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화 〉 IF 외전: 그녀들의 첫 등교.(2)
* * *
“자~ 긴장하지 말고, 자기소개를 해 볼까요?”
이슬반의 담임, 김다희는 자리에 일어나서 말이 없는 그녀를 향해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당히 수줍음이 많은 친구구나~
그렇게 생각할 때쯤.
“류월이다.
여기서 충고 하나 하지,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내고 싶다면, 나를 건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털썩.
칠흑같이 어두운 긴 머리칼을 가진 소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곧바로 다시금 자리에 앉아, 팔짱을 꼈다.
“....아…하하..! 류…월아? 친구들한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다시 한 번 자기 소개를 해 볼까?”
뭐야 얘.
이 나이 때 보통 중2병이 오나?
다희는 당황했다.
초등학교 교사를 맡은 지 어언 4년.
그것도 막 입학한 1학년을 맞는 것만 3년이다.
이때의 아이들은 솔직히, 버겁다.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아직 많이 어린 아이들은 집중도 힘들고, 자주 울고, 여러가지 트러블을 일으키기 쉽다.
그래도 그녀 스스로는 이런 난장판에서 꽤 많이 굴러봤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왠만한 아이들의 패턴은 전부 꿰뚫었고, 빠르게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는 사상 초유의 한 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허어….귀찮구나…”
[류…류월 님….!]
“넌 가만히 있거라. 이름을 밝혔으면 되었지, 어째서 시시콜콜 잡다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는 말이냐.”
다희의 말에도 심드렁하게 귀찮다는 태도를 팍팍 내자, 옆자리에 앉은 드라가 식은땀을 흘리며 무어라 해보려고 했지만, 단번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아…아직 적응이 힘든가 보네요…~ 그, 그럼 다른 친구가 이어서 해 볼까요?”
강적이다.
다희는 결국 다른 아이에게 차례를 넘기고 말았다.
하지만, 반드시 익숙해져 보이고 말겠다.
그것이 초등학교 교사라는 자리에 있는, 그녀의 자존심이었다.
*
“그래서, 어땠어?”
해가 중천에 떠오른 점심시간.
직원들이 모두 모여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부분 입학식과 개학식은 일찍 마치는 것이 국룰이라고 하던가.
그렇기에 향이 일행도 간단한 학교 소개만 끝내고 곧바로 집에 돌아온 모양이었다.
“음…학교, 라는 곳은 신선한 느낌이 들었어요! 제 또래 아이들도 많고, 앞으로의 생활이 기대되네요!”
강하의 질문에 향이가 먼저 오늘 학교에 처음 입학하며 느꼈던 소감을 말했다.
“뭔가….큰 사건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그런 것도 없고…..자기 소개 할 때는 긴장해서 혀를 씹고……우으…”
“개…갠차나….! 적어도 놀림은 안 받았잖아….!”
“그거 나한테는 전혀 위로가 안 돼 마오야…”
그 옆에 앉은 중학생 두 명은 조금 우울해 보였다.
[친구들이 잔뜩 생겼어요!]
“그래? 그건 다행이네~”
내친김에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한 드라는 방긋 웃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자, 진혁은 그런 드라를 장하게 여기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뭐…귀찮기는 하다만, 짧은 시간 동안만 가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 오늘처럼 어서 끝내고 집에서 쉬고 싶구나.”
최고의 문제아, 류월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능청스럽게 선언했다.
“.....내일부터는 거기서 3시까지는 있어야 한다.”
“뭐…뭣이라?”
오늘은 그저 개학과 입학식이 있어서 일찍 끝났을 뿐, 내일부터는 정상수업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오늘처럼 일찍 끝나지 않을 터였다.
“자…잠시 기다리거라, 그렇다면….그 곳에서 3시까지…?
바..밥은 주는 건가?”
“넌 그게 걱정이냐?!”
그렇게나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밥이 문제였나.
“그래, 학교에서 급식을 줄 테니까, 거기서 밥 먹으면 되겠지?”
“급…식?”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밥 주는 걸 말하는 거야.”
“호오…그렇군…알았다.
그래서, 이 쓸모없는 행위를 얼마 동안 해야 하는 것이냐?”
“적어도 1년은 다녀야지.”
“하아….정말 귀찮구나…
아니, 애초에 보아라! 청하! 저 계집은 맨날 집에 박혀있는데, 어째서 이 몸은!!”
“응?”
오늘 있었던 학교에 적어도 1년 이상을 계속해서 등교해야 한다는 소리에 류월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맞은편에 앉은 청룡에게 삿대질했다.
“아니아니 그거야…..네가 짜리몽땅…하니까?”
“..뭣?”
“그렇잖아. 한국에서는 너 같은 아이가 학교도 안 가고 집에만 있으면 가정폭력이라구?
나야 뭐…대충 성인 같아 보이니까…크기도 그렇고…그렇지?”
“이…이잇…!!”
