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화 〉 [특별편]스타 주막의 체스 한 판!(1)
* * *
"야, 그거 재미있냐?"
한가한 스타 주막의 어느 날.
겨울철에는 확실히 손님이 줄고, 그만큼 여유가 생긴 만큼 간간이 쉬는 시간이 늘어났다.
뭐, 처음에야 자기가 할 것들을 찾고, 그것에 시간을 쏟게 되었다.
혁수는 못과 망치를 뚱땅거리고, 힐라는 추운 마당으로 나와 몸을 단련했으며, 벼루는 붓을 잡았다.
창과 마오는 손님이 없음에도 칼을 잡았고, 그렇게 연습으로 나온 결과물로 이른 점심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간의 시간을 보내다가, 이내 조금 지겨워졌다.
물론, 자신들이 하던 일에 흥미가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즐겁고 재미있지만, 가끔, 쉬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할까?
뭐, 창은 계속해서 칼을 잡았지만, 다른 이들은 홀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근데, 솔직히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이 생활하며 얼굴을 맞대던 그들이기에, 대화 주제는 점점 떨어져 가다가, 이내 뚝. 하고 끊겨 버렸다.
어색한 침묵 사이에서, 뭐라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체크메이트!"
"아아…! 이걸 못 봤네…."
체스였다.
이 시대에 체스 같은 보드게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한에서만 해도 장기가 있었으니까.
화련에는 바둑이, 애슐란에는 카드 게임이 발전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장기는 뭔가 멋이 나지 않았고, 바둑은 룰이 너무 어려웠다.
카드 게임은 재미있기는 했지만, 너무 운에 치중되어 있어 제대로 된 게임 실력을 맞부딪치기 어려웠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하던 혁수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체스판과 체스 말을 뚝딱 만들었다.
새로운 보드게임의 등장에 직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그렇게 매일같이 쉬는 시간이 되면 한 곳에 모여 서로 체스를 하게 되었다.
"후후….아직도 어리숙하구나 제자야…."
"아니...스승님은 나보다 체스를 알게 된 것도 늦으시면서 왜 이렇게 잘해요?"
"얌마! 내가 누구인지 몰라? 착귀갑사 대장 임마! 내가 얼마나 병사들을 이끌고 악귀들을 때려잡았는데! 수많은 전쟁터에서 많은 병사들을 이끌었어. 이 체스판이 전쟁터, 말이 병사들이라면, 완전 내 손바닥 안이라고."
이로써 16연패째인 혁수가 심술이 난 채로 투덜거리자, 힐라가 에헴!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완전 허접이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하는 피식 웃으며 혁수를 비웃었다.
"아니 형! 형은 체스도 안 하면서 왜 그래? 내가 아무리 못해도 형은 이기지!"
그 소리에 발끈한 혁수가 벌떡 일어나 강하에게 소리쳤다.
"응 허접~"
"아 진짜! 그럼 한번 떠! 내가 발라줄게!!"
"난 허접이랑 게임 안하는뒈?"
"이씨…!"
원래 이런 싸움은 절대로 끼지 않고 옆에서 깝죽거리는 것이 제일 재미있었다.
“그런데, 재미있어 보이기는 하네, 다들 체스에 빠져있는 모양이니까.”
한참 동안 혁수를 놀리던 강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으음….나이트를 이쪽에 놓으면 되려나…”
“엇…! 큰일이다..!”
“으앙! 퀸이 죽었다….”
“좋았어!”
주막의 홀에는 혁수와 힐다뿐만이 아니라, 다른 직원들 또한 체스 삼매경이었다.
모두들 체스의 재미에 푹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강하는 주방 정리도 해야 하고 그다지 체스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에 딱히 그들 사이에 끼어서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취향은 포커나 화투 취향이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해졌다.
“음….그러면, 여기에서 누가 제일 체스를 잘해?”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본디 어떤 취미 활동이나 무언가가 유행하다 보면, 언제나 최고가 누군지가 궁금해지지 않던가.
섣부른 한 마디.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
“아. 아. 큼큼…”
하루의 장사가 끝난 늦은 밤.
파렌은 자기 목을 풀며 홀의 중앙에 우뚝 서 있었다.
강하의 한 마디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많은 말들이 오갔다.
[아무리 그래도 체스 하나만큼은 내가 이기죠~]
이번째로 혁수를 상대로 17연승을 달성한 힐라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으쓱거렸다.
전쟁터가 익숙한 힐라에게, 이런 전략 게임에서도 마치 베테랑 장수와도 같은 그녀의 실력이 그대로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흥! 아무리 힐라 언니라고 해도, 제 실력이 더 높을걸요?]
그 소리를 들은 벼루 또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언제나 풍경을 그리던 벼루는, 사물을 보는 눈이 뛰어났고, 그렇기에 일반 사람이라면 보지 못했던 한 수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에이~ 내가 어떻게 탐라관을 집어삼켰는데~ 높은 인간 놈들 바둑 스승도 해준 적 있었다 이 말이야~]
흰 여우 꼬리를 살랑거리는 매화도 이에 질세라 자신의 과거를 들먹이며 코웃음을 쳤다.
탐라관.
그곳에 피어나는 꽃들은 언제나 아름다워야만 했다.
그 아름다움이란, 외형만이 아니었다.
예절, 지식, 예술 등.
언제나 자신의 외면과 내면을 가꾸는 탐라관의 꽃 중, 으뜸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하! 우습구나 우스워! 이 몸을 놔두고 저리 아웅다웅하는 꼴이라니. 뭐, 너희들이 무엇을 알겠느냐. 당연히 나보다 어리석으니, 이런 농도 보는 재미가 있구나!]
그런 직원들을 보며 웃음을 자아내는 류월이 소리쳤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
흑룡.
