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1화 〉 그녀의 최후. (251/289)

〈 251화 〉 그녀의 최후.

* * *

질퍽.

“에이씨….!”

강하는 실수로 물웅덩이에 빠진 발을 꺼내 물기를 대충 털어 내며 구시렁거렸다.

­야, 여기 맞아?­

­ㅇ, 예….그렇습니다…­

질척거리는 발의 촉감 덕분에 기분이 나빠진 강하는 괜히 앞서서 걸어가는 게드만의 뒤통수를 툭툭 치며 짜증을 풀었다.

뭐, 일단 이 자 덕분에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이 사라졌으니, 이 정도 대우는 아주 양반인 수준이었다.

청룡의 위치를 불라고 하자, 그는 강하를 이끌고 성의 지하로 향했다.

어두침침하고 퀴퀴한 지하감옥은, 서늘한 바람이 불어 더욱 소름이 돋았다.

‘이 새끼….설마 아직도 딴마음 먹고 일부러 날 속이고 여기로 온 거 아냐…?’

어두운 지하감옥의 복도를 구체에서 나오는 밝은 빛으로 비추며 걷던 강하는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힘을 빼앗겼다고 해도, 일단 그 위대한 드래곤인데, 이렇게나 더럽고 습한 곳에 짱박혀 있을 리가 없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아니면, 그 약삭빠르게 대가리를 굴리는 청룡의 계획 중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도달한 강하가 일단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걸어가던 발을 멈추려던 찰나.

[아아아아아악!!!!!!!!]

“.......뭐야? 무슨 소리야?”

비좁은 복도를 가득 메우는 여성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자, 강하는 깜짝 놀라며 앞서가는 게드만에게 물었다.

그 소리는 너무나도 끔찍하고, 고통에 절인. 보이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는 자의 비명이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가 보시면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콱 씨! 제대로 대답 안 해?­

­으힉..!­

비명소리에 놀란 강하의 질문에 의미심장한 뜻을 담은 대답을 들려준 게드만에게, 강하는 손을 들어 올려 싸대기를 걷어 올릴 자세를 취하자, 그는 기겁하며 몸을 움츠렸다.

­대가리 굴리지 말고, 저 소리가 뭐냐니까?­

­저…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그저….감옥에 가둬두고 좋을 대로 하라고 했을 뿐..­

­뭐…? 너, 저 청룡이랑 같은 편 아냐?­

그렇게 소리를 치고 나서야 본심을 말하는 게드만에게, 강하는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청룡에게 이런 마도구까지 받은 데다가, 그 녀석 덕분에 우리의 최대 전력을 리타이어 시켰는데, 힘을 잃자마자 이런 대접을 한다고?

강하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남성은 상상 이상의 쓰레기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마, 단독으로 전쟁을 해온 이유도 마찬가지일 터.

나라를 위해서 같은 숭고한 생각은 전혀 없고, 어떻게든 최대한 이득을 빨아먹기 위해서였겠지.

­야.­

­...예?­

­뭔 예? 야! 빨랑빨랑 안내 안 해?­

­으악…! 아으으…!­

어이가 없어진 강하는 홧김에 게드만의 궁둥짝을 걷어차며 안내를 재촉했다.

그렇게 얼얼해진 엉덩이를 감싸 쥐며 빌빌거리던 게드만은 지하감옥의 복도 끝까지 안내했다.

­여…여기입니다…­

지하감옥의 끝.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거의 삭아서 살짝 치기만 해도 무너질 것 같은 작은 나무 문이 복도의 끝을 지키고 있었다.

­......­

­.....?­

­뭘 그렇게 꼬나봐? 열어!­

­아..예예….! 알겠습니다…그러니 제발…!­

이거 의외로 재미있네.

그렇게 기고만장하던 게드만이 자신의 앞에서 벌벌 기었다는 것에 재미를 붙힌 강하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성질을 내며 그를 겁먹게 했다.

­야. 이제 네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서, 내가 없는 척해.­

­예?­

끼익하며 나무 문이 열리자, 나타난 원형 계단의 아래쪽으로 손을 가리킨 강하가 게드만에게 명령했다.

­그럼, 내가 널 뭘 믿고 성큼성큼 나아가냐? 나는 알아서 따라갈 테니까, 닥치고 가!­

­예…예!­

이미 게드만에게 강하를 이길 묘수 따위는 없었고, 만약 있다고 한들 강하에게는 별 시답잖은 것이겠지만, 그녀는 끝까지 게드만을 신용하지 않았기에 선택한 결정이었다.

스륵.

­...흐억!­

강하는 류월과 백설에게 알음알음해서 배웠던 기척을 지우는 술식으로 자기 몸을 숨겼다.

게드만의 입장에서는 금방까지 자신의 눈앞에 있었던 상대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게드만의 앞에 서 있었다.

­뭐해? 어서 안 가?­

­으힉…! ㄴ…눼…! 급느드..!­

한참이나 멀뚱거리는 게드만의 콧잔등을 가볍게 후려치자, 빨개진 콧등을 움켜진 게드만은 헐레벌떡 계단을 걸어 아래로 향했다.

*

터벅터벅.

