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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7화 〉 IF 외전: 불타라, 펜! (277/289)

〈 277화 〉 IF 외전: 불타라, 펜!

* * *

사락. 사락.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서 고요하게 울렸다.

탁.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달한 책을, 그녀가 덮었다.

“하….‘만화’ 라는 것은 정말 대단하네…!”

만화.

이야기(의미)가 있는 그림. 혹은 해당 그림을 늘어놓아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표현하는 표현 형식.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방식에 흥미가 갔다.

언제나 묵과 붓으로 풍경을 그려오던 그녀는, 이 현대에 도착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세계의 그림은 굉장해!! 라고.

특히 그저 그림뿐만이 아닌, 만화, 애니메이션 등.

손으로 직접 그려내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 그녀는 더욱더 흥미가 돋았다.

그러던 와중.

"음? 혁수 오빠, 뭘 보시는 거에요?"

언제나 검은 판떼기를 들고 다니던 혁수가 오늘도 판떼기를 보며 히죽히죽 거리자, 궁금증이 돋은 벼루가 물었다.

"아, 이거? 웹툰...그러니까 만화 보는데?"

"만….화? 그게 뭐예요?"

"아음...그러니까 사람이 그리는 그림을…"

"볼래요!!"

혁수가 그림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그녀는 곧바로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음...잠시만, 그러고 보니 너는 지금 휴대폰이 없으니까. 내 걸로 봐."

"오오….!"

만약 벼루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미친 듯이 빙빙 흔들렸을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혁수는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벼루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세...세상에…!"

그림들에 사람들이 나오고,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말을 하고, 행동하고, 소리를 쳤다.

화려한 배경, 매력적인 인물들.

그렇게 벼루는 만화에 푹 빠지게 되었다.

*

"크으….진짜 멋있다!!"

벼루는 손에 쥔 만화책을 읽다 말고 크게 소리쳤다.

그 뒤로 강하에게 부탁해 종이로 된 만화책 여러 권을 구입한 벼루는, 매일같이 봤던 만화를 보고, 또 보았지만 질리지 않았다.

그만큼 만화는 재미있었으며, 벼루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등가교환이라니….사람의 힘이라니…! 너무 멋있다아…"

언제나 붓으로 그림을 그려오던 벼루는, 그 만화의 매력이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펜을 사용한 기법, 건물 묘사, 그림체 등.

만화의 매력에는 정말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벼루가 만화에 푹 빠지게 된 큰 이유는 바로…

만화가 가진 깊이 있는 이야기였다.

현대의 작품을 한에 살던 벼루가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현대를 배경이 아닌 가상의 세계관이라면 벼루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누구나 인정할 명작 만화.

그 다음부터는 호불호는 갈릴지 언정 훌륭한 만화.

그리고는 점점 자신의 취향에 맞추어서 종이책, 웹툰 가리지 않고 수많은 만화들을 정복하게 된 벼루였다.

“하….이 만화는 벌써 몇 번째 돌려보는데 보면 볼수록 재미있지..?”

그렇게 즐겁게 만화를 보던 벼루는, 무언가 느꼈다.

이 마음속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무언가.

“....나도 한번 그려볼까?”

그렇다.

바로 벼루의 창작욕구를 끌어올린 것이다.

그렇게 벼루의 만화 그리기가 시작되었다.

*

“그런데….어떻게…?”

만화를 그려보겠다고 다짐을 한 것은 좋았다.

허나, 바로 다음 단계부터 난관에 봉착한 벼루였으니.

“이런 그림들을….어떻게 붓으로 종이 위에다가 그리는 거지…..?”

바로, 자신이 보아왔던 만화와 그림은, 도저히 종이 위에 그렸다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려한 색감과 섬세한 선 긋기.

허나 선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작아, 제 아무리 제일 작은 붓을 사용한다고 해도, 도저히 따라갈 수 가 없었다.

“으음…..아!”

그렇게 한창 고민에 빠져있던 벼루는 한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그치만….괜찮을까…?”

하지만, 과연 자신의 생각대로 될 것인지는 잘 모르기 때문에, 벼루는 인상을 쓰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방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벼루는 지금까지 짧은 시간 동안 꽤나 많은 만화들을 봐 왔지만, 애초에 만화는 어떻게 그리는 것인지, 이 그림들은 어디서 어떻게 하는 건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렇다면, 온종일 이 판떼기와 비슷한 ‘컴퓨터’를 만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벼루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벼루는 생각했다.

우리 중, 하루 동안 가장 컴퓨터를 많이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 고민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흐음…그래서, 나를 찾아왔다고?”

우중충하고 어두운 방.

구석에는 찌그러진 페트병과 아무렇게나 구겨진 후드티가 어질러져 있다.

어느새 두 개로 늘어난 모니터는 아주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네..네에….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잘 아실 것 같아서….”

자신의 귀에 걸려있던 헤드셋을 가볍게 벗은 그녀가, 벼루를 바라보았다.

“청하, 님이라면요…”

후드티 사이에 삐죽 튀어나오는 푸른 머리칼.

굽어있던 허리를 쭉 펴며 의자에 걸터앉은 그녀, 청하가 말했다.

“뭐, 마침 서버 점검중이라 랭크도 못하니까….도와줄게.”

“정말요?!”

마침 자신이 한창 빠져있던 게임이 점검중이라 마땅히 할 것도 없었던 청하였기에, 벼루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래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데?”

“그…이 만화…? 를 그리려면…어떻게 해야 하나요?”

“흐음…”

벼루는 강하에게 빌려온 휴대폰을 청하에게 내밀며 물었다.

