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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1화 〉 딱지치기 하는 도깨비 아닙니다. (231/289)

〈 231화 〉 딱지치기 하는 도깨비 아닙니다.

* * *

[쩝…. 요즘 따라 지나치는 인간들이 없군….]

야심한 한밤의 어느 산골짜기.

거대한 바위 위에서 머리를 벅벅 긁던 그가 중얼거렸다.

그의 덩치는 그가 앉아있는 바위처럼 거대했으며, 이마에는 작은 뿔, 그리고 그의 옆에는 작지만 둔중한 방망이가 놓여져 있었다.

그의 이름은 하빈.

도깨비다.

도깨비.

설화에나 나오는 신령 중 하나로.

인간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을 즐겨하는 생물이다.

특히 하빈은 야심한 밤길에 산길을 건너는 인간들에게 눈독을 들였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래서는 씨름을 할 수가 없구먼…]

씨름.

하빈은 씨름을 좋아했다.

두 사람이 전력으로 부딪혀, 각자의 힘으로 상대를 넘어뜨리는 싸움.

그렇기에 가끔 지나가는 인간들에게 말을 걸어, 씨름을 하곤 했다.

물론 하빈은 씨름 말고 딱히 인간들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없었지만, 인간들은 하빈의 풍채에 기겁하며 도망치거나, 절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빈이 도깨비 방망이를 꺼내 휘황찬란한 금덩이들을 보여주면, 인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을 굴리며 다시금 다가왔다.

뭐, 아직 그의 금을 가져간 인간들은 한 명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인간들의 상대로 연전연승을 이어가던 하빈의 씨름 대결은, 뚝 끊기게 되었다.

애초에 그가 거점으로 삼고 있던 산길이 워낙 외진 길이기도 하고, 겨울철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사라진 것이 이유였다.

[흠….그러고 보니, 저번에 만난 인간이 말했던가….]

한참을 지루해하던 그는, 과거에 만났던 인간의 기억을 떠올려냈다.

분명, 인간들 마을에서 주막을 하는 주모가 힘이 장사라고 했던가…

[....좋다! 그럼 오랜만에 한번 가볼까?]

할 것도 없고, 심심하던 찰나였다.

인간들의 마을로 내려가는 건 몇십 년 만이지만, 심심풀이라고 생각한 하빈은 몸을 일으켰다.

*

"흐으아아암….오늘도 끝났네…"

혁수는 설거지를 끝낸 칵테일 잔을 마른행주로 물기를 제거하며 크게 하품했다.

오늘도 열심히 일했으니, 어서 방으로 들어가서 푹 쉬고 싶다.

"....설마 오늘도 오시려나…"

가끔, 곤히 자고 있던 혁수의 방에 매화가 불쑥 들어오는 경우를 떠올리던 그는 설마...오늘도 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좋다.

좋긴 좋은데….

너무 자극이 세다.

여태까지 동정이었던 그였기에, 매화에게는 꼼짝도 못 하고 그저 과수원의 나무처럼 소중한 과실을 따이기만 할 뿐.

그리고, 한계까지 먹힌다.

가끔, 욕망에 번들거리는 매화의 눈동자가 무섭다고 느껴지는 혁수였다.

그때.

[이리 오너라!]

"어엉?"

벌컥, 하며 주막의 문이 열리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혁수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바라보자, 웬 듬직한 덩치의 근육질 마초 처럼 생긴 남성이 호탕하게 웃음을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기...오늘 장사는 끝나서, 다음에 오시겠어요?"

일단 오늘 장사는 마감했기 때문에, 더 이상 손님을 받을 수 없었던 주막에 나타난 손님이라, 혁수는 그에게 다가가며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호오….네가 바로 `주모` 로군. 평범한 인간들과는 다른, 나와 맞먹는 덩치, 단련된 근육, 강한 인상. 필히 자네가 그 장사 인간인게 분명하다!]

"....예?"

뭐라는 거야 이 양반.

갑작스럽게 나타난 손님이 정체불명의 소리를 늘어놓았기에, 혁수는 잠시 얼이 빠지고 말았다.

[자! 긴말은 필요가 없겠지? 바로 씨름이다! 나와 승부를 가리자!]

"....씨름? 승부? 아니, 도대체 누구세요?"

그러더니 더욱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윗도리를 벗어 던진 남성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자세를 취해오자, 더욱 당황하는 혁수였다.

"뭐야? 무슨 소리야?"

그의 큰 목소리가 주방까지 닿았기에, 주방 마감을 하던 강하도 그 소리에 놀라 헐레벌떡 홀로 달려 나왔다.

[자! `주모`! 나와 승부를 가리자!]

"뭐? 나?"

하지만 강하 역시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야, 저 놈 뭐야?"

"모..몰라! 갑자기 나타나서는 주모와 승부를 가리겠다고 난리인데?"

[에잇! 사내놈이 왜 이렇게 굼뜬 것이냐! 장사라고 소문이 난 `주모`라면, 어서 이 몸과 승부를 하거라!]

"...뭐라는 거냐? 나와 무슨 승부를 하겠다고?"

