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9화 〉 IF 외전(특별편): 일일야식록 강하.(김치 두루치기&데친 두부 편.)
* * *
"후...거의 끝나가나?"
야심한 밤.
언제나 바빴던 레스토랑의 하루가 저물고, 어둠에 덮인 주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분명 아무도 없어야 할 레스토랑의 주방에는, 이상하게 밝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인기척.
그 정체는 바로….
"젠장….난 이미 때려치웠는데, 어째서 내가…"
강하였다.
그녀는 탱글탱글한 볼을 힘있게 부풀리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쓴소리를 구시렁거렸다.
지금이야 이렇게 어린 미소녀의 형상을 띄고 있었으나, 그녀는 한때 이 레스토랑의 주방을 책임지는 셰프, 강준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믿기 힘든 일로 인해, 그. 아니 그녀가 되었다.
아니, 인간이라고 할 수나 있을까?
그녀의 몸은 반은 인간, 반은 용으로 되어있는 반인반룡의 상태였다.
수 톤짜리 바위도 한 손으로 손쉽게 들어 올리고.
평범한 인간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마력을 가진 그녀.
그런 그녀가, 어째서 오밤중에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투덜대고 있던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
"예? 재고점검이요?"
[그렇게 됐다…]
어느때처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쇼파에 앉아, 적당한 포만감에 취해 노곤한 시간을 보내던 강하는 실눈을 떠가며 몰려오는 수면감에 몸을 맡기려던 찰나였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눈을 번쩍 뜬 그녀가 휴대폰을 들어 귀에 가져다 대자, 강하의 미간은 자연스럽게 구겨졌다.
[원래 재고점검을 맡은 녀석이 급작스럽게 일이 생기는 바람에….마땅히 맡길 사람이 없더라고.]
"....오너...아니 형님이 하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 오늘 밤에 딸과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거든~ 올해로 네 살인데, 하는 짓이 참 귀여워서 요즘 살 맛이 난다!]
그녀가 아직 현역 레스토랑 셰프이던 시절, 그녀의 레스토랑 오너이자 지인인 박강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딸 바보 다 되셨네….아니 애초에 저는 이미 일 때려치웠거든요?"
그렇다.
그녀는 이미, 더 이상 레스토랑의 셰프가 아니었다.
이 몸이 된 이상 레스토랑에서 일하기도 무리고, 애초에 돈도 많으니 당분간은 푹 쉬고 싶었던 그녀는 부셰프에게 자리를 넘기고 유유자적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찰나였다.
뭐, 그녀가 스타 주막 시절부터 같이 일하던 직원들의 수련 겸 일손 공급을 위해 보내는 직원들이 잘하나 싶어서 가끔 구경을 가기는 하지만, 강하는 근본적으로 언제나 방관자의 자세를 취해왔다.
[야, 어차피 너 요즘 할 것도 없이 맨날 집에서 띵까띵까 노는 것 쯤은 잘 알거든?]
뜨끔.
"아...아니거든요? 제..제가 요즘 얼마나 바쁜데..! 형님이 잘 모르시네~"
[그리고, 그 집도 지금은 내 명의로 빌린 것 아니냐?]
뜨끔. 뜨끔.
"아니...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기는 하다만…."
[그러니까, 부탁 좀 하자...응?]
"....알았어요…"
강하가 거절의 의사를 밝혀오자, 박강은 아주 집요하게 그녀의 틈새를 파고들며 말하니, 그녀는 결국 박강의 제안을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강하는 늦은 밤, 뜬금없이 레스토랑으로 출근 아닌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
"음….토마토 한 박스….아스파라거스 네 팩….좋아, 문제없음!"
강하는 손에 들린 발주표에 발주가 확실하게 들어왔는지 꼼꼼하게 검사하며 체크표시를 남겼다.
