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9화 〉 소드마스터. (239/289)

〈 239화 〉 소드마스터.

* * *

­저….정말로 진혁님을 놔두고 후퇴해도 괜찮은 겁니까?­

세차게 달리는 마차 안에서, 레헬을 따르는 여신관. 릴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소드마스터라고 한들, 상대는 위험등급 A+에 따르는 오거, 그것도 세 마리였다.

그런 상대를 두고, 이렇게 병사들을 후퇴시켜도 되는가.

우리는 그저, 소드마스터를 미끼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닌가.

­....일단 상태를 볼 정찰대 1부대를 미리 빼놓아,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대기 시켜놓았습니다. 싸움이 끝나고, 진혁님을 데리고 올 것입니다.­

그런 릴린의 물음에, 부 기사 단장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제 말은 그 뜻이 아니라…!­

­자매님. 자매님이 걱정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저희도 잘 압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선, 저희는 마을의 괴멸이라는 소식에 무슨 상황인지 알기 위해 파견된 병사들입니다. 총수야 고작 서른 하나….아니, 이제는 스물셋 이군요.

그리도 두 번째, 글란이 무슨 수단을 썼는지는 몰라도, 마물을 조종하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저희는 애슐란의 안위를 위해, 어떻게든 빨리 이 사실을 본국에 알려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허…허나!­

­그리고 세 번째. 애초에, 저희가 도움을 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짓입니다.­

­...예?­

­....저는 딱 한 번, 진혁님이 진심으로 검을 사용하시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끝낸 그는, 잠시 눈을 감아 그때를 회상했다.

그레이트 울프.

오거보단 약간 모자르지만 충분히 A급 위험도를 가진 위협적인 마물.

갑작스러운 마물의 등장에, 병사들은 의지가 꺾이고, 그저 목숨 구걸을 할 뿐이었다.

그때.

당당하게 나타난 진혁이 검을 꺼내자, 어느새 그레이트 울프의 목은 사라진 상태이었다.

­....소드마스터. 그 경지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죠.­

­...소드..마스터…­

우리가 돕는다니.

차라리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리를 비켜준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

“웃차…! 역시 오거인가, 날렵한데?”

진혁은 금방까지 자신이 있었던 위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곳은, 오거기 휘두르는 거대한 방망이에 완전 박살이 나 있었다.

엄청난 완력.

그럼에도 재빠른 속도.

그야말로 치트캐릭이었다.

“보자….남은 병력은 다 후퇴했겠지?”

(응, 주변에는 주인하고 오거들 뿐이야.)

“그래. 어서 빨리 이 일을 본국에 알려야 할 텐데…”

글란.

이 미친놈들이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선을 넘었다.

빠드득.

진혁이 이빨을 강하게 깨물자,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드라, 식사 시간이다.”

진혁은 허리춤에 있던 작은 자루를 풀어, 손을 넣었다.

그리고 손을 빼내자, 그곳에는 반짝거리는 마석들이 가득 쥐어져 있었다.

(야호! 신난다!)

진혁이 그대로 마석을 드라의 칼날에 부딪히자, 마석들은 산산이 부서지며, 강한 마력을 내뿜었다.

그리고, 드라는 그 마력을 그대로 흡수했다.

드라고노바.

착용자의 마력을 흡수하여, 그 마력을 막강한 힘으로 바꾸어 내는 마검.

하지만, 진혁은 안타깝게도 마력이라고는 쥐뿔도 없었다.

그 덕에, 드라고노바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이 검의 힘을 진정으로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묘안을 생각해냈다.

마석.

마물들의 몸에서 자라나는 보석으로, 인간으로 치면 심장처럼 마력을 만들어 내, 전신으로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그 마석에 내재되어 있는 마력이라면, 굳이 진혁의 마력이 아니라고 해도,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석을 대량으로 흡수한 지금, 드라고노바의 힘을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자, 이젠 우리 차례다!”

