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화 〉 양자택일.
* * *
그 시각.
“잠시만…밀지 말아봐…!”
“조금만 옆으로….”
“우..우우…”
“잠시만요! 마오가 두 분 사이에 껴서 마치 빵빵한 호빵처럼 됐어요!”
류월이 청룡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직원들 또한 먼 발치에 숨어서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여나 청룡이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을까 모두들 전진 긍긍하며 바라보는 그때.
“어…어라..!”
“수정이 빛난다!”
결국 류월은 청룡에게 푸른 수정을 넘겨주었고, 그러자 그녀의 손안에서 수정은 아주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으…으윽…!”
“이…무슨…!”
그와 동시에 창과 강하는 괴롭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며 가슴팍을 쥐어짰다.
“무…무슨 일이에요?!”
“괜찮으세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직원들은 당황하며 그들을 부축했지만, 이상하게 창과 강하를 제외한 직원들은 두 사람과는 다르게 아주 멀쩡했다.
“.....엄청난…힘이야….”
“주변 마력이…미친 듯이 용솟음치고 있어….!”
그러나, 정령과 오랜 세월을 같이 보낸 엘프, 힐라와 구미호인 매화는 그 둘이 괴로워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청룡의 근처에서 미칠 듯이 뿜어져 나오는 밀도 높은 마력이, 여기 있는 모든 인간을 짓누르듯이 폭발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마력을 느끼지 못해서 무슨 상황인지 잘 몰랐지만, 용의 힘과 근접한 힘을 가진 창과 강하에게는 더욱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들 또한 용의 순수한 마력에 오금이 저릴 정도인데, 두 사람은 얼마나 심한 압력을 받고 있을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아…..으음…!]
파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청룡의 손에 담긴 수정구가 빛을 잃어가며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청룡의 몸은 공중으로 조금씩 두둥실하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오른팔과 왼쪽 발목, 그리고 오른쪽 눈이 순식간에 살이 차오르며,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서 그녀의 존재를 의미하는 용의 뿔이 뿌드득 하며 생겨났다.
그렇게, 청룡은 완벽하게 자신의 힘을 되찾았다.
[하아….하….]
자신의 몸을 되찾은 청룡은 숨을 가쁘게 쉬며 공중에서 내려와 두 다리로 바닥에 섰다.
“...........”
그리고, 류월은 그 모습을 말없이 천천히 바라보았다.
[.......]
까딱.
“어…어머나…!”
“백..백설 님!!!”
그런 류월을 잠시 바라보던 청룡은, 직원들이 숨어있던 곳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그 사이에 있던 백설의 몸이 금방의 그녀처럼 두둥실 떠오르며 청룡의 곁으로 날아갔다.
백설은 단순한 저항조차 못 하고 그대로 쳥룡의 바로 옆에 둥둥 떠다니게 되었다.
[...이래도, 아직도 나를 믿나?]
청룡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끄…으윽…!”
“하욱…!”
그 언령 한 번에, 지금까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던 직원들 또한, 강력한 압박이 자신을 옭아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하와 창은 쓰러졌고, 직원들은 꼼짝도 하지 못하는 데다가, 백설과 류월은 힘이 봉인된 상태로 청룡의 앞에 있었다.
그들이 예상하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이루어질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
하지만, 류월은 그저, 티 없이 굳은 심지가 타오르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흥.]
그러자, 청룡은 콧방귀를 뀌더니, 천천히 류월의 앞에 다가와, 그녀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류월님!!!!!!!”
그리고,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새어 나왔다.
“........응?”
“모…모두 괜찮아?”
“아…일단 저는 멀쩡하기는 한데….”
눈이 타들어 갈 것 같던 섬광이 잦아들자, 직원들은 어리둥절하며 자신과 주변을 살폈지만, 그들은 아주 멀쩡했다.
“하아아아아….드디어, 되찾았군…]
마치 맹수의 그르렁거리는 소리와 같은 지독한 암흑이 소리내었다.
자신의 정체성인 검은 번개를 자신의 손에 조금 일으키던 류월의 이마에는, 그녀를 상징하는 검은 뿔이 자라나 있었다.
청룡이 류월의 봉인을 풀어 준 것이었다.
[다음은….아줌마인가…]
“아줌마…! 이 아이가 정말…!”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옆에서 두둥실 떠오르던 백설의 가슴팍에 손을 대, 금방처럼 류월의 봉인식을 깬 것처럼, 백설의 봉인식 또한 깨주었다.
화아아.
금방과는 다른 포근하고, 따뜻한 마력이. 직원들을 상냥하게 어루만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아줌마가 아니란다?]
살짝 뺨을 부풀리며 가볍게 성질을 낸 백설이 손을 펼치자, 그녀의 몸은 공중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녀 역시 양쪽에 뿔이 자라나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모든 용들의 봉인이 풀리게 되었다.
*
“뭐…처음에는 조금 심장이 떨어질 뻔하기는 했지만….잘 해결되어서 다행이네.”
강하는 향이가 타 준 찻잔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청룡이 백설을 공중으로 띄우며 떠보는 소리를 한 그 순간에는, 모두가 큰일 났다!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뭐, 청룡의 가벼운(?) 장난이었다고 생각하자.
“장난도 적당히 해야지?”
“.....미안. 아줌..”
“언.니.”
“.....ㅇ…니..”
.
