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5화 〉 쓰디쓴 배신. (245/289)

〈 245화 〉 쓰디쓴 배신.

* * *

“자, 게임 끝났어.”

강하는 천천히 바닥에 널브러진 청룡을 향해 걸어왔다.

“끄으윽…!”

“저 봉인식, 어서 푸는 게 좋을 거야. 그래도 정녕 못 풀겠다면….알지?”

이윽고 청룡의 앞까지 찾아온 강하는 작은 구체를 들어, 그녀에게 겨누었다.

청룡 스스로가 말하길, 이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청룡 스스로가 풀거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했으니 협력을 구하던지, 아니면 곧바로 적 하나를 제거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때.

[크아아아아!!!]

[쿠르르…!]

[우어….!]

“우왁!”

지금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마물들이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드디어 나타났나!­

­.....­

지금까지 세 용의 압력에 눌려있던 발토르와 카를린 또한 정신을 차려, 등 뒤에 매단 검을 빼 들며 곧바로 전투 태세에 접어들 준비를 마쳤다.

­잠깐, 기다려!­

당장이라도 마물에게 달려들 두 사람을 막아 세운 것은 바로, 강하였다.

­ㄱ, 강하 공?! 갑자기 어째서…!­

­지금 마물들을 끝장내야 합니다!­

당연히 전투를 방해받은 두 사람은 무슨 영문인지 강하에게 되물었다.

­...지금은 싸우기 힘듭니다, 일단, 이 두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고개를 가로젓던 강하는 자신이 부축하고 있는 류월과 백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은 현재, 평범한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 두 사람을 놔두고 전투를 벌이다간, 쉽게 휘말릴 것이 분명했다.

­일단, 지금은 한 차례 빠질 시간입니다.­ “창, 너는 백설 님을.”

“네.”

­으윽….! 그건 별수 없군요….알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백설과 류월을 챙기고 잠시 전장을 이탈하려는 찰나.

“강하아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강하는 고개를 틀었다.

그 목소리의 정체는, 마물들에게 잡혀 본거지로 이동되는 청룡의 목소리였다.

“너는 내가 반드시 죽여버릴거야!!!! 아니, 죽여달라고 해 주마!!!!!!!!!!”

강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청룡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헹.”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고 판단한 강하는 곧바로 다른 이들과 함께 자리를 이탈했다.

*

“휴….여기면 어떻게든 되겠지…”

부서진 성벽에서 한참은 떨어진 외진 곳의 작은 물레방앗간

강하는 만에 하나를 대비해 구체로 방어막을 만들어 그들이 있는 물레방앗간을 뒤덮었다.

“자…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강하는 방어막을 친 구체들을 다시금 흡수시키며 중얼거렸다.

일단, 현 상황을 정리해 보자.

우리에게 가장 큰 전력인 류월과 백설은 리타이어.

그 대신, 상대방에게 있는 청룡또한 마찬가지.

그래서 어떻게든 청룡을 끌고 와, 봉인의 해제를 맡겨야 했는데….그녀는 글란의 의해 다시금 본거지로 가버렸다.

제일 절망적인 상황은, 그 본거지에서 스스로의 봉인을 해제한 청룡이 다시금 찾아오는 것.

“....백설 님, 어떠신가요?”

“으음….역시 힘들 것 같네…이중, 삼중으로 마법진이 몸속에 새겨졌어. 용의 힘이 있다면 억지로라도 풀 수 있을 것 같지만….지금은 방법이 없네….”

“그런가요….”

혹시나 해 백설에게 봉인식의 해독을 부탁해 봤지만, 그녀에게도 지금 상황에서는 역부족이었다.

­강하 공,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저 성으로 쳐들어가, 그 가증스러운 청룡을 잡아 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시간을 끌면 끌수록 저희가 불리합니다!­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발토르는 자신의 대검을 바닥에 꽂으며 말했다.

