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화 〉 악당들은 돈이 없어.
* * *
추운 겨울.
나뭇잎들이 바스러지고, 모두가 집에 모여 봄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그리고 여기.
겨울을 버티는 이들이 있었으니.
“에췽!...킁....!”
케린은 빨개진 코를 훌쩍거렸다.
“케린? 추워?”
“웅...춥다....”
“별수 없지. 땔감 살 돈도 다 떨어졌으니.”
“이것 참....일을 하지 못하니...”
이미 구멍이 뚫려, 추운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한지에 밥풀을 붙인 한지를 덕지덕지 붙이는 세실이 말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자, 카람과 기린이 나가던 일용직 일도 막히고, 쓸 돈은 점점 늘어나다 보니, 어느새 빈털터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돈을 아껴야 한다고 했건만, 없는 형편에 주막에 가서 헤벌쭉 해져서는...”
“뭐...뭣?! 그...그렇게 말하는 세실, 네년도 좋다고 가서 술이랑 생선을 무지하게 먹었잖아!”
“.....그건...음....할...말이 없군...”
사실, 그들은 추운 겨울철을 대비하여 돈을 조금씩 저축해 두었다.
하지만, 이만큼 모았으니까, 조금은 써도 괜찮겠지? 라는 마음에 한번, 두 번, 계속해서 스타 주막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이렇게 되고 말았다.
“나...푸딩 먹고 싶어...”
“햄버그...”
가고 싶다.
맛있는 밥과 술이 있는, 스타 주막으로.
하지만, 돈이 없다.
간신히 바스러지지 않는 초가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추위에 벌벌 떠는 그들이 바라기에는 너무나도 멀었다.
예전 같았다면, 근처 인간들이라도 습격해서 금품을 갈취할 수 있겠지만, 너무 인간들 마을에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이제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절망에 빠진 그들이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을 때.
“좋은 생각이 있다.”
“음? 카람?”
지금까지 묵묵히 침묵을 지키던 카람이 입을 열었다.
“짐승을 잡자.”
“...짐승?”
“짐승이라면, 숲에 사는 짐승들 말이냐?”
“그래. 인간들은 짐승을 비싼 값에 사들인다고 하더군. 그리고 지금은 겨울철, 짐승들이 잠이 들어 더욱 구하기 힘들 터. 허나, 숲은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곳 아닌가.”
카림은 어제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보았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주고 파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가 고기를 넘기면, 돈을 받을 수 있을 터.
“아~그렇지! 나도 보았다! 사슴이나 멧돼지 같은 걸 잡아서 팔더군.
우리의 발달된 감각이라면,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와! 사냥이다!”
“나 사냥 할 거야!”
“흠...나쁘지 않군, 짐승이야 산에 틀어박혀 있을 때, 대충 잡아서 먹기도 했으니. 뭐, 지금이야 그렇게 하지 못한다만. 아무튼 좋은 생각이다.”
“그럼, 출발하지.”
그렇게 그들은 비장한 각오를 새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2금 20은.”
“뭣? 그게 무슨 소리야!”
고기 써는 칼을 내려놓은 간호는 손가락을 펴 보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번의 인가....아니 그 양반은 사슴 한 마리에 40~50금은 받아 가더니, 우리가 잡은 멧돼지는 왜 그렇게 싸!”
그런 간호의 선언에 기린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역정을 냈다.
분명, 덩치도 그때 보였던 사냥꾼이 잡았던 사슴보다 컸는데, 1금 20은 이면 며칠 치 땔감 사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 돈이었다.
“예끼! 네가 보았던 그 사슴은, 우리 마을의 제일가는 사냥꾼, 청 형님이 잡아 온 사슴이야!
잡을 때도 가죽에 상처도 최소한으로 만들고, 곧바로 피를 빼고 난 뒤에 시냇물에 담가 놓아서 누린내도 없지. 그야말로 일품 중의 일품이야!
그런데, 너희들이 잡아 온 멧돼지를 봐라!
뭐야 이건...가죽은 무슨 호랑이 앞말에 맞은 것처럼 너덜너덜하고, 피는 빼지도 않아서 고인 피가 줄줄 새고, 냄새는 무슨....”
그렇게 역정을 내는 기린에게 맞서는 간호가 그들이 잡아 온 멧돼지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생전 모습 그대로 들고 온 청의 사슴과는 달리, 그들이 들고 온 멧돼지는 형체를 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러면 가죽은 쓸 수도 없는 데다가, 고기에도 누린내가 너무 심해 납품도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받고 싶지도 않은데, 자네들 형색이 그래 보여 받아준 거야. 쯧....그러니 얼른 돈 받았으면 나가!”
그런 간호의 말에, 결국 그들은 절그럭거리는 동전을 받아들이고는 터덜터덜 정육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젠장....무슨 짐승 하나 잡는데 왜 이렇게 까다로워? 그 청이라는 놈은 뭐야?”
