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화 〉 IF외전: 그들의 첫 현대 탐험기!(2)
* * *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사람은 힐라였다.
그녀는 언제나 활발하게 움직이는 신체에 맞추어서, 움직이기 쉬운 검은 레깅스와, 탱크탑.
그리고 살짝 얇은 점퍼와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어때? 어울려?”
“오…괜찮은데요?”
“단련된 신체와 잘 어울리는데요?”
그녀의 탄탄한 복근과 활발한 이미지에 아주 잘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이렇게 입는 게 맞는 것이냐?”
“어머나~ 귀여워라~”
두번째로 나온 것은 류월과 백설이었다.
류월은 원래 자신이 입던 치마처럼, 검정색의 원피스를 한벌 입었다.
지퍼가 익숙하지 않은 듯 계속해서 만져댔지만, 그럭저럭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백설또한 그녀에 맞추어 흰 원피스와 밀짚모자를 착용했는데, 워낙 비쥬얼이 좋아서 그런지, 두 사람이 같이 서 있으면 백설에게 더욱 눈이 갔다.
“바…바지를 입다니….뭔가 남장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상하네요…헤헤..”
벼루는 다리에 딱 붙는 청색 스키니 진과, 화려한 문구들이 가득 쓰여진 박스티를 입고, 쑥스러운 듯이 머뭇머뭇하며 피팅룸에서 나왔다.
바지이기는 하나 다리 선이 잘 살고, 펑퍼짐한 박스티가 딱 그 나이 때 여자아이들이 입는 옷 느낌이 났다.
[주인! 이거 팔랑팔랑거려!]
“야! 그러다가 다 보이니까 그만둬!”
어린 나이에 맞는 것처럼, 빨간 리본이 가슴에 박힌 베이지 색 원피스를 입은 드라가 새로운 옷에 신이 난 나머지 치맛자락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자, 진혁이 급하게 달려가 그 행위를 막았다.
[주인! 나 귀여워?]
“그래 귀엽다. 그러니까 그런 짓은 하지 마.”
[헤헤…]
“여동생 다 됐구나?”
“그러게요….”
그렇게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혁수.
그 순간.
“낭~군~님~”
“....!”
남자라면 누구나 듣는 순간 가슴이 녹아버릴 것만 같은 간드러진 목소리.
그 소리의 주인은 보이지도 않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깨가 완전히 드러날 정도의 오버핏 티셔츠.
목에 감긴 검은빛 초커.
착 달라붙는 청색 핫팬츠.
체인이 걸린 은빛 귀걸이.
그야말로 동정을 죽이는 옷을 입은 매화가 그저 어버버 거리며 얼을 타던 혁수에게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어때요? 저.”
“아…그…..어..엄청…”
“엄청..?”
“....예뻐….요…”
“쿠후~♥”
[주인! 왜 눈을 가려? 아무것도 안 보여!]
“....넌 아직 보지 마. 아직 어려.”
[....?]
“우와…대담하다…”
“어..머머!!! 저….너무…! 그….!”
대담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녀의 옷에, 직원들은 저마다 얼굴을 붉히며 슬쩍슬쩍 바라보았다.
“오늘 밤…기대하게 되죠….?”
“....!!!!!!!!”
“야이씨! 감히 내 앞에서 그러기만 해라…? 내가 아주 아작을 내 버릴 거니까!”
두 사람의 염장질에 결국 폭발한 힐라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사태가 정리되었다.
그 사이.
“음…안정감 있어….이거 좋네…”
그들이 의식하지 않던 구석진 곳.
회색 후드티와 움직이기 편한 추리닝 바지를 입은 청룡이 후드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혼자 만족한다는 듯이 헤헤 웃고 있었다.
점점 히키코모리가 되어가는 청룡이었다.
*
“어서 오세요! 몇 분이신가요!!”
“9명이요.”
“네~ 이쪽으로 모실게요!”
저마다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른 그들은, 마침내 식당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오…우리 주막과는 다른 분위기로구나…”
“그러게~ 역시 색다르네~”
“우와….무..문이 다 유리에요….! 다 비친다!”
[맛있는 냄새….!]
“의자도 푹신한데? 이건 뭘로 만든 걸까?”
종업원이 안내하는 데로 자리에 앉은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스타 주막과 비교해 보았다.
스타주막의 인테리어는, 그 시대에 비하면 세련됐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지만, 이 가게는 그것과는 다른….별개의 느낌이 났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일단 꽃등심 18인분, 부채살 20인분….아, 입가심할 차돌박이 22인분..? 그 정도면 입가심은 되겠지…? 일단 이렇게 먼저 주세요.”
“아…넵! 알겠습니다! 즉시 준비해 드릴게요!”
주문을 받기 위해 달려온 직원은 혁수의 통큰 주문에 순간 질겁하며 순식간에 주방으로 달려들어 갔다.
주막의 직원들, 특히 류월이 여기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로는 아직 간에 기별도 안가는 정도였지만, 이 가게는 아주 비싼 한우만 들여오는 가게였기 때문에, 그의 주문 한 번에 벌써 몇십만 원이 벌리는 수준이었다.
“혀….형님…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이 시키시는 건….”
“괜찮아~괜찮아~ 한번 먹을 때는 크게 먹어야지!”
“...그렇겠죠…? 헤헤…”
그렇게 걱정하던 진혁마저, 혁수의 꼬드김에 홀랑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밑반찬입니다~”
그러던 사이, 어느새 식전 반찬들이 빼곡하게 식탁을 채웠다.
“오…밑반찬인가요? 우리 주막에서도 기본적으로 나갔지만, 양이 상당하네요~”
“그치? 여긴 비싼 만큼, 그만큼 값어치를 하거든~”
상당한 양과 고급진 반찬에 벼루가 감탄하며 중얼거리자, 혁수는 역시 이래야지 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싸다면…얼마나 비싼 건가요?”