드라의 마력이, 진혁의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력이 없는 진혁이라도, 드라를 사용해 풍부한 마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이 소드마스터이자 마검사. 진혁의 힘이었다.

[크아아아아!!!!]

분명, 진혁을 노리고 내리친 공격이었지만, 그것을 피하자 격분한 오거가 진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부웅.

그저, 몽둥이를 휘두를 뿐인데,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나왔다.

강력한 힘과 속도.

두 가지를 모두 가진 몽둥이가 다시금 진혁에게 내리 꽂혔다.

[가속.]

하지만, 같은 공격을 두 번이나 봤는데, 또 당할 수는 없었다.

진혁이 조용히 룬어로 주문을 읊자, 그의 두 다리는 마치 스프링처럼 바닥을 박차, 공중으로 떠올랐다.

[크어?]

영문도 모른 채, 또다시 눈앞의 적이 사라지자, 어리둥절하는 오거.

“위쪽이다. 돌대가리.”

[마나 블레이드.]

순수한 마력이, 드라고노바의 새빨간 도신을 뒤덮었다.

진혁은 그 상태 그대로, 드라고노바를 휘둘렀다.

“후…우선 한 마리.”

[우…우..어….]

공중에 떠올랐던 몸이 다시금 바닥으로 내려오자, 금방까지 생생하게 몸을 움직이던 오거는, 어느새 말 그대로 신체가 반으로 갈라져 쓰러졌다.

[크…크륵?]

[우우….]

그리고, 자신의 형제가 맥없이 죽어버리자, 그들은 몸을 움찔거렸다.

본능적 공포.

본능에 충실한 마물일수록, 그 공포는 더욱 거대하게 오거들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크아아아아아!!!!]

[우그어어!!!!]

마치 검게 물들어 있을 정도로 짙은 푸른색 마력이, 오거들의 눈에서 번들거렸다.

“우왁…! 이 놈들….제 정신이 아니군..”

그리고 진혁은 그것을 눈치챘다.

아마, 저 마력의 정체가, 오거들을 조종하는 본체일 터.

“후…일단 마무리하자…[가속]”

잠시 검을 털어내어, 피를 털어낸 진혁은 가볍게 통통 튀다가, 갑작스럽게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앞서서 나선 오크 한 마리가, 몽둥이를 거칠게 휘둘렀다.

하지만, 진혁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칼날을 마주대며 정면으로 몽둥이에 맞섰다.

그 순간.

서걱.

거칠게 휘둘러진 몽둥이가, 그의 주인인 오거와 함께 잘려 나갔다.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그리고, 잘려 나간 오크가 바닥으로 쓰러지기 전, 진혁은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고…오…]

[그억…!]

그렇게 진혁은 순식간에 오거 세 마리를 깔끔하게 도륙을 내 버렸다.

“....?!”

그러나 진혁은 마지막으로 오거를 베어내고 나서, 무언가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심장이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갈라냈는데.

“마석이…없어?”

마물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마석이 느껴지지 않았다.

베어내는 감촉은, 그저 살덩이를 갈라내는 감촉뿐, 마석을 갈라낸 느낌은 없었다.

(주인…이거 이상해….)

그리고 드라 또한 원래라면 오거의 마석을 갈라내고 힘을 보충해야 하지만, 전혀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이건….정말로 뭐지…?”

(...! 주인!!!)

그렇게 잠시 오거의 시체를 보며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무렵, 드라가 급하게 염사로 말을 걸어왔다.

[으르르르….!]

[끼에엑!!!]

[쿠워어어…!]

자이언트 블롭, 코카트리스, 그리즐리 베어.

그 밖에도 수많은 마물들이 어느새 진혁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마물들은 전부 A+급 마물들.

“....이거 위험한데…?”

진혁은 침을 꼴깍 삼키며 중얼거렸다.

*

대박이다.

게드만은 그렇게 생각했다.

가볍게 시작한 침공에서, 소드마스터가 걸렸다.

말 그대로 대충 던진 낚싯바늘에 대어가 낚인 격.

