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화 〉 미친 새끼들.
* * *
애슐란 외곽 마을 리란.
읏차….! 좋았어! 어제 덫을 깔아두길 정말 잘했다!
아직 여리여리한 어린아이티를 벗어나지 못한 첸은 운 좋게 자신이 깔아둔 덫에 걸린 토끼를 들고,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마을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 토끼면 오늘 저녁, 가족들끼리 아주 맛 좋은 토끼고기 스튜로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싱글벙글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첸!
어? 브린 아저씨? 오늘은 아저씨가 망보는 거야?
그렇게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 브린이 첸을 불러세웠다.
이 녀석! 네놈 또 산에 들어갔지!
아얏!
브린의 부름에 첸이 발걸음을 멈추고 다가오자, 브린은 그런 첸에게 꿀밤을 먹였다.
내가 말했지?! 숲은 아직 너 같은 애송이가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하단 말이다!
아파앗…!
숲에는 마물이 있다.
무기를 장비하는 모험가들이라면 모를까, 아직 마을의 꼬마인 첸이 자꾸만 숲을 들락날락하자 브린이 신신당부했건만, 첸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몰래 마을 밖으로 나가서 숲으로 가는 것이다.
나 이제 어른이거든?!
어른은 무슨, 턱에 수염이나 자란 뒤에 말해라 꼬마야.
이씨….
아무튼, 숲은 위험하다니까?
에이~ 마물들은 겨울철에는 거의 안 보이잖아. 게다가 저번에 나타난 마물들은 아저씨들이 다 잡았는걸?
첸은 꿀밤을 맞아 아픈 머리를 자꾸 매만지며 소리쳤다.
그건…..정말 이상한 일이야. 원래라면 숲에 있어야 할 녀석들이 어째서…..
그 소리에 브린 또한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하지만, 어째서 숲에 있던 녀석들이 마을로 쏟아졌는지는 모르겠군......마치 무언가에 겁을 먹은 듯 한....
D등급의 고블린, E등급의 레서 울프 등.
초보 모험가들이 자신들의 실력을 기르기 위한 상대로 적합할 정도의 마물들이, 어째서 마을로 왔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다한은 왠지 심상치가 않았다.
무언가, 어떤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어? 아저씨, 저거 뭐야?
응? 뭐가 말이냐.
그때의 일을 떠올리던 브린의 소매를 잡아당긴 첸이 손가락을 가리켜, 마을 입구와 정반대인 곳을 가리켰다.
외부인…? 우리 마을까지 무슨 일이지?
그 곳에는, 어떤 물체가 있었다.
인간과 비슷한 크기에 두 발로 서 있는 무언가가….
섬뜩.
덥석.
아…아저씨?
오랜만의 외지인에 흥미가 가득한 첸이 그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브린이 그런 첸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잘 들어라, 첸…..당장이다….당장 뒤도 돌아보지 말고, 경비소로 달려가.
휘익.
브린은 마을 울타리에 걸쳐놓았던 긴 창을 들어, 그 형체에게 겨누었다.
달려가서, 어떻게든 지원군을 불러라.
아…아저씨..!
달리라는 소리 못 들었냐! 빨리 달려 빌어먹을 꼬맹아!!!!!!!
창대를 잡은 그의 손에서 자꾸만 땀이 새어 나왔다.
창날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거렸다.
과거, 브린은 일류 모험가를 꿈꾸었다.
시골 청년이었던 그는 마을을 나와, 도시에서 모험가로써 일을 시작했다.
지금이야 은퇴해서 변방의 작은 마을에 처박혀 있지만, 그는 수많은 마물들을 보고, 싸웠었다.
분명, 인간이라 생각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인간의 크기로는 작은 점처럼 보일 텐데, 인간의 형태가 보인다?
어…어어! 아, 알았어!
평소와 같지 않던 브린의 태도에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첸이 마을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하하….조졌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브린은, 힘없이 웃었다.
이날, 애슐란의 지도에서 작은 마을 하나가 사라졌다.
*
“세상에….”
진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귀찮다는 듯이 설렁설렁 마차를 타고 달려왔지만,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건물은 무너지지 않은 곳이 없었고, 붉은 피에 적셔져 있었다.
악취와 구더기가 들끓고, 까마귀가 날아다녔다.
........일단 생존자를 찾으세요! 무너진 담벼락이나 건물 사이에 깔린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ㅇ, 예!
심각한 상황이지만, 진혁은 침착하게 병사들을 풀어, 인명구조부터 시작했다.
(주…주인….)
“그래, 이건 좀 심각한 것 같다.”
허리춤에 달린 드라가 부들부들 떨렸다.
아무리 외각 마을이라곤 하지만, 경비병도 있고, 그들의 장비가 허술한 것도 아니다.
도적단?
그렇다면 건물들이 불에 타 있거나 무언가의 흔적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광경은 말 그대로 박살이 나 있었다.
“....마물인가…”
최근에 잠잠하기는 했지만, 이런 행적을 보이는 것은 마물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마물이…!
진혁님! 생존자가 있습니다!
그 사이, 건물 내부를 탐사하던 한 병사가 진혁을 불렀다.