­...아니,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전력인 두 드래곤님의 힘이 봉인 당했어. 그렇다면 차라리 증원요청을 해서 우리의 최대 전력으로 맞붙어야 해.­

허나 그런 발토르를 카를린이 막아섰다.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너무 늦어! 기습에 성공한 지금, 지금 몰아붙여야 한다!­

­끄응….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긴 귀를 추욱 늘어뜨린 힐라는 자신의 조총을 품에 꼭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발토르와 카를린의 언쟁이 점점 커지며 격렬해지는 그때.

­일단, 밥이나 먹을까?­

강하는 두 사람 앞에서 손뼉을 치며 말했다.

­...밥…이요?­

­갑자기 밥이라니….이 상황에서 말입니까?­

두 사람은 그런 강하의 말에 황당무계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당장 시급한 상황인데, 밥을 먹는다니?

소풍하러 온 것도 아니고.

­그거 좋죠! 일단 먹고 생각해요!­

­음…그러고 보니 배가 좀 고프긴 하네요.­

[배고파!]

­응~ 한숨 돌리는 건 좋지~­

“역시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단 말이다!”

­­......­­

허나 그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어느새 주린 배를 붙잡으며 강하에게 다가가자, 발토르와 카를린 또한, 떨떠름하게 그들을 따라갔다.

“음….일단 급하게 만든다고 샌드위치로 만들었는데…괜찮지?”

“이 몸의 샌드위치는 물론, 고기가 많이 있겠지?”

“그래 그래……무슨 인간이 됐으면서도 식성은 변하지가 않냐…”

“? 무어라 하였느냐?”

“아무것도 아냐.”

강하는 구체에 보관해 둔 따끈따끈한 핫 샌드위치를 꺼내,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자, 일단 먹고 생각하자고.”

“잘 먹겠습니다~!”

[맛있겠다…!]

“으아~! 맛있겠다!”

강하가 건네준 샌드위치를 먼저 건네받은 진혁과 인간 형태로 변한 드라, 그리고 힐라가 곧바로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음…! 바삭바삭한 빵이랑 아삭한 야채….그리고 고기가 쫄깃하네요! 이건….돼지고기?”

[움냠..! 소스가 달콤해애….!]

“역시 셰프님! 제 샌드위치는 채소가 듬뿍 들어가 있네요!!! 아 맛있어~”

그들은 마치 소풍에 온 것처럼, 아주 솔직하게 샌드위치의 맛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역시 맛있습니다.”

“후훗. 이런 상황에서 먹는 샌드위치도 각별하구나~”

“움…! 맛있다! 역시 고기는 최고로군!”

뒤따라 창과 백설, 그리고 류월또한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잘..먹겠습니다…­

­음….잘 먹겠습…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발토르와 카를린 또한,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 맛있다!­

­뭐야…이거 너무 맛있는데..?­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도 훌륭한 샌드위치의 맛에 순식간에 표정을 풀며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이건…닭고기? 인가? 엄청 쫄깃하면서도 씹는 맛이 풍부해..!­

­이 소스는 뭐야…! 새콤하면서도 달콤하고…약간 톡 쏘는 매운맛도 나…! 계속 혀에 감겨…!­

맛있다.

그들은 어느새 이렇게나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진심으로 샌드위치의 맛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강하 일행은 아주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며 샌드위치를 즐겼다.

“이…이런…! 말도 안되는…!”

“왜! 무슨 일인데..!”

그때, 샌드위치를 다 먹어 치운 류월이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르자 강하가 화들짝 놀라며 물어보았다.

“샌…샌드위치 하나 먹었을 뿐인데….! 배가…배가 부르다…!”

“얌마!”

조금…어이가 없는 상황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이거 놔! 시발…!­

[우워어….]

청룡은 자신을 부축하던 오거의 손을 뿌리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원래라면 손을 부딪친 오거가 저 멀리 날아가 버려야 했지만.

­아…아야아..! 이런 씨바알…!­

이제는 평범한 여성인 그녀의 갸름한 손이 강철과도 같은 오거의 둔직한 손에 부딪히자 새빨개지며 얼얼한 고통이 퍼져나갔다.

­젠장…! 젠장…!­

이제 그녀는 위대한 용이 아니다.

그토록 자신이 경멸하고 엽신시켜오던 평범한 인간.

그런 인간이 되었다.

