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화 〉 IF 외전: 전설을 만드는 그녀.
* * *
이 거리에는, 하나의 전설이 존재한다.
그 전설이 세워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2주?
하지만, 어느새 이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들 그 전설에 대해 어렴풋이라도 잘 알고 있다.
낮 12시.
그 무엇이라도 빨아들일 만큼 어두운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고.
그 누구보다도 거만한 태도를 가진 소녀가.
이 거리 중 한 가게를 찾아가느니.
그 소녀를 맞이한 가게는 그날의 장사는 종말을 맞게 된다는 전설.
이 전설을 처음 듣는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에이, 뭐 그런 게 다 있어? 다 개뻥이지."
"마케팅 하려고 주작질 하는 거 아냐?"
"그럼 유X브는 안 하나?"
모두가 허황되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전설의 실체를 본 자들은 모두가 입을 모아서 말한다.
"포기해, 그냥 포기하고 모든 것을 바쳐."
그날 모든 식재료를 바쳐야만,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으니.
그렇게 전설은 계속해서 커져만 간다.
그리고, 이 전설의 주인공.
검은 머리를 휘날리는 그 소녀는 바로.
"앳취…! 음...왠지 콧등이 간지럽구나."
흑룡, 류월이었다.
*
"뭣이? 어째서 더는 먹을 수 없는 것이냐!"
한적한 점심시간.
오늘도 모두들 모인 점심시간에 맛있게 식사를 즐기는 그들 사이,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아까 말했잖아, 오늘 식재료가 다 떨어져서 장을 보러 가야 한다고."
텅빈 밥그릇을 번쩍 들고 소리치던 류월에게 강하는 시끄럽다는 듯이 귀를 틀어막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허….어찌하여 장을 미리 보지 않았는가….."
"......우리 장 본지 고작 3일 됐거든…? 근데 그 많은 걸 다 쳐….아니 쓸어담은 사람이 누구더라…?"
강하의 반박에 류월은 통곡하며 그녀를 탓하자, 이마에 툭 하고 튀어나오는 혈관을 가까스로 숨긴 강하가 대답했다.
분명, 3일 전에 장을 볼 당시에는 직원들도 많고 하니 조금 넉넉하게 1주일 정도는 먹을 양으로 장을 봤는데, 그 많은 양의 절반 이상을 류월이 순식간에 먹어치운 것이다.
"이 몸은 아직 허기가 진다아!!! 밥을 주거라!!!"
"야이씨…!"
그럼에도 류월의 생떼는 멈추지 않았다.
이게 위대한 용인지, 아니면 땡깡부리는 어린이인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비슷하다는 것은 알 것 같다.
"시끄러! 그렇게 밥이 먹고 싶으면 네가 나가서 사 먹던가!"
류월의 땡깡에 성질이 날 대로 난 강하는 결국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오호, 그건 나쁘지 않군. 그래, 이 세계의 다른 주막에 가 보는 것도 좋겠구나."
"....어라?"
하지만, 류월은 그새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아닌데.
이 류월을, 밖에 내보내…?
아무리 겉모습은 어린 아이 같아도, 마음만 먹으면 나라 하나쯤은 가볍게 박살 낼 수 있는 흑룡을…?
"아...아니 그건….!"
"뭐, 괜찮지 않을까~?"
"백설님?!"
아차, 싶었던 강하가 급하게 손을 휘저으며 다음말을 생각하려던 찰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설이 끼어들었다.
"류월이도 바깥이 궁금하기도 할 테니까, 이번 기회에 한번 혼자 보내보는 건 어때?"
"하지만...만약 밖에서 난리라도 친다면….!"
"류월이도 그 정도로 생각이 얕지 않단다. 어엿한 용 아니니?"
'....그 어엿한 용. 이라서 걱정하는 건데…'
"....하….뭐, 이제 곧 학교에도 가야 하니까, 적응을 하는 경험이라고 칠...까…?"
미칠듯이 걱정되는 한편, 그래도 언제까지 류월을 자신의 곁에서 감시할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한참 고민하던 강하는 결국, 류월의 외출을 허락했다.
