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화 〉 IF외전: 레스토랑의 아침.
* * *
“농담이시죠? 오너님.”
이른 아침.
주방의 하루는 언제나 이르게 시작된다.
그날 하루 배달온 식재료 검수나, 밑준비 등.
언제나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요리사들은 언제나 바쁘다.
그런데 오늘.
당장이라도 움직여야 할 이들을 모은 오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허황된 소리였다.
“그니까…나도 어젯밤에 이야기를 나눴다니까?”
“...4월달은 이미 지났습니다만…?”
“그 아이는 누구예요? 오너님 따님은 없으시잖아요?”
“이건 좀 심한데…”
어제.
언제나 자신들을 이끄는 주방의 지휘자, 강하가 무단결근을 한 초유의 사태에 그들은 무척이나 당황했다.
간신히 하루를 보내기는 했지만, 내일은 무슨 소식이라도 있겠지 싶었는데, 그 소식이라는 것이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저 조그만 아이가 셰프님이라니. 말이 됩니까?!”
자신들의 사장이자 이 가게의 주인인 박강이 그들을 출근하자마자 모은 뒤, 한 인물을 소개했다.
길게 땋긴 갈색 머리.
어디 민속촌에서나 볼 법한 빨간 한복 치마와, 삐죽 올라간 눈매.
작은 키.
그야말로 어린 소녀를 그들에게 들이밀던 오너는, 그 아이가 바로 강준이라 소개했던 것이다.
당연히 직원들은 대부분 코웃음을 치며 혹여 오너님과 셰프님이 짜고, 질 낮은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며 확신했다.
그렇게 그들이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보이던 그때.
“....그래, 나 같아도 믿을 리가 있겠나…싶네.”
조용히 침묵하며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하가 입을 열었다.
“.....꼬마야. 그….잠시 기다리렴, 어른들이 이야기하잖니.”
아주 건방지게 팔짱을 끼며 거만하게 말하는 소녀의 모습을 본 직원 중 한 명이 나서서 말했다.
“....어쩔래요? 오너님?”
“하…위험하지 않은 거, 확실하지?”
“그럼요.”
“.....별 수 없지.”
“? 두 사람, 무슨 이야기를….”
그때, 소녀가 손을 뻗었다.
“...어…어어…?”
“우…우와아아악!!!!!”
“이…이게 뭐…뭐야아!!!”
그러자, 금방까지 지면에 닿았던 그들의 발이, 두둥실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주방의 천장에는, 직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두둥실 공중에 떠오른 상태가 되었다.
“....이…이거…마술…?”
“오너님!! 이거 장난이 심하십니다!!!”
“으힉…! 뭐…뭐야…? 어떻게 된 거야…?”
갑작스럽게 공중으로 떠오른 직원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음….이걸로는 약한 거 같은데…?”
“그럼, 여기서 뭘 더 해요…?”
“.....그나저나 배가 좀 고프네, 다들 아침 식사도 못했을 텐데. 오늘 널 소개하려고 일부러 일찍 오라고 했거든.”
“....어제 보니까 그럭저럭 재료가 남아있기는 하던데….아래칸에 있던 고기 써도 되죠?”
“야..! 그…그건 내가 아껴둔 소고기….”
“써도 되죠?”
“...그래라…”
“예입~”
“....뭐? 뭐야 저게….?”
직원들을 공중에 매단 장본인인 어린 소녀는, 그들을 그대로 방치하고는, 제멋대로 주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재료들을 모았다.
“보자….역시 밥이 낫나…? 그럼 소고기는 국으로 끓일까…?”
“야이…! 그 고기가 얼마나 비싼 건데…그걸 국으로…?”
“어짜피 오너님이 짱박아 놓고 몰래 먹으려 한 거잖아요. 애초에 사람이 몇 명인데 그걸 구워서 애들 먹입니까?”
“.....끄응…”
“아, 쌀좀 씻어서 앉쳐 주세요.”
“뭐? 내가?”
“그럼 형…아니 오너님이죠. 애들 다 저기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데, 누굴 시켜요?”
