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9화 〉 스타 주막에 어서오세요!(完) (259/289)

〈 259화 〉 스타 주막에 어서오세요!(完)

* * *

붓은, 언제나 가볍게 쥐고.

끊김없이 한 번에 그어낸다.

정직한 직선도, 아름다운 곡선도.

그 모든 선들이 이어져, 어느새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

“끝났어?”

“아흑…!”

어느새 마침표를 찍으려던 손길은,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붓을 떨어뜨렸다.

“으아….다행이다아….그림은 멀쩡해…”

그나마 다행이라면, 붓이 그림을 망치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기에 그녀는 안심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깜짝 놀랐잖아요…!”

“하지만, 하루 종일 여기에서 꿈쩍도 안 하고 있으니 심심하단 말야…”

“저와 여행길을 떠나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그래 그래, 그래서. 끝났어?”

“그거야 뭐…거의 끝났죠.”

자신을 놀라게 한 푸른 머리칼의 소녀에게 버럭 화를 내자, 그녀는 요령 좋게 말을 돌리며 화를 피했다.

어느새 훌쩍 길어진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그녀는 다시금 떨어진 붓을 주워, 마지막으로 한번, 붓을 휘둘렀다.

애슐란에서 건네온 펜도 편하기는 하지만, 붓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 슬슬 돌아갈 거야?”

“그러네요….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아요.”

그림을 완성하고 뿌듯해하는 그녀에게 푸른 머리의 소녀가 묻자,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출발할 때는 분명 태양 빛이 쨍하게 내리쬐던 여름이었지만, 어느새 드높은 하늘이 선선하게 바람을 불어오는 가을이 되었다.

“이번에는 좀 짧네?”

“그러게요, 그래도. 당신 덕분에 이동하는 시간이 확 줄어서 그런가 봐요. 언젠가 애슐란에도 한번 가 볼까 싶어요.”

슬슬 자리를 떠나기 위해 봇짐을 정리하는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다.

“당신이라니. 조금 섭섭하네…”

“알았어요…청하.”

“그래, 이름이라는 건 참 좋은 것 같아. 벼루.”

그렇다.

이 두 여성은 바로. 벼루와 한때 청룡이라 불리던 푸른 용이었다.

지금은 청하라는 이름을 가진 채, 벼루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

“언제나 그렇지만 적응이 잘 안되는 것 같아요.”

[그래?]

“하늘을 난다니, 매 순간순간이 너무나도 신비하고, 그….신나요.”

[하하! 그럴 수도 있지 뭐.]

청하는 늘 그랬듯 익숙한 행동이지만, 한낱 인간일 뿐인 벼루에게는 늘 새로운 일이었다.

살짝 삐져나온 용의 비늘에 손을 올려 혹여나 떨어지지는 않을까 꼭 잡고 있으면서도, 무서우면서도 늘 아래를 살펴본다.

걸어 오를 때는 정말로 힘들고 높아 보이던 산도 이제는 그녀의 발밑에 있었다.

근근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점처럼 보여서, 신비로웠다.

[자, 다 와 간다.]

“햐….여기에서도 줄이 늘어진 게 보이네요….”

그렇게 하늘을 날다 보니, 그녀들이 돌아가는 곳인 서라벌의 상공에 도착했다.

이제 겨우 서라벌의 입구 쪽에 다다랐을 뿐인데,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행렬은 여기에서도 아주 잘 보였다.

그들이 줄을 서고 있는 곳.

스타 주막.

그녀들의 집이자 고향인 곳이다.

[자, 슬슬 내려가자.]

“네.”

목적지까지 거의 도착한 청하는 쭉 펼쳤던 날개를 접고,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그녀가 다리를 바닥에 닿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흙먼지와 진동이 퍼져나갔지만, 그녀가 걸어둔 도술 덕분에 그녀들의 모습은 물론, 아무런 이상도 평범한 사람들은 느끼지 못했다.

[휴…자, 가자.”

“....”

“...왜? 뭘 그렇게 바라봐?”

다시금 용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청하를, 벼루는 뻔히 쳐다봤다.

“왜 소녀의 모습으로 지내시는 건가요? 원래는 그…좀 컷잖아요.”

겨우 벼루의 가슴팍에 닿을 듯 말듯 정도 소녀의 모습을 한 창하의 인간화에 벼루는 궁금증을 가지며 물었다.

“음….그냥, 인간들은 자기보다 어리면 조금, 좋게 봐주더라고.”

“그래요?”

“뭐, 속은 정 반대지만 말이야. 그래도 가끔 인간들이 지나가면서 엿 하나씩 쥐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아.”

“그렇구나….나는 또 백설 님에게 안기기 좋은 크기라서 그런 줄…”

“무무무무어무어ㅜ 뭐…라는 거야…! 하..참..흐…아니..하…”

“.......”

“보지 마, 입도 열지 마.”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이…시끄러! 나 먼저 간다!”

“아, 잠시만요!”

벼루의 짓궂은 농담에 얼굴을 확 붉힌 청하는 벼루를 내버려 두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벼루는 그제야 웃으며 농담이라며 그녀의 뒤를 마찬가지로 달려 나갔다.

*

“여기는 언제 와도 바뀌지를 않네.”

“그러게요.”

어느새 스타 주막의 앞에 선 두 사람은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행렬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라? 벼루 아니니? 돌아온 거야?”

“벼루 언니!”

“벼루 왔구나?”