“음…대충 저 고기 1인분이 한…6~7은? 정도 하지?”
(1은=1만원)
“....네? 자…잠시만요….고기 1인분에 7은이면….우리가 총 60인분을 시켰으니까….”
“사…사사…42금…? 잠깐만….아무리 인원이 이래도….무…무슨 한 끼에 42금을 쓴다고…?”
“42금???!!”
신기한 가게와 화려한 반찬들에 눈이 팔렸던 그들이 그제서야 가격을 알아채자, 기겁하며 소리쳤다.
“정확히는 아직이지, 모자라면 더 시켜야 할 거야. 저어기 쟤가 있으니까?”
“음? 불렀느냐?”
“아아아….아니…아…42금….”
“너무 비싼 거 아냐?”
“낭군님….정말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 이 정도는 아직 새 발의 피라니까? 일단 먹자고!”
“숯불 올려드리겠습니다!”
황당한 가격에 소리를 지르는 그들을 혁수가 진정시키자, 뜨거운 숯불과 함께 영롱한 빛깔의 고기들이 차례대로 모습을 보였다.
“오…와….고기 질이….!”
“마치 고기 위에 꽃이 피어난 것 같아요….”
“....꿀꺽…!”
“오오!! 이건 정말 굉장하구나!! 어서 먹자꾸나!”
하지만, 그들은 뛰어난 육질의 한우가 담긴 그릇을 보자, 눈이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자, 먼저 차돌박이로 시작해야겠지?”
어느덧 숯불의 열기에 뜨겁게 달아오른 불판이 이글거리자, 혁수는 차돌박이를 불판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고기가 특히 얇았던 차돌박이는 금세 먹음직스러운 향과 색감을 보이며 맛좋게 익어갔다.
“다들 먹자!”
““““....잘먹겠습니다!””””
혁수가 먼저 젓가락을 들자, 결국 그들 또한 곧바로 젓가락을 들어 고기를 한 점씩 맛보기 시작했다.
“....으음! 엄청 고소해요!”
“부드럽고…지방이 입속에서 녹아든다…”
“마…마시써어…!”
“씹자마자 녹아버려…달콤한 맛이야….!”
“맛있구나! 이토록 좋은 육질의 고기는 처음이다!!”
“어머! 정말이네~ 맛이 좋네~”
[와..와와…! 주…주인…!]
“....말 걸지 마….오랜만의 한우에 감탄중이니까….”
맛있다.
화려한 조리가 들어간 것도 아니다.
특제 소스에 찍은 것도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고기를 불에 구웠을 뿐.
하지만, 어찌 이렇게나 맛이 좋단 말인가.
압도적인 한우의 맛에, 그들의 머릿속에는, 어느새 가격에 대한 걱정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너무 맛있다아…”
“특히 고기가 얇아서 그런지, 엄청 빨리 익네요?”
“후후….이건 아직 입가심이라구…진짜는 바로…이거지!”
어느새 차돌박이가 담겼던 접시가 텅텅 비자, 혁수는 곧바로 꽃이 만개하듯 마블링이 일어난 꽃등심을 불판위로 올렸다.
핑크빛 육질이 어느덧 노릇노릇 익어가고, 허연 지방이 투명하게 바뀌었다.
“.....와. 이거 뭐야…?”
“세..세상에…”
“ㄴ…나….여기 오길 정말로 잘한 것 같아….”
“오..오오…오오오….! 이…이 무슨…! 주…주인장! 어…어서 이걸 더 주시게!!”
차돌박이보다 두꺼운 만큼, 확실히 씹는 맛이 있다.
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풍부한 육즙이 흘러나오면서 고기가 녹아버린다.
달콤한 지방은 혀를 춤추게 만들었고, 목으로 넘기기 힘들 정도로 미련이 남을 맛이다.
그만큼 한우는 일반 소고기와는 달랐고, 특히 소라고는 노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늙은 소고기가 대부분이었던 한에 살던 그들은 결국, 마지막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여기! 한 접시 더 주세요!”
“에잇! 감질나게 무슨….다섯 접시를 내 오거라!”
“행복해…행복해….!”
[주인….나 입 아직 남아있어…? 녹아버릴 것 같아…]
“우후후~ 이건 정말로 맛있어서 즐겁네~”
“아하하하!! 다 같이 신나게 먹자!!!”
그렇게 그들은 돈 걱정 없이 원 없을 정도로 한우를 배가 터질 정도로 욱여넣었다.
*
“음…처음에는 걱정이 좀 있긴 했지만, 적응도 잘 하고 있네.”
그 시각.
자신이 데려온 네 명을 멀찍이서 주의 깊게 바라보던 강하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띠링~
“음? 뭐지?”
자신의 휴대폰이 울리며 알람을 보내왔다.
뭔가 싶었던 강하는 무심하게 휴대폰을 꺼내, 그 내용을 보았다.
[XX한우.
XX카드 결제.
결제금:X,XXX,XXX원.]
“...뭐…뭐뭣…?”
그리고 그 메세지는, 자신의 카드가 고급 한우집에서 긁은 내역이었다.
분명, 혁수에게 직원들 밥을 먹이라며 카드를 주고는 왔다.
하지만.
“이…이 미친 새끼가…..ㅁ…뭐…? 배..백만 원 어치를 그…긁어…?!”
아무리 코인으로 돈을 벌었다고 해도, 한 끼 식사로 백만원 이상을 긁다니.
“.......이 새끼를 어떻게 조질까….”
후후.
강하는 웃었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혁수는 매우 행복한 듯이 배를 두들기며 웃었다.
그 미소는 몇 시간 뒤, 절망으로 뒤덮이게 되었지만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