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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5화 〉 IF외전:현대에서의 첫날밤. (265/289)

〈 265화 〉 IF외전:현대에서의 첫날밤.

* * *

“야, 그거 다시 한 번 해봐.”

“그러죠 뭐.”

강하는 자신의 손 위로 검은 구체를 여러 개 만들어, 마치 저글링을 하듯 공중에 띄워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렸다.

“우오….진짜 대단한데? 이거, 진짜 속임수나 그런 거 없는 거 맞지..?”

“속고만 사셨나~ 진퉁이라니까요?”

그렇게 박강은 의심을 풀고, 강하를 진정으로 믿게 되었다.

새로움과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그 요리를 맛보고 더 이상 부정하기에는 무리였다.

혹시나 싶어 그간 자신과 지내면서 있었던 비밀들을 물어보기는 했는데.

자신의 크고 우람한(그렇게 믿는)빅­매그넘의 크기까지 줄줄 읆자, 즉시 그만두게 시켰다.

“큼….그래서, 할 이야기가 뭐냐?”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서, 박강은 드디어 자신이 이 시간까지 남아서 그, 아니 그녀를 기다린 이유를 물었다.

“뭐….그야……하…..뭐긴 뭐겠습니까? 그만둔다고 말하려고 왔죠.”

“....뭐? 야, 미쳤냐!? 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면 어떡해!!”

그러자 강하가 씁쓸하다는 얼굴로 자신의 본심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박강은 마치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자신의 레스토랑이 어찌 미슐랭 스타를 받을 수 있었는가.

박강의 뛰어난 금전감각과 훌륭한 접객 또한 한몫을 했지만, 근본적으로 강하의 실력이 뒷받침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자신의 레스토랑의 셰프, 강하가 갑자기 그만둔다니.

아주 큰일이 난 상황이었다.

“아니 형님, 보세요! 저 지금 중학생 꼬꼬마가 됐다니까요? 그런데 제가 이대로 주방에 나와서…‘어, 반갑다. 나 알지? 니네 셰프. 설명은 길지만 어쩌다 보니 여자애가 되었다. 잘 부탁해!’ 라고 할깝쇼? 애들이 잘도 아~ 그렇구나~ 하겠다!”

“끄응….”

허나, 강하의 말이 옳았다.

자신이야 그동안의 추억과 두 사람만이 아는 사실로 간신히 믿었지만,(강하가 보여준 마법도 한몫했다.) 직원들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다.

재수 좋으면 철 지난 만우절 장난.

그게 아니면 오너가 미쳤다며 난리를 칠 게 뻔했다.

“그 뭐냐….해준이 녀석. 오늘도 제가 없어도 애들 잘 이끈 모양이네요. 그 녀석에게 맡기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습니다.”

박해준.

강하의 바로 밑에 있던 부 셰프이며, 강하 못지않게 아주 뛰어난 실력을 갖춘 사내였다.

“아니…그 해준이 녀석이 너를 얼마나 따르는데….하….

잠시 바깥바람 좀 쐴까?”

손을 이마에 짚고 고뇌하던 박강이 말했다.

*

레스토랑의 뒷문에 위치한 흡연장.

업무에 시달려 지친 직원들이 휴식시간이나 퇴근시간에 짬짬히 들려 잠시 쉬는 공간이었다.

요리인들이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그 노동이 힘들어서라는 이유도 강했지만, 일하는 곳이 언제나 불, 칼과 같이 위험한 도구들을 다루는 일이고, 뭐만 하면 큰 소리가 오고 가는.

말 그대로 신경을 갉아 먹는 직종이었기에 담배를 피우는 이들도 많았다.

물론, 조리 도중 몰래 담배를 피우는 직원들은 급여가 삭감되는 등, 큰 처벌을 내리는 것은 당연했다.

“이 쉐끼 이거, 아직도 안 끊었냐?”

“형님이 물리지 않았슴까.”

“그…그건…!...야! 그래도 난 양반이지! 어떤 놈은 몰래 대마도 구해와서 폈었엄마!”

“에휴…자요.”

“어…어어…이건 진짜 굉장하기는 하네…”

박강이 한껏 성질을 내며 담배를 입에 물자, 한숨을 푹 내쉬던 강하가 손가락을 딱 소리를 내며 쳤다.

