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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6화 〉 색에 젖어들다. (256/289)

〈 256화 〉 색에 젖어들다.

* * *

“흠…..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는데…먹기는 먹었으려나…?”

강하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중얼거렸다.

직원들 앞에서는 반드시 먹게 하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치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것마저 거부하진 않았을까 살짝 불안하기는 했다.

이번에도 먹지 않았다면, 다소 억지를 부려서라도 반드시 목구멍에 처박아 버리리라 다짐하며 청룡이 있는 방 앞으로 나아갔다.

“....오…”

그리고, 강하는 방문 앞에 말끔하게 비워진 그릇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먹었네.

그럼 이제 거의 끝났지.

당분간은 위에 부담이 가지 않는 죽 류로 계속 만들어줘야겠다.

달걀죽? 아니면 소고기 야채죽?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강하는 빈 그릇을 들고 싱글벙글 웃으며 1층으로 내려갔다.

*

그 이후로도, 청룡은 강하가 만든 식사를 재깍재깍 먹게 되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그저 방 앞에 음식을 놔 줄 뿐이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가면 언제나 빈 그릇이 강하를 마주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5일째 되던 날.

강하는 그날도 언제나처럼 청룡이 비운 밥그릇을 치우던 도중이었다.

[......]

“....할 말 있으면 하지 그래?”

[....!]

아주 슬며시 열린 문틈 사이에서 지그시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던 강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자신이 얼마나 뻔하게 쳐다보고 있었는지 몰랐던 청룡은 갑작스런 강하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찍었다.

‘쇼를 한다…’

“할 말 없으면, 간다?”

한참이나 어수선하게 방 안을 돌아다니던 청룡을 슬쩍 보던 강하는, 이내 굽혔던 허리를 펴고 자리를 떠나는 시늉을 했다.

[ㅈ, 잠깐!]

그러자 마음이 급해진 청룡은 문을 벌컥 열며 소리쳤다.

그녀는 아직 야위었기는 했지만, 최근 밥을 챙겨 먹어서 그런지 퍼석퍼석하던 머리칼은 윤기가 돌았고, 시체같이 창백했던 피부도 피가 돌고 있었다.

“뭔데.”

[....어째서…나…나를 도와주는 거지…?]

“...뭐?”

[나…나는…너희 입장에서는….적..일텐데…]

청룡은 밥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 줄곧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자신은, 그들을 공격하고.

심지어 두 용의 힘까지 봉인했는데도, 강하는 그런 자신에게 쉴 곳을 준비하고, 밥을 건네주었다.

그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왜긴 왜야 임마. 니가 류월이랑 백설 님 힘을 봉인했잖아 짜샤.”

[그…그런가…]

그런 청룡의 질문에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청룡은 살짝 풀이 죽은 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

역시 모든 것에는 바라는 것이 있기에, 행하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청룡은 복잡하고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이지만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

그 모습을 보던 강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뭐….배고파 보여서 말야…..뭐라도 먹여주고 싶었다. 그냥…뭐…변덕이야.”

[........]

“에이씨….뭐라고 하는 건지….아무튼, 어서 기운이나 차려. 그 뒤에는 곧바로 굴릴 거니까.”

강하는 그 말을 내뱉고 난 뒤, 쑥쓰러워진 모습을 감추기 위해 뒤돌아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리를 떴다.

[..........]

청룡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지켜보았다.

[...이상해….]

인간들은, 언제나 탐욕스럽다.

그 어떠한 것도 그 보상을 바라고, 더 많은 것들을 갈구했다.

그자도 마찬가지.

자신이 쓸모없어지자, 그대로 나 몰라라 하며 자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

모두 그렇다.

그래서, 청룡은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저 인간은. 무언가 다른 것 같았다.

금방까지 조금 가벼워진 마음은, 어느새 또 복잡하게 꼬여만 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마음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나도, 이상해졌을지도.]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어느새 그녀의 입가는 조금 올라가 있었다.

*

[봉인….풀게.]

강하와의 잠깐 대화를 나눈 그 뒤로 1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어느새 죽에서 탈출한 청룡은 직원들과 비슷한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위에 부담이 되는지 특히 기름졌던 고기는 조금 남겨서 강하가 머리를 긁적이던 그 순간이었다.

“뭐?”

[......그게 목적이잖아…? 그러니까….할게.]

“.....드디어 할 마음이 들었나.”

[그런데. 그러려면….내가 만들었던 마도구가 필요해.]

“...그 퍼런 구슬 말이지?”

[...맞아.]

“....알았어. 잠시 기다려.”

잠시 침묵하던 강하는 마저 그릇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라고 하네.”

“드디어 말문을 텄네요~ 길다 길어~”

청룡이 두 사람의 힘을 풀어주겠다고 선언하자, 강하는 즉시 직원들을 모았다.

