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 뒤잡은 최고의 기습.
* * *
[그럼, 가볍게 인사라도 나눠 볼까?]
펑.
순간,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강력한 충격파가 강하와 발록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인사는 좋은데, 매너가 꽝이시…네!]
두터운 주먹을 빠르게 구체의 방어막으로 막아낸 강하가 그대로 발록을 밀어버렸다.
[호오….그래. 이 정도는 되야지….!]
발록은 자신의 주먹을 막아낸 강하를 바라보며 동공을 키우면서 주먹을 가볍게 털어냈다.
[마법사인가? 아니, 상당히 이질적이군. 인간들의 마법과는 어딘가가 달라. 흥미로워.]
[그래? 미안해서 어쩌나? 난 너한테 저언혀! 흥미가 없는데~!]
[일단, 어디까지 버티나 한 번 볼까?]
쿵.
쿠궁.
그 즉시, 발록의 둔중한 주먹이 강하의 방어막을 강력하게 후려치기 시작했다.
[끄…끄응…!]
쾅. 콰광.
한 차례, 두 차례.
계속해서 방어막을 가격하자, 강하는 자신의 발이 바닥에 패일 정도로 강력한 충격을 받았다.
쩌적.
[...!]
얼마나 버텼을까.
결국, 충격을 버티지 못한 방어막 겉면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쩌적하며 생겨났다.
‘이대로 버티다가는 깨진다…!’
방어막이 버틸 수 있는 한계는 아마 두세 번 정도.
[왜 그러지? 휘청거리고 있지 않나?]
[흥…! 완전…여..! 유…거든?!]
사실 강하는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이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벅찰 정도였다.
조금만 신경이 흐트러졌다가는, 방어막이 완전히 박살이 날 정도로 강력한 충격에 강하는 입술을 깨물며 외쳤다.
‘좋아…천천히…거의 다 왔어….!’
그렇게 발록이 자만하며 주먹을 계속해서 휘두르던 그 순간.
챙강.
[...!]
[상당히 오래 버텼군. 그거 하나만큼은 칭찬해 주마.]
결국 충격을 버티지 못한 방어막은 쾌청한 소리를 내며 우수수 부서지고 말았다.
이젠 강하와 발록, 두 사이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발록이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주먹을 날리는 그 순간.
[......걸렸다!]
[...음? 으헉….!]
발록은 주먹을 휘두르다 말고 뒤통수에서부터 느껴지는 강력한 충격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발록은 지금까지 강하가 자신의 공격을 받아내기에만 급급하다고 생각하여, 자만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연기.
발록의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키기 위한 속임수였다.
강하는 간신히 방어막을 막아내는 척, 몰래 구체 하나를 숨겨 발록의 바로 뒤통수로 향하게끔 조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온전히 방어막에 신경을 쓰지 못해, 보통 때의 방어막보다 적은 충격에 쉽게 금이 갔다.
그리고, 발록이 제일 방심할 순간인 방어막을 깨뜨리는 장면을 위해, 쥐어짜던 힘을 느슨하게 풀어 더욱 일찍 부서지도록 힘을 조정했다.
그렇게 발록의 공격에 방어막이 부서지고, 승리를 확신하던 그 순간.
힘을 온전히 응축하던 구체의 공격에 발록은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 방 먹여주기 위해서.
[이…이이…! 인간 놈이 감히…!]
[그 아가리를 놀릴 시간이 있을까?]
[끄아아아악!]
빈틈을 보인 이상, 쉽게 놓아줄 생각은 없다.
강하는 곧바로 수많은 구체를 생성해, 검은 번개를 쏘아내었다.
온몸을 꿰뚫는 번개에 발록은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쳐라! 쳐라! 그냥 타버려!!!]
언제나 자신의 몸에 샘솟는 마력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강하는 자신의 전력을 쏟아부으며 발록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번쩍. 번쩍.
방 안은 번개의 스파크로 인해 눈부신 빛이 자꾸만 일렁거렸다.
[후우….후우…..]
그렇게 폭풍처럼 몰아붙이던 벼락이 어느새 사그라들자. 강하는 자신도 모르게 풀린 무릎 덕분에 그대로 비틀거리며 바닥에 손을 짚었다.
얼마나 번개를 쏘아댔는지, 바닥이 가루가 되어 매캐한 먼지 구덩이를 만들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강하는 단기간에 엄청난 마력을 퍼부은 덕에 잠시 탈진 상태가 되어 중얼거렸다.
그런데, 역시 인생사 쉽게 되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크…하…하하하하하!!!! 대단하군…! 정말 놀라워…!]
[큭….! 에라이….]
그 순간 강력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방 안을 자욱하게 메꾸던 먼지를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벼락에 검게 그을려 성치 못한 거대한 날개가 펄럭이며 바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바람을 만들어 낸 발록은 한쪽 뿔이 부러지고, 온몸이 화상 투성이었지만, 두 발로 멀쩡히 서 있었다.
[이래야지! 목숨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시시하게 끝나서는 재미가 없지 않나?]
[....글쎄….난 어디 사는 누구처럼 머리가 맛이 가지는 않았거든.]
