~”

그렇게 과연 무엇이 나올지 토론하는 직원들.

그리고.

“헤헤….야채…! 채소가 듬뿍…!”

“끄응….! 고기가 없다니….이 몸의 즐거움이….”

힐라와 류월은 정반대의 느낌으로 넋이 나가 있었다.

일단 채소가 나온다는 소리에 헤벌쭉해진 힐라와 침울해진 류월.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고.

“자! 다 모였지?”

“야채!!!!”

“.....흥…”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강하가 드디어 접시를 들고 나타났다.

“이게, 채소가 듬뿍 들어간 요리야!”

“이...이건?”

“우와….”

그리고, 드디어 베일에 싸인 요리가 담긴 접시를 식탁의 중심에 올려두었다.

“월남쌈. 이거라면 어때?”

*

월남쌈.

월남이란, 베트남의 한자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고이꾸온(G?i cu?n)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리며, 라이스 페이퍼에 각종 채소를 넣고 말아서 소스에 찍어 먹는 요리이다.

면피에 여러 가지를 말아서 먹는 요리라는 점에서 춘권과도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춘권은 밀가루 피에, 끓는 기름에 튀겨내는 고열량 요리지만, 월남쌈은 채소가 대부분의 속을 채우며, 저열량과 고섬유질, 풍부한 미네랄과 무기질을 제공하는, 몸에도 좋은 아주 좋은 요리다.

“우와….채소들이 각각의 아름다운 색으로 가득해요….!”

향이는 접시에 놓인 각종 채소를 바라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그렇지? 월남쌈의 장점은,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취향대로 넣어서 먹을 수 있다는 점이야!”

먼저 향을 내는 향채인 허브와 깻잎, 그리고 상추가 있고.

그 속을 채워주는 양파, 얇게 썬 두부, 파프리카, 당근, 오이, 양배추 등. 갖가지 채소들이 즐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먹는 요리인가요?”

그러던 중, 벼루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일단 다양한 채소가 많은 건 알겠는데, 이걸 어떻게 먹는 것인가.

그냥 채소를 집어서 먹는 건가?

“그건 바로…..이거야!”

“그건…?”

그런 벼루의 질문에 강하는 의기양양하며 숨겨둔 무언가를 손에 들어내 보였다.

그것은, 새하얀 색을 낸, 얇고 동그란 피. 였다.

“뭔가요? 그건?”

“....만두 피?”

“엄청 얇네요. 그리고 딱딱해요.”

강하가 각자의 그릇 위에 그 하얀 무언가를 놓아주자, 직원들은 이리저리 직접 만져보며 흥미를 느꼈다.

“거기에 채소를 싸 먹는 거야.”

“네? 여기에다가요?”

“입에 들어가지도 않겠는데요…?”

“애초에 딱딱해서 먹기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이어지는 강하의 말에 그들은 강한 충격을 받으며 그녀의 말을 반박했다.

널찍하고 둥글고 딱딱한 이것에 채소를 싸 먹는 요리라니?

“흐흠! 그렇지~ 이렇게만 보면, 전혀 먹을 것이 되지 않지….하지만!”

그런 직원들의 의심쩍은 시선을 한껏 즐기던 강하는 한 주전자를 꺼내 들었다.

살짝 따뜻한 온도의 미온수를 넓은 접시에 붓고, 라이스 페이퍼를 물에 잠시 담갔다 빼내었다.

그러자.

“오…! 금방까지만 해도 그저 종이 같던 것이 부드럽고 투명하게 됐어요!”

“신기하지? 이건 라이스 페이퍼. 그러니까 쌀 종이라는 음식이야.”

라이스 페이퍼.

베트남에서는 반짱이라고 부르는 음식이다.

베트남에서 만들어진 이 음식은 전쟁 중, 적은 부피와 간편한 휴대성으로 숨은 공신이라 불릴 정도의 음식이다.

만드는 법조차 매우 간단하다.

우선, 쌀가루에 물을 풀어, 걸쭉한 농도가 될 때까지 끓인다.

그리고, 낮은 온도의 팬에 아주 얇게 펴 발라, 그 위에 뚜껑을 덮어 쪄내듯이 익혀준다.

다음으로 소쿠리 같은 공기가 잘 통하는 그릇에 담아, 햇볕에 잘 말려주기만 하면, 끝!

“오오….만드는 법은 마치 구절판(얇게 부친 밀가루 전병에 여러 채썬 재료를 넣고 싸 먹는 요리, 궁중요리에 나올 정도로 고급스러운 요리이다.)과 비슷하네요? 그런데도 확실히 싸서 먹는 절판이 달라요!”