“아하하…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그 행렬에는, 스타 주막에서 일하던 벼루의 모습을 알던 이들도 있었기에, 벼루를 보며 아는 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 식사 맛있게들 하세요~”

그런 이들에게 한번 손을 흔들고는, 벼루와 청하는 곧장 스타 주막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어머, 벼루야아~~ 돌아왔구나~”

“오랜만이에요, 할라 언니.”

“잘 지냈어?”

“네!”

언제나처럼 서빙을 도우며 홀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힐라는 곧장 벼루를 알아보고는 그대로 달려와 꽉 껴안았다.

“그래, 왔구나.”

“류월 님, 오랜만이에요~”

“크흠…그래, 저 년이 귀찮게 하지는 않았고?”

“얘는…보자마자 그 소리니?”

입구에서 시끌거리는 소리를 들은 류월 역시, 오랜만에 보는 벼루를 향해 반갑게 인사하고는, 곧바로 청하를 흘기며 말했다.

“그나저나, 혁수 오빠는요?”

“아~ 혁수? 오늘 휴가냈어.”

“휴가요?”

그러던 중, 언제나 카운터에서 계산을 담당하던 혁수가 보이지 않자, 힐라에게 물어보니 휴가를 떠났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매화랑 같이.”

“아….그거군요.”

그 뒤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혁수와 매화는 이미 몇 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두 사람의 사이는 따끈따끈한 신혼과도 같았다.

“그렇지….누구는 몇백년 살면서 참한 사람 못 찾았는데….이런 어린놈의 자식들이….!”

“아하하…”

힐라는 그 두 사람을 떠올리며 거의 피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벼루 너도 임자 있다. 이거지…?”

“아으…..”

“에휴….어서 가 봐. 지금 주방에 있을 거야.”

“ㄴ, 네에..!”

그리고, 또 다른 커플을 바라보며 힐라는 손을 휘저었다.

그 즉시 벼루 또한 곧바로 주방을 향해 발을 옮겼다.

“앗! 벼루야! 오랜만이야! 그림은 잘 그렸어?”

“마오! 잘 지냈어?”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커다란 솥에 국물을 우려내는 마오 였다.

한에서 산 지도 5년이 넘었던 그녀 또한, 벼루와 마찬가지로 이젠 어엿한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민위어 또한 크게 늘어, 이제는 더듬거리는 일 없이 훌륭한 스타 주막의 일원이었다.

“창 언니는?”

“창 님은 지금 궁에 배달 나가셨어.”

그녀와 언제나 붙어있던 창을 찾자, 마오가 알려주었다.

“바쁘시네…”

“그러게…최근에 배달하는 메뉴 중 치킨이 포함됬는데, 그것 때문에 문제라고 하시더라고…

무슨 후라이드랑 양념 중 어느 것이 더 최고냐느니….”

“...? 그냥 따로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나도 모르겠지만, 높으신 사람들이니 우리랑 다르게 생각하나 봐.”

“그런가…”

“아무튼, 파렌 선배님은 저쪽에 계셔, 어서 가 봐!”

마오는 그녀의 목적을 단번에 알아채며, 능글맞은 미소로 벼루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아 응….나 이상하지 않지?”

“괜찮아! 어서 가 봐!”

“아…알았어….!”

그 소리에 살짝 얼굴을 붉힌 벼루는 자신의 양 뺨에 손을 대며 벼루에게 묻자, 벼루는 그저 엄지를 들어 보이며 그녀의 등을 밀어주었다.

“크흠…흠…..파렌….씨?”

잠시 심호흡을 한 벼루는, 마오가 말해준 식품 창고로 발을 옮기며 말했다.

“이 소리는….벼루? 벼루 너야?!”

“파렌 씨!”

그러자 그 구석에서 무언가가 움찔거리더니,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왔다.

어느새 5년 전보다 튼튼해진 몸이 된 파렌이 벼루에게 다가와 그녀를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

“...저도요….”

오랜만에 느끼는 그의 품에, 벼루는 포근함을 느끼며 소곤거렸다.

“배는 고프지 않아? 밥 먹을래? 어떤 거 만들어 줄까? 응?”

“치..침착하셔요. 저 어디 안 가요.”

“그…그렇지..? 응. 미안…오랜만이라서 그런가 봐.”

벼루를 품에서 내보낸 파렌은 허둥지둥하며 안절부절못하자, 벼루가 침착하게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그림은 어때? 괜찮아?”

“음…이번에는 좀 많이 건진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5년 전.

벼루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타 주막을 떠나 전국을 돌아다니겠다고 말했다.

수많은 이들의 우려가 있기는 했지만, 벼루는 자신만의 그림을 반드시 완성하고 싶었기에 그녀의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직원들 또한 벼루의 확고한 의지를 보고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벼루같은 여자애를 혼자 내보낼 수는 없었기에, 호위 겸 청하를 같이 여행길에 보낸 것이다.

그렇게 벼루는 5년 동안 간간이 주막에 들렀다 가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청하 또한 인간세계에 관심이 생겼기에, 군말 없이 그녀의 호위를 겸하며 같이 여행을 다녔다.

그 누구보다 벼루의 곁에 있고 싶은 파렌이었지만, 자신도 자신의 꿈을 위해, 안타깝지만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었다.

“그나저나….’주모’ 는요?”

“주모? 아, 셰프님? 금방 돌아오실 거야.”

그때.

“이야~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네?”

호탕하지만 가녀린 목소리.

가지런히 땋아진 밝게 빛나는 갈색 머리.

어깨에 찬 완장과, 검은 앞치마.

“주모!”

스타 주막의 주인, 강하가 벼루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야. 벼루.

잘 왔어, 스타 주막에.”

스타 주막에 어서오세요! 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