레스토랑에 있어 발주는 아주 중요했는데, 유통과정에서 식재료가 망가져서 오거나, 잘못된 식재료가 배달오는 경우에는 그날 요리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있다면 최대한 빠르게 반품하여 손해가 없도록 해야 했다.
다행히, 오늘 그녀가 검사한 바로는, 그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으드드드…! 좋아, 검사는 끝났으니...냉장 창고에 정리해 두고 돌아가자…."
강하는 내내 굽혔던 허리를 펴며 일의 마무리 단계를 시작했다.
배달된 식재료들의 신선도를 위해 냉장보관을 하려던 찰나.
"...뭐야? 왠 삼겹살…?"
냉장고 구석, 스텐볼에 보관이 잘못되어 이상한 형태로 얼어붙은 삼겹살의 모습이 보였다.
랩을 싸두지도 않아 손님들께 나갈 수도 없는, 그런 삼겹살.
아마 그런 걸 알고 누군가가 몰래 꽁쳐둔 모양이었다.
"짜식들이...고기를 이딴 식으로 처박아놔..?"
강하는 고기가 담긴 스텐볼을 꺼내 고기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흠.
그나저나, 조금 아깝네?
".....먹을까?"
그래, 집에서 잘 쉬다가 끌려나온 것도 억울한데, 그냥 먹어버리지 뭐.
"보자….그렇다고 밥을 먹기에는 좀 그렇고….."
하지만, 이미 저녁밥을 집에서 먹고 온 강하였기에,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직원전용 냉장고에 두부가 있던 걸 봤는데…."
술안주로 먹어야지!
강하는 내심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 체, 덩실거리는 발걸음으로 직원 전용 냉장고로 향했다.
*
"크…! 정말 편하기는 하네!"
모든 정리를 마친 강하는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물체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바로, 소주였다.
"그나저나 알바생이 얼타는 모습이 좀...웃기기는 하네."
안주가 있다면 술도 있어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레스토랑에는 요리용 와인과 손님 접대용 고급 와인밖에 없었기 때문에, 강하는 잠시 편의점으로 달려가 소주를 사왔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 알바생에게 제지당했다.
당연했다.
강하의 나이는 이미 삼십 대는 넘겼으나, 겉모습만 봐서는 이제 갓 중학교에 입학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런 꼬마가 대뜸 소주병을 들고와서 계산해 달라고 하니, 알바생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하에게는 백설이 만들어 준 민증이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소주를 구입 할 수 있었다.
그 전에 알바생이 몇 번이고 민증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당황하기는 했지만.
"운 좋게 두부도 찾았고, 그럼 그거밖에 없지!"
뭐 더 없을까 싶어 뒤적거리던 직원전용 냉장고에서 두부 한 모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오늘 강하의 술안주의 메뉴는 바로.
김치두루치기&데친 두부 조합이었다.
두루치기.
주로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야채와 함께 볶아내는 음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러면 제육볶음과 두루치기, 이 두 음식의 차이가 무엇이냐?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얼핏보면 둘 다 비슷한 느낌이라서, 헷갈리는 사람이 있는데,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고기를 양념에 볶아내면 제육볶음.
그 볶음에 육수를 넣고 졸여내면 두루치기.
이렇게 두 요리를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 따라 사람 입맛 따라 다 다른 방식이 있으니, 적당히 그렇구나~ 하며 생각하면 편하다.
먼저 냉동된 고기를 봉지에 넣고 흐르는 물에 해동을 시킨다.
야채로 들어갈 파, 양파, 양배추, 당근 등을 먹기 좋게 채썰어낸다.
김치는 소를 조금 씻어내고, 한입 크기로 썰어낸다.
두루치기에 너무 김치 향이 나는 것을 방지하는 행위였다.
두부는 팩에서 꺼내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잘라낸다.
냄비에 두부를 데칠 물을 올리고, 양념을 준비한다.