생존자는 어디 있죠?
그…그게,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그런데, 정신이 나가버린 것처럼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그 부름에 쏜살같이 달려가자, 한 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일단 모포를 건네주고….며칠이나 굶었을지 모르니, 우유를 데워오세요. 그리고 신관을.
옙!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 3일 전.
그렇다면 상당히 초췌한 몸 상태일 것이라 생각한 진혁은 그 아이를 위해 힐을 해 줄 신관 또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진혁님.
예, 자매님. 갑작스럽지만 이 아이에게 힐을…
어머나…사태가 심각하네요. 알겠습니다!
급작스러운 호출이었지만, 아이의 상태를 본 신관은 재빠르게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자애의 신 레헬이시어, 이 조그마한 아이에게 자비를….힐!
레헬을 따르는 레헬른 교도의 상징인 익은 보리가 그려진 탈리스만*(Talisman.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행운을 가져다주고 보호해준다는 물건을 의미한다. 동양 문화로 치자면 부적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을 소년에게 가져다 대자, 온화한 밝은 빛이 소년을 뒤덮었다.
으…으으….!
후…! 어찌하여 목숨은 살린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매님. 꼬마야. 정신이 드니?
그러자, 의식을 차린 듯. 몸을 움직이는 소년을 감싼 진혁이 물었다.
여…여기는….?
정신이 들었어?
붉은 머리칼을 가진 소년이 눈을 뜨자, 진혁은 가볍게 웃어보였다.
아…..기사…님….엄ㅁ..마….엄마…는…어..디…?
......괜찮아. 이미 치료를 받고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단다.
다행…이다…
사실, 아직 소년을 제외한 생존자는 찾지 못했지만, 진혁은 소년을 위해 거짓말로 안심시켰다.
꼬마야, 정신을 차린 지 얼마 안됐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지 않겠니…?
우선, 현재 상황을 알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소년의 말이 꼭 필요했다.
그렇기에 진혁은 붉은 머리 소년에게 물었다.
..아…아아..! 으아아아악!!!!
괘, 괜찮니? 진정해!
그러자, 진혁의 물음에 동공이 커진 소년이 갑작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고…괴물….! 그 괴물이…브린 아저씨를….! 마을이…! 매….! 커…커다란 매가…그려진….!
....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소년은 의식을 잃었다.
...진혁님….혹시…이 일은…!
...예, 그런 것 같네요.
커다란 매.
그것은 바로, 애슐란의 이웃 나라, 글란의 문양이었다.
“하지만, 글란이 바보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이런 행동을 한다니….아무리 봐도 이건 전쟁의 신호탄을 울릴 행동입니다.”
“그건 그렇네요….애초에 글란과는 30년 전 전쟁 이후로는 휴전 선언을 했을 텐데….”
글란과 애슐란은 언제나 사이가 나빠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다.
그 마지막 전쟁이 30년 전, 휴전을 통해 끝났을 터.
일단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소년이 잘 못 본 것일 수도 있고….일단은 계속해서 수색을….
지…진혁님!!!!!
그 순간.
진혁의 말을 끊고 들어오는 한 병사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마…마물이 나타났습니다!!
마물.
...위치는요?
바, 바로 마을 입구입니다!! 현재, 병사들이 대치 중…
계속해서 상황 보고를 이어가던 병사는, 눈을 끔뻑거리며 금방까지 자신의 눈앞에 있었던 진혁의 모습을 찾았지만, 어느새 진혁은 사라진 상태이었다.
(.....주인.)
“어? 왜?”
(...강해.)
“....니가 그 정도로 말할 정도면, 힘 좀 써야겠는데?”
어느새 마을의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자, 드라는 염화를 통해 말해왔다.
드라가 강하다고 말한 것도 얼마 만이더라?
그때 강하 형님을 마주쳤을 때….였나?
으아악!
끄…허…!
진혁이 입구에 거의 도착하자, 병사들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러서세요!
지..진혁님!
소드마스터가 왔다! 모두 길을 터라!
진혁의 외침에, 병사들은 곧바로 뒤돌아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야, 이건 좀….빡센데?”
인간보다 세 배는 커 보이는 덩치.
그리고, 머리에 달린 거대한 뿔.
[크아아아아!!!!!!!]
위험도 A+, 오거가 고함을 지르며 손에 들린 병사를 내던져버렸다.
으직.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병사는 섬뜩한 소리를 내며, 완전히 으깨어져 버렸다.
그런 오거가 진혁의 눈앞에 3마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팍에는. 거대한 매가 그려진, 글란 왕가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병사들은 당장 후퇴하세요! 그리고 본국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글란이 어떠한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마물을 다룬다고!
하…하지만!
어서!
진혁은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되도록 빠르게 후퇴시켰다.
오거라면, 숙련된 모험가 파티도 승리를 잠당 할 수 없는, 강력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세 마리.
“글란 이 미친 새끼들이….
스릉.
그의 허리춤에 있던 검이 새빨간 도신을 반짝이며 모습을 나타냈다.
“드라, 힘 좀 내야겠다.”
(알았어!)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는다.
애슐란의 소드마스터, 진혁은 담담하게 숨을 골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