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3화 〉 IF외전 : 엄마를 지키는 게임.
* * *
"....거기 너…"
"응?"
어느덧 현대로 넘어온 지 2주가 가까이 되어가던 시점.
그날도 언제나처럼 다 같이 저녁 식사를 끝내고 뒷정리를 하려고 손을 걷었다가 좀 쉬라는 말을 듣고 거실에서 느긋이 커피를 마시던 강하에게, 그녀가 말을 걸었다.
"나 말이야?"
"...그래."
"무슨 일인데? 청하."
깊게 눌러쓴 회식 후드티 모자에서 미처 가리지 못해 삐져나오는 푸른빛의 머리칼을 다듬던 그녀.
청하가 바로, 청룡이었다.
어쨌든 같이 지내게 됐는데, 계속 청룡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하기도 해서, 직원들이 모여 그럴싸한 이름이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그냥 룡 부분을 하로 바꿔서 부르는 건 어떠냐?'
'오, 그거 나쁘지 않은데?'
뭐 그런 걸 가지고 고민하냐는 듯이 심드렁하게 팔짱을 끼던 류월의 한마디에 청룡은 청하가 되었다.
"그...나 좀 도...도...도.."
"...? 뭐라고?"
강하의 옆까지 조심스럽게 다가온 청하는 무언가 말하려고 하지만, 계속해서 입을 달싹거리자, 말뜻을 이해 못 한 강하가 되물었다.
"그...도...와달라...고…."
강하의 되물음에 그제야 개미가 기어갈 듯 아주 조그만한 목소리로 그녀는 대답했다.
"....네가 도와달라고 말하는 걸 듣다니, 웃기네."
"....시끄러...도와 줄 거야...말거야..?"
한때 자신을 벌레 보듯이 바라보던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간신히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자, 강하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말했다.
청하의 얼굴은 이제 거의 익어버릴 것 같았지만.
"그래 뭐, 당장 할 것도 없으니까….도와줄게."
"ㅈ..진짜?! 그, 그럼 빨리 내 방으로 와 줘…"
"...! 야! 아무리 그래도 마시던 건 마시고...!"
그래도 그런 청하가 도와달라고 하니, 뭐 못 들어줄 것도 없겠다 싶었던 강하가 수락하자, 청하는 곧바로 그녀의 손을 이끌고 2층으로 향했기에 강하는 마시다 만 커피잔을 쏟을 뻔했다.
*
"우와….그래도 불은 좀 켜고 다녀….무슨 동굴인 줄 알았네…"
청하의 방은 불 하나 없이 어두컴컴하기만 해서, 음침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래서, 뭘 도와달라고?"
"그...이거…"
"컴퓨터?"
일단 강하가 청하에게 뭘 도와달라고 묻자, 그녀는 강하에게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켰다.
각자 방도 있겠다 싶은 강하는 직원들을 위해 1인당 한 대씩, 컴퓨터를 선물했다.
비싸기는 했지만, 무리가 가는 정도가 아니었기에 강하는 그들이 하루빨리 현대에 적응하기를 바랐다.
"이..이거...어떻게 하는 거야…?"
"이거…? 게임??"
그리고, 그녀가 가리킨 모니터 화면에는, 아주 유명한 온라인 게임 홈페이지가 열려 있었다.
"그...인터넷..? 을 보다가, 대부분의 인간은 이걸 하길래 궁금해서…"
"뭐...그렇기는 하지? 상당히 유명하기는 하니까."
"그..래서..하려고 했는..데...인증? 이 필요하대."
"아~ 그러고 보니 휴대폰이 없었지?"
"휴대폰…?"
그랬다.
아직 직원들의 휴대폰은 개통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휴대폰 인증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음...그렇다고 지금 휴대폰을 사러 가기에는 그렇고….아이핀이나 민증 인증도 되기는 하지만….일단 내 계정으로 만들어 줄게."