그러자 작은 검은 불꽃이 담배 끝 부분에 일렁이더니, 작게 불이 일었다.

“휴…”

“...? 그게 뭔…?”

박강의 담배에 불을 붙힌 강하가 소매에서 자신이 언제나 애용하는 곰방대를 꺼내 들자, 박강이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뭐, 거기에 그런 담배가 어디 있었겠어요? 그냥 사극에나 보던 것처럼 이렇게 피웠죠.”

“....넌 그 모양 그 꼴이 됐는데도 피냐….아니 그나저나…”

“??”

“여긴 현대잖아. 왜 아직도 그런 걸 들고다니냐 이거지.”

“....형님, 저 물 맥이는 겁니까? 절 봐요! 이런 꼬마가 편의점에 가서 담배라도 살 수 있겠어요?”

맞다.

현대에 오고 나서, 곧바로 그녀가 찾아 헤맨 것이 있었으니.

바로 현대식 담배였다.

솔직히, 한에서 곰방대로 피워대는 담배는, 더럽게 맛이 없었다.

현대의 담배보다 훨씬 직관적인데다가 너무 매워서 피기도 힘들었다.

그렇기에 현대의 담배를 피려고 했었지만, 그 결과가 이 모양이었다.

혹시나 집에 남긴 것이 있을까 싶어 집안 곳곳을 뒤졌지만, 생각해보니 그때도 집에 담배가 떨어져서 드라이브 도중 편의점에 들렀던 기억이 났다.

“난 또 뭐라고….자.”

“오오…! 감사함다!”

그 소리에 박강은 자신의 담배 한 개비를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쓰으으읍….하! 이거지! 원래 형님 담배는 워낙에 독해서 피기 싫지만, 지금은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네요!”

“.......”

“? 왜 그러십니까?”

“아니….지금 이 광경이 참…뭐시냐…껄끄럽네.”

고작 막 중학교에 올라온 어린 소녀에게 담배를 건네는 중년 아저씨.

아무리 봐도 그림이 거시기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하는 벌써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말이다.

“후….살 것 같다….”

“....그래서, 금방 했던 말. 사실이냐?”

“....뭐, 어쩌겠습니까.”

“그…네가 말했던 도술인가 마법인가로 겉모습을 바꾸면 안 되는 거냐?”

“그게…..제가 이런 말 하기도 그렇지만, 제가 지금 일단 제 몸의 반 정도가 요…용이거든요..?”

“....?”

“예, 그 용. 날아다니고 불도 쏘는 용. 그래서 마법도 쓰고 힘도 장사고 그런 거죠.”

“허 참….옛날 옛적에 보던 소설에서나 볼 법한 일이네….그래서, 그 용이란 게 무슨 상관인데?”

“그 뭐시냐…용에게는 용의 모습과, 인간의 모습이 있는데. 그 모습의 인식이 워낙 강해서, 고작 해 봐야 머리나 눈 색 바꾸기 정도고, 모습이 고정되어 버려서 바꿀 수 가 없다네요.”

“그럼 너, 민증은 어쩌려고? 평생 그 모양 그 꼴로 살아야 한다는 소리 아냐?!”

“하….그것도 문제이기는 한데, 뭐. 어떻게든 해 봐야죠.”

“.....하하 참. 골때리네.

그래, 네가 말한 대로 그만둔다고 치자.

그럼 어떻게 하려고?”

“후..후훗….! 형님, 이거 보시면 까무러치실 겁니다…!”

“...또 뭔데에~ 나 오늘 이미 수십 번은 까무러쳤다!”

강하는 박강의 말에 음흉하게 웃으며 자신의 소매에서 휴대폰을 꺼내었다.

“자! 이것 보십쇼!”

“응..? 이게 뭔데? 일십백천만십만백…….뭐???!?!?!? 너…너 뭐야! 이거 진짜야?!”

“시대는 비투코인의 시대! 거기 갔다 오니까 제가 사 둔 코인이 글쎄…떡. 상. 해 버리고 말았달까? 후훗.”