그런 청룡을 차분하게 나무라던 백설이 입은 웃지만, 눈은 웃지 않은 채 청룡에게 자신의 호칭을 정정해주자, 청룡은 마지못해 호칭을 고쳤다.
“자….이제 한시름 뒀네. 어휴….”
“그러게요. 여러 일들이 있기는 했지만, 다행히 두 분이 힘을 되찾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아무튼, 여러 일들이 있기는 했지만, 류월과 백설의 힘을 되찾았고, 청룡 또한 이젠 자신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있었기에, 결과 자체는 모두 올롸잇! 이다.
강하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이제야 마음 편히 좀 살겠네.
하지만, 강하의 예상은 아주 크게 빗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너를 언제 되돌려 주면 되는 거지?”
“.....뭐?”
청룡은 아주 퉁명스럽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강하에게 말했다.
“되…돌려?”
하지만, 강하에게는 갑작스러운 스트레이트 펀치 같은 말이었다.
“그래, 네가 원래 살던 세계로. 너도 그걸 바라고 있었잖아?”
“...하? 그…그거….거짓말이 아니었어…?”
분명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저, 자신을 꾀어내어 이용해 먹을 수단이었을 것이라고.
강하는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것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리고, 마주했을 때 청룡의 비웃음에 그것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진짜로…ㄴ, 내가 살던 곳으로…보내 준다고…?”
“그게…뭔 소리야 형…? 돌아갈 수 있는 거야…?”
강하의 되물음에, 혁수 또한 손을 떨며 강하에게 물었다.
현대.
그들이 태어나고 자라난, 그곳.
“돌아간다…고요?”
“셰프님이 왔던 곳으로…?”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러나, 직원들은 청룡과 강하의 대화를 전혀 이해 못한 채로 머리에 물음표를 띄울 뿐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자라났고, 당연히 이 세계가 그들의 세계였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만난 강하와 혁수 또한, 그들처럼 이 세계에서 자라나고 태어난.
그저 재능이 특출난 인물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향이는 그저 고개를 떨구고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렇군….정말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맞아. 그쪽 세계와 이쪽 세계를 잇는 매개체가, 바로 이 인간이니까. 물론 그들이 돌아간다면 그 매개체 또한 끊어져, 다시는 돌아올 수는 없게 되겠지.”
그 상황에서 담담한 류월의 질문에 대답한 청룡의 말이 쐐기를 박았다.
“아 음….그…시간이 많이 늦었네…? 일단, 오늘은 다들 쉬고. 내일 이야기하자고.
…그리고, 힐라? 미안하지만, 곧바로 애슐란으로 가서 진혁을 불러줄래? 그 녀석도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네.”
“아..네에…알겠어요..”
강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 떨어진 진혁 역시, 이 이야기를 들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힐라에게 부탁해 그를 호출하기로 정했다.
“자….일단 해산. 다들 쉬고, 내일 보자.”
“아…! 셰프님?”
그 말을 마친 강하는 그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2층으로 향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저 멀어져가는 강하를 바라볼 뿐이었다.
“....저기, 혁수 씨. 이게 무슨 소리에요?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니요?”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처음으로 그 침묵을 깬 인물은 바로 매화였다.
“후우....이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네…”
그 질문에 혁수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한에 떨어진 계기.
그 뒤로 향이를 만난 이야기.
먹고 살기 위해 청라를 만나게 된 이야기.
류월과 만난 이야기, 그리고.
스타 주막을 세우기까지.
혁수는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담담하게 직원들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거 참….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군요….”
“드래곤도 있는 와중에 다른 세계가 없으리란 보장도 없긴 하죠…”
“그…그래서! 셰프님과 혁수 오빠는 어떻게 할 건가요?! 도…돌아가는 건가요?”
“글쎄….일단, 난 형의 판단을 따라야 할 것 같아.”
“이런….”
그들은 혁수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새겨들으며 저마다 복잡한 감정을 이루었다.
“그럼…향이 언니는 처음부터….향이 언니?”
벼루가 고개를 돌리며 향이를 찾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향이…? 어디 간 거지..?”
“향아?”
“먼저 방으로 올라간 모양인데?”
“...심란하겠죠….그래도 셰프님과 가장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니…”
“....내가 말실수를 했나?”
“아니…언젠가는 해야 할 이야기였을 거란다.”
갑자기 어두워진 분위기에 청룡이 진땀을 흘리자, 백설이 그런 청룡을 위로하며 말했다.
*
그 시각.
“하….돌겠네 진짜…!”
강하는 자신의 방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소리쳤다.
현대.
그거 좋지.
원래의 미슐랭 레스토랑의 셰프.
그곳이 내 자리니까.
기나긴 휴가가 끝났으니, 다시금 돌아가야 한다.
그게 맞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놔두고, 다시금 돌아간다?
한에서의 추억.
자신이 모은 직원들.
그리고, 이 스타 주막까지.
이 모든 것을, 잠시간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돌아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강하는 현대의 자신과 한에서의 자신, 둘 중 무엇을 골라야 할지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했지만,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강하가 열불을 내며 씩씩거리고 있을 무렵.
“....셰프님…계셔요?”
“....향아?”
스르륵.
아주 조심스럽게 열린 문틈 사이.
이 세계에 온 이후 가장 처음으로 만난 아이.
“....도령님…”
향이가 얼굴을 보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