“준아…나 오너야…”
“전 셰프구요.”
“에휴….”
그런 강하가 무언의 압박을 주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오너는 소매를 걷으며 냄비를 찾았다.
“보자…국은 대충 무 넣고 끓이고, 밑반찬은….여기 있지.”
“...뭐야..? 어떻게 저리 주방의 지리에 훤한 거지…?”
공중에 떠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직원들은, 어느새 종횡무진하게 주방을 돌아다니는 그녀를 유심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오래 일하지 않았다면 알기 힘든 도구의 위치나 향신료들의 위치를 아주 눈에 익었다는 듯이 쓸데없는 동선낭비 없이 아주 빠르게 찾아내고 준비하고 있었다.
“석준아, 넌 밥 괜찮냐?”
“....에?”
그러던 중, 강하는 고개를 돌려 공중에 떠 있던 직원 중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넌 맨날 샌드위치만 먹잖아. 밥 괜찮냐고.”
“아…예에…..”
“그래? 그렇지? 빵도 좋지만, 역시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지!”
“...그건 그렇고 어떻게 그걸…?”
“뭐야? 저걸 어떻게 알아?”
주방 직원 중 한 명인 강석준.
그는 아침을 빵으로 해결하는 일이 많았는데, 언제나 아침밥을 샌드위치로 싸오는 걸로 유명했다.
그런 것까지 알다니…
“저 아이는 누굴까…?”
“...몰라? 내가 알기로는, 셰프님한테 아이는 없는데…”
“애초에 아이가 있더라도, 셰프님 나이 생각하면…”
“....설마….진짜로?”
“에이 설마….”
어느새 지금 공중에 떠 있는 것도 잊은 체, 서로를 바라보며 강하의 정체를 의논하기 시작한 직원들이었다.
그러던가 말던가 강하는 곧바로 식사의 준비를 시작했다.
“...뭐야? 저렇게나 어린 애가 왜 이렇게 칼질이 능숙해?”
“저 놀림, 하루 이틀로는 절대 못하는데…?”
“불 조절도 깔끔하고…재료 선별도 훌륭해…!”
“....저 모습, 많이 익숙한데..?”
“...셰프님이 딱 저랬지, 사이즈가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어느새 그들은 그녀의 작은 뒷모습에서, 익숙한 누군가를 보기 시작했다.
당혹, 그리고 감탄.
어느새 그들은 ‘정말로 셰프님일지도 몰라.’ 라는 의견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준아, 밥 다했다.”
“네, 저도 끝났어요.”
어느새 소고기로 국을 끓이고 여러 반찬도 준비한 강하가 대답했다.
“아 참, 이제 내려야지.”
“...! 오오…!”
“내..내려온다….!”
그러다 문득, 잊었다는 듯이 강하가 손을 휘적이자, 공중을 떠다니던 직원들이 한둘씩 사뿐하게 지면으로 다시금 발을 딛었다.
“이거…진짜 마법인가…?”
“아직도 감각이 생생한데….나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지?”
처음으로 느낀 무중력에 다들 어안이 벙벙해진 사이.
“자, 밥 먹자. 그릇들 챙겨서 세팅해.”
“아….네에…”
“엄…”
강하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하자, 직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늘상 그랬던 것처럼 그릇들을 챙겨서 자신들의 몫을 퍼, 각자 탁자 앞에 앉았다.
“가끔, 일찍 모이거나 그랬을 때. 이렇게 아침을 먹고는 했지. 안 그래?”
직원들이 전부 자기 몫을 가져오자, 맨 마지막으로 접시에 국과 밥을 퍼 온 강하가 그릇을 탁자에 놓으며 말했다.
그랬다.
이럴 때는, 언제나 셰프님이 나서서 직접 아침을 만들면, 직원들은 간단하게 돕거나 하며 다같이 아침을 먹고는 했다.
“....하나만 묻지.”
그때. 한 직원이 나섰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응시하는 남자.
“부..부셰프…”
지금까지 계속 침묵을 지켜오던 그.
이 레스토랑의 부 셰프이자, 바로 강하의 아래였던자.