그렇게 홀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지고 말았다.

그때.

"응?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나 했건만, 웬 도깨비가 있느냐."

태평하게 오늘의 야식을 챙겨 든 류월이 나타났다.

*

"그래서, 도깨비라고?"

"그렇다. 보통 산에 박혀서 인간들에게 씨름 승부를 걸거나 하는 녀석들이지. 뭐, 나쁜 놈들은 아니다."

도깨비라니.

그러고 보니, 구미호도 있고, 용도 있는데, 도깨비라고 없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도깨비가 없는 것이 더욱 이상하게 느껴지는 강하였다.

"그래서, 도깨비...라고 부르면 이상한가? 이름이 뭐야?"

[이 몸의 이름은 하빈이다.]

"그래. 하빈? 숲에서 살던 도깨비가 갑자기 왜 나타난 거야?"

류월의 설명에 의하면, 숲에 박혀 살던 도깨비가 갑자기 인간의 마을에 나타나는 것이 이상했다.

[그야 당연히 씨름을 하기 위해서지!]

그런 강하의 질문에 뭐 그리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식으로 대답하는 하빈.

"씨름…? 그러니까 왜 씨름을 하는데 여기로 왔냐고."

[예전에 나와 씨름 승부를 겨루던 인간에게 들었다. 인간 마을의 스타 주막이라는 곳에 `주모` 라는 엄청난 장사가 있다고. 그런 인간이랑 승부를 벌이고 싶다!]

".....나야?"

"아마 그런 듯."

"너 아니면 누구겠느냐."

"흐아….이건 또 뭔…."

하빈의 말에 따르면, 이 도깨비는 강하, 자신과 승부를 하기 위해 여기까지 내려왔다는 소리다.

"내가 그 주모이긴 한데…."

"뭣이? 너 같은 작은 인간이 그렇게 강하다고?"

드디어 주모의 정체를 알게 된 하빈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믿든 말든 네 자유고, 난 씨름 할 생각 없으니 그냥 돌아가."

사내끼리 몸을 겹치며 엎치락뒤치락 하는 취미는 일절 없는 강하였기에,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휙휙 내저으며 말했다.

[싫다! 나는 강한 인간과 겨루고 싶다! 그러니까 씨름을 하자!]

"...이거 영 말이 안 통하는 양반...아니 도깨비네…"

하지만 강하의 거절에도 문답 무용으로 반응하는 하빈 때문에 강하는 더욱 귀찮아졌다.

"뭐, 어떠냐. 이것도 여흥.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승부해 주거라."

"뭐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거기에다가 마침 심심하던 찰나에 재미있는 구경을 할 것 같았던 류월 또한 하빈의 편에 서게 되었다.

"왜 그러느냐. 혹시, 질 것 같아 겁이라도 먹은 것이냐?"

[하하! 그런 건가! 하긴, 인간 따위가 이 나와 겨루어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빠직.

"....하빈, 이라고 했지? 당장 마당으로 튀어나와. 묵사발을 내 주지."

어떤 사람이든 들으면 빡칠 수밖에 없는 단어, `님 쫄았음?` 을 듣고 그냥 넘어갈 수 없던 강하가 벌떡 일어나 손짓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빠르게 끝내버리자.

*

"자, 승부는 간단하다.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자가 승리."

달빛이 비치는 주막의 마당에서,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얼굴을 바라보았다.

[좋다! 오랜만의 승부에 피가 끓는군]

"에혀...어쩌다가 이런 짓을…"

"두 사람 다 준비하거라."

류월의 말에, 두 사람은 상대의 허리춤을 꽉 쥐었다.

"그럼...시작!"

그렇게 류월의 신호로 씨름이 시작되었다.

콰당.

[.....어?]

……..가 순식간에 끝나게 되었다.

불과 시작한 지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하빈은 이미 땅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자~ 이제 끝."

"에이, 시시하구나."

"시끄러, 귀찮다고."

순식간에 하빈을 엎어버린 강하가 손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며 말했다.

아무리 도깨비가 강하다고 한들, 용의 힘을 지닌 강하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이...내가….한번에...졌다?]

하빈은 바닥에 엎어져 중얼거렸다.

인식하지도 못했다.

씨름만큼은 최강이라고 자부하던 자신이, 이런 조그마한 인간을 상대로, 손 하나 못써보고 순식간에 당했다.

[하...하하...으하하하하하!!!! 참으로 유쾌하구나!]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하빈은 폭소를 터뜨리며 웃었다.

패배의 감각.

인간을 상대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이 마음에 들었다.

[과연, 말 그대로 장사로군. 대단하다! 내가 졌다!]

"뭐,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건 좋네, 말도 안 된다면서 달려들 줄 알았는데."

만약 하빈이 승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덤벼든다면, 이번에야말로 산 쪽으로 던져버릴 예정이었던 강하는 수고를 덜었다 싶었다.

뭐, 도깨비니까 그 정도로 죽지는 않겠지.

[이 몸을 무어라 생각하는 거냐. 씨름은 정정당당한 승부, 그런 추잡한 짓은 하지 않는다.]