청룡에게 받은 용석을 개조하여 만든 아티팩트, [오버로드]로 마물의 시야를 공유하여 살펴보던 게드만은 이 솟구치는 쾌감을 견디지 못했다.

애슐란의 최대 무력이라 손꼽히는 소드마스터.

그중 하나가, 제 발로 나타난 상황이었다.

­당장 근처에 있는 모든 마물을 소집해라! 얼마나 죽어도 상관없다! 저 소드마스터의 목만 따면, 승리가 가까워진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게드만은 오버로드의 마력을 충당하는 고위 마법사들에게 명령했다.

전쟁의 여신은 우리 쪽이다.

게드만은 손에 들려있던 포도주를 목구멍으로 흘려보내며 생각했다.

*

“크헉…!”

(주인!!!)

시야가 흔들린다.

진혁은 드라고노바를 땅에 박아,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했지만, 그의 다리는 후들거릴 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력이 다 떨어진 지 오래.

이제는 기초적인 마법도 쓰지 못했다.

몇 마리를 베었더라.

모르겠다.

한 서른 마리 넘어서고 나서는 잊어먹었다.

오로지, 눈앞의 마물을 썰어버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시…발….하..참…! 적당히 해야지…”

너무 많았다.

한 마리 있어도 마을이 박살이 나는 A+ 마물들이, 오로지 진혁만을 죽이기 위해 수십 마리가 모여 있었다.

하물며 마물에서 얻는 마석도 없어서, 마력을 보충하지도 못했다.

단순한 순찰이라 생각했기에, 가볍게 챙긴 마석 주머니 이미 먼지 한 톨 남지 않고 텅텅 비어있었다.

“드…드라….!”

[주인!!!]

결국, 힘이 풀려버린 진혁은 드라를 손에 놓고,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 모습에 검의 모습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드라가 진혁에게 달려와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너라도 도..망…가아…!”

본디 검의 모습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인간형으로 변할 수 있는 드라라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드라만이라도 어떻게든 보내야 했다.

[....못해…아니, 안 할거야!]

“...! 야이 멍청…아!!”

하지만, 드라는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드라는 쓰러진 진혁 앞에서 팔을 펼치며 수많은 마물들과 대치하기 시작했다.

[나는….마검 드라고노바. 내 의무는, 내 주인을 가로막는 적을 베어내는 것….!]

“ㅈ, 적당히…해! 난 이미 틀렸어…!”

진혁의 처절한 부탁에도, 드라는 꿈쩍하지 않았다.

드라의 마력은 진작에 다 떨어졌다.

저 상태라면, 마물들의 일격에 완전히 박살 나고 말 것이다.

[크라아아아아!!!!!]

그 광경을 바라보던 그리즐리 베어는, 자신의 거대한 앞발을 위로 들어, 드라와 진혁에게 휘둘렀다.

[읏…!]

“드라아!!!!!!”

이젠 끝이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진혁은 핏물이 새어 나올 만큼 소리를 지르며 생각했다.

못난 주인이라서 미안.

그래도, 이런 주인이라도 너는 주인이라고 생각해 주는 구나.

적어도, 너만큼은 어떻게든 살려야만 하는데….!

짧은 찰나의 생각.

그리고, 그리즐리 베어의 앞발은 그들이 있던 곳을 내리찍었다.

하지만.

[...구엉?]

그곳에는 그저 박살이 난 바닥만이 존재할 뿐, 두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

“우하…저녁 잘 먹었다.”

“그러게요, 오늘도 맛있었어요!”

오늘도 평화로운 스타 주막.

막 저녁 식사를 마친 그들은 홀에서 잠시 소화도 시킬 겸,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치? 오늘은 새로운 소스를 써 봤는데….”

그때.

퐁.

무언가 맥이 빠지는 효과음이 울려 퍼졌다.

“....응?”

[....으히?]

“.....진혁?..과 드라?”

그 순간, 상처투성이인 진혁과 드라가,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주막의 홀에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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