강하는 잠시 숨을 들이키더니, 흡! 하는 기합과 함께 발록과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하게 그를 마주했다.
[미안한데, 돌아가 주면 안될까? 형이 좀 피곤하네…]
[전사가 쉬는 것은, 오직 죽음 후 영원한 휴식뿐이다.]
[....난 전사가 아니라 요리사인데…]
역시, 육탄전으로 마무리해야 하나.
[좋아. 까다로운 식재료 다루기에는 이골이 나 있거든….손님(게드만)이 기다리게 만들 수는 없지….!]
강하는 다시금 단전으로부터 힘을 끌어올려, 용의 힘을 전신으로 휘감았다.
[호오…과연. 그 이질적인 힘. 드래곤의 힘 이었구나….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지만….재미있군!]
강하가 숨겨두었던 검은 외뿔이 이마에서 돋아났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검은 날개가 등에서 돋아났고, 꼬리 또한 바닥에 부딪히며 소리를 내었다.
[후….메인디쉬는 이걸로 결정이다.]
그렇게 그들의 진정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
쿵. 쿠궁.
한 번 주먹을 휘두르면 공기가 흔들리고, 두 번 휘두르면 벽에 금이 갔다.
[크하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발록이 또 다시 강하의 몸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자, 강하는 곧바로 땅을 박차고 역으로 앞으로 뛰어, 그대로 주먹을 스치듯이 피하며 자신의 주먹을 발록에게 꽂아 넣었다.
덜컥.
발록의 턱에 정확히 꽂힌 주먹의 충격에, 발록은 잠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자, 강하는 곧바로 발록의 다리 쪽으로 향해 무릎 안쪽을 발로 걷어찼다.
[이….!]
[으윽…!]
욱신거리는 무릎의 고통에 양팔을 휘두르는 발록의 공격에, 강하는 그대로 얻어맞고 공중을 날아 벽에 처박혔다.
[후우…후우…]
벽이 파일 정도로 박혔던 강하는 천천히 몸을 벽으로부터 꺼내어 숨을 골랐다.
난장판으로 주고받기를 벌인 덕에, 발록이던 강하던 그들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따로 없었다.
결정적 일격.
딱 그 한 수가 승패를 갈라놓을 것이었다.
[이 몸을 이렇게나 몰아치다니….이렇게 되면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겠군.]
[하루종일이라도 할 수 있거든…?]
자신의 입가에 흘러내리던 핏기를 닦아내던 발록이 정말로 경의를 표한다는 듯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축하한다! 이 몸이 경의를 표해, 내 전심전력의 공격으로 마무리를 지어 줄 테니!]
[축하할 때는 케이크라도 주고 말하는 거야!! 이 크림슨 발록 같이 생긴 놈아!]
그리고, 발록은 자신의 힘을 끌어모아,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의 가슴팍에 박힌 보석이 붉은색으로 일렁거리더니, 이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위험한데.
숨을 깊게 들이마시던 발록의 입가에서, 불꽃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받아라! 마계의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 크림슨 헬파이어!!!!!!]
발록의 입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기둥이 솟구쳐 나왔다.
붉은 불꽃은 마치 마그마와 같이 질척이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쏘아지는 불기둥의 온도 덕분에, 무려 방 내부의 돌들이 흐물흐물 녹아가는 것이 보였다.
[위…위험…!]
움찔 놀란 강하가 방어 태세를 취하자, 이내 불기둥이 그녀가 있는 곳을 통째로 집어삼켜 버렸다.
꿀렁꿀렁.
돌도 녹여버리는 마그마가 그곳을 완전히 뒤덮어 버리자, 무지막지한 고온으로 모든 것을 녹여버리고 말았다.
[.....후….만만치 않은 상대였군. 정말로 오랜만에 크림슨 헬파이어를 시전하게 될 줄이야…]
발록은 마계에서 수많은 적과 싸우면서도 약 300년간 쓰지 않았던 필살기를 써버린 것은 진심으로 그녀를 진정한 적수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마그마로 뒤덮인 강하가 살아날 방법은 없었다.
오…오오오….!
그리고 방구석에 박혀, 이 모든 것을 바라보던 게드만은 환호성을 내며 감탄했다.
악마.
그야말로 엄청난 힘이었다.
물론 진정한 드래곤을 상대로는 무리겠지만, 이젠 그를 말릴 드래곤은 없었다.
[자, 계약자여. 이제 계약을 이행할 시간이다.]
무…물론! 성 내부에 있는 모든 생명체와 마물들을 바치마!
발록이 그런 그에게 다가오며 계약을 묻자, 게드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까지 모았던 마물들이 아깝기는 하지만, 이 오버로드만 있다면 다시금 모을 수 있다.
지금은, 애슐란의 최대 전력을 부숴버렸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때였다.
그렇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발록에게 천천히 걸어가는 게드만.
[정말 다행이야. 이렇게 쉽게 속아줘서.]
푸욱.
...어?
[.....뭣?]
발록은 그대로 멈춰, 자신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파직. 파직.
그의 힘이 되는 원천이자, 핵인 마석이, 검은 마력으로 만들어 낸 날붙이에 관통당해, 부서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