"씨름에는 진짜 진심인가 보네."

도깨비에게 있어서 씨름이란 숭고한 승부, 그 자체였다.

억지를 부리거나 반칙을 쓰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기에, 하빈은 깔끔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자, 이제 씨름도 해 줬으니까 돌아가. 빨리 마무리하고 쉬고 싶다고."

하빈의 억지대로 씨름도 해 줬으니, 어서 그를 보내고 싶었던 강하가 성가시다는 듯이 말했다.

[흠….그나저나 배가 고프군. 그러고 보니, 여기는 주막이라고 했나? 그럼 음식도 파나?]

그러나 하빈은 자신의 배를 만지며 허기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아...팔기는 하는데….오늘은 장사 접었다."

[뭣? 나는 배가 고픈데! 나에게도 밥을 다오!]

"....끄응…"

갑자기 쳐들어와서 씨름을 해달라고 하질 않나, 해주니까 밥을 달라고 하질 않나.

이거 완전…

"? 왜 나를 쳐다보는 것이냐?"

"어? 아니, 뭐….비슷해서."

"??"

"아무튼….에휴….그래, 뭐가 먹고 싶은데?"

이런 비슷한 부류를 이미 알고 있던 강하는 그가 밥을 먹을 때 까지 억지를 부릴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후딱 밥을 먹이고 보내는 쪽이 더 빠를 것 같았다.

[음...역시 도토리묵이 좋다. 그 부드러운 식감과 도토리의 향은 최고지.]

강하의 질문에 하빈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도깨비가 묵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여기서도 변함이 없는 듯 보였다.

"도토리묵이라….그러고 보니 냉장고에 분명 있을텐데…"

도토리묵은 분명, 가을철에 수두룩하게 생긴 도토리를 도토리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남아있었다.

"그래, 만들어 줄 테니 그것만 먹고 가는 거다?"

[알겠다!]

이게 내 팔자인가 싶은 강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주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자, 도토리묵 무침이다."

[오? 이건 색다르군. 내가 먹었던 도토리묵은 언제나 갈색의 네모난 형체였는데. 많이 다르다!]

하빈은 강하가 내온 요리를 보며 감탄했다.

분명, 자신이 생각한 도토리묵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요리였다.

오목한 그릇에 여러 가지 채소와 도토리묵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알겠지만, 그것들이 새빨간 양념에 무쳐서 나와 있었다.

[그럼, 잘 먹겠다!]

꼬르륵거리던 배를 움켜쥐던 하빈은 빠르게 숟가락을 들었다.

[.....이게...내가 먹던 도토리묵인가…? 엄청나게 맛있다!]

아삭하게 씹히는 양파, 상추가 산뜻한 느낌을 준다.

탱글탱글하게 씹히는 도토리묵은 씁쓸하지만 고소한, 자연의 향이 물씬 풍겨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양념!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그러면서도 매콤하게 찔러오는 이 양념이, 자꾸만 혀와 위장을 이끌었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뭐, 잘 먹어주니 좋네."

귀찮기는 하지만, 이렇게 잘 먹어주니 왠지 기분이 좋아진 강하였다.

[정말 잘 먹었다! 아주 맛있어!]

그리고, 순식간에 접시를 비워버린 하빈이 배를 두들기며 말했다.

덩치를 생각해서 상당히 많은 양을 담아줬는데, 역시 많이 먹었다.

[대금은 얼마지? 이 정도면 금덩이가 아깝지 않구나!]

"됐어. 오늘은 그냥 서비스야."

[서비...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다! 아주 잘 먹었다! 다음번에 또 오도록 하지!]

"그래. 그때는 씨름하러 오지 말고 손님으로 와라."

[하하! 생각해보마!]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낸 하빈은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막을 떠났다.

[음….세상은 역시 넓구나. 좋다! 다음번에 만날 때 까지 수련에 힘을 써야겠군!]

강하의 마음도 모른 채, 하빈은 이미 다음번에 만날 때를 대비하여 수련할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

도토리묵 무침 입니다!

맛간장으로 간단하게 먹는 경우도 많지만, 저는 새콤달콤한 양념과 각종 채소에 버무린 도토리묵 무침을 좋아합니다!

특히 도토리묵은 가끔 열리는 시장에서 파는 두부와 같이 팔리는 도토리묵이 정말 맛있죠...

아 침고인다...

그나저나 도깨비는 동양 판타지에 자주 나오는 단골같은 이미지인데, 이제서야 등장을 하게 되었군요?

요즘의 도깨비는 딱지치기 하면서 인간들과 겨루는 모양입니다.

도깨비는 그와 비슷한 일본의 '오니'와는 다르게, 인간들에게 친화적이고, 장난을 잘치는 개구쟁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뿔 같은 경우는 있는 경우보다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특히 저는 온갖 요괴들이 나오는 이매망랑(온갖 요괴와 괴물들을 가리키는 말.)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만화를 특히 좋아합니다!

동양 특유의 몽환적인 색이 진하게 나서 그런걸까요?

언젠가 차기작 목표중 하나의 후보로 정해져 있기도 하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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