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화 〉 ???:뉴비님. 이번에는 부러진 직검으로 가볼게요.
* * *
[크라아아아!!!]
“시끄러!”
[쿠억!!]
거대한 아가리를 쩌억 벌린 자이언트 울프의 입속에 그대로 구체를 때려 박자, 마치 복어처럼 가시가 부풀어, 그대로 바람구멍을 내어버렸다.
“후….슬슬 보일 때가 됬는데…”
강하는 잠시 달리기를 멈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직접 성으로 돌입한 지 약 30분.
그녀가 쓰러뜨린 마물의 수는 이미 수 십 마리를 넘겼다.
일단 무작정 달려오기는 했지만, 미로와도 같은 성의 내부 덕분에 자꾸만 위치를 헛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생각을 해 보자….”
일단, 지금처럼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떠올려야 할 것 같았다.
“만화나 영화를 보면, 악당들 보스는 어디에 있더라….”
그녀가 보았던 매체들의 악당들은, 그들의 본거지에서 딱 두 군데에 위치를 잡았다.
지하, 아니면 최상층.
대충 성 크기는 상당히 거대하고, 최상층 또한 높았던 걸로 기억했다.
“좋아. 그럼 일단….위로 올라갈까?”
생각을 정리하고 결론을 낸 강하는, 다리에 힘을 모았다.
*
젠장…! 저게 뭐야…!
게드만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오버로드를 눈이 빠지도록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두 드래곤을 약화 시켰으니, 이제 분명하게 적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 들은 무엇인가.
애슐란의 세 소드마스터들과 세계와 고립하고 자신들의 마을에서만 살아가는 엘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여성이 계속해서 자신의 병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무리 마물을 조종하여 수많은 병력을 쌓았다고 한들, 무한인 것은 아니다.
애초에, A급 마물이라는 것이 발치에 널린 돌덩이처럼 널리고 널린 존재들이 아니다.
발견하기 힘들고, 극히 드문 존재들이 아주 강력하여 높은 등급으로 책정되었다.
그렇기에 그가 끌어모은 마물들은 글란과 애슐란, 두 나라에 흩어져 있는 모든 A급 마물들을 오버로드로 잠식하여 모은 것이다.
한 개체 한 개체가 강력하지만, 그 수는 몇백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그 몇백의 마물의 1/3이 저들의 손에 분쇄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검은 머리 계집은 누구야!
당당하게 자신들의 본거지로 쳐들어와, 보내는 마물을 족족 한순간에 박살 내어버리는 여성.
강하였다.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보금자리에,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은 매우 불안해진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마물들을 보내봤지만, 그녀는 마치 장난감을 상대하는 것처럼 깔끔하게 처리해버렸다.
.......벌써 귀중한 카드를 사용하기에는 그런데….!
게드만은 내심 자신이 갖춘 패를 떠올렸다.
청룡, 오버로드, 그리고……
자…잠깐…! 이 계집…어디로 간 거지?!
그렇게 오버로드를 바라보던 게드만은, 성 내부에 펼쳐놓은 마물들의 시야에 강하가 비춰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쿠궁.
으엇…!
성 내부가 큰 진동으로 일렁거렸다.
이 소리는….뭐지?
무언가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음이 들려왔다.
쿠구궁. 쿠궁. 쿠구구궁.
그리고, 그 소리는 계속해서 울려왔고.
더욱 커져갔다.
전군!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전투준비!
곧바로 사태 파악에 나선 게드만은 최종적으로 남겨둔 병사들에게 소리치며 전투를 대비했다.
당장의 마물들은 성 내부 곳곳과 바깥으로 위치를 배정시켜두었기 때문에, 그가 있는 곳에는 마물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괴상하고 기괴한 마물들의 모습을 역겨워한 것도 한몫 했다.
마지막으로 굉음이 들려온 지 약 20초가 지나고.
쿠과과과광!!!
우왁!
바닥이 무너진다!!
게드만이 있는 최상층.
그 바닥이 굉음을 내며 부서지자, 자욱한 먼지가 그들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콜록…콜록…! 어우 먼지….! 이건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자욱한 먼지의 안에서 손으로 부채질하며 먼지 덕분에 기침을 콜록거리는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
“음….잘 도착했네! 그건 다행이야.”
강하는 자신의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가며 중얼거렸다.
네…네년은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그렇게 태평하게 자신의 옷매무새를 만지는 강하를 잠시 멍하게 바라보던 병사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창칼을 들어 그녀에게 겨누었다.
응? 야야….그거 내려놔. 너희들도 다 알잖아. 네놈들이 잔뜩 뿌려놓은 마물도 나한테는 쨉도 안 되는데, 그거 가지고 잘도 날 잡겠다.
강하는 자신에게 겨누어진 서슬 퍼런 날붙이에도, 콧방귀를 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이…이년이…!