“야…나…잠깐….워낙 액수가 크다 보니 현실감이 없네….와이씨….너 뭐냐…? 나도 그냥 레스토랑 때려치우고 코인이나 할까?”

“글쎄요…..저야 운이 좋아서 그런거죠. 지금 보니까 제가 샀던 코인, 제가 팔자마자 급속도로 떨어지더라고요…막 뉴스에도 나오고 장난 아니던데.”

“아~ 그….도그코인? 나도 뉴스로 봤지. 그걸 샀냐? 하여튼…운도 좋은 새끼….그래서, 돈도 많으니 걱정은 없겠구만?”

“뭐…당분간은 일단 이 돈으로 살던가 해야죠. 그리고.”

“...그리고?”

“제 가게를 만들 생각입니다.”

“...가게?”

“예, 거기에 살면서 주막을 운영했거든요. 거기 직원들도 지금 제집에 있습니다. 하나하나 똘똘한 녀석들이라서, 키우는 맛이 있거든요.”

“호오…..그래?”

“뭐, 그래서. 오늘 드릴 말씀은 이겁니다. 그만둬야죠 뭐.”

“....아무리 그래도 애들한테 직접 말 한마디 없이 그만두는 건….”

“직접 만나는 게 더 문제가 커지지 않을까요?”

“뭐냐, 오늘 했던 것처럼. 직접 실력을 보여주면….”

“그건 저도 생각은 해 봤는데…그게 먹히겠냐고요…”

“그거야 모르지.”

“하….복잡하다 정말….”

강하는 다 피운 꽁초를 비비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그녀 또한 미련이 많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자신이 초라하던 그때부터 지금의 미슐랭 래스토랑까지 만든 사람 아닌가.

그런 가게에 미련이 없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

자신을 응원하고, 동경하며 따라오던 아이들을 배신하는 것 같아서 찝찝하기도 했다.

“...일단 내일 나와 봐. 내가 애들한테 말 좀 해 놓을 테니까.”

“예? 진짜로요?”

그런 강하의 고뇌가 찬 모습을 바라보던 박강이 보다못해 말하자, 강하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뭐, 밑져야 본전 아니겠냐? 애초에 지금 주방에서 너보다 실력이 뛰어난 요리사도 없고….그리고, 어제보다 실력이 더 좋아졌던데? 아…너한테는 아니지.

아무튼, 나와보기나 해. 책임은 내가 진다.”

“형님….”

“아참, 그리고 말이다.”

“.....예?”

*

“다녀왔어~”

“아, 오셨어요!”

박강과 이야기를 마친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자, 향이가 곧바로 그녀를 반겨주었다.

“보거라! 보거라! 저, 저 [사워기] 라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더구나! 아주 기분이 좋다!”

“그러게요~! 한에 있을 때는 한번 씻을 때마다 물을 끓여서 몸에 끼얹으며 씻어야 했는데, 저 샤워기라는 것은 그…수도꼭지? 만 틀어도 따뜻한 물이 펑펑 나왔어요~!”

“후훗, 정말로 신기하구나. 저 [냉장고]. 마력의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데, 온도를 차갑게 유지한다니….너무 신기하구나! 어서 그 원리를 알아보고 싶네~ 후훗!”

[와! 와! 주인! 저기 넓적한 판자에 사람들이 갇혀있어!?! 어떡해….!]

“아, 저건 텔레비전이라는 건데…..그….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 줘야….”

강하가 없는 사이, 혁수와 진혁의 설명으로 현대 문물을 즐기던 그들은 한껏 격양되어 그녀를 감싸고 빠르게 말을 쏟아내었다!

“잠깐!!! 집중! 아우 시끄러워…..그, 그래. 신이 나는 것도 잘 알겠는데, 일단 시간이 늦었으니까. 오늘은 다들 자자.

어디보자…이불이 충분할 지 모르겠네….”

“네에~”

손뼉을 치며 그들의 입을 막은 강하가 상황을 정리하며 말했다.

“아 참. 보자…큼…향이, 파렌, 창, 그리고 마오. 잠시 나 좀 볼까?”

그리고, 강하는 스타 주막의 주방에서 일하던 그들을 불렀다.

그렇게, 현대에서의 첫날밤이 흘러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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