하지만 강하는 그들보다 먼저 따로 강준이 아닌 강하로 휴대폰을 개통시켜 놓았기 때문에 그녀를 대신해서 계정을 만들어 주었다.
"자, 이제 지금 만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면….끝!"
"오오…"
"그럼 난 간다?"
"알았어…"
그렇게 계정을 만들어 준 강하는 그녀가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cool 하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나저나 직원들 휴대폰도 개통해 줘야겠네.
한 모레쯤 가자.
*
그로부터 며칠 뒤, 저녁 시간.
"어라?"
오늘도 맛난 저녁을 먹을 생각에 싱글벙글하던 벼루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왜 그래?"
"아니 뭔가 빠진 것 같아서요…."
"뭐가 빠져…?"
"....아!"
자신이 놓친 게 무엇일까...곰곰히 생각하던 벼루는 마침내 깨달았다.
"청하...님? 은요?"
"청하…?"
그랬다.
언제나 저녁 식사에는 모든 직원이 빠짐없이 모였는데, 그 중 한 자리가 비게 된 것이다.
"그러고보니 맞네? 어디 계시지?"
"아니, 애초에 오늘 청하님을 본 적이 없는데…?"
"이년, 어디로 간 것이냐?"
"어머,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애초에 오늘 하루, 청하를 본 적이 없었던 직원들은 모두들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찾았다.
"음….일단 내가 청하 방으로 가 볼게, 먼저들 식사하고 있어."
"그, 그래도…"
"괜찮아~ 다들 배고프잖아? 먼저 먹고 있어."
그 모습에 강하는 일단 직원들이 먼저 식사를 할 수 있게 해둔 뒤, 2층으로 향했다.
그렇게 청하의 방 앞으로 온 강하.
$%#@
"음….인기척은 있는데….뭘 하고 있는 거야?"
문 바깥에서도 작게 들리는 소리.
분명 청하는 자신의 방에 있다.
"청하? 안에 있어?"
%$@$%%#
"....들어간다?"
아무리 노크를 두들겨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강하는 문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어우...뭘 하고 있는거야?"
그때와 마찬가지로 어두컴컴한 방이지만, 모니터의 빛은 아주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청하?"
그리고 그 모니터 앞에서 열심히 키보드와 마우스를 두들기던 청하를 발견한 강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아니 이 씨이발...용 치는데 정글이라는 새끼가 돈 좀 먹겠다고 탑 쪽에서 파밍을 처하고 있네…..뭐? 줄 건 주자고? 그래 시발 다 줘야지! 응? 우리 개백정님께서 주라면 용도 주고, 배런도 주고, 타워도 주고, 다 줘 그냥 시발.
근데 니 애미는 안주냐? 진짜 이래서 개백정 새끼들은….."
"....?"
금방 내가 잘못 들었나?
"아 씨발! 숟가락 개새끼야! 어떻게 하면 노머고를 하면서 앞비젼을 쳐하냐? 느그 부모가 비전은 앞으로 쓰라고 유언이라도 남기고 뒈졌냐? 응? 하이고 시이발….노머고를 하니까 진짜 고아가 됐네요 우리 숟가락….아 혜지련아! 그걸 또 살리겠다고 가서 죽어? 제발 노머고 말고 방문 밖에서 오열하는 너네 애미나 좀 살려줘라 응? 진짜 하…."
신랄하면서도 거침없는 높은 수위의 욕설과 패드립이 청하의 입에서 계속 튀어나왔다.
어째서 그렇게 화가 나 욕설을 내뱉는지 보니까….며칠 전, 회원가입을 도와달라고 했던 그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
애초에 이 게임 별명이 정신병 제조기였던 사실을 망각하고 말았다.
이거 뭔가 내가 잘못 가르쳐 준 것 같은데….
"야...야..!"
"응? 뭐야…."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에 잠시 멍해져 있던 강하는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고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청하는 쓰고 있던 헤드셋을 잠시 벗고, 강하를 바라보았다.