그런 강하의 태도에 병사들은 결국 자신에게 쥐어진 무기를 그녀에게 휘둘렀다.
그렇게 날붙이가 강하의 몸으로 날아들기 시작하자.
얍.
강하는 손가락을 들어, 작은 구체를 꺼내었다.
그…그르륵….
부그르륵..
그러자, 구체에서는 검은 번개가 스파크를 일으키더니, 이내 넓은 정전기장을 만들어 병사들을 휘감아버렸다.
그대로 정전기장에 뒤덮여 감전당한 병사들은 게거품을 물며 그대로 졸도해 버렸다.
마물들은 그래도, 사람을 함부로 죽이기에는 좀 그렇단 말이지….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야 원….
강하는 널브러진 병사 하나에게 다가가 혹시나 죽었나 싶어 맥을 잡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용의 힘이 있어서 그런지.
예전에는 누군가를 공격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리낌 없이 사람을 해칠 수 있게 되었다.
자….쫄병들은 이제 정리 됬고…..이렇게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인가…?
강하는 맥을 짚기 위해 꿇었던 무릎을 펴며, 게드만을 바라보고 말했다.
하…하하…제법이군, 계집. 용케 여기까지 도달할 줄…
아, 잠깐.
뭣?
그런 강하를 바라보며 자신은 아직 여유롭다는 태도를 보이기 위해 최대한 거들먹거리며 말을 거는 게드만의 말을 강하는 끊어버렸다.
너, 누구야? 일단 글란쪽 사람이라는 건 아는데….내가 얼굴을 알아야….아~ 하긴. 내가 알 리가 없구나?
......
뭐,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그거냐? 마물들을 조종하던 그 힘의 원천이? 딱 보니까 알겠네.
강하는 그의 손에 쥐어진 푸르스름한 빛은 내는 구체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푸른 빛이 감도는 마력은 딱 봐도 청룡의 힘이 분명했다.
지금이라도 그걸 넘기고 항복하면 뭐….일단 죽이지는 않을게. 아니다….갑자기 마물들을 데리고 쳐들어왔는데, 포로로 취급해 주나? 아니면 사형인가…? 으음….모르겠다. 일단 어쩔래?
...후…후핫…후하하하하핫!
강하의 어딘가가 모자란 항복 권고를 들은 게드만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뭐야. 미쳤나?
그래…항복이라….그거 참 좋지…
그렇지? 생각 잘했어. 여기까지 왔는데, 쉽게 쉽게 가자 좀.
그런데, 내가 항복을 하는 것 보단. 자네가 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이는구나.
그 순간.
게드만은 자신이 금방까지 떠올렸던 자신의 패 중, 가장 강력한 패를 꺼내 들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깔아두었던 카펫을 그대로 들어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 곳에는, 마석으로 그려진 마법진이 희미한 빛을 내며 모습을 보였다.
카득.
게드만은 그 즉시 자신의 엄지를 깨물어, 새빨간 피를 주르륵 흘렸다.
그러더니 피에 젖은 오른손을 마법진에 올렸다.
“어라?”
무언가 불안한데.
그 순간, 지금까지 여유가 넘쳤던 강하는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륵 흐른 것을 눈치챘다.
저걸 막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강하가 곧바로 움직여 게드만에게 달려드려는 순간.
자! 내 소환에 응답해라! 발록!
쿠궁.
공기가 진동한다.
무언가 불길하고, 소름이 돋는 마력이 마법진에서 조금씩 흘러나왔다.
야….너 뭘 소환한 거야…?
하핫! 그 능글맞은 얼굴에서 드디어 미소가 사라졌군!
이런 미친…! 대답이나 해!
자네는, 악마를 믿나?
...악마?
그래, 피와 살육을 원하는 생명체. 그들은 수많은 목숨을 대가로 힘을 준다고 하지.
쿠궁. 쿠궁.
으윽…!
게드만의 말을 끝으로 마법진에서는 마치 섬광탄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새어 나왔기에, 강하는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눈이 차츰 빛에 적응하여, 가까스로 눈을 뜨자.
[흠….약 500년만인가….인간계는…]
거대한 덩치.
산양과 비슷한 뿔.
터질 것 같은 근육.
그리고, 새까맣게 물든 날개.
그것은 말 그대로 악마. 그 자체였다.
[인간. 네가 날 소환했나?]
그…그렇다! 내가 너를 소환했다!
악마는 거대한 덩치를 숙여, 얼굴을 게드만에게 들이대며 물었다.
[흠….그래. 무엇을 원하지?]
ㄴ, 내 앞에 있는 저년과, 바깥에서 나를 방해하는 자들의 목숨…!
[좋다. 대가는 물론 준비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계약에 까다롭거든.]
“....이런 시발…”
악마는 그런 게드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려 강하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 세상에 나온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군…]
“하하….다행이네….그래도 부러진 직검을 들고 있는 건 아니라서 말이야…]
강하는 현대에서 하던 게임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