“그….다 좋기는 한데…조금 불안하기는 하네요….힘을 풀어준다고는 말했지만, 딴마음을 먹고 있으면 어쩌죠?”

아주 좋은 소식이었지만, 파렌은 살짝 떨떠름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다.

만약, 청룡이 딴마음을 먹고 구슬을 건네받았다가, 자신의 힘만 되찾고 다시금 개판을 칠지도 모른다.

한번 주막을 반 정도 박살을 낸 전적이 있는 청룡인데다가, 지금은 그런 그녀의 힘을 억제할 두 사람의 힘은 봉인되어 있는 상태였다.

“무언가…보험을 걸어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그건 그래. 우리가 그년을 믿었다가, 홀랑 낚이면….어떡해?”

“흠….불안하긴 하네…”

그런 파렌의 불안을 공감하는 직원들 또한, 그의 말을 거들며 한 마디씩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렇죠….당장의 해결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니…”

그렇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 또한, 청룡이었기에. 그 말을 반박하는 이들 또한 있었다.

“....백설 님. 청룡의 힘 말고는, 정녕 방법이 없을까요?”

강하는 백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음….확실히, 이 봉인식은 그 아이만의 독창적인 술식으로 짜여져 있어서….당장은 무리지만, 어떻게든 풀 수는 있을 거야.”

“정말입니까?!”

“한, 60년? 정도 시간을 들이면 풀 수 있을 거야.”

“......그건 좀…”

60년이라니.

그 정도 시간이 지나버린다면, 이젠 평범한 인간이나 다름없는 백설이 먼저 늙어버릴 것이다.

“당장은, 그년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러다가 잘못될 가능성도 있어요!”

“그래도,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잖아…”

“그 용이라구요? 한 번 날뛰면 막을 방법이 없어요!”

“이것 참….”

“....어떠카죠…?”

그렇게 직원들은 청룡의 제안에 서로 간의 의견을 내며 시끄럽게 토론을 이어 나갔다.

그때.

“....내가 가 보마.”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듣고만 있던 류월이 입을 열었다.

“내가, 그 구슬을 들고, 청룡과 대화를 해 보겠다.”

“류월님이요?”

“정말요?”

“그래, 내가 직접 넘겨주도록 하지.”

“.....하지만…”

“내 너희들이 걱정하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를 믿어다오.”

“...........”

“그러시다면야…”

“믿을게요.”

류월의 갑작스런 선언에, 모두들 당황했지만, 그녀의 흔들림 없는 눈을 보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 보도록 하지.”

*

류월은 다시금 자신의 손에 들린 푸른 수정구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을 한 듯, 다시금 정면을 바라보았다.

드르륵.

[.....!]

언제나처럼 방구석에 박혀 바닥을 쳐다보던 청룡은 갑작스런 빛에 화들짝 놀라고, 그곳에 서 있는 류월을 보며 다시금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래, 봉인을 풀어주겠다고?”

[......]

“네가 원하는 것이, 이것 맞나?”

[....맞아…]

류월은 그런 청룡의 앞까지 서슴없이 뚜벅뚜벅 걸어가 수정구슬을 들어 보였다.

“.....이 몸은, 너를 죽여버리리라 다짐했다.”

[......]

“수 백 년 전, 네가 저지른 짓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류월은 자신의 머리에 꽂힌 제비붓꽃 비녀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내 소중한 것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내가 아끼는 아이들을 처리하려 했지…”

[.....날…죽일건가…?]

“.....그런데, 이 마음이라는 것은 알면 알수록 신비하구나.”

류월은 떨리는 동공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청룡의 앞에서 무릎을 꿇어 시선을 맞추었다.

“나는 이곳에서 즐거움을 배웠고, 배려를 배웠다.”

[........]

“언제나 맛있는 음식들을 즐기고, 미숙하지만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 곁에서 살고 있다.

너는 언제나 그랬지, 인간들은 하등 미천한 존재라고.

솔직히, 나 또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를 제외하고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류월은 손을 들어 청룡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 곳에서 모두는 웃고, 울고, 화내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근주자적. 근묵자흑. (??者赤??者?:붉은색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게 물들고 먹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검게 물든다. 착한 사람과 사귀면 착해지고, 악한 사람과 사귀면 악해짐에 비유하는 말.)이라는 말이 있지.

나는 어느새 이 아이들의 색에 흠뻑 젖어버린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너 또한 이 색에 젖어보았으면 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류월은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수정구를 청룡의 손에 쥐여주었다.

[........내가…그럴 수 있을까…?]

“모른다.”

[...!]

그런 수정구를 매만지던 청룡이 고심 끝에 류월에게 묻자, 류월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하지만, 시도는 할 수 있겠지.”

[....그런가…]

색에 젖어든다. 라.

청룡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수정구의 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푸른 수정구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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