"잘 들어. 횡단보도에서는 초록불을 기다려, 마음대로 차도에 나가지 마, 근처 사람이 시비 건다고 반죽음으로 만들지 마, 마음대로 아무거나 줍지 마, 갖고 싶다고 훔치지 마, 절대로 마력을 쓰지 마."
"어허! 너는 이 몸을 무슨 세 살배기 꼬마로 취급하는 것이냐? 걱정하지 말아라!"
"....니가 그런 말을 하면 항상 사건이 터졌다고….!"
저런 자신만만한 태도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하...아무튼, 자. 계산할 때는 이 카드를 써."
"오오….이것이 바로….마법이 걸린 종이로구나! 이 딱딱한 종이만 내밀면, 뭐든지 살 수 있다!"
"마법 아냐, 잘 들어. 밥만 사라."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 더…."
그렇게 류월의 오롯이 혼자 외출이 시작되었다.
*
"흠! 이 거리를 혼자 걷는 것도 느낌이 다르구나!"
도시의 거리.
건물은 높고, 사람들은 바삐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 거리에 흑룡, 류월이 강림했다.
"그나저나, 이건 조금 거슬리는군."
[!..
>..!@]
류월은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곳에는, 아주 자그마한 검은 구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 구체는 바로 강하의 구체.
혹시나 바깥에서 난동을 부리지는 않을까 해서 심어둔, 강하의 보험이었다.
"흥…! 뭐 되었다. 일단...무엇을 먹을고…."
감시를 당한다는 것이 영 꺼림칙하던 류월이지만, 금세 분위기를 바꾸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때.
"...킁...킁…..음..무언가 달콤하고...맛있는 냄새가 나는구나…"
그녀의 코를 간질거리는 냄새가 풍겨왔다.
그 냄새에 류월은 일말의 고민 없이 그 냄새의 근원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세요! 던전도너츠입니다!"
그곳은 바로, 도넛 전용판매 가게였다.
"호오….무척이나 예쁘구나…!"
그 가게에 들어서자, 그녀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진열대에 배치된, 여러 색상으로 물든 도넛이었다.
"주문하시겠어요?"
"그렇군...주문이라….
이걸 다오."
"네에~ 플레인 도넛 말씀이신가요? 개수는 몇 개로..."
"아니."
"....네?"
류월이 손으로 가리킨 도넛을 꺼내려던 직원이 개수를 묻자, 류월은 말했다.
"이것, 여기 있는 것들 전부를 다오."
"....예?"
그녀가 가리킨 것은, 그저 도넛 하나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진열대에 보관된 모든 도넛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손님?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 황당하기 짝에 없는 주문에, 직원이 다시금 물었으나.
"여기 있는 것 전부를 달라고 말했다."
".....여기 있는 것...전...전부를...요?"
"그래. 계산은...어디보자….이걸로…"
"아...네...네에….자, 잠시 테이블에서 기...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지."
"저...저…! 매니저님!!!"
천진난만한 얼굴로 터무니없는 주문을 한 류월이 카드를 건네자, 후들거리는 손으로 카드를 받아낸 직원이 외쳤다.
"음? 무슨 일이야?"
"저...그 손님께서….주문을 하셨는데…"
"그런데?"
"여...여기 있는 도넛 저...전부를...주문...하셨는데요…?"
"....하?"
그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나왔던 매니저 또한, 당혹을 금치 못했다.
지금 진열대에 구비된 도넛의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
전부 합치면 백은 가볍게 넘기는 개수다.
그런 도넛을, 전부 시켰다고…?
"....이..일단 계산을...먼..먼저 하고, 가져다 드려."
"예? 지...진짜요..?"
"...뭐 어쩌겠어..? 먹고 싶다고 하시는데, 일단 카드를 긁고, 돈만 제대로 내면 그냥 드리면 되니까…."
"아..네에…"
"이거 일손이 모자라겠는데? 나머지 직원도 불러와야겠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매니저는 곧바로 매장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을 불러모아, 도넛을 옮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매니저의 말에 얼타버리던 직원들은, 매니저의 분위기에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오...오래기다리셨습니다…"
"음. 이제 왔군."