류월의 삿대질을 코웃음 치던 청하는 자신의 가슴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매일같이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는 청하는 어느새 점점 한국의 문화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너도 가끔은 밖에 좀 나가라.”
“싫어, 컴퓨터가 좋아.”
“.....어째서 그 게임을 시켜줬던 걸까…”
하지만 청하 또한 개백조 히키코모리 같은 몰골이었기에 강하는 그다지 웃을 기운이 없었다.
“우후훗~ 다들 활기차구나~”
“....저는 힘듭니다만…”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백설이 후훗, 하며 웃자, 강하도 따라 미소를 지었지만, 눈은 죽어있었다.
“즐거운 점심시간이지만, 나는 조금 일찍 빠져야 할 것 같아.”
“어라,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러던 사이, 백설은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슨 일인가 싶었던 향이가 물었다.
“아~ 저번에 이 세계의 난제 문제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했는데, 그 수식을 정리해서 올렸더니, 여러 교수한테 연락이 왔거든~ 그래서 그 난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더라구~”
“....하?”
내가 잘못 들었나?
“앗,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맛있는 점심 고마워~ 먼저 올라가 볼게~”
백설은 재빠르게 접시에 담긴 음식을 오물거리더니, 곧바로 자신의 방이 있는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형님…금방 제가 잘못 들었던 건 아니죠…?”
“.....밥이나 먹자…”
“...네에…”
교수라면…대학교수 같은 걸 말하는 건가?
그런 사람들과 학문적 대화를 나눈다고…?
강하는 이내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크…크흠! 아무튼! 당분간은 학교를 다니면서 이 현대사회에 적응을 하는 시간을 가지자.
알겠지?”
“““네에!!”””
“이..이보거라! 난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
*
“끄응…귀찮구나아…”
[류…류월니임…]
아직 HR시간 10분 전.
류월은 학교 책상에 엎드려 팔로 뺨을 괴며 중얼거렸다.
“우헤헤!”
“야! 그거 내꺼야!”
“아냐! 내꺼야!”
“오줌마려…”
막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올라온 아이들은 모두들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교실을 돌아다녔다.
“이런 피도 안 마른 꼬맹이들과 1년을…? 에효…”
그녀가 누구인가.
흑룡, 류월.
그녀가 먹는 것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들, 그녀는 이미 수백 년을 살아온 고대종이었다.
그녀의 지적 수준은(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상당했고, 뛰어났다.
하지만, 아직 약점이 있었으니.
그녀는 인간에 비해서라면 엄청나게 나이가 많았으나, 용에 비하면 아직 꼬마라는 것이다.
용의 마력은 용들마다 천차만별이라고 한들 그 신체적 노화가 느린 엘프보다 더욱 성장이 느렸다.
청하는 이미 천 년이라는 세월을 가뿐하게 넘겼으며, 백설에 이어서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인간 신체는 아직 초등학생 수준이었다.
“아…안녕?”
[..응? 나?]
그렇게 참담함이라는 감정에 물든 류월을 위로하던 드라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응! 넌 어느 나라 사람이야?”
[...어디..나라?]
“우리 말 잘한다! 신기해!”
“엄마가 그랬는데, 외국 사람이래!”
“넌 어디 살아?”
“왜 우리나라에 왔어?”
[아…으…그러니까…]
한 남자아이의 질문을 시작으로, 그의 곁에 있던 아이들 또한 곧바로 드라의 곁에 달려와 그녀의 주위를 에워쌌다.
급작스러운 질문 공세에 드라는 무어라 말 해야 할지 모르고 그저 어버버 거리고만 있었다.
그때.
“이보거라, 드라가 곤란해하지 않느냐.”
무신경하게 엎드려있던 류월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희와 겉모습이 달라서 궁금해하는 것은 이해가 가거늘, 하지만 그렇게 압박감을 주면 상대의 입장도 곤란해질 터. 그러니 한 명씩, 천천히 말하거라.”
[류…류월님!]
드라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본 류월이었기에, 그녀를 위해 한마디를 말한 류월.
“....뭐라고 한 건지 모르겠어..”
“할아버지 같아~”
“재미없어~”
“뭐…뭐라…?”
하지만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그들의 어휘력은 류월이 말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냥 가자~”
“그래~”
“나중에 봐~”
“안녕~”
[아..안녕…]
류월의 고리타분한 말에 흥미가 떨어진 아이들은 드라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자리를 떠났다.
[류..류월님 고마워요…!]
곤란해진 자신을 구해준 류월에게 감명 깊게 감사함을 느낀 드라가 그녀를 향해 감사를 전했지만.
“고…고리타분…? 재미 없어….?”
아이들의 악의없는 말에 깊게 상처 받은 류월은 머리를 싸매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하…그래서…점심시간은 언제 오는 것이냐….”
[그…열 두시라고 했어오…]
“이 몸은 집에 돌아가고 싶다아….”
그녀들은 무사히 학교에 적응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류월과 드라의 학교생활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 * *