“우리....주막에 못가?”
“일단 땔감을 사야 하니, 남은 돈으로는 가지 못할 듯 보인다.”
“푸딩 먹고 싶은데....”
“배고파....”
“...일단 남은 돈으로 뭐라도 사서 배라도 채워야겠군....”
세실은 한숨을 내쉬며, 그래도 이거라도 어디냐 라는 생각을 가졌다.
허나.
“.....결국, 그 방법밖에 없나...”
카람은 아끼고 아낀, 비장의 수를 떠올려냈다.
“오옷! 뭐냐 카람!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냐!”
“그렇다. 하지만, 매우 힘들고, 고달플 것이다. 그래서 이 방법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꼈지만, 별수가 없군.”
카람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자, 가자!”
그렇게 카람은 나머지 악귀들을 데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여...여긴?”
“주막이잖아!”
그렇게 카람이 발을 향한 곳은 바로, 스타 주막이었다.
“서...설마! 그 비장의 수라는 것이 바로....”“드디어....습격인가!”
“.....이 앞은 매우 고될 것이다. 그럼에도 따라 올 것이냐?”
“...물론이다! 네가 나서는데, 우리가 물러설 수는 없지!”
“케린! 준비 됬지?”
“응! 카린도 마찬가지?”
“후....긴장되는 군.”
“자....간다!”
카람을 선두로, 그들은 당당하게 주막의 입구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딸랑거리는 종소리에 입구로 달려간 벼루는, 무언가 묘한 공기를 느꼈다.
“뭣이냐! 이 기백은....네놈들이냐?”
그 공기를 빠르게 느낀 류월이 카람에게 나타나 물었다.
“...........”
“그래....악귀놈들은 다 그런 모양이군....내 강하의 말을 들어, 너희들을 건드리지 않았건만, 이렇다면 말이 다르지.....”
류월의 질문에도 침묵을 지킨 카람의 모습을 본 류월은, 힘을 끌어모아 손톱을 세웠다.
“으윽....! 역시 흑룡...! 엄청난 기백이다...”
“정신 차려! 카람을 봐라. 저 흑룡을 상대로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류월의 어마어마한 힘을 본 악귀들은 식은땀을 흘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뭐야? 무슨 일이야?”
“어서 덤벼라. 너희 같은 조무래기는 어서 치워버려야겠다.”
“어라? 저 녀석들은....?”
그때, 홀에서 느껴지는 힘에 헐레벌떡 주방에서 나온 강하가 카람 일당을 보았다.
‘지금이다!’
강하를 목격한 그 순간, 지금까지 목석처럼 서 있던 카람이 드디어 몸을 움직였다.
“드디어 덤빌 생각이군, 좋다! 덤벼 봐라!”
“카람...!”
그리고.
“한 끼만 부탁드립니다!!!”
“...........어?”
“....카...람?”
“...뭐시여 이게...?”
곧바로 무릎을 꿇은 카람은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며 자신의 앞에 나타난 강하에게 빌었다.
“이...이게 무슨...?”
“어이! 너희들 뭐 하는 거냐! 어서 빌어라!”
그런 카람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해진 악귀들에게, 카람이 소리치며 말했다.
“어...응....”
“이게 뭔...”
“케..케린...?”
“카린...”
금방까지 전투 태세를 갖추던 악귀들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런 카람에게 이의를 제기할 생각조차 못 하고 떨떠름하게 카람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카람의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아껴둔 비기.
싹싹 빌어 동정 유발하기. 였다.
주막을 습격?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미 그들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었다.
그리고 그 것을, 카림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강하, 이 주막의 주인에게 동정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허, 됐다. 흥이 다 깨졌군.”
그런 악귀들의 모습에 허탈해진 류월은 힘을 거두어 콧방귀를 뀌었다.
“....한 끼?”
“....지금 당장 돈이 없어서 그럽니다. 반드시 일해서 갚을 터이니, 제발 한 끼만...”
“.........벼루야.”
“ㄴ, 네?”
“...이..일단, 자리로 안내 좀 해 줘라. 눈물 나서 못 봐주겠다.”
그런 카람의 비굴한 모습에, 고개를 든 강하가 벼루에게 말했다.
*
“자, 일단 너희가 자주 먹던 걸로 만들었다.”
“고...고기다...!”
“우...우와! 햄버그..!”
“푸디잉...!”
“생선 구이에 청주....!”
“튀김...!”
그들이 자주 먹던 요리를 직접 들고 온 강하가, 그들의 앞에 그릇을 내려놓았다.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먹어라.”
“가...감사합니다..!”
“맛있겠다!”
“음...! 이 맛....정말 오랜만이야...!”
“햄버그....마시써어....!”
“크으...! 술이 참 달다...!”
“우걱...고...고기가 녹는다아...! 우걱...!”