그렇게 매장의 모든 도넛이, 류월의 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갯수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떨어진 테이블을 두 세게 이어 붙여야 간신히 도넛을 테이블 위로 올릴 수 있었다.
"와….저거 뭐야…?"
"대애박!"
"사진 찍어! 개 쩐다ㅋㅋ"
그 엄청난 광경에, 매장에서 도넛을 즐기던 다른 손님들 또한, 류월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럼, 먹어볼까?"
잠시 도넛의 자태를 감상하던 류월은, 드디어 첫 도넛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음...우물….음….오….반죽이 상당히 특이한 맛이구나…! 부드럽게 씹히면서 쫄깃한 맛도 있어...음...맛있군!"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로 류월의 손은, 잠시도 쉬질 않았다.
초콜릿 도넛, 치즈 베이글, 먼치킨(탁구공보다 조금 작은 둥근 형태의 도넛), 크리스피 크림 도넛, 츄이스티 등.
다양하고 맛있는 도넛들이, 류월의 혀를 아주 즐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던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뭐야…? 저 산처럼 쌓인 도넛들이…!"
"먹방 유튜버인가? 미쳤네."
"우와….초등학생처럼 보이는데, 얼마나 먹는 거야…?"
"미친…"
기껏해 봐야 초등학생 저학년처럼 보이는 류월이, 제 몸의 세 네 베나 되어 보이는 도넛의 산을 거침없이 먹어치우는 그 광경은, 전율이 이를 정도였다.
모두들 자신이 먹던 도넛도, 하던 일도 멈추고.
그저 류월이 도넛을 해치우는 모습만을 바라보았다.
오직, 감탄과 경악만이 남은 그 공간.
그리고, 류월은 마지막 도넛을 입에 밀어 넣었다.
"으음...이 동글동글하고 쫄깃한 것이 가장 맛있구나, 식감도 좋고...저 고리같이 생긴 것도 맛있었다."
입가에 뭍은 도넛 가루를 손으로 훑어낸 류월은, 그저 평범하게 맛 평가를 하며 만족했다는 듯이 웃었다.
""""우…""""
"응..?"
""""우와아아아!!!!""""
"무...뭣????"
그리고, 류월이 고개를 돌리자, 갑작스럽게 환호성을 내지르는 인간들이 류월을 둘러쌓다.
"대단하다! 진짜 저걸 다 먹었어!!"
"개 쩐다!"
"얘야, 너 혹시 푸드 파이터…? 비슷한 거 하니?"
"유X브 이름이 뭐에요?"
"무..뭣? 뭘 하는 것이냐!"
그 산처럼 많던 도넛을 순식간에 해치운 류월에게 감탄한 이들이 류월의 주변을 에워싸고 수많은 질문을 퍼부었으나, 류월의 입장에서는 그저 가볍게 즐긴 간식일 뿐이었기에, 류월은 매우 당혹스러웠다.
'소란 피우지 마.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일주일은 밥을 굶길 거야!!'
"에...에잇! 저리 나오너라! 잘 먹었다!!"
그러던 찰나, 자신이 외출하기 전, 강하가 신신당부하던 말이 떠오른 류월은 곧바로 인파들을 가볍게 돌파하고, 가게를 나왔다.
"휴…! 갑작스럽게 인간들이 난리를 치느라 진땀을 뺐군…"
어느정도 가게와 거리를 벌린 류월이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흠….좋아. 이번에는 뭘 먹어볼까?"
하지만, 아직 류월의 외식은 끝이 나지 않았다.
류월은 또 다른 타겟을 찾아, 이 거리를 걸었다.
*
이 거리에는, 하나의 전설이 존재한다.
그 전설이 세워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2주?
하지만, 어느새 이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들 그 전설에 대해 어렴풋이라도 잘 알고 있다.
낮 12시.
그 무엇이라도 빨아들일 만큼 어두운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고.
그 누구보다도 거만한 태도를 가진 소녀가.
이 거리 중 한 가게를 찾아가느니.
그 소녀를 맞이한 가게는 그날의 장사는 종말을 맞게 된다는 전설.
이것이 바로, 전설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