­빌어먹을 강하….! 반드시 잘근잘근 씹어서 죽여버릴 거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힘을 되찾을 방법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 게드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게드마안!!!­

그리고, 드디어 게드만이 있는 방으로 찾아온 청룡은 큰 소리로 게드만을 찾았다.

­....이게 누구야. 우리 청룡 아닌가.­

그런 청룡의 모습을 보던 게드만은 능글맞게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그딴 웃음은 집어치우고, 어서 그 오버로드인가 뭐시기인가를 내놔!­

­오버로드? 그건 어째서?­

­그 년들이 꼼수를 써서 내 힘이 봉인 당했다. 그걸 풀기 위해서는 내가 줬던 용석의 힘이 필요해!­

오버로드.

청룡의 용석으로 만들어진 그 마도구에는, 당연하게도 그녀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이 봉인식 자체는 자신이 만들었기에, 어떻게든 마법을 발동시킬 마력이 있다면, 금세 해제할 수 있었다.

­흠…그렇군. 알겠네, 자네의 힘은 중요하니까 말이야.­

­그래! 어서 내놔! 힘을 되찾으면 당장 그 새끼들을 밟아 죽여버릴 거야!­

청룡의 말을 듣던 게드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손에 들린 오버로드는 청룡에게 내밀었다.

‘하하…! 이젠 진짜 끝이야….! 강하 그 빌어먹을 년…제발 죽여달라고 빌게 만들어 주지…!’

청룡은 영롱하게 빛나는 오버로드를 바라보며 비열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잠깐.­

­...! 이게 무슨 짓이냐! 네놈!­

청룡에게 오버로드를 내밀던 게드만은 잠시 뜸을 들이며 다시금 오버로드를 획 가로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던 청룡이 소리쳤지만, 게드만은 그녀에게서 살짝 멀어진 후, 말했다.

­그 봉인을 해제하는데 오버로드가 필요하다고? 그럼 이 오버로드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 마력을 매개체로 만들었으니, 부서지겠지. 그나저나 어서 내놔!­

­흐음….알겠네.­

게드만은 한가지 질문을 청룡에게 건내고, 확답을 받아서는 다시금 청룡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짜악.

청룡의 앞까지 다가선 게드만은 손을 휘둘러, 청룡의 뺨을 후려쳤다.

­....????­

연약한 여성의 신체였던 청룡은 충격에 의해 옆으로 쓰러졌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힘들다는 눈빛으로 게드만을 바라보았다.

충격.

그것도 인간에게 뺨을 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청룡의 머리는 이 상황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봐, 생각을 좀 해보라고. 이미 상대의 최대 전력인 드래곤은 네가 봉인했고, 두 번째 위협인 너 또한 이젠 보잘것없는 계집 아닌가. 그런데 왜? 내가 이 오버로드를 포기하면서까지 네 힘을 풀어줘야 하지?

네가 힘이 풀리고 나서, 우리를 돕는다는 확신이, 나에게는 없거든~­

­너…너너…!­

배신.

쓰디쓴 배신이었다.

게드만에게는 청룡의 힘을 풀어주는 것에 대한 메리트가 전혀 없었다.

수지타산 빠르고 얍삽한 게드만이기에, 행동은 빠르게 흘러갔다.

­뭐, 지금까지 수고했다. 이젠 필요가 없네. 어이! 이년을 끌어내서 아무 감옥에다 가둬! 그 뒤에는 뭐….알아서 재미나 보라고. 아 참! 죽이지는 말도록! 저 계집이 죽으면 금방 봤던 드래곤이 다시금 부활한다!­

­­예.­­

­잠깐…이게 무슨…? 너…! 아니…! 어?­

게드만은 오버로드를 만지작거리며 보초병에게 명령해, 청룡을 끌고 가라 말했다.

바닥에 쓰러져있던 청룡은 보초병들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방 밖을 나설 때까지 그저 어? 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후…후후….! 이제 방해꾼 따위는 없다….! 애슐란? 하! 애슐란은 초석이다! 이제 이 몸은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인간의 악의는, 그녀보다도 거대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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