강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들은 마치 며칠을 굶은 것처럼, 아니 실제로 최근에 먹은 것이라고는 값싸게 구한 감자를 쪄서 먹은 것밖에 없었기에, 걸신들린 것처럼 음식을 먹어 치웠다.
“하아....너희들, 밥은 먹고 다니냐...?”
“그, 그게, 겨울이 되다 보니, 일자리가 없어서....”
“아까 댑다 큰 멧돼지도 잡았는데...상태가 안 좋다고 돈도 못 받았어....”
“요즘엔 여자들 또한 집에 박혀 있어, 바느질 같은 소일거리도 없습니다...”
“집이 추워....”
그런 모습에 강하는 한숨을 푹 쉬며, 그들의 생활을 물었다.
일거리는 없고, 돈도 없고.
간신히 하루하루 버티는 그들이었기에, 금세 침울해졌다.
“뭐, 그래도 다행이네. 너희가 인간을 습격하거나 하진 않은 모양이야.”
“케...케흑!”
“쿨럭...!”
그 모습에 조금 안심한 강하의 한마디에, 모두 음식에 사례가 걸린 듯 세차게 기침했다.
‘정체를....들켰다?’
‘언제부터 들켰지...?’
악귀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들키지 않았으리라 생각했지만, 강하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저...뭐야, 카람...이였나? 저 녀석, 오자마자 바로 들켰어. 우리 눈에는 다 보였거든.”
“그...그렇다면 어째서....우리, 아니 저희에게 음식을 파신건지..?”
“뭐, 딱히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고, 저 녀석. 우리 주막 음식을 먹고 나서 계속해서 오더라고.
그 모습을 보니, 뭐...굳이 족칠 필요는 없어 보였거든.
만약 한 번이라도 마을에서 너희가 날뛰었으면, 저 뒤에 있는 류월이 개작살을 내버렸을 거니까,“
“그렇다. 너희들이 살아있는 것은, 전부 이 몸의 자비 덕분이다! 흥!”
그 뒤로, 카람을 포함한 악귀들이 매일같이 주막에 들락날락하면서 밥도 먹고, 마을에서 일도 하는 모습을 본 강하였기에, 당분간 지켜보자는 말로 류월을 설득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너희. 돈이 없지?”
“...예.”
“흠....그럼 이렇게 하자. 우리도 당장 일손이 급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잡일 같은 건 매일 돌아가면서 일하거든? 뭐, 마당 청소라던지, 설거지라던지, 음식물 처리라던지.
그런 일들을 너희에게 맡겨줄게.
물론, 밥도 챙겨주고 돈도 주마.“
“....정말입니까?”
“우와! 밥이다!”
“돈...! 돈!”
강하의 제안에, 그들의 얼굴에는 보기 좋게 빛나고 있었다.
“그, 그런데...어째서 저희에게 이렇게 잘 해주시는지...”
하지만, 그런 강하의 배려가 너무 달디 단 꿀 같았기에, 혹시나 하였던 세실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냥, 예전 일이 떠올라서.”
강하도 잘 안다.
돈도 없이 무작정 해외로 떠나, 외지의 땅에서 가뜩이나 힘든데 월급은 박봉으로 돈을 받고, 간신히 한 끼를 때우던 그 시절이.
악귀들을 보다 보면 그때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뭐, 싫으면 관두고.”
“아,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악귀들은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되었다.
*
“저, 셰프님.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응?”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주막을 떠나자, 창이 강하에게 몰래 소곤거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그들은 인간이 아닌, 악귀입니다. 제 눈에는, 그들의 사악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강하와 마찬가지로 반룡인인 창은, 그들의 본모습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걱정이 되었던 창은, 강하의 행동에 불안이 약간 들었다.
“뭐, 괜찮아~ 무슨 일 있으면, 저기 도마뱀이 어떻게든 해 주겠지.”
“뭐냐? 금방 무어라 했느냐?”
“아니~ 별일 아냐. 아무튼, 걱정하지 마.”
이 마을에서, 우리가 있는 한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한 강하는 창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 그럼 슬슬 브레이크 타임도 끝났고, 다시 개점 준비할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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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싸울 생각 조차 못하는 악귀들이었습니다.
자본주의의 맛을 쬐끔 맛 맛봐라!
PS)오늘은 요리 장면이 별로 나오지 않아, 독자님들께 조공을 드리고자 합니다.
일식 시험때 만든 달걀말이 입니다!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여, 흰자에 크래미, 양파, 당근, 파프리가 등을 다져서 넣고, 달걀말이 팬에 잘 구워 줍니다.
그 다음, 노른자에도 간을 하여 팬 그대로 달걀물을 부어, 잘 뒤집어 주면 끝!
이걸 보시던 교수님도 "흰자 만으로는 말기 힘들텐데..." 라고 하셨지만, 어찌어찌 잘 만들었습니다!
뭐...특별히 이렇게 만든다고 장점은 없고, 보기 좋습니다.
언제나 독자님들을 향한 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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