바로 강해준 이었다.
“만약 네가 진짜 강준 셰프님이 맞다면, 이걸 모를 리가 없겠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로 그녀의 앞까지 다가왔다.
“9월 24일, 오후 8시 30분. 그때 무슨 일이 있었지?”
“9월 24일…”
해준, 그와 강준 두 사람만이 알고 있던 그 일.
해준은 생각했다.
그녀가 주장하는 자신이 강준이라면, 이것을 모를 리가 없다고.
만약 모른다면, 가짜겠지.
슬며시 주먹을 꽉 쥔 그가 몰래 침음하던 그 사이.
“....아~! 알지, 네가 만들었던 요리를 가게 메뉴로 올린 날 아냐! 그때 너 펑펑 울었지 아마?”
“....!”
그랬다.
해준, 그가 이 레스토랑에 와서 처음으로 자신의 진가를 알린 날이었다.
강준은 언제나 메뉴 검수에 깐깐했으며, 웬만하면 새로운 메뉴를 늘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직원들은 언제나 새로운 메뉴를 고안하며, 자신이 직접 개발한 메뉴를 이 가게의 정식 메뉴로 이름을 올리고 싶어했다.
그리고, 언제나 제안하고, 거절당하던 나날을 보내던 해준.
그 날은, 처음으로 강준이 해준의 요리를 인정해 준 날이었다.
“아쉬 파르망티에, 프랑스의 흔한 가정요리를 레스토랑의 메뉴로 넣자니…처음에는 참 웃겼지….근데, 네가 제안한 향신료의 배합이 참 좋았어.
이건 먹힌다. 라는 생각이 든 요리는 참 오랜만이었거든.
아…너희들 대부분은 잘 모르겠구나? 맞아, 그 메뉴. 해준이가 만든 거야.”
(아쉬 파르망티에[hachis Parmentier]: 프랑스의 가정식으로, 우리 말로 번역하면 다진 감자를 올린 고기 그라탕이다.
여기서 아쉬는 고기, 채소, 어류 등을 잘게 다지다는 의미이고. 파르망티에는 감자를 가니쉬로 삼거나 주재료로 삼는 요리를 일컫는다.
대표적으로 셰퍼드 파이와 모양이 흡사하다.)
“....그랬었나?”
“내가 막 일을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메뉴였으니까…분명 셰프님이 만든 메뉴인 줄 알았는데…”
“.....그렇죠…..그때 벅차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고 있을 때. 셰프님이 말하셨죠….[울기는 왜 울어 임마, 웃어야지.]...라고.”
“야…쑥스럽게 지금 와서 그런 이야기를….”
“맞군요. 셰프님.”
그렇구나.
그의 눈앞에 있는 소녀는 비록, 자신이 동경하던 그와는 달랐으나, 분명 맞다.
아무리 모습이 바뀌어도, 강준 셰프님은 여전하시구나.
강하의 대답에 해준은 확신했다.
이 아이는, 강준이라고.
“자, 일단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밥부터 먹자.”
““““아…예…! 셰프!””””
이쯤되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강준과 가장 가까이 있던 해준마저 그녀를 강준이라 확신했는데, 자신들이 뭘 어쩌겠는가.
그렇게 그들은 숟가락을 들었다.
*
아쉬 파르망티에 입니다.
대표적인 프랑스 가정식으로, 한국인으로 빗대어 설명하자면....조금 고급진 김치볶음밥?
그만큼 흔한 요리이지만, 그만큼 친숙하다는 뜻입니다.
가정하나하나의 맛이 전부 다를 정도로, 아주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하죠.
그래도 한국인들에게는 확실히 색다른 음식이기에, 한국의 레스토랑에서는 있을법 한 요리이죠.
*
이건 제가 대회 참가상으로 만들기 위해 연습용으로 만든 브라우니 입니다.
맛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저울이 조금 문제가 있는지 반죽이 너무 질게 되었고, 조금 많이 달더라고요.
대회기간동안 더욱 열심히 연습해서, 참가자분들이 맛있게 즐겨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