끝도 없이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통해, 강하는 천천히 게드만의 등 뒤를 따라 걸었다.

이렇게나 깊은 곳에서, 도대체 청룡은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설마, 반사 당한 자신의 술식을 깨뜨리고 복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하는 자기도 모르게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다시금 소진했던 마력을 천천히 보충했다.

이제는 힘도 거의 떨어졌고, 애초에 만전의 상태에서도 절대로 상대가 안되는 청룡이지만, 적어도 다른 이들이 도망 칠 시간은 벌어야 했다.

그리로 긴급 상황일 경우, 급하게 탈출하기 위해 텔레포트 술식이 새겨진 구체를 몰래 성 밖으로 빼돌린 것 또한 당연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계단을 통해 내려가니, 어느새 지하의 끝에 도달했다.

그 끝에는, 아까 보았던 삭아 빠진 나무문 따위가 아닌, 둔중하고 무거운 강철 문이 길을 막고 있었다.

쿵쿵쿵.

강철문 앞에 선 게드만은 주먹을 쥐어 강철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누구냐?­

­.....나다. 어서 열어.­

그리고 잠시 기다리자, 철문 위쪽에 있는 구멍을 통해, 누군가가 이쪽을 들여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오! 이런 이런, 게드만 님. 바쁘실 텐데 어찌 여기까지 행차하셨습니까? 바깥 정리는 끝나셨는지요.­

­.....그래. 그러니까 문 열어라. 청룡을 봐야겠다.­

­예. 지금 바로 열겠습니다.­

찾아온 자가 게드만이라는 것을 확인한 눈동자는 이내 사라지더니, 철컹. 하며 강철 문을 열었다.

­예, 어서 오시지요.­

‘욱…!’

문이 열리자마자 진한 피비린내가 훅 끼치자, 강하는 자신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강철 문을 열고 게드만을 환영하는 사내는, 얼굴에 복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에 물들어 있었다.

공포영화에서나 볼 법한 소름 끼치는 광경에, 강하는 자신보다 약한 인간의 앞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그건 그거고, 일단 게드만이 철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서자, 강하 또한 재빠르게 뒤따랐다.

­그래, 청룡은?­

­이것 참….상상이나 전설 속 위대한 존재라고 하길래, 괴롭히는 보람이 있을 것 같았지만. 뭐, 재미가 없더군요.­

뚜벅 뚜벅.

게드만과 복면을 쓴 남성은 걸어가면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괴롭혀? 재미…?’

으스스한 공간.

피 칠갑인 복면.

괴롭히고, 재미가 없다.

강하는 혹시 자신이 생각한 광경이 지금 저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렇게 세 사람(그들의 시야에는 두 사람)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게드만 님. 오셨습니까.­

넓직한 방 안으로 들어오자, 의자에 앉아, 책을 바라보던 복면과는 다른 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 청룡의 상태를 알고 싶어서 내려왔다.­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게드만 님 말대로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게드만의 물음에 미소를 보이며 섬뜩한 말을 하는 곱상해 보이는 사내의 모습.

­그래, 저기 있는 건가?­

­예. 문을 열까요?­

­열어라.­

그 사내의 바로 뒤에 있는 또 다른 문을 바라보던 게드만이 묻자, 사내는 책을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4평 남짓한 작은 방.

벽에 걸린 수많은 고문 기구들에는 이미 사용했는지 피에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입구에서 느껴지던 피비린내의 원인이 여기라는 것이 느껴질 만큼, 속이 아릴 듯한 피 냄새가 났다.

그리고.

[....아…..으으…]

“.......미친.”

강하는 그 내부에 있는 그녀의 모습에 강하 스스로도 모르게 소리를 입 밖으로 내어버렸다.

­...! 누…누구냐!­

­여…여길 어떻게!!­

그렇게 강하가 직접 소리를 내자, 그녀의 인기척을 느낀 자들은 강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강하의 모습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두 사내는 곧바로 근처에 있는 쇠몽둥이를 들고 덤벼들었다.

­커헉!­

­끄….으으…­

강하는 그 두 사람의 몸통을 죽지 않을 정도로만 빠르게 가격했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의 배를 움켜쥐고 그대로 쓰러졌다.

“......언젠가 호되게 당할 날이 올 것 같기는 했는데….”

강하는 쓰러진 자들과 기겁하는 게드만을 모두 무시하고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사슬에 전신이 묶여 차디찬 바닥에 놓여진 그것은, 아주 끔찍한 모습이었다.

전신은 갈라진 상처와 피딱지가 수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오른쪽 팔은 팔꿈치 부분을 도려내어, 신경과 살을 잘라내고 뼈만이 간신히 붙어 있었다.

다리는 왼쪽 발목이 절단되었으며, 검게 그을린 것을 보니 뜨거운 무언가로 상처 부위를 지진 것 같았다.

오른쪽 눈알은 이미 없었다.

근처를 둘러보니 바닥에 둘러 다니는 푸른 동공의 눈동자가 보였다.

[아….아으아…으…]

지상 최강의 생명체이자, 이 모든 일을 꾸민 흑막. 그리고 류월의 숙적.

청룡은 그렇게 울부짖으며 하염없이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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