저들이 감히 우러러보지도 못하는 존재인 류월이었기에, 그녀는 이런 여흥에서 자신이 패배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판단했다.
[얌마! 척귀갑사 짬 무시하냐?]
[흥...아무리 그래도 내가 홀려 먹은 남정네들이 몇인데...물론 혁수 씨 빼고~]
[체스만큼은 자신 있어요!]
[어허! 농은 여기까지다!]
그러더니 어느새 자신의 실력이 더 높네 마네로 서로 언쟁을 높이기 시작하니.
[어라…? 야, 야! 자...잠시만! 알았으니까 진정 좀!]
그제서야 사태 파악이 된 강하가 말리려고 했으나, 그들의 승부욕에 붙은 불은 계속해서 활활 타오를 뿐 이었다.
그때.
[음~ 이러면 어떨까?]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백설이 입을 열었다.
*
“....그럼, 제 1회! 스타 주막 배 체스 대회를….시작 합니다!!!!!”
파렌의 말을 시작으로 체스 대회의 막이 열리게 되었다.
“승부는 간단합니다! 서로 짝을 지어, 단판 승부를 보인 뒤. 마지막에 남은 한 사람이 이번 대회의 우승입니다!”
“이야...말 잘하네….”
파렌은 화려한 손짓과 우렁찬 목소리로 주막의 홀을 휘어잡았다.
설마 파렌에게 이런 재능이 있을 줄이야.
“그나저나, 이러면 괜찮을까요?”
강하는 고개를 옆으로 돌아, 백설에게 물었다.
“뭐 어떠니~ 마침 할 것도 없고, 이런 여흥은 분위기가 오른단다?”
“....그런가아..”
그런 강하의 질문에 태평하게 대답하는 백설을 보던 강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너는 안 해도 돼?”
“조...조는 머리가 나빠서….규칙도 잘 모르게소요…”
“그럴 수도 있지. 너무 기죽지 마.”
그러다가 옆에서 울적해진 채로 홀을 바라보던 마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잠깐. 하지만 이런 대회에 단순한 명예만 주어지는 건 재미가 없죠!
이번 대회의 우승자에게는…..딱 1주일 동안 저녁 식사의 메뉴 결정권이 주어집니다!”
“....뭐?”
어라? 그런 소리는 못 들었는데?
“....진짜?”
“뭣이라?”
“그...그런…!”
파렌의 폭탄선언에 직원들의 눈이 희번뜩. 번쩍였다.
스타 주막의 저녁 식사는, 그 요리를 담당하는 강하의 재량껏 만들어졌다.
기껏해야 가끔 직원들 중 한 명이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면, 강하가 그 의견을 고민하다 결정하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식사에,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일주일동안?
“일...일주일….애플 파이가 잔뜩….!”
“쫄깃한 국수….!”
“고기….고기고기!!!”
그렇기에 직원들은 더욱 불이 붙어버리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럼...시이작합니다아!!!!!”
“““우와아아아아!!!!”””
“....모르겠다…”
“아하하~ 재미있겠네~”
이제는 반쯤 체념해버린 강하와, 그냥 다 즐겁다는 듯이 해맑게 웃는 백설.
그렇게 욕망과 승부욕이 뒤엉키는 체스 대회가 시작되었다.
*
대회 자체는 간단했다.
서로 제비뽑기해서, 이어진 상대와 체스 경기를 벌이고, 이기는 사람이 다음 경기로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자, 그럼 지정된 자리로 이동해 주세요!”
제비를 모두 뽑은 직원들은 지정된 자리로 이동해, 상대를 만났다.
1번 자리.
“오호~너도 참가하는 것이냐?”
“재미있어 보이잖아~”
류월은 맞은편에 앉은 백설을 바라보며 물었지만, 백설은 그저 방긋방긋 웃을 뿐이었다.
“흥! 그래도 이 몸은 봐주지 않을 테다!”
“그래~”
2번 자리.
“향아, 지고 나서 울면 안 된다?”
“걱정하지 말아 주세요 힐라 언니. 제가 이길 테니까요.”
서로 방긋 웃으며 상대를 마주 보고 있었지만, 그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튀기고 있었다.
‘반드시 이겨서 애플 파이 1주일 권을 얻고 말 테다!’
‘이번 대회에 이기면 아주 힘든 요리를 신청해서 일손이 모자란 강하 셰프님과 단 둘이서만 주방에서 저녁 요리를…..!”
욕망과 욕망이 강하게 부딪치는 격렬한 자리였다.
3번 자리.
“좋아...반드시 이겨서 내가 최약체라는 누명을 벗어주겠어…!”
“국수….맛있겠다….”
상대방에게는 관심도 없고, 자신만의 목표만을 바라보는 혁수와 벼루가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이번에 이기면….잘난 척 하는 사부님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테다!’
‘엄...이기면 어떤 국수를 만들어 달라고 하지…? 저번에 먹었던 쫄면? 아니면 메밀면? 따뜻한 잔치국수도 맛있는데...에헤헤…!’
4번 자리.
“흥~과연, 원래 남자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뀌었네? 물론! 나보다는 덜 아름답지만!”
“.............”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하지 그래…?”
“...............”
“이게 뭐야!!”
자신의 상대인 창을 가볍게 흔들려고 했던 매화였지만, 매화의 도발에도 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냥 움직이지 않는 석상을 상대로 말하는 기분이었다.
‘음, 이번 대회에서 이긴다면, 더욱 강하 셰프님의 요리를 탐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겨야겠군.’
정작 창은 자신의 앞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매화는 보이지도 않았다.
“자! 그럼 첫 번째 경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서로만의 목적을 가진 채로, 체스 대회는 막 시작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