“투명하고 예쁘네요….!”

“자, 내가 시범을 보여줄게.”

강하는 직접 손을 걷어, 월남쌈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라이스 페이퍼를 따뜻한 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들어 준 뒤, 접시 위에 올리고,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조금씩 올려준 뒤, 예쁘게 말아준다.

“짠! 이렇게 하면 완성!”

강하가 만든 월남쌈은 투명한 피에 갖가지 재료들의 색이 비쳐 보여서, 아주 아름다운 모습을 자아냈다.

“그리고, 내가 직접 만든 소스에다가 찍어 먹으면 돼!”

오늘 강하는 월남쌈을 위해 직접 소스를 만들었다.

월남쌈 하면 빠질 수 없는 느억맘(피쉬소스의 일종으로, 베트남에서는 전국적으로 인기있는 대중적인 소스) 소스. 땅콩소스(땅콩버터를 활용한 소스.) 그리고 칠리소스까지!

총 세 가지의 소스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그러면 이제 먹…”

“야채다아!!!!”

“....자!”

그리고, 강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말을 끊어버린 힐라는 미친 듯이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배운 것을 곧바로 사용해 라이스 페이퍼에 각종 채소를 쌓아 올린 그녀가 곧바로 월남쌈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이거야아……! 아삭아삭한 야채애애...내 몸에 스며 들어와….! 흐아아…!”

그러자 그녀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이해하기 힘든 말들을 중얼거렸다.

달달하게 볶은 파프리카, 수분 가득 오이, 특유의 향을 내는 당근, 아삭한 양배추.

그 외에도 각종 다양한 채소들이 힐라의 채식 욕구를 단번에 채워주고 말았다.

“음! 이 소스는 뭔가요? 약간 액젓의 향이 나는데, 비린 향도 없고 정말 감칠맛 넘쳐요!”

“이거...땅콩인가? 저번에 셰프님이 만든 빵에 발라먹는 땅콩버터로 만든 것 같은데...새콤한 맛도 나면서 더욱 맛있어졌어!”

“우와...한 입 베어 문 그 단면이 참 예뻐요….!”

“후훗. 이거라면 정말로 채소들 뿐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는걸?”

“칠리소스...매콤하면서 달콤해….! 채소랑도 이렇게 잘 어울리는구나…”

“음, 저희 나라의 춘권과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요리군요. 채소를 감싸는 이 피가 쫄깃하면서도 안의 재료의 맛을 방해하지 않고 잘 어우러지게 만들어 줍니다.”

힐라의 시작으로 저마다 좋아하는 채소들을 넣고 월남쌈을 먹기 시작한 직원들에게 저마다 호평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죄다 풀떼기밖에 없군….”

그 중, 단 한 명. 류월만이 그저 뚱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들어 채소들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이럴 줄 알고, 널 위해서 데친 새우와 불고기도 만들어 놨어. 이걸 싸 먹으면 좋을거야.”

“오오오!!! 역시 믿고 있었다! 고기를 다오!”

마치 어린아이처럼 편식하는 류월에게 미리 만들어 놓은 고기를 내놓자, 그녀는 정말 아이처럼 단번에 활짝 웃으며 라이스 페이퍼에 불고기를 잔뜩 얹어 먹기 시작했다.

“그렇지! 역시 고기가 들어가야지!”

이거라면 류월 또한 맛있게 월남쌈을 먹을 수 있었다.

“아아….만족했어….엘프의 여신 아샤이시여….당신의 충실한 딸은 이곳에서 구원받았나이다….”

그리고, 배 터지게 채소를 쑤셔 넣은 힐라는 마치 경건한 신도처럼 손을 모아 하늘에 기도를 보내기 시작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는 종족이었다.

*

월남쌈 입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채소지만, 라이스 페이퍼와 소스들이라면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죠!

특히 저는 느억맘 소스보다는 달짝지근한 칠리와 피넛소스가 더 좋습니다.

ps) 작중에서 야채와 채소가 언급되었는데, 야채는 자연에서 인간의 도움없이 자라는 식물을 의미하고, 채소는 농사를 지어 밭에서 자라는 식물을 의미합니다.

엘프의 식용식물은 자연이 엘프에게 주는 선물이라 여기기에 농사를 짓지 않아, 힐라는 야채, 다른 사람들은 채소라고 언급합니다.

용어에 혼란을 겪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역시 엘프는 비건 설정이 있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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