“그렇군….만화는 잘 모르지만….내 최애캐(최고 애정 캐릭터)를 아주 예쁘게 그리는 인간의 그림 사이트는 자주 드나들고는 했지….이름이….픽스브? 였나?”

“최애캐…? 픽스브…?”

“....! 그래! 내가 이 일을 도와주는 대신, 너도 내 최애캐를 그려줘야 한다! 알겠지?”

“...? ㄴ, 네에….알겠어요…?”

“좋아~ 아주 좋아~”

벼루의 질문에 청하는 자신만 알아들을 소리를 마구 말하다가, 갑자기 벼루에게 약속을 얻어내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자, 내가 알아보니까. 네가 말하는 만화. 라는 것은, 이 컴퓨터로 그리는 것이로군.”

“커..컴퓨터로요?

…….어떻게요?”

벼루는 자신이 보아왔던 그림을 컴퓨터로 그린다는 말을 듣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무리 봐도 키보드와 마우스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지? 그래서….이…타블렛…? 이라는 것으로 컴퓨터에 연결해서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군.”

“오….그렇군요?!”

하지만, 청하가 인터넷에 검색하여 보여준 화면을 보자, 강하는 손뼉을 마주치며 납득할 수 있었다.

그녀가 보여준 타블렛이라는 도구는, 마치 스캐치북과 펜처럼 비슷한 도구들이 있는데, 펜 처럼 생긴 도구로 선을 그리자, 컴퓨터 화면에 그대로 선이 그어지는 것이었다.

“과연….이런 도구가 있으면 컴퓨터로 그림을 그릴 수 있군요?”

“그런 것 같아.”

“그런데….이걸 어디서 구하죠?”

“넌 인터넷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인터넷 택배를 시키면 되지?”

“인터넷…택배…?”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전 세계에 퍼져있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뭐든지 살 수 있지!”

“어머나…! 그건 정말 도술 같아요!”

인터넷에 생소한 벼루에게 인터넷 택배는, 마치 화려한 도술처럼 느껴졌다.

“보자….쓸만한 액정타블렛의 가격은…음….1,279,000원? 정도 하네?”

“....? 그 정도면….얼마 정도인 건가요?”

그러던 사이 청하가 쇼핑몰을 뒤적거리며 적당한 것을 찾아 가격을 알려주자, 벼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음….대충 12금 8은? 정도 하네?”

“....히끅….네?”

비싸다.

가끔씩 용돈으로 받던 돈으로는 턱없이 모자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저…저는 그만한 돈이 없는데….”

“...날 바라보지 마. 나도 없어.”

“히잉….”

드디어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될 줄 알고 신이 나던 벼루의 얼굴은 어느새 침울해지고 말았다.

“....아니면….그 녀석에게 말해 봐.”

“...그..녀석이라면요…?”

벼루의 침울한 얼굴을 보다 못한 청하가 한 인물을 떠올리며 말하자, 벼루가 물었다.

“왜 있잖아. 우리 중에 가장 부자인 그 녀석.”

*

“....그래서….뭐가 필요하다고?”

강하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아와 고개를 숙이는 벼루에게 물었다.

이 집을 빌리고 있는 장본인이자, 남 부러울 것 없는 부자.

청하가 말한 그 녀석은 바로 강하였던 것이다.

“저…마…만화를 그리고 싶은데….그 도구가 비…비싸서요….”

“? 만화? 그걸 그린다고…? 보자, 얼마나 비싼데?”

만화라는 소리에 반응한 강하는 벼루가 자신이 빌려준 휴대폰을 내밀자 그것을 받아들여 화면을 보았다.

“음…액정..타블렛….1,279,000원…??? 아니…뭔데 뭐가 이리 비싸아…”

기껏해야 컴퓨터로 선이나 찍찍 긋는 것으로 생각하던 강하는 예상외의 가격에 깜짝 놀랐다.

“음…아니지…요리도 도구가 얼마나 좋냐에 따라 더 맛있어지기는 하니까 뭐….그래도 무슨 백만 원을 훌쩍…!”

“......(훌쩍.)”

사실, 강하는 벼루에게 이 타블렛을 사줄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돈이 얼만데, 이런 거 백 개는 사주고도 돈이 넘칠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비싼 걸 그냥 턱턱 사주다 보면….나중에 금전감각이 이상해질지도 모르는데….’

그랬다.

이렇게나 비싼 물건들을 부탁만 한다고 척척 사주다 보면, 나중에는 돈이 귀한 줄도 모르고 막 쓰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벼루는 아직 중학생 수준.

이 시기부터 확실한 금전감각이 필요했다.

“어쩌면 좋지….”

그래도 저렇게나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부탁하는 건데…

으음….

으으음…..

“.....이거 사 주면, 앞으로 잘 할 거지?...원래 잘했지만…”

“ㄴ, 네에!!!”

결국 강하는, 이번 한 번은 져주기로 마음먹었다.

“알았다. 이건 내가 선물로 사 줄게.”

“저..정말요?!?”

“그 대신, 이거 하느라고 늦게까지 잠 안 자고 하면, 다시 뺏는다?”

“아, 안 그럴게요! 약속해요!”

“그래…”

너는 저 푸르딩딩한 도마뱀처럼 되면 안 돼…

그렇게 강하는 벼루에게 타블렛을 선물로 사 주었다.

*

며칠 뒤.

“우와….선을 잘못 그어도 버튼 한 번이면 되돌아가네?”

“색깔도 다양해…! 앞으로 물감은 필요 없을지도…!”

“선도 잘 그어지네…! 좋다!”

벼루의 방에서는, 그녀가 히히덕거리는 소리가 아주 조용히 울려 퍼졌다. 카더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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