매콤한 맛을 내어 줄 고춧가루, 잡내를 잡아 줄 맛술, 후추, 진간장, 마늘향을 내 줄 다진 마늘, 음식에 단맛과 윤기를 내주는 물엿, 장맛을 낼 고추장을 적절한 비율로 넣고 양념장을 만들어 준다.
다음은 고기를 볶을 차례.
해동 된 고기는 키친타월로 핏기를 빼주고, 준비한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파를 먼저 넣어 파기름을 내어준다.
요즘에는 마트에서도 파기름을 쉽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있다면 대신 넣어줘도 충분하다.
파가 기름에 지글지글 튀겨지며 향긋한 향을 내면, 미리 준비한 고기를 넣어 볶아준다.
붉게 물든 고기들이 어느새 익어가면, 양파, 양배추, 당근, 김치를 넣고 채소들이 가볍게 숨이 죽을 때까지 볶아낸다.
양파가 투명해지고 당근이 물렁해지면, 미리 준비한 양념장을 넣어주고, 양념이 뭉치지 않게 잘 볶아낸다.
이제 육수를 부어내야 하는데…
“역시 현대는 편해~”
강하는 미리 준비한 육수 스톡을 물에 섞어, 그대로 부어주었다.
물론 직접 육수를 우려내어 만든다면 훨씬 맛이 있겠지만, 어차피 혼자 가볍게 즐길 용도이고 뒷처리까지 생각하면, 이쪽이 편했다.
고기가 반쯤 잠길 정도로 육수를 부어주고, 팔팔 끓어내 준다.
마무리로 참기름과 참깨를 뿌려내면….완성!
“앗차…! 두부를 깜빡했네. 큰일 날 뻔 했네…!”
어느새 펄펄 끓기 시작한 냄비의 불을 줄이고, 미리 잘라두었던 두부를 데쳐내어, 고기와 함께 그릇에 장식해서 올려준다.
이제, 진짜 완성!
“크~ 냄새 죽인다~!”
맛깔나게 익은 김치 두루치기와, 새하얀 빛을 내는 두부.
이건 가히 범죄적인 술안주…!
“잘 먹겠습니다!!”
침을 꼴깍 삼키던 강하는 곧바로 젓가락을 들어, 두루치기를 먼저 맛보았다.
“...음! 고기도 쫄깃하고, 양념이 잘 배어있네! 김치랑 양파도 씹히는 맛이 좋아!”
사정없이 씹히는 고기와 약간 아삭함이 남아있는 야채들.
혀가 조금 간지러울 정도의 매운맛이 식욕을 더욱 돋운다.
그리고 이때, 소주 한 잔을 딱!
“크으…! 이거거든…!”
목구멍이 뜨거울 정도의 소주가 그녀의 목을 후끈하게 달아오르게 하였다.
“이번에는…두부랑 같이..”
다음엔 두부 한 조각 위에 두루치기를 올려서, 같이 맛보았다.
“음…직접 만든 두부에 비하면 조금 모자라기는 하지만…괜찮은걸?”
한번 데쳐 따뜻한 두부가 입속에서 사르르 녹으며, 고기와 함께 어우러지는 맛은 정말 최고였다.
“...캬하! 최근에 술을 못 마셔서 그런가? 오늘따라 소주가 달달하네?”
달달한 소주.
이 의미는 바로, 오늘 간은 죽었다는 의미였다.
물론 강하같은 반룡인에게는 끄떡도 없지만, 그날 강하가 비운 소주병의 개수만큼, 향이에게 잔소리를 들어야만 하겠지만, 이제 막 소주병 한 병을 비운 강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
두루치기 입니다!
술 안주는...제가 술을 잘 안마셔서 모르겠지만, 밥반찬으로는 끝장난다는 그 김치 두루치기!
저는 고기가 한 30%남았을 때, 남은 밥 위에 올리고 김가루 조금 뿌려서 비벼먹는것을 참 좋아합니다!
아...침고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