"지금 뭐 해?! 저녁시간이잖아! 아니, 애초에 그런 말들은 어디서 배웠어?"
"응? 여기 인간들은 전부 이러던데? 원래 이런 게임 아니야?"
"아..아니...그건...아….그렇긴...한가..?"
청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원래 다들 이러는 거 아니냐고 말하자, 강하는 무언가 뚜렷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 아무튼! 저녁시간이잖아. 밥 안 먹을 거야?"
"어, 다들 먹어."
"....진짜?"
"응."
강하는 각설하고 저녁식사 시간인데 게임을 붙잡고 있는 청하에게 식사는 어쩔거냐고 묻자, 청하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다시금 헤드셋를 착용하고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허…."
그 일 뒤로도 많은 사람들 앞에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던 청하라도 언제나 저녁에는 식사를 하러 왔었는데, 게임에 푹 빠져 그 식사마저 걸러버린 것이다.
에초에 용들에게 식사라는 자체가 여흥에 불구하고, 인간들처럼 식사가 필수불가결인 것은 아니지만…
결국 강하는 그대로 청하 방에서 튀어나오는 욕설을 애들이 들을까 봐 문을 닫고, 구체를 소환해 방음벽을 만들었다.
"셰프님, 청하님은 계셨어요?"
그렇게 터덜터덜 1층으로 돌아온 강하를 발견한 벼루가 물었다.
"...응? 아아, 어. 있더라고. 그나저나 아직도 밥 안 먹어? 다 식는다..."
"그래도 다 같이 먹는 것이 좋잖아요!"
"그렇긴 하지."
"맞아요!"
그럼에도 아직 그 누구도 먼저 숟가락을 들지 않고 청하를 기다리자, 강하는 왠지 가슴이 찡~ 하며 울렸다.
"음! 역시 고기는 맛 좋구나!"
….한 사람만 빼고.
역시, 네가 기다릴 리가 없지.
"아...그...청하는 밥 안 먹는데."
"....네?"
"?????????????"
"어째서요???"
"뭣? 몸이라도 아프신 건가?"
벼루의 질문에 강하가 대답하자, 직원들 전부 얼굴에 무엇? 이라도 적어 놓은 것처럼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맛있는 식사를 두고, 안 먹는다니?
직원들에게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말이었다.
"그….뭐냐...게임 한다고….밥 안 먹는데."
"...게임이요?"
"그러니까...게임 한다고 밥을 안 드시는 거라고요?"
"결국 그년이 미쳤군."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게임 때문이라고 하자, 이들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황당해하고 말았다.
그들에게 있어 강하가 만든 식사란, 하루를 만족하는 아주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나….그 게임이라는 것이 식사를 거를 만큼이나 재미있는 걸까? 흥미가 돋는구나~"
"아뇨!!! 절대!! 백설님은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응?"
그 충격에 모두들 헤어나오지 못하던 가운데, 언제나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하던 백설이 청하가 하던 게임에 관심을 보이자, 강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백설에게 신신당부했다.
'만약….백설님이 그 게임에 빠져서….아까 청하처럼 되기라도 했다가는….!'
끔찍하다.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
"자, 일단 우리라도 밥 먹자."
계속해서 청하의 주제로 이야기 하다가는 맛있게 만든 식사가 식어버리고 말 테니, 강하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무튼, 나중에 뭐라도 한마디 해야겠어.
그나저나….그 모습...어디에서 봤는데….
푹 눌러쓴 후드티.
사람들을 무서워하며 집에만 박혀있는 중증커뮤증.
맨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루를 보내는….
[엄마도 사람이야 사람!]
"...!!"
"왜...왜 그러세요, 셰프님?"
"아...아무것도 아냐…"
맞아.
개백수히키잖아…!
"시..식사나 하자…"
청하가 점점 히키가 되어간다.
...그래도 사고 치는 것보단 나은 것 아닌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